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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란 무엇일까
축제란 무엇일까
  • 기고
  • 승인 2016.05.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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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끝났다. 새삼 영화제가 무엇일까라는 자문을 해 보았다. 여러 장면들이 지나가면서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프리드리히 헤겔은 존재의 기원에 어리석음을 두었다는 이유로 셸링을 꾸짖었다. 헤겔은 대번에 심기가 불편했다. 인간의 현존재에 시원적 어리석음을 귀속시키는 일은 헤겔에게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고 희대의 오독을 불러올 ‘골칫거리’가 분명했다.”

좋고 아름답고 화려한 것 외에도

철학자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어리석음을 인간의 본질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헤겔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일일 것이다. 영화제 전에 화제를 모았던 알파고와의 대결의 결과 인간의 스마트함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매력이 스마트함과 이성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을 새삼 해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어리석음과 실수를 자주 발견한다. 코미디 영화가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어리석음을 하나의 장르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 아닌가.

아비탈 로넬은 이어서 말한다. “타자 앞에서 나는 어리석다”라는 지혜야 말로 진정한 철학적 앎이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주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발견해 내는 동시에 정리와 탐구를 목표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은 일종의 ‘오류’로 배제되거나 통제되어 왔다.

영화제를 하다보면 계몽주의자에 가까워질 때가 많다. “세상에는 이런 영화도 있고, 저런 사유를 담은 작품도 있어요.”라고 말이다. 실상 영화제에 대한 저널의 글들을 보면 상영작품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대부분 기사는 행사에 대한 것이다. 덕분에 작품을 소개하려는 의지는 더 커진다. 그런데, 올해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은 영화제라는 곳도,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모아 두는 것도 계몽의 의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어리석음을 발견하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영화가 보여주는 어리석음이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상 각지에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들이 보여주는 우둔함, 유럽의 이민자들이 벌이는 갈등 그리고 코미디와 폭력을 오가는 장르적 변주들은 대부분 인간의 어리석음을 기반으로 한다. 관객들은 이러한 영화들을 보며 스스로 각성하기도 하고, 어리석음을 보태기도 한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왜 그렇게까지 불편한 장면을 만들어야 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이 나오는 영화의 상당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의 행동이 일으키는 불편함을 주제로 삼는다.

그러나, 질문은 그 장면만 빼면 아름다울 텐데 왜 불편하고 힘든 장면을 넣었느냐고 반문한다. 정답은 이미 질문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불편해 했을 한 장면을 위해 전체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올해 단편 영화 심사위원으로 왔던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도 자주 받았던 질문이다. 진지한 영화가 인간의 어리석음과 불편함을 카메라를 통해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시선이 그러한 현실에 가 닿을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견하는 일

영화제는 영화라는 거울을 통해 어리석음을 발견하는 장소다. 흔히 축제를 좋고 아름다운 것, 화려한 레드 카펫의 무대로 상상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리석음의 교감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런 진심이 꽤 통했던 것 같다. 50회 이상 늘린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지난해 보다 늘린 상영작 편수를 통해, 그 어느 해보다 잘난 체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지만 그 또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어리석음들이 모여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영화제는 분명 특별한 시간이다. 나는 이러한 시간들이 축제가 끝난 후 우리의 일상에 더 많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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