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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물결, 저 징허게 이쁜 꽃밭
한복 물결, 저 징허게 이쁜 꽃밭
  • 기고
  • 승인 2016.05.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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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천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옷이 날개라는 속담,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실감한 적이 있다. 산사의 방 한 칸을 얻어 공부하던 시절에 스님들 헌 바지 하나를 빌려 입던 날의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편한 바지가 있었다니!…앉거나 서거나, 혹은 걸어 다니거나 바지는 정말이지 편했다. 오죽했으면 일부러 다리를 들어 올리려고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두 다리가 신들린 듯 번갈아 하늘로 날아오르듯 했다. 그래서 알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하고.

다시는 한복을 입지 않았던 사연

설이었던가? 결혼빔으로 선사받은 한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고향집을 찾아갈 적에도 그랬다. 아마도 혼인한 해였을 것이니, 벌써 삼십년도 넘은 얘기다. 아내는 붉은 치마에 오방색이 찬연한 까치저고리 차림이었고 나는 연분홍 바지에 짙은 청색 마고자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우리 부부를 보더니 길가에 세워둔 채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시면서 좀체 놔주지를 않았다. 징허게 이쁘다고, 어쩌면 이렇게 곱냐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그때 할머님들의 낯빛이 또렷하다. 하지만 시골집에 도착해서 TV를 시청하던 중에 아주 낭패스런 얘기를 듣고 말았다. 내가 다시는 한복을 입지 않았던 사연이 거기서 비롯했다. 실내에서라면 몰라도 외출할 때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받쳐 입어야 하는 법이라고, 만약 그렇지 않고 마고자만 달랑 걸치고 밖에 나서는 건 상것들의 옷차림이라고 한복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떤 여자가 TV에 출연해서 사납게 꾸짖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두루마기가 없었다. 까짓 두루마기 한 벌쯤은 어렵잖게 장만할 수도 있었지만 한번 빈정 상해버렸던 터라 그걸 맞추러가기가 영 싫었다. 내 한복은 그날 이후 장롱 속에 매장된 채로 삼십 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여자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나는 더러 그때를 떠올려보곤 한다.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런 얘기를 언급한 이유가 혹시 두루마기 한 벌 더 팔아보겠다는 얕은 장사꾼의 수작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오방색의 화려한 옷 위에, 더구나 값비싼 호박(琥珀) 단추까지 매달린 저고리와 마고자 위에 반드시 그 칙칙한 쥐색 두루마기를 껴입어야만 한다고 했던 이유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 한복에게 미안해진다.

요즘 들어 전주 한옥마을에는 한복 물결이 출렁인다. 꽃밭도 그런 꽃밭이 따로 없을 정도다. 한복에서 무슨 피톤치드라도 발산되는 것인지, 나는 저절로 흥이 일곤 하는 한복 꽃밭을 구경하느라고 일부러 발길을 그리 돌리기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잠시 길가에 세워두고는 징허게 이쁘다고 들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 무리 가운데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은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만약 두루마기까지 입어야 하는 법이라고 돼먹지 않은 훈계를 한다면 그들 역시 오래 전의 나처럼 입고 있던 한복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도로 벗어 내던질지도 모른다.

규격화된 환경에서는 질식해 못 살아

문화는 그런 것이다. 생전에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홍동백서, 조율시이(棗栗枾梨)식으로 규격화된 제사상을 차리는 환경에서는 질식해서 살지 못하는 게 문화다. 치마폭이 거꾸로 여며지면 기생, 아얌 같은 쓰개가 아닌 전모(氈帽)라는 이름의 어우동 쓰개 역시 기생 모자라는 따위의 괜한 간섭이 한옥마을 인근에서 들려오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을 다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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