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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안저우 기행] 중국의 全州, 금산사·기린산·완산…우연인가 필연인가
[취안저우 기행] 중국의 全州, 금산사·기린산·완산…우연인가 필연인가
  • 장서묵
  • 승인 2016.06.01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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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곳곳 산재…고속철 개통 산업화 빠르게 진행 / 고려 왕 사신 파견 등 백제계 연관성 추가 연구 뒤따라야
▲ 중국 구이린시 취안저우현의 지역 명문 고교인 취안저우고등학교. 전주고와 같이 1919년에 개교했다.

2002년 KBS는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 대륙의 남서쪽 끝자락의 오지에 한국 전주와 지명·풍습이 유사한 곳이 있다는 다소 흥미로운 내용의 다큐멘터리 ‘중국에도 전주가 있다’를 방영했다. 그곳은 중국 광시성(廣西省) 취안저우(全州)였다. 그후 한·중 전주의 유사성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지명 외에도 유사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양 도시는 2010년 우호교류 의향서 전달을 시작으로 각 대표단이 서로 꾸준히 왕래하는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 한국이 앞선 한자식 명칭

2011년 전주시는 양 도시 간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 조사단을 꾸려 연구에 나섰지만,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동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백제계 유민과의 연관성은 희박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서로 일치되는 지명들은 모두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으로 일단락됐다.

한국 삼국고대사 분야에 활발한 연구활동을 보이고 있는 산시(陝西)사범대학 바이건싱(拜根興·52) 교수 역시 한·중 전주의 유사성 및 백제사 학술 연구에 대한 견해를 묻는 본보 기자에게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살아온 양국에 동일한 지명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면서 “학술 연구란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관련 근거가 부족해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굳이 무리해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전주시 조사보고서 말미에 지적된 것처럼 몇 가지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고려 충선왕이 이곳 중국 취안저우 상산사(湘山寺)에 보낸, 후의 가득한 하사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대부분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는 중국식 지명의 선후관계와는 달리 전주는 드물게 한국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점, 그리고 후백제 멸망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로 중국에 취안저우라는 지명이 등장했다는 점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당시 조사단장이었던 조법종 우석대 교수(55·역사교육과)는 “현지 조사의 시간적 한계와 유적의 망실 등으로 조사활동에 아쉬움이 있었다”고 전하며 해당 의문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음을 밝혔다.

설사 한·중 전주의 유사점이 모두 우연의 일치라 해도 자신의 닮은꼴이 존재한다는 점은 여전히 당사자들에게 강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한국 전주와 베트남과 인접해 있는 중국 변방의 광서성에 속한 취안저우 사이엔 직선거리로만 2000㎞에 육박하는 공간적 장벽이 있다. 이 두 도시의 인연 속엔 어떤 우연과 필연이 내포돼 있는 것일까.

△ 취안저우(全州)

취안저우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중국 남쪽의 관광도시인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시(桂林市)에 속한 12개 현 가운데 하나다. 위치는 광시좡족자치구의 동북쪽이며 총면적은 4000㎢가 넘고 인구 82만 명으로 구이린시 예하의 12개 현 중 면적과 인구면에서 제일 큰 현급 도시다.

기후는 구이린시와 비슷한 아열대 기후로 연평균 온도가 섭씨 17.7도 정도로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늘 안개가 많고 습도가 높다. 쌀과 밀, 옥수수 등의 농업 생산지로 유명하며 옛부터 구이베이(桂北)의 곡창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광시성 지역문화연구단체의 부회장을 역임한 취안저우 출신의 유력일간지 편집장 쟝친후이(蔣欽揮·54)에 따르면 취안저우의 지역문화 형성엔 고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외래인의 유입, 전진법사의 불교 포교, 역대 관료들의 행정, 교육중시 문화 등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이 지방의 역사를 기록한 <상산지(湘山志)>에는 서기 937~939년 사이 이곳을 다스리던 초왕 마희범이 정부에 상주를 올려 고승 전진(全眞)화상의 이름을 본따 본래 상원(湘源)이었던 이곳 지명을 전주(全州)로 개명한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 전주가 신라 경덕왕 시기인 서기 757년 완산에서 개명했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둘 사이엔 180여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현재 취안저우 곳곳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바 없이 도로와 건물을 신설하고 개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난 촌락에선 여전히 소를 몰며 논밭을 갈고 산양 등을 방목하는 오지 촌민의 일상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도시민은 취안저우의 생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몇 년 전 이곳에도 첨단 고속철역이 신설돼 교통환경도 대폭 개선됐다.

△ 금산사(金山寺)

▲ 취안저우 남서쪽 진산촌 부근 금산사 유적지 정문.

취안저우 금산사 유적지가 있는 곳은 취안저우 남서쪽 방향으로 12㎞ 떨어진 진산촌(金山村) 부근이다. 유적지는 그동안 이곳 촌민의 초등 교육시설로 사용되다 안전 우려 때문에 2005년 철거되었다고 한다. 철거 당시 그나마 남아있던 고건축물도 같이 해체돼 현재 금산사 경내엔 비석 하나와 절터의 위치만 짐작할 수 있는 기단 등의 흔적만 있다.

취안저우 금산사는 관련 사료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에 건축된 임제종 계열의 사찰이다. 학자들은 청나라 초기, 구체적으로는 강희에서 가경년간의 시기가 최고 번성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찰은 또한 산시성 닝우현 문화관(山西省寧武縣文化館)에 보관되어 있는 만력장(萬歷藏)이라는 불교 대장경에 광서전주금산사상주(廣西全州金山寺常住)라는 표식이 남겨져있어 해당 대장경의 초기 보관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금산사 유적지의 뒤켠엔 현재 쿤산(崑山)화상과 귀이(歸一)화상의 두 개의 부도탑이 남아있다. 유독 훼손이 심한 귀이화상의 부도탑엔 최근까지 주변을 파헤친 흔적이 있어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2~3개월 전 도굴 시도로 당국에 신고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문화재 도굴은 오늘날 중국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 기린산(麒麟山)

중국 기린산은 취안저우 중심 광장에서 남동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오지 고원지대에 솟아있는 해발 600미터의 산이다.

현지 취재 당시 토착민 역시 거주지 주변의 산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위치 확인에 어려움을 겪던 중, 운좋게 이곳 토박이로 60여년 이상을 거주했다는 주민 탕(62) 씨를 만나 그의 안내로 정상까지 등정할 수 있었다. 그는 중국 광시 취안저우의 기린산은 바로 옆의 사자산과 한쌍을 이루고 있다며 사자가 기린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의 지역 전설도 소개했다.

△ 상산사(湘山寺)

상산사는 취안저우라는 지역명의 유래가 되는 전진화상이 서기 756년에 세운 불교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정토원(淨土院)이다. 남송 고종때 상산사로 개명했으며, 조정은 칙령을 내려 초나라 남쪽 제일의 사찰(楚南第一名刹)로 봉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은 이 사찰을 매우 중시했다고 전한다.

상산사에는 광시성에서 제일 오래된 불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높이 26m, 직경 6.8m에 달하는 먀오밍탑(妙明塔)이 아직도 건재하다. 1944년 무렵 전란으로 사찰 내 유적이 대부분 화재로 소멸되었지만 이 탑만은 화를 피할수 있었다고 한다.

<상산지(湘山志)>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국왕이 이곳 상산사에 사신을 파견하여 6가지의 보물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시기적으로는 고려 충선왕에 해당한다. 고려와 이 사찰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 규명은 추가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완산(完山)

▲ 취안저우 동남쪽 강가에 위치한 산인 완산 정상에 건립된 레이공탑.

취안저우 도시 동남단 강가에 위치한 산. 완산은 취안저우 서쪽과 남쪽에서 흘러오는 세 물줄기가 북쪽을 향한 상강(湘江)으로 합쳐지는 곳에 홀로 우뚝 솟아있다. 원래 보위산(鉢盂山)으로 불리웠지만 명나라때 지방 수령 고린이 지금의 완산으로 개명했다. 완산 정상에는 최근에 지어진 레이공탑(雷公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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