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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들
  • 기고
  • 승인 2016.06.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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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새로운 유행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유행이라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뒤를 따라가느라 힘겨움을 느낀다. 그것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죽음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리모콘 조작법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장면처럼 말이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전개되는 영화의 장면을 보다가 문득 비디오라는 매체도 사라진 테크놀로지가 되어 버렸다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새로움의 변화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모든 이야기에 경쟁 코드 집어 넣어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낸 인간이 뒤처지는 현상을 두고 독일의 비평가 귄터 안더스는 ‘인간의 골동품화’ 현상을 오래 전에 논한 바 있다. 초기 미디어 시대를 살았던 안더스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인간 사이의 격세지감을 두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느새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고 진단한다. 테크놀로지나 미디어 문화를 두고 보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문화가 얼마만큼 새로운가 하는 것이다. 요즘 방송의 트렌드를 생각해 보자. 다양한 채널에서 만들어 지는 두 가지 주요 소재는 ‘아이돌 혹은 음악’과 ‘요리 혹은 요리사’이다. 뮤방과 쿡방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이 된다. 프로그램도 하도 많은 탓에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그런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두 흐름은 실상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두 편으로 갈라진 요리사들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경합을 벌여도, 기성 가수들이 아마추어 가수들과 한 편이 되는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도 동일하게 지닌 구조가 있다. 그것은 경쟁이다. 음악을 앞세워서 가수와 일반인의 듀오를 만들어 내고, 국내를 넘어서 해외의 요리사들과 함께 요리의 향연을 펼쳐도 대다수의 프로그램들은 ‘서바이벌의 형식’을 취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유행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결국 ‘서바이벌’의 변형이다. 유행이나 새로움이나 서바이벌을 다른 형식과 다른 느낌으로 포장해 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서바이벌 형식은 삶의 경쟁을 모토로 삼는 한국의 기업 문화와 학교 문화를 대변한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무엇을 보든 서바이벌이 없으면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대결의 긴장감이 시청률을 보장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서로 물고 물리는 이 구조는 문화의 구조로 고착화 되어 버렸다. 그것은 미디어라는 것은 인간을 새로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골동품을 고착시키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한국 사회의 경쟁 문화는 모든 이야기 속에 경쟁 코드를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현실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2등은 무의미한 것이고, 4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변화는 무의식을 바꾸어야

진정한 변화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을 바꾸는 데 있다. 경쟁적으로 채널을 돌리고, 경쟁적으로 주차장의 자리를 찾고, 경쟁적으로 예매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음악을 통한 여유나 맛있는 음식을 통해 삶의 전환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경쟁적으로 맛집을 발굴하고, 경쟁적으로 환상의 목소리를 전시할 따름이다. 그 속에 문화가 있다고 여기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와 삶을 미디어의 한 프로그램으로 전환했을 따름이다. 무의식의 변화는, 이 고리들과 완전히 단절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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