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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노무현] 노무현은 누구인가
[선택, 노무현] 노무현은 누구인가
  • 권순택
  • 승인 2002.12.2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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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스타'로서 국민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지역주의를 깬다며 무모한 선거에 도전, 유권자의 기억을 되살리던 ‘바보 노무현’이 노풍(盧風)을 타고 21세기 첫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후보가 되기 까지 노 당선자의 인생 항로는 ‘시골소년 상경 성공기’의 전형이다.



특히 가난의 열등의식에 시달리던 반항아에서, 사법고시 합격과 판사를 거친 후 변호사 개업 초기까지 신분의 수직상승이라는 출세를 즐기다, 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새로운 가치관에 눈을 떴다. 결국 민주화운동 변호사로 탈바꿈한 뒤 노풍을 타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노 당선자는 지난 46년 8월 6일(음력), 경남 김해시 진영읍으로부터 10리쯤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빈농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의 사이에서 3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봉화산과 자왕골을 등에 지고 있는 이 마을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며, 막내인 데다가 재주도 많아서 집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가난으로 인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성격도 명랑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화로는 교내 붓글씨 대회에서 편파적인 운영으로 1등상을 놓치게 되자 이에 대한 항의로 시상식날 2등상을 반납하여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난 일이 있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서 매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애쓰고 있다. 직선 전교 회장을 지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부산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은 방황을 한 끝에 졸업 후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변변치 않은 대우에 실망, 고향에 돌아가 고시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린 시절부터 큰 형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고시에의 막연한 꿈을 갖고 있던 터에 66년 10월 고졸 출신들에게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사법 및 행정 요원 예비 시험’에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75년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66년부터 시작은 했지만 실제로 공부를 한 것은 군대를 갔다 온 다음인 71년 5월경부터였다.



합격하고 나서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을 거친 후 77년에 대전지방법원판사로 임용되었고 그 후 78년에 변호사를 개업했다. 고시공부중이던 73년 1월 고향 진영에서 같이 자라면서 사귄 권양숙씨와 결혼을 했다.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 탄압의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부산의 ‘부림’사건 이었다. 이는 서울의 ‘무림’ ‘학림’ 사건과 마찬가지로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자, 조작사건이었다.



노 당선자는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행방불명된 학생들의 어머니의 모습, 고문을 당한 학생들의 모습 등을 보면서 이후 시국사건·노동 관련 사건 등 인권 변론에 치중하게 되었다.



84년 발족된 ‘공해문제연구소’의 이사가 되었고 85년에는 송기인 신부를 중심으로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만들면서 재야운동에 나서는 한편, ‘노동법률상담소’를 차렸다.



86년경부터는 변호사 업무를 거의 중지하다시피 하고 운동에 전념, 87년 민주쟁취국민 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6월 항쟁’의 주역이 되었다.



88년 노 당선자는 통일민주당의 공천 제안을 받고 부산 동구에 출마, 민정당의 허삼수씨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5공비리조사특위’의 청문회 활동에서는 정주영·장세동씨 등의 증인 신문에서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날카로운 추궁을 보여줌으로써 일약 청문회 스타로 부각되었다.



90년 1월의 민정·민주·공화 3당의 합당에 반대, 노 당선자는 당시 김정길 의원 등과 함께 당 잔류를 선언하면서 꼬마 민주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민주당 내에서 일관되게 김대중 총재의 신민당과의 야권통합운동을 전개, 마침내 두 당은 91년 9월 통합민주당을 출범시키게 되었고, 그는 첫 대변인으로 발탁된다.



통합민주당의 간판으로 노 당선자는 92년 3월 14대 총선에서도 다시 부산 동구에 도전하지만 이번에는 민자당으로 당적이 바뀐 허삼수씨에 패배,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낙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92년 12월의 대선에서 물결유세단 단장으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고, 그 결과 다음해인 93년 3월 전당대회에서는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당의 중진 반열에 오른다.



노 당선자는 95년 6월 27일 치러진 제1회 지방동시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자당의 문정수 후보에게 패배, 또다시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당선자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지만 김대중 총재의 사실상의 정계복귀와 지역등권론 등의 역풍으로 최종적으로는 낙선하고 말았다.



95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되자 노 당선자는 민주당에 잔류, 이후 96년 1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간판으로 서울 종로구에 도전했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이후 국민통합추진회의 (상임대표 김원기) 활동을 하다가 97년 대선 국면을 맞아 통추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자 김원기, 김정길씨 등과 함께 11월에 ‘정권교체’를 위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대선기간 중 김대중 후보를 위한 시청률 1위의 TV찬조연설을 하여 국민의 정부 탄생에 기여를 했다.



98년 7월 치러진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노 당선자는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 당선돼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99년 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던 개혁에 반대하여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이 영남권에서 지역갈등을 이용한 집회를 거듭하자 노 당선자는 다시 종로 지역구 포기, 부산행의 결단을 내렸다.



이후 2000년 4월의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 많은 지지자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에게 패배하여 또다시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이를 계기로 그를 아끼는 전국의 지지자들과 네티즌들이 모여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2000년 8월에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된 노 당선자는 격의 없이 직원들과 이메일 대화를 하는 등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정운영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폭넓은 경험을 쌓는 한편, 낮은 자세의 리더십으로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 당선자는 2002년 3월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시·도에서 치러진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당당히 새천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노무현의 당선은  '개혁과 통합'을 원하는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로 가능했고, 국민대권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노 당선자의 선거운동 방식은 전통적 선거캠페인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돈, 가신, 계보, 측근 없는 정치를 펼쳐 온 노 당선자는 국민이 후원금을 내고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는 방식을 공개적으로 요청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56억원 이상의 국민성금을 모았다.



희망돼지 저금통·카드 결제·휴대폰 모금·희망 티켓 등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진행 된 모금 행사는 선거자금의 모금의 기존 방식을 뛰어 넘었으며, 미디어선거 인터넷선거 정책선거의 원칙과 결합돼 국민참여형 선거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노 당선자는 그러나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와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기치로 단일화에 전격적으로 합의, 국민 단일 후보로 나섰으나 선거일 1시간여를 남기고 정후보가 지지를 철회, 선거 막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살얼음판 승부 끝에 이 후보를 물리치고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꿈을 일궈냈다.



◈ 노무현 당선자의 신상명세



출생  │1946년8월6일(음력) 경남 김해
본관  │광주 노씨 혜은 만자파 25대손
신체  │키 168㎝ 몸무게 62㎏ 혈액형 O형
학력  │김해 진영중, 부산상고
군복무│육군상병 만기제대
가족  │부인 권양숙(55)씨와 1남1녀
재산  │8억6천924만6천원(2월23일 당선관위 신고)
납세  │소득세 140만원 재산세 14만원 종토세 9만원(2001년 기준)
종교  │없음
취미  │등산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존경인물│링컨 김구
외국어  │영어(중상)
성격    │솔직담백 서민적 합리적
좌우명  │자신에겐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
주량.흡연│소주 반병 맥주 1병반 지난해 9월부터 금연
경력1│대전지방법원 판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집위원장
경력2│13, 15대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민주당 최고위원 상임고문
홈페이지 │www.knowhow.or.kr
e메일주소│mhroh@knowho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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