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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당선자에게 바란다] (1)이종민(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노무현당선자에게 바란다] (1)이종민(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전북일보
  • 승인 2002.12.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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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구체적 삶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에 대한 후보자들의 공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한 느낌은 한마디로 황당함이다.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거창하다. 건강한 문화가 자발성에 근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욕과잉의 문화정책이 되려 비문화적 혹은 반문화적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그래서 이런 주문을 하고 싶다.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치부하라고. 엄청난 예산을 동원한 정책으로 문화예술판을 어찌 해보겠다는 망상일랑 하루속히 버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청산해야할 것이 문화산업의 논리일 것이다.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고, 아니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문화예술계에 어떤 부작용으로 나타났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이다.   



물론 진정한 문화는 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목표로 하는 문화는 참된 문화일 수 없다. 참된 문화는 오랜 세월의 수련과 단련을 통해 빚어지는 것이지 얄팍한 상업주의의 투기에 의해 금방 생산할 수 있는 상품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화두가 되어 버린 '문화의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꼼꼼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거대담론에 대한 부담, 정치나 이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문화적 욕구의 증진 등이 '문화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화정책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 확대되고 있는 문화적 권리(文化權)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의 '지방분권화'도 주문하고 싶다. 문화는 삶의 반영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빚어지는 것이어야 건강할 수 있다.



문화의 생산과 향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중앙에서 만들어내는 문화로는 문화의 주체로 서고 싶어하는 각 지방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



문화정책은 바로 이러한 문화의 자발성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심하게 말하자면 정책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란 이처럼 우리 모두가 주체로 서서 문화를 만들어가고 향유해 나가는, 그런 시대를 뜻한다.



월드컵의 응원문화나 촛불시위문화가 바로 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아무쪼록 의욕과잉으로 그렇지 않아도 많이 헝클어진 문화판을 더욱 어지럽게 하는 일이 없기를,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을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고 싶다.



/이종민(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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