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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황수 전북경찰청장 "사회적 약자 아픔 보듬는 치안활동,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

지난달 22일 취임한 강황수(58·간부후보 37기) 제34대 전북경찰청장. 경찰 생활 대부분을 전북에서 보낸 강 청장은 경무관으로 승진한 뒤 수도권과 제주도 등에서 근무하고 3년 만에 고향인 전북으로 돌아왔다. 누구보다 전북의 치안 사정을 잘 아는 강 청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3년 만에 고향인 전북으로 오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북일보 구독자 여러분, 그리고 도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북경찰청장 강황수입니다. 지난 2019년 전북청에서 2부장으로 근무하다 수사연수원으로 떠난 이후 제주청장, 경찰청 생활안전국장, 안보수사국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다 3년 만에 전북청장이라는 소임을 부여받아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의 치안책임자라는 생각에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그간, 크고 작은 역경을 함께 극복해냈던 동료들의 저력을 상기하며, 든든한 마음과 힘찬 발걸음으로 시작했던 시간이 벌써 3주가 지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치안현장과 관계기관 등을 방문하면서, 적극적·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우리 전북경찰 가족들과 전북경찰에 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주신 도민들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운 마음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도민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전북경찰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누구보다 전북의 치안 사정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5000여 전북경찰에게 특별히 주문하신 게 있나요. “전북치안 최종 목표는, 도민이 안전하고 평온하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경찰이 도민들의 불안요소가 무엇인지 디테일하게 점검하고, 드러난 위험요소는 신속하고 성의 있게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기본 마음가짐으로써 성리(省理), 성사(省事), 성심(省心)이라는 살핌의 자세를 동료들에게 강조하였는데요. 이는, 시대의 흐름이나 이치를 세심히 살피고, 이해하며, 치안현장의 크고 작은 일들을 편견없이 공정하게 처리하고, 소외나 차별로 상처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없도록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살핌의 자세를 기반으로 보다 디테일하고 성의있는 치안활동이 우리 전북경찰에 안착된다면, 도민안전을 넘어 감동의 치안서비스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며, 청장인 저부터 이를 현실화 하는데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됐습니다. 자치경찰위원회와 어떻게 협력해 나가실 계획이신가요. 또 어떤 부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전북경찰에서는 자치경찰제의 도입 취지에 맞게 도민의 안전과 편안한 삶을 위해 도민 밀착형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치경찰위원회와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민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교통안전’과 ‘주취자 및 정신질환자’ 등에 대한 맞춤형 치안 대책을 적극 추진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과 분리되지 않은 불완전한 형태로, 향후에는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이원화 형태의 자치경찰제 도입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민들이 가장 체감할 수 있는 주요 정책으로 교통 정책을 꼽으셨습니다. 어떤 교통 정책을 펼쳐 나가실 계획인가요. “도민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시는 부분 중의 하나가 출퇴근길 상습 정체구간에 대한 해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8일부터 한 달 간 전북 도민 대상으로 출퇴근길 교통불편 사항이나 개선방안을 공모할 계획입니다. 우수 제안을 적극 반영해 도민의 눈높이에 맞춘 주민 참여형 교통환경을 제공토록 하겠습니다. 또한, 지난 12일부터 ‘보행자 보호의무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전에는 보행자가 차량을 살피면서 횡단하던 분위기를 이제는 운전자가 적어도 횡단보도에서만큼은 보행자를 잘 살피고 보호하자는 취지라 볼 수 있습니다.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며, 도민 모두가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한 전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음주나 정신 관련 질환자들의 범죄가 많아졌습니다. “지난해 8월 원광대학교병원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개소하고, 지난 5월에는 같은 병원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까지 운영되면서, 현장 경찰관들의 주취자와 정신질환자 처리에 대한 부담이 획기적으로 경감되었습니다. 전주권은 도내에서 치안수요가 가장 집중되어있고, 만취자·정신질환자 등으로 인한 현장 경찰관들의 업무부담이 큰 만큼, 관련 현황을 분석해 전주권 개소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주권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가 개소될 경우 보호조치 대상자에 대한 신속한 응급조치가 가능하고, 경찰관서 내 장시간 보호조치에 따른 부담을 해소 할 수 있어, 전주권 치안역량이 한층 더 강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개소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시설이 필요한 만큼, 전라북도·도의회·자경위 등과 긴밀하게 협업하여 보다 안전한 전북을 만드는데 앞장서 나가겠습니다.” 6·1 지방선거 사범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지방선거가 종료된 지 45일이 지났는데, 전북경찰은 선거 관련 총 128건 198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여 70건 123명을 송치했습니다. 58건 75명을 불송치등 종결하였으며, 현재 70건 123명에 대하여 수사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거사건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여 수사중인 모든 선거사범에 대해 다른 사건에 우선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들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다 안전하고 평온한 지역사회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경찰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도민의 참여와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우리 전북경찰은 항상 도민 여러분의 눈높이와 관점에서 생각하고, 어려움과 고통에 공감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보듬는 치안활동을 지역사회 공동체와 함께 실천하고자 합니다. 도민여러분께서도 안전하고 행복한 전북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전북경찰에 대한 관심과 성원도 아낌없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역을 밝히는 등불이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우리지역 정론지인 전북일보를 통해 전북경찰의 치안방향을 설명드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여기계신 관계자 여러분과 도민여러분들 모두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강황수 전북경찰청장은 익산 출신인 강 청장은 이리고등학교와 원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간부후보생 37기인 그는 1989년 경위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북청 정보화장비담당관·수사과장, 완주경찰서장, 익산경찰서장 등을 지낸 뒤 2016년 경무관에 승진해 전주완산경찰서장과 전북지방경찰청 제2부장을 지냈다. 특히 강 청장은 30여년 만에 전북청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전북경찰의 숙원을 풀었던 주인공이다. 강 청장이 경무관으로 승진하기 이전에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북에서 활동한 경찰관이 경무관에 오르지 못해 지역경찰관들의 자존심이 많이 떨어진 시기였다. 하지만 강 청장의 승진은 지역경찰의 희망을 가져왔다는 평가다. 강 청장은 “제가 승진한 이후 전북에서 활동한 경찰관들의 경무관 승진이 2차례 있었고, 많은 총경들이 경무관을 꿈꾸고 있다”면서 “지방에서 승진했다고 해서 타 지역에 가서 업무를 소홀히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후배들이나 저를 위해서도 지방에서 온 사람이 일을 형편없이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0년 치안감으로 승진한 뒤 제주경찰청장, 경찰청 국가안보수사국장 등을 역임한 강 청장은 민생치안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명산,회문산의 속살

[전북 일가(一家), 이 사람] 손길환국악기연구소 손길환·손태백, 연구하며 몸으로 익힌 기술…40여년 외로운 길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전북에 태평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태평소라니, 낯익은 단어다. 초등학교에서 3년여 피리와 태평소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듣게 된 그 '태평소'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게다가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서 태평소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평소를 제작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그 수많은 '태평소'들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우선, 태평소(太平簫)는 전통 관악기이자 국악기다. 나무로 만든 관에 여덟 개의 구멍을 뚫어, 아래 끝에는 깔때기 모양의 놋쇠를 달고, 부리에는 갈대로 만든 서를 끼워 분다. 농악이나 불교음악, 군중음악, 군영음악 등에 사용하는 악기 중 유일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도 ‘태평소는 규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음정과 음고가 일정하지 않다’고 적혀있다. 이 때문에 만드는 사람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표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6월 말 파란 여름 하늘에 해가 쨍쨍 내리쬐던 날. 전주에서 40여 분을 달려 정읍에 위치한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를 찾았다. 손길환 소장(64)과 그의 맏아들이자 제자 손태백 대표(33). 유쾌한 사람. 첫인상이 그랬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국내 유일 업(業)이 된 거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궁금했다. 손 소장은 처음엔 취미였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전라도에서 내로라하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무 다루는 일은 눈에 익었다. 풍물패 활동을 하던 부친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태평소를 접했다. 나이가 들고 직장, 아파트, 동네까지 가는 곳마다 풍물패를 만들고 패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내 태평소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아들도 함께한다. 연구하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만 따져도 40년은 족히 넘는 세월이다. 손 소장은 태평소가 눈에 띄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태평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사람이 본인뿐이라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됐다. 지난 2018년 국립국악원이 '실내악용 태평소 특허기술'을 국악기 제작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면서다. 그곳이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다. "우리보다 더 큰 곳들도 있을 텐데 왜 우리한테까지 왔을까 의문이었죠. 그런데 물어보니, 태평소 만드는 곳이 저희밖에 없대요." 국방부 군악대, 취타대나 국악원 등 태평소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손 씨의 태평소가 있다. 모양뿐 아니라 소리만 들어도 자신이 만든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태평소는 '비밀'이 많은 악기입니다 태평소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자꾸 중요한 것 한가지씩이 빠져있는 느낌이다. 어떤 나무로 만드는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치는지. 손 소장도 대답은 하지만 모호하게 말한다. 손 소장은 "악기에는 비밀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도 그동안 하지 않은 이유가 비밀이 많아서라는 이야기다. 태평소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공정은 셀 수가 없다. 아니, 셀 수 있다고 해도 기간이 짐작이 안된다. 우선 태평소를 떠올릴 때 기둥으로 볼 수 있는 '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각진 나무 하나를 둥글게 깎아야 하고, 옻칠과 구멍을 뚫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 과정들이 몇 번씩 반복되고, 나무 자체를 깎고 쪄서 말리는 과정도 1∼2년에 끝나지 않는다. 나무 하나가 태평소로 만들어지기까지 7∼8년은 족히 소요되는 셈이다. "누군가 태평소를 만드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물어봐도 없더라고요. 봉사 문고리 잡듯 힘들었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직접 부딪쳐가며 버텨왔다. 그래도 악기라는 게 나무는 특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문제가 생기는 것. "나무는 기다려야한다는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중국산 제품들이 손 씨의 제품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다. 아버지와 아들 3대, 숱한 실패에도 애정 가득 손 소장은 "(태평소는) 아버님께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부친은 집 짓는 목수였지만, 손 소장이 열 살 무렵 군산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장롱이나 찬장도 만들고, 탁자도 만들며 분야를 넓혀갔다. 아버지 옆에서 '가리'라고 하는 나무 깎는 기계를 구르며 눈에 익혔던 것이 지금의 자산이 됐다. 고등학교를 익산으로 진학하며 잠시 멀어졌지만, 군산 한국유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든 풍물패 덕분에 태평소와 다시 접점을 이을 수 있었다. 도립국악원 소속 박지중 선생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지금의 태평소 기틀을 다졌다. 배우고 만들고, 연구했지만, '돈'은 안되다 보니 직장 생활도 꼬박 25년을 채웠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는 않았어도 끈기 있고 성실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제가 꼬셨어요. 아깝잖아요. 인생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계속 꼬셨죠. 중학생 때부터" 맏아들이자 제자인 손태백 대표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큰아들인 태백 씨의 재능은 악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서 빛이 났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금세 예술고 학생들을 따라잡았고, 대학도 피리로 진학했다. 아들에 대한 말을 꺼낼때면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지만, 하나하나 듣다 보면 어마어마한 칭찬들이다. "저한테는 없는걸 다 가지고 있어요. 음감도 있고, 욕심도 있고, 꼬라지도 있어서 대충하는 게 없어요. 검수할 때 마음에 안들면 하루 종일 붙들고 있습니다. 대충하는 법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들은 편할 거라 덧붙인다. 연구과정에서 얻은 숱한 실패들을 아버지인 본인이 했기 때문이다. 국악기는 참 외로운 분야입니다. 무척이나 아쉽죠. 아쉬운 것을 묻는 말에는 금방 답이 나온다. 연구소에서 만든 소책자에는 수상 경력도 쓰여 있는데, 가장 위에 있는 경력이 바로 '제1회 한국악기공모전 전통악기분야 차상(태평소)'이다. 그런데 공모전은 1회로 끝이었다고 한다. 국악기만 경쟁하는 곳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도 기타부문에서 동상과 장려상, 특성, 입선 등 수상을 하긴 했지만 국악기 부문이 아니라 기타 부문이다. 매듭, 인두화, 붓, 가죽, 유리, 캘리그래피 등이 함께 경쟁하는 부문이다. "전주라는 우리 지역에서 하는 전통공예전국대전이 그나마 전국에서 크죠. 2∼3년 간격으로라도 선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다만, 외롭죠. 기타 부문에서 악기를 두고 경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습니다." 인연과 운명, 그리고 가족.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입니다. "어릴 땐 아버지 옆에서 돕는 게 참 지겨웠는데, 그런데 제가 어느 날 그걸 만들고 있더라고요. 이게 인연인가 싶기도 하고요." 손 소장은 모든 것이 '인연' 같다고 말하기도, '팔자'라고도 하며 섞어 부른다. 종교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목표와 같은, 상투적인 질문을 했더니, 금방 시큰둥한 말투로 바뀐다. "취미로 했고, 나이 들고도 돈이 되겠다고 해서 했지요. 악기 장인으로서 자부심 등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됐고요. 감사하게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고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대답이 겸연쩍었는지 말하고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를 덧붙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악기는 만들었지만,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공연도 사라지고, 입문하려는 사람들도 줄었기 때문. 통상적으로 1년에 150개에서 200개가 팔리지만 지난 2년여 동안에는 뚝 끊겨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은 것은 가족과 악기. 이것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기를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힘 있을 때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100년 뒤에도 내 악기를 사가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게을러질 수 없어요. 재미있어요. 100년 뒤 제 손주가 직업이 없더라도 제 악기를 팔 수는 있겠죠. 그때는 35만 원(지금은 30만 원 남짓이다)은 받지 않을까요." 끝으로 손 소장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뭐든지 30년 넘으면 좀 된다더라' 이거에요. 30년은 너무 기니까 눈 딱 감고 3년만 해보세요. 그러면 무엇이든 인생에 중요한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북일보SNU 팩트체크 제휴

[팩트체크] "광역도시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서 소외 지역낙후 가속화됐다”는 주장 ‘사실’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서 전북관련 사업이 단 1개만 반영되자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갑)의원이 지난 9일 열린김부겸 국무총리후보자 청문회에서 광역도시가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광역도시가 없는 전북, 충북, 강원 등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가 대도시권광역교통망 구축 사업으로 배정한 예산 127조 1192억 중 단 한 푼의 예산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역별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윤덕 의원이 총리후보자와 국토교통부 장관후보자 청문회서 한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 1.국토교통부가 제공한 광역교통위원회 현황과 예산배정, 사업현황 분석 2.현행법 상 광역도시와 철도망계획 확인 대도시권광역교통망 대상 권역은 현행법과 광역교통 2030사업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김윤덕 의원의 주장처럼 현행법(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대도시권을 특별광역시 및 그 도시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으로 국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역시를 배출하지 없는 전북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제외돼 있다. 현행 법령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망을 확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권역별로 수도권부산울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으로 분류했다.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이 아닌 것이다. 2021년 2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밝힌 대도시권 광역교통 위원회 주요업무 추진현황을 보면 대도시권광역교통기본계획은 해당 법 제3조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지역이 아니다. 광역교통2030 사업의 총사업비는 127조 1192억 으로 지방대도시는 부산울산, 대구, 광주, 대전으로 국한돼 있다. 이들 지역과 연관되는 경남, 전남, 충남은 대도시권역으로 인정받아 예산이 배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철도 외에도 고속도로나 국가도로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이 주장한 전주 같은 도시는 대도시권 교통망에 포함된 나주 같은 지역보다도 수요가 많음에도 정책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 2019년 국가교통조사DB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전국 여객 O/D 보완갱신 데이터와 한국교통연구원이 같은 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주시와 인접 도시 간 평균 통행량(6만3781건)과 광주권역 평균 통행량(8만403건)은 1만6622건 차이지만, 대도시권 광역교통 정책으로 예산배정에 있어 실제 수요보다 불리한 점이 파악됐다. 또 전주와 나주를 예를 들 때 전주 인구 약 66만 명, 나주시 인구 약 12만 명으로 5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지만,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배차는 30편대로 거의 같았다. !function(e,i,n,s){var t="InfogramEmbeds",d=e.getElementsByTagName("script")[0];if(window[t]&&window[t].initialized)window[t].process&&window[t].process();else if(!e.getElementById(n)){var o=e.createElement("script");o.async=1,o.id=n,o.src="https://e.infogram.com/js/dist/embed-loader-min.js",d.parentNode.insertBefore(o,d)}}(document,0,"infogram-async"); 현행 제도와 교통정책을 검토해 본 결과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수요와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은 사실이다. ※자세한 내용과 근거자료는 전북일보 인터넷 신문(jjan.kr)과 SNU팩트체크 홈페이지(factcheck.snu.ac.kr)에서 확인 가능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5)우영우 팽나무 vs 수동리 팽나무와 마을 숲

“어린 시절 저 나무 타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에서 잔치 한 번 안 연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 번 안 한 사람이 없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마을 어귀 오래된 나무와의 추억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마을 이장의 말이다. 도로 건설로 빚어지는 갈등을 천연기념물이 되면서 해결하는 일명 우영우 팽나무를 보며 고창 수동리 팽나무와 사연을 품은 노거수들이 떠올랐다. 우영우 팽나무가 있는 곳은 ‘소박하지만 덕이 넘치는 마을’인 경기도 소덕동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그 팽나무가 있는 곳은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이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창원 북부리 팽나무’는 마을과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다. 수세가 좋고 수형도 아름다워 2015년 창원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었지만, 문화재청에 공식으로 지정 건의가 없어 그동안 천연기념물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동리 팽나무처럼 마을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당산나무이다. 5월 즈음에 꽃이 피는 느릅나무과의 팽나무는 콩처럼 생긴 작은 열매가 달다. 그래서인지 ‘단맛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는 라틴어 ‘겔티스(Celtis)’에서 유래된 학명을 쓰고 영문도 ‘슈거베리(Sugar berry)’이다. 열매가 달아 즐겨 먹고 새들도 좋아하지만, 팽나무는 아이들이 열매를 딱총처럼 갖고 놀며 생겨난 이름이다. 대나무 대롱에 팽나무 열매를 넣고 꼬챙이를 꽂아 공기의 압축을 이용해 탁!치면 ‘팽~’하고 날아가며 소리가 나 그 나무총을 ‘팽총’이라 하고, ‘팽나무’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전해진다. 목수과자, 평나무, 포구나무 등 다양하게 불리며 한자어로는 박수(朴樹), 박수(樸樹), 자단수(紫丹樹) 등으로 쓰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 선조들은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어 길의 이정표로 삼았는데,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심었고 일본에서는 1리마다 팽나무를 심었다. 일본에서는 이정목으로 소나무를 심었으나, 개미 등 병충해로 소나무가 잘 죽자 팽나무로 대신하며 귀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팽나무는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神木)으로 이삭이 패고 꽃이 핀다는 의미로 이름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에 따라 부족한 기운을 채우기 위해 비보림으로 심거나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심은 까닭에 붙은 설인 듯하다. 고창 수동리 팽나무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신성시한 당산나무이다. 수동리 마을의 앞바다를 간척하기 전에는 팽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묶어 두었던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해풍과 습기에도 강한 성질의 나무인지라 오랜 세월 든든하게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매년 팔월 보름인 추석이 되면, 팽나무 앞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당산제를 지냈다. 수령이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수동리 팽나무는 수세가 좋고 수형이 늠름하고 아름다운데다 지역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한 역사성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반면, 고현(古縣)의 아래에 있어 하고(下古)라 불리는 마을에는 전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천연기념물이 되지 못한 마을 숲이 있다. 천변에 자리한 ‘하고리 왕버들나무 숲’은 고지도에도 그 위치가 특정되는데, 왕버들보다는 능수버들 군락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지역의 켜를 오랜 세월 층층이 품고 아로새긴 마을 숲이지만, 몇 해 전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건의 후 심의를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선조 때부터 특별한 사연을 지닌 마을 숲에 자긍심이 있던지라 주민들이 상심이 컷다고 한다. 하고리는 여러 성씨가 살며 자리한 고장으로 고려 시기 무송의 삼정승을 지낸 윤(尹)・유(庾)・하(河)씨가 살았다 하여 ‘삼정승의 명당 전설’이 깃든 곳이다. 마을 뒷산은 천문 별자리인 삼태성(三台星)을 빗대어 산 이름을 ‘삼태봉’이라 하고 마을도 ‘삼태’라 불렀다. 삼태성은 왕의 자리인 북극성을 호위하는 별자리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물을 담는 쪽에 길게 비스듬히 늘어선 세 별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비유해 삼공의 지위를 삼태성이라고 한다. 천하의 태평성대를 주관한다고 여겨 선조들은 삼태성이 밝아지면 태평성대를 누린다하여 중요하게 살핀 별자리이다. 그런 귀한 기운을 지닌 삼태마을이지만, 풍수지리상 학 혹은 떠 있는 배의 형국이라 한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서는 우물을 파지 않고 하천의 물을 길어다 사용했다고 한다. 우물을 파게 되면 배의 형국이 가라앉게 되어 마을의 운이 다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운을 보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삼태천 둑도 보호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또한, 수동리처럼 오래전에는 이곳 삼태천까지 배가 들어와서 정박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배를 메어 놓기 위해 나무들을 심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천변에는 200년에서 300년 된 왕버들나무를 비롯하여 팽나무, 소나무 등 백여 그루의 나무숲이 마을을 호위하며 풍파를 막아 주듯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는 든든하고 때론 경이롭다. 드라마에서 우영우가 팽나무를 보며 “볼 때마다 이 나무는 참 멋집니다”라고 담백하게 표현했고, 드라마의 선한 나비효과가 천연기념물과 노거수에 대한 관심도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 곁에서 너른 품을 내어주는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생멸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이 담긴 유산을 후손에게 전해줄 의무 또한 지금의 우리에게 있다.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전북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56)어휘와 어법에 천착, 비평의 새 길 연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는 1941년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에서 부 오해준과 모 선준량 사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제초등학교 졸업하였고, 김제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부안여자고등학교와 전주해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75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군산공업전문대학(현 호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재직하였다. 1989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소월 시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5년 뉴욕의 주립대학과 연변대학의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며, 중학교 다닐 때 『무정』, 『유정』, 『단종애사』와 『원효대사』 등 이광수 소설을 섭렵하였다.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인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이 소개되는 광경을 보면서 찬탄과 경이에 빠졌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전주고 1학년 때 서라벌예대에서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 현상문예에 시 「옛날」이 당선되었는데, 담임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신석정 선생이 이를 크게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운명과도 같은 신석정 시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석정 선생을 모시고 강인한, 오홍근, 강일부 등과 함께 맥랑시대라는 동인회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60년 전북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는 의외로 소설을 썼고, 3학년 때는 전북대학신문사 주최 현상문예에 소설 「신화」 가 당선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시에 당선된 장지홍, 수필에 당선된 김형진은 훗날 오하근이 주축이 된 『문예가족』의 멤버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학 시절 김교선, 이기우, 천이두 등의 지도로 문학평론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1981년 『현대문학』에 「불, 그 영원한 조합」이라는 평론이 추천 완료되었다. 그 후 그는 우리 문단의 깐깐한 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해석의 오류로 먹칠 된 작품들에 대한 바로 잡기에 앞장서면서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 『전북현대문학(상, 하)』 등의 역작을 저술하였다. 그는 1970년대 초 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시 부문에 등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 평론으로 등단하여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이상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부안여고에 재직하면서 「국정 중학 국어에 나타난 오류」(신동아)와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타난 오류」(전북일보)를 발표하여 당시 교과서의 문장, 문법, 표현법 등 수많은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게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에 집요하게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평론의 길을 열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김소월 시업법 연구』(1995)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에서 작품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어느 선각자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글에서는 현대문학사에서 외면당했던 많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여 우리 문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호병탁은 『문예연구』(2018년 96호)의 기획 추모특집 「오하근론」에서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밝힌 바 있다. 첫째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잡아주어 작품 해석의 물꼬를 제시하였다. 특히, 문학작품 중에서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작품, 해석에 논란이 있는 작품, 고착된 오류가 있는 작품들을 골라 오류를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석하는 물꼬를 열었다. 다음으로는 전 북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2010년 『전북현대문학』 상ㆍ하 권을 상재하여 전북지역 문인들의 작가론과 작품론을 개진하여 전북문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현대문학의 초창기 유엽(柳葉,1902-1975)으로부터 시작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전북문학사를 다듬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최명표는 「자세히 읽기와 지역에서 살기」라는 오하근 추모 기획특집에서 그의 공로를 김소월 시 정본화 작업으로 소월 시 연구의 활로를 모색하였으며, 전북문학을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문신은 오하근의 비평은 어김없이 진정성이라는 해석이 뿌리를 내렸다고 하면서 오하근은 해석의 힘을 사랑했고, 해석의 힘으로 비평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다라며 그의 비평적 진정성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오하근은 이렇듯 평론에 굵직한 획을 남겼으며 크게 영달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평생 고향에서 후학들 지도와 연구에 전념하다가 76세 되던 해인 2017년 11월 17일 밤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생전 고인과 함께했던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청운사 주지 도원스님을 비롯하여 동인회 문예가족, 전북대 국문과 제13회 동기생들, 금요회, 맥랑시대 가족들은 2019년 5월 3일 김제시 청운사 연지에 오하근 평론가 문학비를 세우고 그의 문학을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호병탁의 사회로 서재균 오하근문학비건립추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안평옥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그의 제자 오용기은 『문예연구』(2018)의 추모특집에서 늘 함께했던 스승과의 사별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승의 문학적 열정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선생님 웃음소리 기침소리 사이로 쟁쟁하게 되살아올 문학의 혼과 열정을 기다리렵니다. 평생을 두고 선생님께서 나누신 인정과 지성에 감동한 많은 분들이 살아 있는 백과사전을 무심코 찾다가 문득 빈자리 허전하게 더듬게 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봄 잎이 녹음 되고 단풍으로 천지를 채운 뒤 욱욱청청한 숲에 침잠함으로써 오히려 새 날 다시 뽀땃이 암냥하는 순리로 돌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문예연구 96호(2018 봄)

행복한 금토일

[신팔도명물] '백진주', 맛있는 쌀 열풍 속 해마다 품절 대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경북 안동지역에서 재배되는 백진주 쌀은 전국에서도 그 인기가 숙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은 해마다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브랜드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적게 먹는 만큼 더 맛있는 쌀, 입맛에 맞는 쌀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안동은 벼농사가 성행한 지역이었다. 이런 안동에서도 백진주는 명품 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요즘 타지역에서도 백진주 품종을 재배하는 예도 있지만, 안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안동농협 백진주 쌀'만 찾는 소비자가 있을 정도로 전국에서도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 중이다. △차진 식감과 고소함… 밥공기 속 보물 '백진주' 백진주 쌀의 탄생은 안동농협이 쌀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지속 가능한 식량산업 육성과 쌀 생산농가들의 소득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안동시농업기술센터가 2001년 '일품벼'의 변이 유기 계통 중에서 선발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품종이 바로 백진주다.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작물계장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안동지역 토양 특성에 가장 적합하도록 종자를 육성했고 수년 동안 병해충 관리와 생산량 관리에 힘을 쏟아 드디어 단일품종의 백진주 쌀로 자리를 잡게 됐다. 백진주 쌀은 일반 쌀보다 쌀알이 작으며 아밀로오스(amylose·녹말의 한 종류) 함량이 9.1%로 낮아 밥을 하면 찹쌀 같은 쫀득한 식감으로 차지고 부드러우며,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백진주라는 품종의 명칭도 흰 쌀알이 뽀얗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이 마치 진주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백진주는 현미로 밥을 해도 찰기가 있어 웰빙식으로서 현미식단을 원하는 소비층에 적합한 쌀로 평가받는다. 밥을 지을 때 물에 불리지 않고 일반 쌀보다 물을 10% 정도 적게 사용해야 더욱 맛있으며, 밥이 쉽게 상하지 않고, 식어도 딱딱해지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백진주가 인기를 끌자 최근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은 '중간찰벼'로 개발된 품종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밥쌀 중에서는 최고봉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관계자는 "요즘 식감이 차진 밥맛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 '중간찰벼'의 인기가 좋고 관련 상품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백진주가 20여 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비결은 밥맛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삼진아웃제 도입… 전량 계약 재배로 품질관리에 만전 백진주 쌀이 인기를 끌면서 타지역에서 백진주를 재배해 출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원조 안동농협 백진주의 아성은 깨지 못하고 있다. 이런 품질의 비결은 철저한 계약 재배로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때문이다. 안동농협은 지난 2002년부터 조합원들과 전량 계약 재배를 통해 백진주 쌀을 생산하고 있다. 계약재배 농가에 대해 생산·수매·출하까지 체계적으로 지원·관리하는 것도 특이하다. 좋은 쌀이 생산될 수 있도록 종자와 비료·영양제·토양개량제 등을 무료로 공급하고, 안동시의 지원을 받아 무인헬기를 구입해 각종 영양제와 친환경제제를 적기에 살포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고품질 백진주 쌀의 명품화를 위해 농협뿐 아니라 안동시·안동시농업기술센터·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도 힘을 실었다. 재배농가는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작물담당자로부터 고품질 쌀 생산과 병충해방제, 적기수매를 위한 교육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는 순도 비율을 높이고 종자 확산을 막고자 농업기술실용화재단과 계약해 종자를 전량 공급받고 있다. 안동농협은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볍씨 소독에서부터 수확 시까지의 주요 농작업 내용을 생산 이력 일지에 작성토록 하는 등 생산 이력 추적 관리에도 만전이다. 안동농협은 품질 고급화를 위해 혼입, 미출하, 적정 출하 위반 등을 한 농가에 대해서는 '삼진아웃제'를 적용하고 있다. 수매할 때 농가별로 표본 채취와 DNA(유전물질) 분석을 시행해 다른 품종이 일정비율이상 혼입되면 5년간 계약재배 사업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이다. 엄격한 생산관리에도 백진주 쌀 생산을 희망하는 농가들은 많다. 계약재배농가에 대한 농협의 다양한 지원책과 높은 수매가를 책정해 농가소득기반 안정화에도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농협 백진주 쌀 품절 대란… 미용산업에도 뛰어들어 백진주 쌀은 2018년부터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백진주 쌀의 공급확대를 위한 전 직원의 노력으로 그 위상을 알리게 된 것이다.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에 재구매를 하고 맘 카페에서 맛있는 쌀로 공유되기 시작됐다. 특히 '밥 잘 안 먹는 우리 아이 밥 먹게 하는 쌀'로 백진주의 이미지가 대표되면서 매년 품절의 대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물량의 확대를 위해 인근지역농협과의 계약재배를 추진 중이다. 농협은 이러한 인지도에 힘을 얻어 해외수출과 대형유통업체 코스트코 등의 입점으로 유통경로를 확대하고 지역농업의 기반으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또 앞서 지난 2005년부터는 소비자들이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즉석 도정코너를 전국 56개 대형마트의 지점에 설치·운영해 인지도를 높였다. 이를 통해 확보된 신뢰도와 브랜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전체 매출액의 48%를 온라인(네이버스토어팜, 경이로운몰) 판매로 거두고 있다. 사실상 안동농협 백진주 햅쌀은 오프라인에서는 물량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안동지역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먹어보지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주문이 재고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또한, 쌀 생산의 부가가치 상승을 위한 부산물의 활용한 미강 마스크팩을 출시해 백진주의 인기를 점차 확대 중이다. 도정과정 발생하는 현미의 6~8% 쌀겨를 활용해서는 쌀겨기름을 짜는 데 이용한다. 철저한 관리로 재배되는 백진주 쌀은 단순히 부산물로 밖에 인식되지 않던 쌀겨마저 미용 산업과 접목해 활용하는 등 버릴 곳 하나 없는 효자 농산물로 통한다. 권순협 안동농협 조합장은 "쌀 가격 폭락에도 백진주는 높은 가격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품질관리와 생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매일신문=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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