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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⑨문정공 김구 선생의 시와 아산 송하영 선생의 서예

탁월한 외교, 그의 학문과 인품 그대로 보여줘

杜鵑聲裏但靑山, 竟日行穿翠密間. 渡一溪流知幾曲, 送潺潺了又潺潺.

 

두견성리단청산, 경일행천취밀간. 도일계류지기곡, 송잔잔료우잔잔.

 

두견새 소리 속에 오직 보이는 건 푸른 산 뿐,

 

하루 종일 푸른 숲 빽빽한 나무 사이를 뚫고 걸었네.

 

건너는 시내 하나, 몇 굽이나 되는고?

 

잔잔히 흐르는 물 보내고 나면 다시 또 이어지는 흐르는 물.

 

杜:막을 두/ 鵑:두견새 견/ 聲:소리 성/ 裏:속(안:in) 리/ 但:다만 단/ 竟:마침 경/ 穿:뚫을 천/ 翠:푸를 취, 물총새 취/ 密:빽빽할 밀/ 間:사이 간/ 渡:건널 도/ 溪:시내 계/ 流:흐를 류/ 幾:몇 기/ 曲:굽을 곡/ 送:보낼 송/ 潺:물 흐르는 모양(소리) 잔/ 了:마칠 료/ 又:또 우

 

고려 말의 문인이자 학자인 김구(金坵:1211~1278) 선생의'분수령 도중(分水嶺 途中:분수령 가는 길)'이라는 시이다. 김구 선생은 자는 차산(次山)이고 호는 지포(止浦)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시호로 칭하여 '문정공'이라고 부른다.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 제주판관, 예부시랑 등 여러 관직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특히 제주 판관 시절에는 밭에 돌이 많아 경작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밭두렁의 경계가 없어서 불량배들이 강제로 남의 땅을 제 땅과 합쳐 버리는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사슴이나 말이 곡식을 해치는 피해도 적지 않은 것을 보고서 밭에서 골라낸 돌로 담을 쳐 경계를 바로잡고 동물들의 피해를 방지하였으며 농토의 활용도를 높이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는 과업을 이루었다. 지금도 제주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기려 문정공을 '돌문화의 은인'으로 칭송하고 있다.

 

문정공은 탁월한 외교 역량을 갖춘 선비로서 당시 원나라로 보내는 표(表:일종의 외교 문서성격의 글)는 대부분 그가 지었는데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원나라와 대등한 관계에서 외교를 펼침으로써 국가적 자존심을 유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탁월한 외교문장에 대해 당시 고종은 "동쪽 우리나라의 정기를 타고나, 서쪽 중국의 문장 고수들을 제멋대로 주무른다."고 칭찬하였으며, 백운 이규보 선생은 " 장차 이 나라 문장의 저울대를 잡을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다."고 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문정공은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외교력을 키워야 함을 역설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 통역관 양성기관」에 해당하는 '통문관'을 설치하는 업적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4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공의 문집을 번역 출간하였는데 오늘 제시한 이 서예 작품은 당시 문집 출간을 기념하여 아산 송하영 선생이 써서 권두에 붙인 것이다. 아산 선생은 우리 고장 전북이 낳은 명필이다.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장질(長姪)이기도 한 그는 생전에 글씨는 물론이려니와 한의학과 한문에 박통하고 특히 언행이 올곧고 품위가 있어서 주위로부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선비'로 칭송을 받았다. 이 작품은 아산의 서예 작품 중에서도 특히 단아하고 청수하여 그의 학문과 인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4월 3일, 문정공 김구 선생 탄신 800주년 기념행사가 전라북도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소재 그의 묘소 앞에서 열린다고 한다. 문정공은 우리 지역 부안의 세족인 부령(扶寧: 부안의 옛 이름)김씨의 중시조이기도 한데 부령김씨들은 700년 여 년 동안 문정공 묘제를 이어오고 있고 금년에도 80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어김없이 묘제를 올린다고 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이어온 이 묘제 또한 문화재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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