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작업실서 노제…제자·문화계 인사들 애도
3년 전 선생이 귀향오면서 교류가 잦았던 인근 서학동 작가들이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별채 작업실 앞에 마련된 임시 빈소로 눈길을 돌리자 사진 속 고인이 환히 웃으며 반겼고, 선생의 마지막 길을 화사하게 장식해주던 꽃들이 조문객들을 맞았다. 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에 황망한 심정으로 작업실을 드나들었던 서학동 작가들은 8일부터 임시 빈소를 꾸려 선생이 즐겨 마시던 와인과 단팥빵 등을 선물했다. 선생의 당부대로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가 되기 보다는 모두 꽃을 쥐고 좋은 기억만 떠올리는 꽃밭 가득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소박한 노제를 준비했다.
먼저 행위예술가 심홍재씨는 꼰 한지를 이어 사각형을 만들고 선생을 추억하는 글을 낭독한 뒤 불을 붙였다. 고인을 추억하는 이형로씨의 음악이 깔리자 그의 아내 김저운씨가 서학동 예술가들을 대표해 글을 낭독했다.
"지난해 저희들을 초대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촛불을 켜놓고, 와인을 준비해두고, 새로 사셨다는 멋진 옷을 입고 기다리셨지요. 그런 모습이 눈에 선한데, 좋아하셨던 부용산 노랫말처럼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렇게 가셨습니까? 한 십년만 더 계셨어도 좋으련만 하는 마음뿐입니다. 선생님께서 주셨던 그 둥근 양초들을 모아 촛불을 켜놓고 선생님께서 즐기셨던 포도주 한 잔 나누면서 선생님을 추억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화사한 꽃그림처럼 환히 웃으시며 가세요."
'금강의 작가'라 불리는 한국화가 정명희 선생도 대전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형이라 부르던 남천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띄웠다. "형은 수묵운동에 앞장선 선지자였소. 형식을 타파하려 애썼던 혁명아였소. 불과 달포 전 전주식 통나물국밥을 나누며 우리 그림의 새출발을 다짐하던 식지 않은 열정을 어쩐다요. 못다한 삶이야 살겠소만 형의 뜻이야 못피겄소."
뒤이어 운구차가 도착했고 유족이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작업실을 돌자 끝내 참았던 울음의 둑이 여기저기서 무너졌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2004년까지 교수로 물러나기까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선생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뿐이라는 무력감 앞에 막막함을 느끼는 듯 했다. 강신동 고형숙 국중하 김남곤 김상철 김지연 김문철 박민평 박인현 박혜경 선기현 심홍재 여태명 유봉희 유휴열 이용휘 이재승 이철량 이흥재 이희춘 임치영 전성진(가나다 순) 등 지역 문화계 인사와 예술인들도 애도했으며, 전주 한옥마을에 미술관 건립을 위해 설계도까지 마련한 고인의 생전 소망이 좌초되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이날 노제는 고인의 바람대로 꽃잔치가 됐다. 작업실 정원에 소담하게 피어있는 들꽃을 비롯해 조문객들이 꽃 바구니를 한아름 안겨 선생이 평생 받았던, 앞으로 받을 꽃까지 한꺼번에 다 받은 것처럼 보였다.
고인의 유해는 천안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고인의 관 위에는 역시 화려한 꽃과 흙이 소복이 올려졌고, 유족과 지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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