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피고 복사꽃 피는 봄날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추수를 끝낸 어느 가을날, 고모는 시집을 갔습니다. 하얀 목화꽃이 수군수군 피어나던 해 그 이듬해였지요. 유독 말수가 적은 고모는 꽃처럼 고왔지요. 어린 코로도 상큼한 분내 맡을 수 있었으니까요. 닷새마다 서는 장날이었습니다. “아버지 분홍 색실이 떨어졌어요” 했지요. 할아버지는 연분홍에 진분홍, 색실을 두 꾸리나 사 오셨을 겁니다. 한 땀 한 땀 다정하게 수놓은 원앙 베갯잇이며 활짝 피운 모란꽃 횃댓보를 고이 챙겨 고모는 꽃가마를 탔지요. 삼십 리 길 뒤따르며 보았습니다. 가마 안에서 유난히 흰 얼굴에 자꾸만 연지를 찍어 발랐습니다. 고모 얼굴 분홍분홍해졌습니다. 무슨 병이 그리도 깊었던지, 고모는 끄릿끄릿한 아들을 둘이나 두고 감기지 않았을 눈 일찍 감았습니다. 훌쩍,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백 리 밖 전주 장에 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백제 여인, 아양산 기슭이 봄날처럼 분홍거립니다. 지금 분홍 속에 든 이, 그 분홍을 증명하는 이 모두 분홍분홍합니다. 진달래 없고 복사꽃 없고 고모 없는 가을에도 세상은 분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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