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성공기업인] (37)지리산한지(유) 김동훈 대표

한지에서 실 뽑는 기술 첫 개발 특허

한지사로 만든 제품의 홍보관 기능을 하는 남원시 도통동 '한지인' 매장에서 지리산한지(유) 김동훈 대표(44)가 자사의 한지사로 만든 제품의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desk@jjan.kr)

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지리산한지(유)(대표 김동훈)와 호원대가 함께 한지에서 뽑은 실, 즉 한지사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지난 2002년 일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였다. 국내에서는 지라산한지(유)가 한지 산업화의 길을 연 셈이다.

 

이후 지리산한지(유)의 김 대표(44)는 한지의 산업소재화에 주력하고 있다. 3대째 한지공장을 이어 가고 있는 그는 아버지가 평생 일군 사업을 다양하게 변신시키고 있다. 한지사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능성 제지산업을 향한 기술개발 주력

 

지리산한지(유)는 국내 전사지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전사지는 천 등에 글자를 인쇄할 때 쓰는 종이다. 천에 바로 인쇄를 할 수 없어 먼저 전사지에 문구를 인쇄하고 전사지의 열을 이용해 천에 옮긴다. 전사지, 과일 포장지,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용지, 세라믹·광촉매 종이 등을 생산하며 18명의 직원이 지난 2008년 56억원, 지난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63억원 안팎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남원시 용정동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한지로 만든 양복 상의가 걸려 있었고 김 대표도 한지사로 만든 와이셔츠를 착용했다.

 

"닥섬유에서 인쇄용지, 배터리 성형 도포용지에 이어 한지사를 개발했습니다. 한지 양말·스카프·커튼 등을 만드는 도내와 타도 업체에 한지사를 납품합니다. 하지만 한지사는 발주량이 적어 성장에 한계를 느낍니다. 이를 극복하는 게 과제죠."

 

그는 한지와 그 쓰임에 대한 설명을 한 뒤 현재 구상하고 있는 다양한 제품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 시도와 사례에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제지산업에서 새로운 기술개발만이 생존한다는 절박함이기도 했다.

 

"물론 개발한 제품이 모두 시장에서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은 없죠.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오는 만큼 항상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산학연 등을 이용해 매년 3~4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3대째 한지공장 이어 가

 

김 대표의 아버지는 지난 1999년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신지식인 도내 1호인 김시곤(지리산 특산제지 대표)씨다. 경영학을 전공해 재무관리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 대표는 취업과 가업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가업을 승계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한지공장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공장 일을 하다가 오른손 인대가 나가기도 했죠. 저는 제대 뒤 취업을 하려했지만 아버지가 평생 일구신 일이 사양산업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지식·기술이 사장되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 4형제를 가르친 원동력이 없어지면 아버지의 인생이 불행할 거란 생각이었죠."

 

현재 전북차세대기업인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지만 가업 승계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자식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너무 잘 알기 때문이죠. 아마 아버지는 제가 사무실에 앉아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 세대와 달리 저는 산업재산 강화에 힘써 특허를 받는 등 한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리산한지(유)는 지난 1997년 분사했다. 1998년 공장을 준공했지만 외환위기로 6개월 동안 매출이 없었다. 이듬해 들어서야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고 지난 2002년 모기업에서 독립했다.

 

▲경영자, 자신의 장점 살리고 미래 시장 읽어야

 

"한지산업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지만 가치있는 산업이죠.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생존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속적인 내부 혁신의 결과가 생존입니다. 뒤따라가기 보다는 앞서가기 위해 매출의 3~4%를 연구개발비로 씁니다."

 

그가 제시하는 CEO의 조건은 바로 기술과 미래에 대한 안목이다.

 

"경영자는 자신의 장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시장을 읽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특화하고 못하는 분야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죠. 저는 비전제시와 개발을 주도합니다."

 

김 대표는 한지산업을 소재산업화하기 위해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기능성 소재로 소비자에게 접근한다는 전략이다.

 

"한지사 제조지만 의료·식품·농업 등을 비롯해 장기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인문학 등과 교류해야 합니다. 제품의 제조 방법보다 전개 방법을 연구해야 한지사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지는 가격·(수)축률·강도 등의 조건에 맞지 않아 수요가 적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탄소섬유 등 첨단 소재까지 융·복합의 대상입니다. 또한 비누·화장품 등 항생제 대용 물질로 생산 제품의 영역을 넓힐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