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54)슈베르트의 사랑과 우정(2)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는 열아홉살 되던 해에 작곡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만두었다. 자유로워진 슈베르트는 마음 편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는 음악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돈을 못버니 생활은 곤궁할 밖에. 친구 집, 형 집, 아버지 집으로 전전하는 가난한 생활이 되었다. 그래도 작곡은 열심히 했다. 가난하고 자주 옮겨 다니는 생활이다 보니 피아노가 없어 기타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난방도 없는 작은 방에서 낡고 해진 잠옷을 걸치고 떨면서 작곡을 하고 있었다.'

 

스승 살리에리의 같은 문하생이자 충실한 친구인 휘텐브렌너(1794~1868)가 마음이 아파 했던 말이다. 휘텐브렌너는 슈베르트를 '제2의 베토벤'이라며 출판사에 슈베르트의 악보 출판을 부탁하는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슈베르트는 작곡에 전념하면서 20세까지 많은 노래와 교향곡을 작곡하지만 공공음악회에서 연주되거나 출판된 것은 없었다. 그러니 돈이 없었다. 슈베르트는 이렇게 사랑과 돈에는 운이 없었으나 좋은 친구들은 많았다. 친구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자주 친구들 집에서 살았고, 친구들은 그를 '뚱보'라고 부르며 반겼다. 음악책에서 보는 슈베르트는 안경 쓴 친근한 표정의 미남형이지만, 사실은 키는 157cm정도이고 둥그런 얼굴에 비만형이어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슈베르티아데! 직업과 나이는 다양하지만 생각을 같이하는 예술가와 음악 애호가들인 그들은 자주 모여 차를 마시며 토론도 하고 저녁음악회를 열어 슈베르트음악을 듣기도 하고 함께 노래도 하는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친구들 모임이었다. 가끔은 그들 가족들도 모임에 참여하여 많을 때는 120여명에 이르기도 하였단다. 슈베르트는 이 슈베르티아데를 위해 많은 노래들을 작곡하였다. 슈베르티아데는 공적인 음악회가 아니었다. 슈베르트는 이 모임에서 전문적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편하게 친구들의 노래를 반주하거나 실내음악을 함께 연주하며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슈베르트의 친구들도 이런 음악회가 특별하지 않았다. 교육받은 중산층인 그들은 자유롭게 음악을 즐겼고 특히 피아노와 성악이 함께하는 가곡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친구들 집을 옮겨 다니며 모임을 갖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아마도 18세기의 귀족들이 저택 살롱에서 세레나데 류의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감상하며 즐기던 문화생활의 전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을 '슈베르티아너'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인이자 배우, 도안가인 슈베르티아너 쇼버(1796~1882)의 집에서 시작된 슈베르티아데는 콘빅트 시절부터 친했던 아홉 살이나 위인 친구같은 선배 슈파운(1788~1865)을 비롯하여 화가 몬(1797~1857), 변호사 뷔책(1787~1859), 화가 슈빈트(1804-1871)등의 집에서 계속 이어지고 문학살롱이나 카페, 야외에서도 행해지면서 의미있는 음악행사가 되었다. 슈베르티아데에서 행해진 저녁음악회를 '슈베르트의 밤'이라고도 했는데 '슈베르트의 밤'이 끝나면 카페로 가서 다시 시낭송과 토론,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술도 마셨다. 한주에 대개 세 번 정도의 시 낭송회가 있었고 음악회는 한 번 정도 있었다. 시와 음악이 어울어진 모임 슈베르티아데에서 슈베르트의 천재는 항상 중심이었다. '슈베르트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친구요 형제가 되었다'고 훗날 슈파운은 회상했다.

 

/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