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한 대 없는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베를리오즈! 그는 피아노는 없었지만 플루트와 기타로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가로로 부는 피리를 불기 좋아하자 아버지가 플루트를 사주었던 것이다. 음악에 점점 빠져든 그는 아버지 책장에 있던 라모의 '화성론'으로 혼자 공부하여 10대에 이미 작곡을 하였다. 의사 집안인 가풍이어서 의사 되기를 원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한 베를리오즈는 18세 때 어느 날 당시 유명하던 글루크의 오페라를 보고온 뒤 의사의 길을 그만두고 작곡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음악을 위안 삼아 베를리오즈는 어떻든 의대 학부과정은 마쳤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고 계속 끓어오르자 스물셋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여히 파리음악원에 정식으로 입학하여 르쉬오르(Jean-Francois Le Sueur·1760-1837)와 라이하(Antoine Reicha·1770-1836)에게 작곡을 배웠다.
베를리오즈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칸타타 '사르다나 팔로스의 죽음'으로 로마대상(Grand Prix de Rome)을 타며 작곡가로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로마대상은 프랑스예술원에서 기량이 뛰어난 작곡가에게 주는 상으로서 수상자는 로마에 가서 공부와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장학금을 주는 상이었다. 스물일곱살 베를리오즈는 이때 사랑의 열병을 앓게되니 셰익스피어의 극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후 두 작품의 여주인공이던 아일랜드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 홀딱 반하게 된것이다. 인기있는 여배우에게 애송이 작곡가의 사랑이 눈에 보이겠는가? 그녀의 차가운 냉대에 참담해진 베를리오즈는 환상의 나래를 펴 본인의 자서전적인 '환상교향곡'을 작곡한다. 환상 이야기를 교향곡으로 표현한 것이다.
/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