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화상] ⑪서양화가 류재현

녹색 얼굴은 숲과 내가 하나라는 것

나는 지난 20여 년간 '길 시리즈'만 해왔다. 최근에는 숲 속에 있는 오솔길, 물길 등을 시도해오고 있는데, 결국 길위의 풍경이다. 어찌보면 길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주제다. 나만의 작품 성향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다는 뜻도 된다.

 

낙엽 지는 가을 보다는 여름의 실록을 사랑한다. 이양하의 '실록예찬'에 가깝다.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언덕이나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숲길에서는 이 모든 것을 만난다. 내가 숲길에 매료되는 이유다. 자화상 얼굴을 녹색으로 칠한 것도 내가 주로 쓰는 색이어서다. 숲 속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결국 숲과 내가 하나가 되는 모습. 녹색은 숲 속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

 

나는 서양화를 하면서도 한국화 그리듯 한다. 하나 하나 점을 찍어 선을 만들고 면을 채운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기 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표현기법이 자연스레 변화된 것이다. 완주군 구이 계곡리 작업실에 있으면서 자주 이곳 들녘을 다닌다. 이곳에서 오솔길 걷는 재미를 얻었다.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에 설렌다.

 

▲ 서양화가 류재현씨는 전주 출생으로 전북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임실 동중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