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버지 조동환씨가 아들 조해준씨에게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강제 징용 가기 전날 밤에 자고 있던 4형제를 끌어안으며 애끓는 작별을 했다. 일본인 감독에게 구타당한 아버지는 누워만 계시다 사진 한 장 안 남긴 채 돌아가셨다. 내가 열한 살 무렵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들과 소통하는 법에 서툴렀다. 막내 아들 해준이가 초·중·고 12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공동 작업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아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미술전공자로서도 화집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는데, 해준이가 고맙다.
# 2. 아들 조해준씨가 아버지 조동환씨에게
나는 학창 시절 열등생이었다. 하기 싫은 공부 대신 엉뚱한 상상만 하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이었다. 내가 서른 살이 되도록 부자간 대화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권위적인 분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자식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게 됐다. 아버지와의 공동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버지의 개인사가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지점도 있지만 얼어붙은 부자 관계가 작업 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차츰 풀려나갔다.
서울 리움미술관의 기획전'코리안 랩소디 -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에 전북 출신 부자 조동환(76) 조해준(39)씨가 초대됐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설치), 사진, 영상,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일제 강점기와 분단 국가, 경제 성장 위주의 한국 근·현대사를 고찰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두번째 섹션'트라우마(1945~1960)'에서 이들은 그간 진행해온 기억의 다큐멘터리 드로잉 시리즈 중 미발표되거나 일부만 발표됐던 작품 100점과 조각상을 내놓았다.
공동 작업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아들은 2002년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던 중 아버지가 물려준 도록을 접했다. 아들은 도록 「동경·오사카 제6회 프랑스 현대 미술전」이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인지 궁금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 사는 아들은 전주에 있는 아버지에게 자주 편지를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으면서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니가 그리지 않고 왜 내가 그리냐. 이게 무슨 그림이라고 봐주겠냐."
아버지는 처음에 아들이 일을 떠넘기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글과 그림이 있는 다큐멘터리 드로잉 시리즈를 만들수 있다고 봤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기획자와 작가로 또다른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2002년 신세대 흐름전을 시작으로 2003년 광주 신세계 갤러리 '생각하며 일합시다',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담슈타트 쿤스트할레',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 등을 이어가면서 2008년 광주 비엔날레의 기념 작품으로 선정됐으며, 두 권의 책 「놀라운 아버지」와 「뜻밖의 개인사」도 출간했다. 이유없이 죽어간 목숨들, 호남고속도로 개통, 새마을 운동 기념하는 조각상을 만든 일 등 연필로 꾹꾹 새긴 손글씨와 그림은 어린 자식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곤 하던 옛날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꾸러미 같다. 그 시절 모두의 삶이 그랬듯 가난과 궁핍의 정서가 각별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부모 세대와 조상들의 삶에 대한 경외"라고 했다. 이런 아들을 대견해하는 아버지는 "내가 살아있을 때 (아들이) 열심히 해서 훌륭한 작가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들은 오는 9~10월에도 독일 통일 전·후 과정을 주제로 한 초대전을 가질 계획이다. 정읍 출생인 아버지는 부산대 미술과와 전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주에서 태어난 아들은 원광대 미술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를 졸업한 뒤 현재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 아카데미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 '코리안 랩소디 -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 18일~6월5일 서울 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