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산민(山民) 이 용(64). 그에겐 글씨 쓰는 게 매일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일상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부터 전주 인후동 산민서실에 나와 붓을 잡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공부. 산민 선생과 붓으로 인연을 맺어온 산민묵연(회장 정현숙)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기념전을 연다.
길게는 20여 년, 짧게는 10여 년 넘게 산민서실에서 붓을 잡았거나 이곳을 거쳐간 제자 7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지켜온 스스로와의 약속. 붓을 잡아 꽤 많은 세월을 글씨와 보냈지만, 서예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충분한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야 제대로 쓸 수 있는 서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필법을 위해 많은 자료를 찾고 숙지해야 한다. 그간 산민 선생이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모은 책만 해도 1만여 권. 자전과 옥편을 독파하면서 여러 서체를 정확하게 익히는 노력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은 '옹근' 서체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서예는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가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통 서예보다는 현대 서예에 기울어 있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서예의 기본은 지켜야지요."
전통 서예에 연연해하지 않은 산민 선생은 문자의 상형성을 변화시켜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고정관념을 깨라"는 가르침대로 제자들은 옛 문자를 통해 조형서예를 시도했다. 그림과 같은 글씨에 색을 넣어 고전의 구절을 형상화한 작품들과 부채에 그림과 글씨를 새겨넣은 작품들도 내놓았다.
정현숙 회장은 "단 '제조하는' 글씨가 아니라 붓을 제대로 잡고(중봉으로) 잘 휘두를 수 있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춘 글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붓을 들고 또박또박 힘 있게 글씨를 써나가며 마음 수련을 했던 제자들은 이제 자신의 마음을 깨웠던 문구를 내놓는다. 이들은 "길잡이 이시자 한결같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산민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산민묵연 30주년 기념전 = 23~28일 전북예술회관. 개막식 23일 오후 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