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보 선생은

'오동상감 송학죽' 기능 보유…무형문화재 지정

   
 
 

남원시 왕정동 강정몰은 징·놋그릇 등의 유기제품과 담뱃대 등을 생산하는 마을이었다. 이 곳에서 1932년에 태어난 황영보 선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부친(黃龍九)의 손에 이끌려 도제생활을 시작했다. 할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쳐 담뱃대를 만들어 오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황찬서 선생은 담뱃대를 만들어 팔아 독립운동을 했다.

 

특히 왕정동에서 생산되는 담뱃대는 오동상감 송학죽으로, 황 선생이 그 기능 보유자로 인정돼 지난 1993년 무형문화재 65호로 지정됐다. 정부가 매달 130만원씩 지원하는 돈이 수입원이다. 담뱃대는 해방 후 10여년 정도 호황을 누렸지만 6·25 전쟁 후 국가적인 연초 사업으로 궐련이 생산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생계에 위협을 느낀 담뱃대 제작자 대부분이 이 업을 그만 두었지만 황 선생은 집안 대대로 해 온 일이고 전통민예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받는 것이라 생각해 지금까지 담뱃대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백동연죽을 만드는 과정은 정성 그 자체다. 백동을 두드리는 작업이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연죽 한개 제작하는데 보통 망치질을 2만번 정도 한다. 그의 주 특기는 상감기술이다. 설대(담뱃대 몸통)에 무늬를 넣어 땜질하고 정교한 부분은 정으로 쪼아 금 은 세공처럼 섬세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기술이 뛰어나다.

 

전북 산업디자인전람회 입상(1980), 전국공예품경진대회 특선 및 전승공예대전 입선(1984), 전북공예품전진대회 입선(1986), 등의 수상 실적이 있고 1998년에는 국가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김재님여사(75)와 사이에 각기 세살 터울 씩의 3남1녀를 두었다. 큰 아들 도연(53)씨는 남원시보건소 과장이고 둘째 아들 기조(50)씨가 병역의무를 마친 뒤 스물한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기능을 전수받았다. 전수조교로 지정돼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충남 당진에서 시집 온 기조씨의 부인도 손놀림이 뛰어나 같은 일에 매진하고 있다.

 

"아들한테도 이 업을 물려줄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기조씨는 "대학 1학년인데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