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놈, 별주부야. 너 허든 소행을 생각허면, 저기 내민 바위에다 네 복판을 내 발뒤꿈치로 작신 밟아서 바싹 부서지는 소리가 나게 죽일 일이로되, 수로 만리를 왔다갔다 다니던 정으로 보아 살려주는 것인개, 다시는 그런 보초때기 없는 짓 하지 말어라. 그리고 내가 너의 나라 들어가서 보니, 네 충성이 지극하더구나. 그래서 내가 약을 일러줄 테니, 꼭 나 시키는 대로 하거라."
지난 6일 오후 3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 우진문화재단(이사장 양상희·회장 김경곤)이 기획한 '판소리 다섯 바탕의 스물세번째 멋'에서 일부 대목이 아닌 완창을 시도한 박미선 씨(46·전북도립국악원 교수실 재직)의 '박초월제 수궁가'에선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객석이 한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어르신·어린이 할 것 없이 꽉 찬 무대. 눈대목이 끝날 때마다 동생 박종호씨(36·전통공연예술 앙상블 더늠 대표)의 정감 어린 북 소리가 실타래처럼 판소리를 이어줬다. 2시간 30분 가까이 되는 완창 공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한 자막 덕분에 객석은 지루할 틈이 없었고, "잘헌다","얼씨구" 등과 같은 추임새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난해하기로 소문난 7시간 짜리 '정정렬제 춘향가'에 도전한 정은혜씨(29)는 왕성한 음악 식탐을 자랑하는 소리꾼. 화려한 시김새와 기교로 여성미가 가득한 춘향가가 특장(特長)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7일 다소 꼿꼿하고 쭉쭉 내뻗어 남성미를 자랑하는 '동편제 적벽가'를 완창했다. 호방하고 장쾌한 소리로 전쟁의 긴박함을 풀어내야 하는 적벽가는 "소리의 스펙트럼을 넓게 해준다"는 것이 도전 이유. 그는 "각주만 해도 2000개가 넘게 '적벽가'에 누가 나오고 어떤 사건이 펼쳐져 결말을 맺게 되는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질 수 있는가에 의미를 둔 공연"이라고 했다.
올해는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세계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된 지 10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 3~5일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에서 '보성제 심청가'를 부른 조정희씨(35·국립국악원 단원)와 '동초제 춘향가'를 소화한 이세정씨(43·정읍시립국악단 지도자),'동편제 흥보가'를 내놓은 김현주씨(42)는 "전주 만큼 창자를 긴장되고 떨리게 하는 무대는 없을 것"이라면서 "객석을 메우는 게 고민인 판소리 공연에서 우진은 23년 간 창자들을 세워준 고마운 곳"이라고 했다.
5~6년 간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을 꾸준히 관람해온 귀명창이자 고수인 문중배씨(52·군산시청 세무과 도세계장)는 "우진은 실력이 검증된 이들이 적어도 1시간 이상 마이크 없이 서기 때문에 명창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무대"라고 평가했다. 다만 "실력있는 명창들이 매년 배출돼도 상을 타고 나면 공연을 게을리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앞으로 클래식처럼 판소리의 이해를 돕는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