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가르침과 자신이 발 딛고 선 위치와의 간극은 때때로 예술가를 괴롭히는 질곡이다. 한국무용가 장인숙 널마루무용단 대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20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올려진 장인숙 대표의 45년 춤 인생을 응축시킨 '부채, 춤 바람을 일으키다'는 부채춤을 사이에 두고 사제 간에 진행된 문답의 연장선이었다. 스승인 김백봉 명인은 부채춤이 해가 뜨고 일터로 나가는 생동의 세계라고 가르쳤고, 제자인 장인숙 널마루무용단 대표는 거꾸로 해가 뜨고 지지도 않는 백야와 같은 애잔한 '전주 부채춤'도 가능하다고 내놓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장인숙 교수와 연출가 지기학이 나눈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관객들이 주의를 기울일 즈음, 무대에 소리꾼 김대일과 춤추는 아이가 등장하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 춤몽이 뒤따른다. 아이들이 달려나와 붉은 꽃을 전하고 여인은 부채춤으로 황홀한 꿈을 빚는다.
1막 부채춤과 무당춤, 2막 장고춤과 교방춤·한량무, 3막 판소리 다섯 바탕의 춤, 4막 전주 부채춤, 5막 다시 꿈길로 이어지면서 공연은 다채로운 조명의 변화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한껏 강조했다. 부채를 주제로 색다른 춤을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 때문에 연출가가 골머리를 앓았을 법 했으나 하얀 원형 무대에서 그간 펼쳐놓은 부채춤 인생을 연결시켰으며, 소리꾼을 등장시켜 판소리 다섯 바탕의 눈대목에 맞춰 춤을 이어가는 세련된 무대 연출력이 돋보였다. 김백찬 음악감독의 전통 판소리와 그것의 현대적 변주를 교묘하게 조화시킨 음악도 청각적 쾌감을 높였다.
그러나 춤은 다소 밋밋했고 단원들이 빠른 박자를 조금씩 놓칠 때는 조마조마함도 더불어 커졌다. 스승은 생동하는 기운이 가득한 춤을 한껏 펼쳐보였다면 제자는 한가득 머금고 가지런히 모으는 쪽에 가까웠던 걸까.
특히 매창의 애절한 시 한 귀절로 탄생된 '전주 부채춤'은 매화 꽃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꿈으로 선보였으나 여운이 길진 못했다. 오히려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혹은 한옥 공연장에서 무용가의 미세한 표정, 발디딤 하나까지 다 볼 수 있는 무대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명성이 안겨주는 편안함과 창작이 주는 신선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한 작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