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말은 ‘상승’, ‘확장’ 같이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상상된다. 연주자에게 있어 음악에서의 성장은 얼마나 테크닉적으로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지 같은 척도로 이야기될 수 있다. ‘성숙’이라는 말은 명확히 보이지는 않으나 ‘깊이’와 관련이 있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음악에서의 성숙은 아마도 음악 속에 담긴 숨은 의미를 찾아 얼마나 깊이 사유할 수 있는지를 의미할 것이다. 연주자로서의 성장을 거듭해온 피아니스트 소현정은 4월 2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있었던 독주회에서 이제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는 한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토벤 소나타 30번 E장조의 연주에서는 왼손의 베이스 소리와 오른손의 멜로디가 균형을 이루며 적절히 어우러졌는데 그녀가 진심을 담아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노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의 제3악장에 붙어있는 「노래 부르듯이 진심으로 감동을 가지고」라는 작곡가의 지시어에 충분히 상응하는 연주였다. 알베니즈의 ‘세비야 크리스트의 성체’ 연주에서는 소현정이 지닌 리듬감이 돋보였다. 곡 자체가 민요의 요소, 행진곡의 요소, 성가의 요소, 춤곡의 요소 등 다양한 음악 양식들을 담고 있는데 이 모든 음악 양식들이 그답게 표현되는 데에는 연주자의 리듬감이 핵심이라 하겠다. 기복이 심하다 싶게 변화해가는 알베니즈의 음악을 소현정은 안정된 리듬감으로 생생하게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독주회의 후반부는 슈만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베토벤, 알베니즈의 곡들이 작곡가들의 생애말기에 작곡된 곡들이라면, 슈만의 환상곡 다장조, Op. 17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작곡가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초기에 쓰였지만 그 음악적인 깊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저명한 음악 관련 저술가인 찰스 로젠은 그의 저서 ‘고전 양식(The Classical Style)’의 에필로그에서 이 슈만의 환상곡을 고전시대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지목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곡된 슈만의 환상곡은 그야말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두터운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연주자는 그 다양한 의미를 포착해내기 위하여 깊이 있게 사유해야만 한다. 연주자로서의 소현정이 성숙기로 접어드는 길목에 놓여있음은 이 곡의 연주에서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언어가 아닌 소리를 통해 의미를 포착해 내고 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앙코르곡으로 역시 슈만의 <클라이슬레리아나> 의 1곡, <어린이 정경> op. 15 중의 ‘트로이메라이’를 선택한 점은 매우 의미심장해 보인다. 어린이> 클라이슬레리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