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중 사진작가의 피사체는 사대부의 묘지 앞에 세워 둔 석상이다. 왕릉의 수호물로 중국 진나라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모습을 나타낸다. 윤 작가는 그 중에서도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든 정형화된 석상보다 실제 사람의 모습을 닮은 석인(石人)에게 많은 흥미를 느꼈다.
그가 촬영한 석인 작품을 모아 전시를 연다. 오는 14일까지 전주 서학동사진관에서 여는 개인전 ‘석인’. 개막식은 6일 오후 4시다.
작가는 700여 곳의 묘지에서 석인 약 1500점을 촬영했다. 석인은 제작시기, 주인의 계급이나 권력, 재산 등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시대가 바라는 염원에 따라 노인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복두공복에서 금관조복(金冠朝服)으로, 화려한 장식에서 실제 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바뀐다. 또 천인상(千印像)의 석상 얼굴만을 조각조각 모아 신비한 얼굴의 도표를 만들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500년 전에 사대부 묘지 앞에 세워진 석상에 관심이 없고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석인은 조선시대 권력층에서 이루어왔던 묘지 형식의 한 단면이 아니라, 한 시대의 거시적인 문화이자 생활의 단층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김지연 전주 서학동사진관장은 “금관조복을 한 사대부의 근엄한 모습, 주인을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호위무사의 모습, 사람 좋은 선승의 모습, 꽃을 들고 심부름을 가는 동승의 모습으로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온 석인은 묘지 주인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면서 “이를 통해 시대가 바라는 얼굴(형상)은 어떤 것인지, 선조들의 격식과 품위와 해학의 의중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