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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레슨, 학원 등 국립민속국악원 3명 규정 위반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단원들이 코로나19 확산세 속 규정을 위반하고 겸직과 외부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 등에게 제출받은 국립예술단체 단원 복무점검(겸직외부활동) 결과 자료에 따르면, 국립국악원 산하 민속국악원 단원 3명이 겸직외부활동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단체 단원을 포함한 공무원 복무관리 규정을 보면, 외부활동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보수로 받는 금액도 신고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외부에서 개인 레슨, 학원 강의 등을 한 경우엔 단체에서 징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위반자 3명 가운데 1명이 징계, 2명이 주의를 받았다. 문체부는 보고서에 예술단체에서 자진신고자 등 가벼운 사안은 구두 또는 서면으로 주의 조치를 했으며, 이보다 사안이 무거운 경우 경고했다며 다만 일정기간 반복되거나 근무 시간안에 외부활동을 했을 경우 견책, 감봉, 정직 징계를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시국에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국립발레단 단원 3명은 지난해 2월 자가격리 기간에 특강 또는 해외 여행을 가서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전북 민간공연기관 관계자는 기관과 민간예술단체 구성원들도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여러운 상황에서도 여러 활동들을 자제하고 있다며부적절한 사례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규제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립단체의 임금 수준을 보완하거나 외부 활동 자체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민간단체에 속한 예술인들의 어려움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김예지 의원은 기본 수당 등 처우가 좋지 않아 외부활동을 하는 단원들이 많다면서 다만 국립단체에 소속되지 못한 예술인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해결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근무시간 내 활동은 엄중히 점검하고 금지해야 하지만 근무시간 외 활동은 점검 강화만이 아니라 예술 분야별기관별 특성과 현실을 반영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립예술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예술인들에 대한 상생 방안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김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하기 전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3월6일까지 국립국악원, 국립발레단, 국립중앙극장 등 17개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국립예술단체 단원 복무점검(겸직외부활동)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6개 단체에서 179명의 위반 사례가 있었으며, 위반자는 국립민속국악원 상위 기관인 국립국악원이 69명으로 가장 많았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18 17:21

고창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마무리

고창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고창군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은 국가시책사업으로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예술계에 지속적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평범한 일상 공간을 군민들의 쉼과 휴식의 문화공간으로 재생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8월부터 도예, 회화, 목공, 조각 등 다양한 분야의 8개 작가팀과 지역미술가 42명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했다. 각 마을별 프로젝트로는 △호암신월마을(고창읍)=별을 따자, 희망. 아이들이 꿈을 잡는 형태의 기둥을 제작. 사람의 형상 속에 마을주민들의 소망을 적은 돌을 넣어 공동체를 상징하는 작품 제작 △모양천북동촌동산마을(고창읍)=모양성 성곽을 모티브로 한 모양성 우편함(고비) 설치 △할매바위(아산면)=암벽가 모습을 송악으로 조경하고, 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감상할 수 있는 그린바우 자연 조형물 설치 △마명마을=버스 정류장을 색다르게 꾸미고, 벽면에 주민이 직접 참여한 칠보작품 전시. 주변엔 마을안녕을 기원하는 도자 솟대를 설치 △운곡습지자연생태공원=수달, 다람쥐, 사슴, 고라니 등 동물의자 10점을 제작 설치해 아이들이 놀며 앉아 쉬어갈 수 있는 휴식공간 제공 △화산마을(심원면)=하모니2121.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대대손손 번영하기를 바라는 염원 담은 석재조형물 제작 △신기마을(신림면)=빈 집의 구석진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창조 등이다. 군은 이번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그간 무의미했던 마을공터, 빈집, 레저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인지도 제고와 함께, 지역 명물장소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고 있다. 백재욱 군 문화예술과장은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낡고 후미진 공간이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힐링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며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지역 예술인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 군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문화적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성규
  • 2021.04.18 17:03

장수군 꿈꾸는 예술터 조성사업 진행 갈등

폐교한 장안초등학교(장수군 소재)를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조성하는 꿈꾸는 예술터사업이 시행주체들의 갈등으로 지체되는 모양새다. 사업 시행주체인 장수문화예술협동조합(이하 조합)과 이들과 근로계약을 맺어온 전)꿈꾸는사업단이 지난 2월 취임한 조합 신임 이사장이 실시한 감사와 업무지시를 두고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꿈꾸는 사업단은 이사장의 행동이 자격 없는 감사와 월권행위라고 주장하고 있고, 조합은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북 문화예술계는 이를 두고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지역 거점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3일 장수군 등에 따르면,꿈꾸는 예술터는 폐교된 장안초등학교를 활용해 운영하고 있는 장안문화예술촌을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이 공간에서는 지역의 예술(교육)가들이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사업은 4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을 앞두고 시행 주체들의 갈등으로 지체되는 모양새다. 전)꿈꾸는 사업단은 꿈터 사업이 조합과 이사장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한 달이 넘게 멈추었지만 장수군청은 지속적으로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단은 이사장은 등기도 되기 전인 지난 2월 22일 사무실을 점검하고, 3월 23일까지 자격 없는 감사를 진행했다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했고, 이사장의 직권남용과 월권행위는 계속됐다고 부연했다. 이어 사업단은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이사장이 본인의 허락 없이 업무를 진행할 경우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했다. 또 장수군청에 이런 상황을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장수군은 어떤 중재나 상황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2일까지 장수군청, 사업단, 조합 면담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했다. 반면 조합은 이를 반박하고 있다. 이서하 이사장은 이사장으로서 업무지시를 한 것이고, 감사 등 모든 절차는 변호사의 법률자문과 노무사의 자문을 받고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업단에서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했다고 하는 데, 조합은 열쇠를 제공받고 근무를 하라고 얘기했다며 오히려 (사업단이) 출근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가 끝난 뒤,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와 문자를 했다며 (사업단에서) 왜 이런 입장과 태도를 취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장수군청 관계자는 사태를 방관하지 않았고, 사업단하고 조합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려고 노력을 했다며앞으로도 서로 잘못된 부분은 사과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갈등을 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내 예술계 관계자는 자칫 양측 간 기득권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고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며양측이 지혜롭게 갈등 국면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13 19:05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44) 시대를 직시하고 구원(救援)을 노래하다, 석정(夕汀) 연구의 대가, 허소라 시인

시인 허소라(許素羅, 본명은 형석(衡錫), 1936-2020)는 1936년 3월 12일 전북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499번지에서 부친 허재혁과 모친 송순엽의 3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시인은 금산중앙초와 금산동중학교, 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0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처 1988년 경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인은 전주신흥고와 군산수산전문대학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 양성과 문학연구에 매진하다가 2001년 퇴직하였다. 군산대의 대학신문 주간, 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아 대학발전에 이바지했고, 고려대학교 교류교수와 대만국립정치대학 객원교수, 중국연변대학 조문학과 객좌교수로 활동하면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시인의 글쓰기는 전북고녀(현 전주여고)에 다니는 누나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보다 일찍 글을 깨우친 그는 고사리손으로 누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누나의 친구들이 이를 칭찬하자 더욱 고무되어 열심히 편지를 썼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습작으로 막연하게나마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시인은 전북대학교에서 신석정 시인을 만나면서부터 인생과 문학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스승 석정은 시인에게 시업(詩業)에 평생을 바치려면 저만한 인격, 저만한 자세, 저만한 애정을 지녀야겠구나 하는 객관적인 표본이 되었다. 석정 선생도 시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으며, 소라(素羅)라는 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시인은 1959년 8월 『자유문학』에 「지열」, 「피를 말리는 」, 「도정」 등 시 세 편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출간한 이래 『풍장』, 『겨울나무』,『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는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와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석정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서 한평생 석정 문학 연구에 매달렸다. 이러한 공로로 시인은 전라북도문화상과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석정 시인과 맺은 인연은 석정 시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석정문학회 설립, 신석정문학제 개최, 『석정문학』발간, 신석정 전집 간행, 석정문학관 건립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9년에는 『조선일보』에 신석정의 미발표시 「인도의 노래」를 발굴하여 공개하였다. 또한, 시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가시인, 서정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 시인을 시대의 굴곡과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은 현실참여 시인, 또는 저항시인인 점을 일깨웠다. 시인은 늘 이렇게 다짐했다. 40여 년간 석정 선생 연구만 해왔는데, 석정이 목가시인으로만 알려진 점이 늘 가슴에 아렸어요. 푸성귀로 덮어 씌워져 있는 가시면류관을 벗기고 싶었습니다.라고. 허소라 시인은 1974년 7월 스승의 장례식이 끝난 뒤, 석정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표지도 없이 심하게 파손된 시집 여백에서 13편의 미발표 시를 발굴하였다. 이 작품들은 석정(夕汀)이 암장(暗葬)해 놓은 저항시였다. 가택 수색이라도 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들키지 않기 위한 석정 선생 나름의 고육책이 파손된 시집의 속의 여백이었던 것 같다. 시인은 일생의 스승이요 어버이 같은 석정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夕汀 스승 시비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달을 보며」라는 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나보다 먼저 온 풀벌레 울음이 하얀 달빛을 실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마다 하고 마다 해도 세상은 지저귀며 다가왔다가 이윽고는 침묵으로 떠난다 보름달 바라보며 기울이시던 술잔, 오석(烏石)이 대신하여 세월을 떠받들고 밤마다 첨벙이던 어둠이 더듬더듬 연못을 빠져나와 음각(陰刻)의 비문 속으로 숨으면 산을 향해 길게 드리운 그림자 하나 단 몇 줄로 요약된 생애를 성큼성큼 건너뛰며 영원 쪽으로 가고 있다 누워 있음과 서 있음의 차이 그러나 눈 감아도 산이 되고 나무가 되어 우리를 겹겹으로 다스리나니 -「달을 보며」 허소라 시인은 그의 마지막 시집 『이 풍진 세상』을 펴내면서 첫 시집 『목종』(1964)의 자서(自序)를 쓸 때는 세상에 내놓는 최초의 연서인 양 수줍고 설레었는데, 근 20여 년 만에 내놓는 제8 시집의 자서(自序)를 쓰려니 마치 마지막 유서를 쓰는 듯 만감이 교차한다.라고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그가 살아온 능욕의 구렁텅이에서 시대를 건지려 노력했고, 젊은이들의 기지와 풍자로 시대상을 조명하였으며, 또한 노년의 예지와 사랑으로 평화와 평등을 설파하였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시인의 삶은 아래 시 「진달래」에서 보듯 한세상으로 덮씌워 은폐되고 실제로 존재가 상실된 세상에서 은근과 끈기의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 진달래 타는 넋 봄도 지천으로 다발지고 사랑 그리운 날 너를 보니 한세상 진하게 글썽이고 -「진달래」- 허소라 시인은 지난해 12월 16일, 향년 84세로 영면하였다. 당시 김남곤(전 전북일보 사장) 시인의 「소라여, 소라여!」라는 조시(弔詩)의 내용처럼 지금쯤 허소라 시인은 그립던 석정(夕汀)님을 만나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을 더 고운 이야기로 꽃피우고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이준호 <허소라, 자기 구원과 시대를 증언하는 시> /송일섭 전라북도문학관 학예사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13 18:13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주구묘의 성격

한국에서 주구묘의 발견은 마한의 분묘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백제문화와 뚜렷이 구별되는 마한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고고학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주구묘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토기들은 마한 토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구묘가 분포하는 공간적 범위는 마한의 정치 문화의 영역과 일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구묘의 축조 방법을 보면, 우선 주구(도랑)를 굴착하여 그 흙으로 낮은 분구를 쌓아 무덤의 외형을 만든 다음, 분구의 중앙에 토광을 되파서 매장부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후 다시 흙으로 성토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덤에서처럼 시신을 지하에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안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구에서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고, 분구의 대상부에서도 옹관이 안치된 예가 있어 다장도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곧 직계 혈연관계에 의한 가족장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주구묘는 마한 성립기의 토광묘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어 두 묘제는 계승적 관계 속에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없다. 곧 토광묘와 주구묘는 분묘 축조 전통이 전혀 다른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토광묘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철기문화와 점토대토기문화를 가지고 내려온 집단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 자료로는 『삼국지』와 『후한서』에 기록된 고조선 준왕의 남천 기사라 할 수 있다. 『후한서』 위서 동이전 한조에 조선왕 준(準)이 위만에게 패하여 자신의 남은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마한을 공격하여 쳐부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 준의 후손이 절멸되자 마한 사람이 다시 자립하여 진왕(辰王)이 되었다라 하여 고조선 준왕계와 마한계는 계통이 다름을 적시하고 있다.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는 마한 성립 이전에 청동기 문화의 중기에 해당하는 소위 송국리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주요 특징으로는 원형 집자리와 계란 모양의 송국리형 토기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보령 관창리, 서천 당정리, 익산 영등동 등을 비롯한 주구묘 유적에서는 송국리 문화의 유적들과 중복되어 발견되었다. 특히 주구 내에서 송국리 토기편들이 확인되고 있어 송국리 문화 단계에 주구묘가 특정지역에서 축조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목관 나이테 분석에 의해 기원전 445년으로 밝혀져 일본에서 야요이시대의 가장 이른 시기의 주구묘인 효고현(兵庫縣)의 히가시무코(東武庫) 2호분에서 출토된 한반도계 송국리형 토기는 일본 주구묘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으며, 한반도 주구묘의 축조연대도 송국리 문화단계까지 소급될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 문화단계에 이미 주구묘가 축조되고 있었고, 그것은 한(韓)문화의 뿌리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마한 성립기 중심세력인 고조선계 준왕의 절멸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마한의 중심세력은 한의 기층세력으로 새롭게 부활한 주구묘 축조집단으로 볼 수 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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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3 18:02

“개성 만점 손글씨로 쓴 편지·일기 뽐내요”

전국 초등학생 여러분! 나만의 독특한 손글씨로 글쓰기에 도전하세요! 혼불기념사업회와 최명희문학관, 전북일보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개성 만점 손글씨 주인공을 찾는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인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이 공모전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초등학생들이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지난해는 전국 125개 학교(전북 39개교, 전북 외 86개교)에서 1246명의 학생이 1320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14년 동안 4만6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됐을 만큼 손글씨를 콘텐츠로 활용한 초등학생 공모전 중 최고의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의료진을 향한 감사의 글이 많이 응모돼 큰 울림을 줬다. 올해 공모전 역시 자신의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와 일기가 대상이다. 멋있고 특별한 손글씨를 가졌거나 자신의 손글씨를 뽐내고 싶은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학생은 최명희문학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5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방문 또는 우편(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29)으로 제출하면 된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전라북도교육감상을 주는 등 113명의 학생에게 상장과 상품을 선물한다. 수상 작품은 손글씨블로그와 최명희문학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게재되고, 10월 19일부터 3개월 동안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전시된다. 최명희문학관 전선미 학예사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씨에 새겨진 마음을 살피고, 평생 만년필 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최명희의 삶과 문학 열정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12 17:52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 ‘속도’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전북예총)가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북예총 소재호 회장은 12일 숙원사업인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을 매듭짓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13일 각 지역예총 설립 추진위원장을 위촉할 예정이다. 지역예총 설립 추진위원장에는 무주군 전선자, 장수군 오영하, 순창군 장교철 씨가 각각 선정됐다. 이들은 각 지역 내 문화예술단체와 협력해 지역예총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예총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행정적 지원과 정책적 연구, 각종 행사 교류와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다. 현재 전북예총은 10개 협회(건축국악무용문인미술사진연극연예영화음악)와 11개 시군지부(전주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진안고창부안완주임실)로 구성돼 있다. 무주장수순창은 예총이 설립돼 있지 않다. 예총이 설립되려면 장르별 3개 협회가 중앙으로부터 인준을 받아야 한다. 인준 조건은 협회마다 다르다. 현재 순창은 국악문인미술협회가 인준을 받아 설립 조건을 갖췄다. 장수는 국악문인협회, 무주는 문인협회가 인준을 받은 상태다. 소재호 회장은 지역예총이 설립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요한데, 3개 지역 모두 예총 설립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설립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12 17:52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신처럼, 황제처럼, 노예처럼

콘스탄틴 브랑쿠지 '입맞춤' 편안한 여행을 최고의 사치로 여기는 루마니아의 은자 브랑쿠지(1876-1957)의 작업실에는 네가 예술가임을 잊지 말아라. 신처럼 창조하고, 황제처럼 주문하고, 노예처럼 일 하라.라는 글이 있었다 한다. 어쩌면 게을러질 수도 있는 자신을 다잡아 가는 글귀로 이만큼 처절하도록 절실한 말은 흔치 않다. 파리의 작업실에서 브링쿠지 자신을 역사적인 조각의 거장들과 비교하며 존경하는 숭배자들에게 그러지들 마. 그 작품들은 밥벌이로 만들어진 것들이야. 젊은 시절의 나 역시 그 모든 시간을 밥벌이와 해부, 그리고 모방이나 재현 속에서 손쉽게 그러나 스스로는 독창적이라는 생각 속에서 일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부끄러웠어. 묘지의 비석으로 한 쌍의 부부를 닮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거야. 닮은 것 보다는 서로 사랑했으나 이제는 땅 속에 묻혀 있을 모든 부부의 마음과 닮은 어떤 것을, 그 영원을 표현해야 했다는 말이지. 자신이 혼자서 일을 시키는 황제가 되고. 죽어라 일만하는 노예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신과 같이 창조해야 된다는 주문처럼 그는 제자도 조수도 없이 평생을 혼자서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되풀이 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그가 그토록 노력하는 것에 걸맞게 상당히 빠른 시간에 원시적이고 본질적인 양감으로만 재현되어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모두 벗어 버린 형태, 또는 기하학적인 형태에 접근하고 있었다. 1908년 파리에 온지 4년 만에 그는 몽빠르나스의 묘지에 있는 입맞춤으로 그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루마니아의 목동이었다가 미술학교의 최우수 학생이었다가 루마니아의 메달과 상금을 독차지 했다가 좁은 환경에 한계를 느끼고 더 넓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파리까지 걸었다. 별을 이불 삼아 노숙을 하며 무작정 걷다가 병을 얻어 류네빌에서 머물고 있을 때 파리의 루마니아 친구가 2루이를 보내주어 기차를 탈 수 있었고 1904년 7월 14일 지친 몸을 끌고 파리에 입성했다. 그래서 그는 평생 편안한 여행을 원했고 파리의 기차 시간표를 모두 외웠으며 나의 생애를 돌아보면 기적의 연속이었다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12 17:52

전북 웅치·이치전투… 임진왜란 승리 교두보 역할

임진왜란당시 전북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특히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는 고개)이치(금산 서평)에서 벌어진 전투는 조선이 왜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하던 전라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에서 벌어진 이 전투들은 한산행주진주대첩, 명랑해전과 비교해 여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오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음력 기준)한 지 429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웅치이치 전투를 중심으로 전북 임진왜란사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 있었던 웅치이치전투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제공했다. 웅치전투는 패배했으나,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저지하면서 조선의 수군과 전라감영의 병력이 결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이치전투에서는 전라도 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조선관군의 두 배에 달하는 왜군 2000명을 격파했다. 이 때문에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지켜냈고, 한양과 평양에 주둔했던 왜군의 철수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밖에도 전북의 관군과 의병은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고창유림이 대거 참여한 장성남문창의(유생의병의 결의)는 1592~1593년 진주성 싸움, 경상도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1593년 행주대첩에서는 1년 전 이치전투에서 활약했던 전북 관군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 임진왜란사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해,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미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2017), <경북지역 임진란사>(2018)가,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1990)이 발간됐다. 최근 전남도는 2024년까지 440억원을 들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36만㎡에 건물 연면적 8300㎡규모로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전북에서도 임진왜란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북 역사학자들은 △이지웅치, 부안 호벌치, 남원성 전투에서 의병의 역할과 활용에 대한 자료조사 △고창 남당 호남 창의 동맹의 실체 △임진왜란을 기록한 일본, 중국 자료의 수집 △전북 주요 지역별 전투 재정립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북의 400여년 전 민관이 하나가 돼 대항일 투쟁을 벌였던 역사를 꼼꼼히 짚어볼 예정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8 19:16

[임진왜란·정유재란 속의 전북] 프롤로그 - 전북 임진왜란사의 위상

국가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난 이듬해 사헌부 지평 현득승에게 전쟁의 정황을 전하면서 덧붙인 의견이다. 이처럼 전북이 임진왜란정유재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던 고개)이치(금산 서평)전투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전북 관군과 의병은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고창과 장성 지역 유림이 일어난 장성남문창의(長城南門倡義)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유재란(1597년) 당시에는 부안 호벌치 전투, 남원성 전투를 치르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양란 당시 전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당히 박하다. 한산도행주진주대첩, 명랑해전에 묻힌 변방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는 13일은 임진왜란이 발발(음력 기준)한 429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란 당시 전북에서 일어난 전투, 전북 의병장과 관군의 활약, 역사적인 의의 등을 전반적으로 조명한다. 조선명일본 동아시아 삼국이 참여한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은 국제전쟁의 성격을 가진다. 7년에 걸친 전쟁은 삼국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어난 인적 물적 피해는 이들 국가의 격변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정권이 교체됐고,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대두했다. 조선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인조반정(1623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었다. 그만큼 양란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전북이 겪었던 고초는 컸다. 병참기지라는 이유로 상당히 많은 관군과 의병이 투입됐으며, 이들은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왜적과 싸웠다. 각종 피해도 극심했다.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대규모 인력이 사망했고, 왜군은 생존한 포로를 대규모로 연행해갔다. 포로 가운데 포르투갈 노예 상인들에게 다시 전매돼 유럽 등지로 흘러간 이들도 있었다. 왜란당시 전북 대표 전투는 웅치이치전투(1592년)다. 웅치전투는 왜군이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본진과 곡창지대를 공격할 수 없도록 시간을 지연시켜, 조선의 수군과 전라감영의 병력이 결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관군과 의병이 처음으로 연합하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로 꼽히기도 한다. 전라도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활약한 이치전투는 일본의 전라도 진격작전을 완전히 저지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투는 한양과 경기도 전투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특히 1593년 경기도 행주산성을 막아낸 행주대첩에서도 전국 관군이 활약했다. 권율이 전쟁이 끝난 뒤 군사을 이끌고 북상해 병력 1만여 명을 이곳에 집결시켜서다. 이들 의병은 경상도 지역의 왜군을 막기 위해서도 파견됐다. 의병 역시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1592년~1593년 고창유림이 대거 참여한 장성남문창의(유생의병)는 웅치전투를 비롯해 진주성 싸움, 경상도 전투 등에도 참여했다. 남원출신 의병장 변사정은 옥천, 상주, 선산, 함안 등지에서 적을 토벌했다. 1597년 정유재란에도 큰 활약을 했다. 당시 고창 의병장 채홍국과 평강 채씨 문중 인사들은 부안 호벌치에서 일대 혈전을 치렀으며, 의병 이복남과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남원성에서 크게 전투를 벌였다. 특히 남원전투 이후 전라도민들은 큰 희생을 치렀는데, 2만4394명의 코가 잘려나갔다.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은 전북 의병이 전국적으로 활동했던 이유는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며 다른 지역 의병은 향토수호의 개념이 강한 반면 전북 의병은 국토수호의 개념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때문에 전라도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극심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부분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큰 활약에도 전북 관군과 의병의 활약상은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산도행주진주 3대 대첩과 명랑해전에 조명을 받지 못하는 데다, 경북과 전남 등에 비해 왜란사 자료 정리와 연구가 미비한 상황이다. 연구인력 및 자료 부족이 큰 이유다. 전북의 현황을 살펴보면, 웅치, 이치 등 일부 지역 전투를 제외하고는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는 미비한 실정이다. 정유재란 시기 연구는 공백 상태이며, 일부 의병을 두고는 진위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와 고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찬사찬기록, 각 문중 소장 자료, 일본중국의 고문서 등을 수집한 뒤, 연구를 거쳐 학술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야 한다는 게 도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한문종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연구 패러다임을 전북 의병에 적용하다보니, 이들의 위상과 활동이 축소되거나 연구에 미진한 부분이 발생했다며 전북에서 활동하거나, 전북출신 문무관, 의병에 대한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서 정리한 뒤, 새로운 연구검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후 객관적인 시각으로 양란 당시 전북의 활약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8 18:16

한국소리문화전당, 고창문화전당, 부안예술회관 공연콘텐츠 공동제작 협약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은 6일 전당 연회장에서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과 공연콘텐츠 공동제작배급을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이번 협약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의 문예회관-예술단체 공연콘텐츠 공동제작 배급 프로그램선정의 일환으로, 코로나19로 창작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시기 문예회관과 지역 예술단체가 예술로 공존 상생하는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각 문예회관 뿐만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는 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고창농악보존회, 하이댄스퍼포먼스,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애도 함께 참여했다. 각 기관은 이번 협약에 따라 △예술단체의 정보공유와 교류 △공동으로 작품 기획제작투자 △공동 명의의 지역별 순회공연 개최 △상호 필요한 벤치마킹 협조 등을 협력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각 기관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전북의 특화된 소재를 가지고 창작 태권소리극 <태권유랑단, 녹두>라는 브랜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제작한다. <태권유랑단, 녹두>는 조선시대로 간 태권유랑단이 고창을 시작으로 부안, 전주로 이동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해하고 고군분투한다는 역사 판타지 창작극으로, 국악 기반에 태권도, 농악, 댄스 퍼포먼스 등을 조합해 구성할 계획이다. 공연은 11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에서 총6회 공연하며, 전북 예술인 70여 명이 참여한다. 박홍재 문화사업부장은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전라북도 각 시군의 균형 있는 문화예술 발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공연 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지역의 문예회관들과 상호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6 18:09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주구묘(周溝墓)의 발견

199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령 관창리에서 대규모 집단으로 확인된 주구묘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분묘)는 한국 고고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주구묘의 연구결과 마한 성립기 이후 발전기에 마한고지에서 폭넓게 조성되었던 마한의 대표적인 묘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이러한 주구묘가 관동에서 구주지역까지 분포되어 있어서 야요이시대(B.C 3세기A.D 3세기)의 독자적이며 보편적인 묘제로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관창리 유적이 발견된 이후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야요이 문화의 원류는 한반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현장에서 가끔 우스갯소리로 유적의 발견도 유행을 쫓는다라는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면 동일한 성격의 유적이 잇달아 발견되기 때문에 나온 얘기이다. 그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구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익산 영등동과 서천 당정리에서 주구묘가 잇달아 발견되었고, 1999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에서 다수의 주구묘 유적이 조사되면서 마한의 대표적인 묘제임이 확인되었다. 보령 관창리 유적은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 주관으로 발굴면적 11만1000㎡에 대한 조사결과, 주구묘 99기와 송국리형 주거지 100여기가 확인되었다. 주구묘의 매장주체부는 거의 모두 삭평되어 결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었지만, 평면형태나 주구의 개방부에 따라 7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주구 내에서 발견된 토기 가운데 두형토기나 점토대토기를 참고하면 B.C 32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익산 영등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방형 주거지 4기, 중기의 송국리형 주거지 19기와 더불어 주구묘는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택지개발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조사 이전에 주변지역은 이미 개발이 이루어져 유적의 일부분이 훼손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영등동 1호 주구묘에서는 토광묘가 매장부로서 확인된 최초의 예가 되는데, 내부에서 철부와 철도자편이 발견되었다. 서천 당정리 유적은 송국리형 주거지 16기와 23기의 주구묘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도 관창리나 영등동 주구묘와 같이 주구 내에 청동기시대 주거지 출토 토기들이 혼입된 양상을 보인다. 또한 분포양상에 있어 주구묘는 몇 기씩 인접하여 군집을 이루고 있는 점이 보이는데, 이는 혈연집단의 친연성에 따른 축조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주구묘들이 잇달아 발견되는 큰 이유는 그 이전에는 고분 발굴조사에서 주로 매장주체부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유적 주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넓은 범위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 1996년에 호남고고학회 주관으로 「호남지역의 고분의 분구」라는 학술대회를, 그 해 역사학대회 고고학 분과의 주제로 「주구묘의 제문제」를 선정하여 주구묘 연구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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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6 18:09

전북 친일인사 연구 진전될 필요

전북지역 친일파 인사에 대한 연구가 심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북 자치단체와 문화기관 등이 협업해 만든 친일잔재 연구용역보고서에 수록된 인물들이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전북도와 전북대 산학협력단, 시군 향토연구자, 지역문화원 등은 지난해 12월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1910년(한일합병)~1945년(해방)까지 활동했던 도내 14개 시군출신 친일파 명단 118명을 담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출신지를 알 수 없는 사람 36명, 전주 24명, 익산 10명, 군산 7명, 고창 6명, 남원 6명, 임실 6명, 정읍 6명, 김제 4명, 금산 3명, 무주 2명, 부안 2명, 완주 2명, 장수 2명, 진안 2명이다. 활동분야도 세분화했는데, 경찰(41명), 관료(31명), 중추원(20명), 사법(7명), 친일단체(7명), 군(5명), 경제(4명), 만주(4명), 문학(3명), 지역유력자(2명), 언론(2명), 교육학술(2명), 개신교(2명), 천도교(1명), 유림(1명), 불교(1명) 순이다. 보고서는 인물이 한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중첩적으로 활동해서 이 분야 통계는 연인원 133명으로 집계했다고 설명했다. 전북도 등은 이 보고서를 만든 목적에 대해 지역 친일파와 친일잔재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완결성 있는 친일잔재 처리방안 강구로 제시하고 있다. 친일파의 규정과 범위를 설정해 기초자치단체별로도 친일청산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그러나 보고서가 완결성 있는 친일잔재 처리방안을 강구할 정도로 친일인사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부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을 중심으로 수록했을 뿐, 자체적으로 새롭게 발굴한 친일인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유력자 같은 경우 알려지지 않은 친일인사가 다수 포진돼 있어, 발굴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를 펴낼 때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친일파로 지목된 인사의 후손들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훼손 등으로 법적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새로운 인물을 수록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보고서 간행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이런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인사는 일제 강점기 전횡을 저질렀던 전북 유력 인사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진전되지 못한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며연구가 왕성하게 진행되서 친일인사로 검증된 인물이 많았다면 자신감 있게 보고서에 반영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 자치단체와 학계차원에서 연구발굴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4000여 명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때, 전국 역사학자들이 오랜 시간 매달려서 연구하고 검증했다며 전북에서도 이번 친일관련 인사 용역보고서로 끝낼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전북도와 각 시군, 역사학자들이 연계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친일인사들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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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1.04.05 18:01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엄마와 함께하는 아름다움

엄마 류인하의 꽃 어느 날 우연히 자료를 찾다가 어느 여류화가의 도록을 보았다. 딸의 편지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면서 이어 엄마의 (작가의 변)을 읽었다. 딸 글을 먼저 보았으니 이른바 하극상의 결례를 범한 셈이다. 아이 엄마라 밝힌 딸의 글이 눈에 먼저 들어와서 그럼 엄마의 마음은?이 된 것이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속삭이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고마웠다. 인간들이 뱉어내는 온갖 악취로 인하여 질식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한 줄기 쏟아지는 산소지대를 지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작가노트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더 곱고 신비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과 대상을 순한 눈으로 대할 수 있으니 보이는 심연과 보이지 않는 심연이 새삼 보이게 마련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그 꽃들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보이듯, 자연이 참 곱다. 이번 전시는 노랫말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에 의미를 담아 풀어보고 싶었다. 이른 봄부터 나의 꽃밭에 물들여온 꽃을 나의 페르소나(Persona)로 캔버스에 풀어본다. 딸에게서 온 편지 엄마 예전에 제가 여쭤봤던 적 있지요. 엄마는 왜 늘 꽃을 그리세요. 엄마는 예쁘잖아. 이만큼 예쁜 것도 없지. 그러셨죠.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것 같은데 제가 어느덧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저에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시간에 이르러 다시 보니 꽃이 예쁘네요.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의 나무에서 꽃으로 태어났어요. 나는 꽃이 되어 또 다시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꽃을 피우네요. 꽃 피운 나무였던 그 때를 기억하고 싶어서 꽃으로 태어난 나를 저장하고 싶어서 엄마는 꽃을 옮겨 담아요. 그 꽃들은 엄마의 어떤 날 일까요. 꽃을 보듯 누구를 보며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계실까요. 무엇보다 꽃은 그냥 예뻐요. 엄마 말씀이 늘 그랬듯. 맞아요. 꿈의 대화가 도록의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고 있었다. 저 높은 산봉우리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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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5 17:53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에 들어설 전주시립미술관 ‘윤곽’

2024년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에 들어설 예정인 전주시립미술관의 윤곽이 드러났다. 4일 전주시가 가나문화재단에 용역 의뢰한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사업 기본방향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운영 필요성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500명)의 79%가 필요하다고 답해 시립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이유에 관한 물음에는 응답자의 과반수에 이르는 47.9%가 시민들을 위한 예술휴식 공간으로서라고 답해, 휴식과 함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과 선호도가 나타났다.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안에 전주시립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대한 적절성을 묻는 문항에는 다소 적절하다는 의견이 44%로 가장 많았지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35%로 그다음을 차지했다. 야구장 내 건립이 적절하다고 응답한 58%의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접근성이 좋다, 교통이 편리하다, 안 쓰는 부지를 활용하다, 문화생활에 도움이 된다/문화 시설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야구장 내 건립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한 42%의 응답자들은 야구와 미술은 어울리지 않는다/연관성이 없다, 위치가 적합하지 않다, 자연과 가까운 곳이 적당하다 등의 이유를 내놨다. 이를 토대로 용역을 수행한 가나문화재단은 전면철거에 의한 대규모 사업을 지양하고, 기존 도시공간구조와 기반시설을 최대한 유지하는 점진적인 도시재생형 건립 방식을 제안했다. 또 전주시립미술관의 운영 전략은 현대미술 중심의 미술관으로 설정했다. 현재 전북지역에는 공립미술관 7개와 사립미술관 9개가 있지만, 각 미술관의 소장품과 프로그램 성격을 살펴봤을 때 전통과 근대 미술문화 콘텐츠에 편중돼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미술관 소장품 수집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적절하므로 초기 투자 규모를 줄이고, 일정 기간 수집 예산을 확보해 내실 있게 소장품을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주시립미술관의 부지는 1963년 전주 일대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위해 건립된 전주종합경기장 내 야구장이다. 전주시는 전주종합경기장을 덕진구 여의동으로 이전하고, 해당 부지에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전주컨벤션센터, 전주시립미술관, 시민의 숲 1963 등은 조성할 예정이다. 전주시립미술관은 미술관과 어린이미술관, 미술도서관, 다원예술극장, 야외공연장, 시민휴게공간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420여 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연간 운영비는 65억원으로 추산됐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04 17:04

전북 문사철 위기

전북 대학가에서 문학사학철학 등 이른바 문사철(文史哲) 학과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취업률을 중시하고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는 시장논리가 대학에 팽배해지면서 이 학과들이 인문사회계열 내에서 통합되거나 폐과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학과들이기도 하고 학과 학생수 감소도 이같은 위기를 부채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광대학교는 지난 2017년 고고미술사학과와 사학과를 역사문화학부로 통합했다.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 따라 학생 선발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프라임 사업은 사회와 산업의 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들에 2016년부터 3년 간 총 600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인문예체능계를 줄이고 이공계를 늘리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올해 들어 신입생 수도 줄었다. 원광대 관계자는 지난해 충원률을 100%로 볼 때 올해는 70%정도 충원했다고 설명했다. 군산대학교는 지난 2015년부터 사학과와 철학과를 합쳐 역사철학부로 합쳤다. 인문학의 위기에 따른 전략적인 통합이다. 곽장근 교수는 학생들의 취업과 장례, 연구 프로젝트 수행역량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합쳤다고 밝혔다. 올해는 학생 모집도 여의치 않았다. 군산대 관계자는 역사철학 등 인문계열이 사회과학계열보다 신입생 모집이 수월하지 않다며 구체적으로 숫자는 말하지 못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학생수가 미달됐다고 밝혔다. 우석대 역사교육과는 지난 2017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상황이다. 교육부가 교원 자격증 축소 방침을 세운 뒤, 사범계 학과 전체 입학 정원을 줄인데 따른 영향이다. 전주대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계속 역사학과를 변형시켜왔다. 지난 1989년은 역사교육과, 1995년 사학과, 1999년 한국학 전공, 2001년 역사문화전공, 2009년 역사문화콘텐츠 전공, 2013년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순이다. 전주대 관계자는 역사교사 임용수와 사회변화, 학생들 요구에 따라 학과명과 커리큘럼을 계속 변화시켜 미달은 막은 것으로 보인다 면서도 사회적 분위기나 인문계열 취업률, 출산율을 고려할 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북거점 국립 대학인 전북대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입시에서 사학과, 고고문화인류학과, 철학과 등 인문계열에서 미달사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는 경우가 줄고 있다. 전북대 철학과 출신인 A씨는 대다수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되는 학과와 같이 복수전공을 하고 있으며, 아예 전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인문계열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토로가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학교에서 학과 통합이나 폐과를 하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오는 연구 인력들의 자리를 축소시킨다며문사철 박사출신 실업자들이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고 토로했다. B교수는 안타깝지만 현실을 고려했을 때, 자치단체의 지역사 연구경향이나 기업의 수요에 맞춰 커리큘럼을 실용적으로 개선하는 방향도 필요해 보인다며 취업이 일정부분 안정되면 학생들이 찾는 학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예원예술대 교수(전 전주역사박물관장)는 지방대학 인문학 분야가 무너지고 있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며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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