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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염제조장 이수자 김인석 대표 "민족의 신약 죽염, 아홉번 구워 만들어야 최상품"

“아내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든 나날을 보낼 때 모든 염분을 오로지 선생님이 제조하신 죽염을 통해 섭취했는데 온갖 노력으로 지금 기적을 일구어 나가는 중입니다. 그간 저희 주변에서 모든 과정을 봐오신 분들이 서서히 죽염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체득한 여러 경험 이루 말 할 수 없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캐나다 교포가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죽염제조장 효산 허재근(87) 명인과 그 이수자인 김인석(58) 삼보죽염 사장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천일염을 대에 넣고 아홉 번 구워 만든 죽염(竹鹽)은 제조가 까다롭고 매우 귀해 예부터 민족의 신약(神藥), 또는 완전한 물질 오행단(五行丹)으로 여겨져 왔다. 죽염의 기원은 신라 경덕왕 때 완산주 출신 승려 진표율사가 부안 개암사에서 최초로 전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에 죽염의 근원지인 전북도는 지난 1999년 개암사 주지를 역임한 효산 선생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한국 최초). 불과 2년 전만 해도 정정했던 효산은 고령에 청력이 거의 쇠했고,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 한다. 지난 18일 고창과 부안을 찾아 효산과 함께 가장 최근까지 오행단을 빚은 도 죽염제조장 이수자 김인석 사장을 만났다.-효산 스님이 어떻게 죽염과 인연을 맺었는지요.“스님은 1958년부터 1992년까지 남원 실상사와 부안 개암사에서 주지로 계셨습니다. 11살 때부터 개암사에서 장작불을 피우고 관솔을 따 소금 태우는 심부름을 하셨는데, 당시엔 몰랐지만 나중에야 그게 죽염 제조과정인 걸 알았답니다. 개암사에서 스승이셨던 현응 대종사로부터 죽염 제조 비법을 전수받아 연구·개발하시고, 효능이 뛰어난 죽염 제조법을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부안 계화면에 ‘죽염제조전수관’을 설립해 홀로 지내시다가, 최근 보살님의 도움을 받고 계십니다.”-스님의 죽염 관련 일화가 궁금합니다.“젊은 시절에도 개암사에 계셨는데 노스님들이 죽염을 상복하셨고 인근에서 환자가 오면 그것을 비방처럼 처방하셨다 했습니다. 또 6·25전쟁 이후 나주에서 모친의 병환 때문에 찾아온 분과 부안에서 술에 절어 살던 분에게 죽염 복용을 권해 건강을 회복시킨 사례 등을 말씀하셨습니다.”-죽염 제조 저반에 깔린 철학은 무엇인가요.“불자들인 만큼 자성불이 보고 있다는 마음에 스스로의 의지와 내 마음과 한번 했던 약속, 초심을 끝까지 지켜나가 바른 공법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둡니다. 또 스님은 돈 욕심 내지 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 정신으로 병든 이에 대한 구제를 강조하셨어요. 우리 몸이 갈수록 산화되고 병들어 가는데, 고되고 힘들어도 알칼리성 물질로 신체를 환원해주는 죽염을 만들어 의약품을 오용하는 현대인들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 벌이가 안 되고 힘들어도 이게 나의 소명이라는 의식에 다른 쪽으로 기웃거리지 못하고 있습니다.”-국산 1등급 천일염은 최상품입니다. 그걸 9번 굽는 이유가 무언지요.“천일염을 9번 구워 녹여내면 보라색을 띤 자죽염(紫竹鹽)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죽염이고 이전 것은 반제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두 번 구운 것은 양치나 음식 제조에 곁들이면 좋아요. 9번 굽는 것은 수가 9에서 멈추지 않습니까. 달인의 경지, 바둑도 9단까지 있지요. 퀼리티가 더 이상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나무 수액이 스며들고 매 과정마다 지장수(地奬水)를 뿌리기 때문에 목(대나무)·화(불)·토(황토 가마 및 지장수)·금(9번째 쇠가마)·수(용융) 등 오행이 다 결집됩니다. 소금이라 치부할 수 없는 완전한 물질인 오행단이 되는 것이지요. 오행단은 산삼·녹용과 달리 체질과 상관없이 일상에서 복용해도 몸과 조화를 이룹니다. 경희·부산 한의대 등의 논문이 자죽염의 효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 천일염을 현미경으로 찍어보면 유해물질이 많이 붙어있어요. 해수에 축적된 가축 폐수와 환경호르몬이 소금에 남아 구울 때 역한 냄새가 나고 탁탁 튀는 것이지요. 아홉 번 구우면 그게 법제(法製)돼 거의 날아갑니다.”-짜게 먹으면 안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정제염을 먹었지요. 깨끗하고 하야니 그게 좋은 줄 알고. 정제염은 이온법에 의해 결합하는 거라 미네랄이 없고 짠맛만 강해 강산성을 띱니다. 천일염은 오염물질이 있지만, 그래도 중성 정도를 나타내죠. 죽염은 알칼리성으로 일반 소금과는 다른 물질입니다. 그저 무조건 짜게 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양질의 염분 섭취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생각입니다.”-유달리 9번째 가마만 다르고, 원료로 국산 대·송·황토·천일염을 고집하시는데.“1500도의 열로 녹여야 자죽염이 용암처럼 흘러나옵니다. 8번째까지의 황토가마에서는 이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수 제작한 스탠 스틸 가마를 사용합니다. 저희는 조선 도공들처럼 장작으로 100% 토종 소나무만 사용합니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화력을 극강으로 올릴 수 있어 질 좋은 죽염을 얻을 수 있고, 태울 때 유해가스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나무는 남원·담양·진주(산청)와 거래해 공급에 큰 문제는 없지만, 원가가 상당히 높아 여유 자금을 대밭 조성에 씁니다. 벤지 오래되면 말라 수액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입하지 않습니다. 황토는 스님이 ‘어머님 품안과 같다’고 말하신 물질로, 흙 중 가장 뛰어난 정화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 주산지인 이곳 고창 것을 사용합니다. 천일염은 삼양염전에서 사용하다가 인근에 골프장이 생겨 영광에서 조달받고 있습니다.”-경남의 인산가에서 죽염을 발명했다는 주장을 합니다.“국내 업체 중 인산가의 매출이 가장 많지만 발명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김일훈 선생께서 대체의학자셨던 만큼 죽염 제조법을 전해 듣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개암사에서 불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대로 해온 것입니다. 밥을 짓거나 김치 담그는 일을 발명이라 하지 않잖아요.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효산 선생께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산 선생께서 죽염이란 명칭을 1980년대에 처음 사용하신 것은 맞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상생의 틀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바람이 있다면“모든 죽염 제조자들이 전통의 방법을 우직하게 고수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죽염의 기능 검증 일에 더욱 치중해서 단시일 내 많은 관련 논문이 나오길 소망합니다. 아스피린은 5만편의 논문이 있는데, 죽염은 아직 20여편에 불과합니다. 죽염이 소금과 다른 물질이란 것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끝〉● [죽염은] 소금과 다른 물질 '오행단'·성인병 치료 효과에 탁월대한자죽염연구회는 9번 구운 자죽염은 결코 소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독성과 부작용이 없으며 환원 작용을 통해 체내 부조리를 없애는 만큼 학계는 소금과 차별화하기 위해 ‘오행단’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인체에 이로운 각종 미네랄을 함유한 새로운 물질로, 장기 복용할 경우 각종 성인병과 염증 치료 및 미용 등의 효과가 있는데다, 민족 고유 민방제재로서의 전통과 독창성이 있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고귀한 유산이라는 의미다. 중국 바이뚜 백과사전은 죽염을 문화재로 소개하고 있다.실제 죽염은 pH13의 강알칼리성을 띠고 있고, -430~500mV로 -420mV의 수소보다 환원력이 높아 신체 중화에 탁월하다는 한국·일본의 연구 결과가 있다. 몸을 해치는 강력한 산화력을 가진 콜라와 두통약은 각 484mV, 636mV의 수치를 나타낸다.죽염은 6달간 간수를 뺀 1급 천일염으로 만든다. 직경 7~8㎝ 대를 한쪽만 뚫리게 잘라 그 통에 천일염을 가득 넣고 황토 가루를 반죽해 봉한 뒤,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대나무는 소금에 녹아들어 타 없어지고 소금 덩어리만 남는다. 이를 지장수를 뿌리며 잘게 다져 대통에 또 넣고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지장수는 황토 지면을 파고 깊이 약 2자 정도의 구덩이를 만들어 흐르는 물을 넣고 휘저어 섞어 그것이 침전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위의 맑은 물을 취한 것으로, 열을 내리고 해독하며 중초(中焦)를 조화시키는 효능을 가졌다.통상 죽염은 치약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효산 스님이 지도하는 삼보죽염도 치약 원료로 월 5톤 가량을 납품하고 있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5.22 23:02

[④ 전주한옥마을의 매력(2)] 관광객 전통공연·체험 기회 늘려야

한해 방문 관광객 600만 명을 넘겼다는 전주한옥마을은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전주한옥마을의 성공으로 많은 자치단체에서 한옥마을을 조성하게 되었고 전주한옥마을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제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한옥마을에서 어떻게 수용할지의 고민에서 나아가 어떻게 하면 몰려드는 관광객을 전주시 전역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사실 10여년 전만해도 한옥마을은 전주시에서 그리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한옥마을의 비약적인 성공은 한옥마을 자체적으로 두드러진 문화콘텐츠가 많았다기 보다는 전략적으로 전주지역에 풍부하게 퍼져있는 전통문화를 한옥마을이라는 지역에 옮겨 담아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이제 관광객의 분산을 위해서는 전주시 전반에 퍼져있는 전통문화콘텐츠의 지역적인 발전을 통해 상호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전주천을 중심으로 도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 현대적인 업무시설과 상업시설이 신도심으로 옮겨가게 되고 기존의 구도심은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한옥마을과 함께 구도심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문화기반의 지역들인 서학동예술마을, 동문예술거리, 자만벽화마을 등과 놀이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전주동물원, 소리문화전당, 덕진공원, 고사동영화의거리 등등의 지역을 전통생활문화라는 콘텐츠로 덧입혀 한옥마을과 연계된 관광지로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나아가 한옥마을의 경계를 없애고 전주천 서쪽의 구도심전체로 한옥마을의 연장선인 전통생활문화지역으로의 지정하여 신도심지역과 함께 차별화되고 균형잡힌 발전을 위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방안도 검토돼야 하겠다.전주한옥마을은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에 비해 넘치는 흥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그 흥의 기운의 대부분이 먹거리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것을 전통문화놀이로 유입해 전통문화체험을 통한 흥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더 제공되어야 한다. 과연 찾아오는 관광객의 몇 %가 전통의 소리를 듣고 전통의 놀이를 경험하고 가는지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극히 적은 수에 불과할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람객은 적어도 1~2가지의 문화체험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사실 길거리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타지역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많은 수의 관광객보다는 고급스러운 문화체험을 하고자 하는 적은 수의 관광객이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고객이다. 서울에서 많은 손님이 내려오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마당놀이 한 번 보고 가기가 쉽지 않다. 태국에 가면 코끼리쇼를 보고 프랑스에 가면 캉캉쇼를 볼 수 있듯이 전주에서는 전통의 소리와 마당놀이를 관람할 수 있는 소극장 형태의 상설공연장이 많이 있어야 한다. 물론 시설과 함께 상설공연팀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이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것도 어려운 과제다.전주한옥마을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관리와 통제도 필요하다. 한옥마을의 자랑거리인 골목체험에서도 골목골목 상업적인 간판이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고, 조그마한 공간만 허락되도 좌판이 벌려진다. 아쉬운 것은 정체성 없는 먹거리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관광지에 먹거리가 빠질 수는 없지만 특정 지역으로의 전략적인 배정이 필요하다. 태조로가 대표적인 먹거리의 거리로 전락한 것은 아쉽지만, 태조로의 먹거리를 규제할 수 없다면 더 이상의 확산을 막고 제2의 먹거리 지역을 한옥마을 내에 또는 인근에 따로 지정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다.전주한옥마을의 현재와 같은 급속한 확장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조정돼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 좋지 않은 기억을 갖지 않도록 적절한 관광객 수의 인위적인 조정은 필요하다. 앞서 확인했지만 모여드는 관광객을 위해 수많은 숙박시설과 주차시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전주시 전반에 걸친 관광인프라의 구축으로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전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문화일반
  • 기고
  • 2015.05.21 23:02

세계 최고 비보이, 전주서 격돌

세계 최고수준 비보이(B-boy)들의 한바탕 축제가 펼쳐진다. 전주청소년 문화의집이 주최주관하고 전주시가 후원하는 제9회 2015 전주B-boy 그랑프리가 오는 24일 전북대삼성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다.이번 대회에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비보잉 그룹 30여개팀이 참가, 이날 오후 1시 비공개 예선전을 치른 뒤 오후 5시부터 본선 배틀이 시작된다.본선 배틀에는 예선을 통과한 7개팀과 지난해 우승팀인 라스트포원(Last for one)등 모두 8개팀이 출전, 우승을 놓고 격돌한다.대회 본선 우승팀에는 1000만원, 2등 400만원, 3등 200만원(2개팀) 등 모두 18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이에 앞서 대회 전날인 23일에는 오후 2시부터 전주 고사동 중앙살림광장에서 3:3 비보이 배틀대회가 치러지며, 오후 7시에는 이번 대회 심사위원인 Xisco(네덜란드), Roxrite(미국) 등이 참석하는 비보이 워크숍이 전주청소년 문화의집에서 열린다.전주시 관계자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를 발굴육성, 문화특별시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전주B-boy 그랑프리는 전주청소년 문화의집에서 길러낸 비보잉 그룹 라스트포원의 지난 2005년 독일 세계대회 우승을 계기로 2007년부터 열리고 있는 대회다.

  • 문화일반
  • 최명국
  • 2015.05.19 23:02

[리뷰] 전주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백발에 건장한 체구를 지닌 서양 노신사가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서 자신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 벽안의 마에스트로(maestro)는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약 2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모든 곡을 암보로 소화했다.13일 저녁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주시립교향악단의 제205회 정기연주회 자리에서다. 영국 출신 저명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이안 홉슨’(Ian Hobson) 서울대 음대 교수가 객원 지휘한 이날 공연에서 전주시향은 베토벤의 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레오노레 서곡 제3번과 피아노 협주곡 3번, 교향곡 3번 ‘영웅’ 등 정규 프로그램 외에 앵콜곡으로 베토벤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3B 작곡가’인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1번’을 선곡해 독일음악 레퍼토리를 유지했다. ‘3B’는 바흐·베토벤·브람스를 일컫는다.선율 하나하나를 고치고 또 다듬어 만든 베토벤의 곡들인 만큼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순간의 정적에도 긴장이 흘렀다. 모차르트의 곡으로 흥겹게 시작했던 전주시향의 지난 정기연주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영웅 교향곡’을 듣기 위해 각 곳에서 모인 관람객들은 선율이 전하는 ‘말 없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다들 집중하는 표정이었다.공연을 관람한 이정인 씨(59·여)는 “라이브 연주로 베토벤 3번 교향곡을 듣기는 처음인데, 곡이 전하는 인간 내면의 기쁨과 슬픔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며 “확실히 스케일이 큰 곡이어서 그 긴장감에 감상하는데 상당한 체력을 요했다. 연주자들은 더욱 수고가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홉슨 교수는 이날 그랜드 피아노의 덮개를 제거한 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직접 연주·지휘했다. 일부 관객에게는 다소 새로운 광경이었다.이광진 전주시향 단무장은 “김대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나 다니엘 바렌보임 등 유명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라며 “홉슨 교수와 시향 단원들의 호흡이 아주 잘 맞은 공연이었다”고 말했다.홉슨 교수는 첫 방문한 전주에 대해 ‘포근한 기운이 느껴지는 도시’라 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공연 이튿날인 14일 오전 미국으로 출국했다.한편 전주시향은 이날 객원 연주자를 15명 사용했다. 또한 객원 악장을 순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고질적인 상임단원 부족 문제를 다시금 드러냈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5.15 23:02

[③ 전주한옥마을의 매력] 자존심 살아있는 전통문화 담아야

전주한옥마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대표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작년 한 해 동안 6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이라 하겠다. 이런 급속한 성장은 불과 몇 년 전부터라고 기억된다. 한옥마을을 기획했던 담당자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던 급속한 성공이 아닐까 싶다.이제 우리는 한옥마을의 비약적인 성장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어떻게 지속 발전시켜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65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전주한옥마을의 힘과 매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전주한옥마을에는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여유와 흥이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농축되어 담겨있다. 전주는 한국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슬로건이 눈길을 끈다.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전주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외세로부터 흔들렸던 질곡의 역사와 급속한 근대산업화 속에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역사와 시대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유지시켜 왔던 대표적인 곳이 전주이기 때문이다.특히 전주는 생활문화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유지할 뿐 아니라 발전시켜왔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도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우리의 근본을 찾아가고 정체성을 잡아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주의 생활문화가 부각되고 그 중심에 한옥마을이 부상하게 된 듯하다.전주한옥마을은 다른 지역의 전통한옥마을과 달리 최초의 형성과정이 민족적 자긍심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특징이 있다.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컸던 지역으로 다가동과 중앙동에 진출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던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으로 1930년을 전후해 경기전을 중심으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특히 1912년에는 태조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고 전주 이씨 시조의 위패가 봉안된 경기전의 반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지어 경기전을 초등학생이 뛰어노는 놀이터로 만들어 민족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던 시기였다.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에게 한민족의 정체성 외에도 호남지역의 비옥하고 드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하는 풍요로움 속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먹거리는 중요한 매력 중에 하나가 되고 있다.그러나 요즘에는 외지의 지인으로부터 전주의 먹거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난감함을 느낀 적이 많다. 소개할 만한 뚜렷한 식당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는 부분이다.전주의 먹거리가 변해가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에 줄줄이 들어서고 있는 먹거리는 그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어디에 가든 볼 수 있는 유흥지 먹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도 새로 생긴 식당이 대부분이다. 역사와 전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모두 원조란다. 절대 가면 안 되는 한정식집도 비빔밥집도 너무 많이 생겨났다.전주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다. 문화상품은 담고 있는 문화콘텐츠의 수준으로 가치를 평가 받는다. 몇 해 전 대기업의 디자인담당 임원들을 전주한옥마을에 초대해 한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통한정식 집에서 식사 전에 명창을 모시고 판소리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아 유명한 문화를 두루 경험한 디자인 임원들이었지만 식사자리 바로 옆에서 경험한 판소리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이후에 본사에서 치러졌던 전체 임원 워크숍에 그 명창을 초대했다고 한다.전주한옥마을은 한국문화의 자존심으로 고급스러운 문화를 담고 있어야 한다. 고급스러운 문화란 자존심이 살아있는 문화이다.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고 그곳에서만 시작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주말 한옥마을 전통문화관에서 가족창극 쪽빛황혼 한마당이 펼쳐졌다. 우리의 삶을 전통 문화방식대로 표현한 흥의 한마당에서 울고 웃으며 진한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다음 이야기에서한옥마을 디자인 제안이 계속됩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5.05.14 23:02

[⑦입하] 온갖 나물들 입맛 돋워…여름 시작

입하는 양력 5월 6일경으로 곡우와 소만사이에 들며, 24절기 가운데 일곱 번째 절기다. 이 무렵은 태양의 황경이 45로서 덥지도 춥지도 않고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에 아주 적합한 기후라 했다.산과 들은 점점 초록빛으로 변해가고, 그동안 변덕을 부리던 날씨는 안정을 되찾는다. 연한 초록빛을 띠던 나뭇잎이 점차 진한 녹색이 되고, 농작물곤충풀 등 세상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나며 여름의 문턱으로 넘어가게 되는 시기다.이 때, 농촌에서는 마련해 두었던 못자리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농사일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산간지방에서는 때때로 우박이 내려 옮겨심기 위해 씨앗을 뿌려 가꾼 어린 식물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고, 높새바람의 영향으로 농작물이 말라 버리기도 한다.그래서 산간지방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 해의 풍흉을 예측해 보는 풍속을 행하기도 했다.마을에 한두 그루씩 자라고 있는 이팝나무에 흰 꽃이 한꺼번에 잘 피어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이것은 입춘 때의 보리 뿌리점과 매우 비슷하다.이맘 때 들판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쑥을 뜯어 쌀가루와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서 먹었다. 향긋한 쑥 냄새와 쫀득한 찹쌀이 잘 어울려 별식이었다.이 때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돋아나 입맛을 돋우었다.이처럼 입하는 녹음이 무성하여 경치가 아름다워지는 절기이며, 온갖 나물들이 돋아나 입맛을 돋우는 때이다. 따라서 입하를 가리켜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다고 한다.이 때는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초하괴하유하라고도 한다.입(立)자가 드는 절기는 4계절의 초입을 뜻하는데, 입춘입하입추입동을 사립(四立)이라고 한다. 사립에 춘분하지추분동지를 합하면 팔절(八節)이 된다. 팔절에 부는 바람이 팔풍(八風)이요, 입하에 부는 바람은 청명풍(淸明風)이라고 한다.또한 여름을 주명절(朱明節)이라고도 한다.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색이 오색(五色)인데, 이 중에서 붉은색이 여름의 색이기에 붉을 주(朱)자를 쓰는 것이다.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옛날 황제(皇帝)가 입하 날에 남교(南郊)에서, 여름기운을 맞으면서 주명가(朱明歌)를 불렀다고 한다.옛 세시기에는 입하 15일을 5일씩 3후(候)로 초 후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중후에는 지령이가 땅에서 나오며, 말 후에는 왕과(王瓜) 쥐 참외가 나온다고 했다. 음력에서는 보통 4, 5, 6월의 석 달을 여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입하 이후 입추 전날까지를 여름철로 규정 짖는다.입하는 8절기의 하나로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절기다. 위와 같은 풍조는 율력법이 제정된 이래의 행사로 옛 농경사회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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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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