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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박물관 관람객 수 2.5배 이상 증가

경기전 내 위치한 어진박물관의 6월 2~3주 차 관람객 수가 전년 동월 대비 2.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진박물관에 따르면 이달 2~3주 차 관람객은 2주 차 10278명, 3주 차 13008명으로 총 23278명이 방문했다. 전년 동월 2~3주 차 관람객은 2주 차 3527명, 3주 차 5441명으로 총 8968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2.5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관람객 수 증가 요인으로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가 큰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에 따라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관람객 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디지털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마련과 전주 문화재 야행 기간(6월 17~18일)이 겹치면서 관람객 수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진박물관은 고해상도 몰입형 실감 미디어, 얼굴인식 AI를 활용한 ‘나만의 어진 만들기’, 태블릿을 통해 반차도 속 캐릭터를 색칠할 수 있는 ‘디지털 컬러링’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도록 재정비 후 지난 7일 재개관했다. 17일 방문한 전주 문화재 야행 기간 어진박물관은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하 1층에는 체험을 즐기는 관람객과 태조어진 봉안 당시 사용한 가마, 어진 반차도 닥종이 인형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3D 비디오를 관람하는 관람객들로 웃음꽃이 활짝 피기도 했다. 어진박물관 관계자는 “관람객 수 집계 결과 실제 관람객 수는 많이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완화에 따라 사전 예약제 운영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한 것으로 인해 증가했다고 본다. 관람객 수 집계만 보고 온전히 디지털 실감 콘텐츠 운영, 문화재 야행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향은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21 17:19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나는 엉덩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

그냥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옛날에 그들을 알기 시작했을 때 가끔---. 마르틴 하이데거나 이마누엘 칸트는 그 이름부터가 철학스럽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인스러우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화가스럽다는 생각. 그림을 보다 보면 머리가 타원형이고 목이 길어 괜히 노천명을 연상케 하는,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을 다시 정념 어린 시선으로 응시하는 약간 기형적인 여인들을 볼 수 있다. 대개는 눈동자 속에 동공은 없고 파란색만 칠해져 있을 뿐이다.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프랑스인의 얼굴에 나의 조국 이탈리아의 파란 하늘을 그립니다.”라며 맛깔스럽게 응수하던 사내.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보다는, 그들의 자질구레한 일상보다는 다만 본연의 생명력만을 그리려던 사내, 살아가도록 운명 지어진 그 엄청난 정념의 비애를 그리려던 사내, 가슴 저리게 슬픈 현실 속에서도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만을 고집하던 사내, 시를 좋아하던 얌전한 귀공자에서 술주정뱅이 탕자가 되어 그 천재를 펴기 시작하던 사내, 36살의 나이로 생을 반납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잘 생겼던 사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을 등지고 이국 땅 프랑스의 자선 병원에서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던 잔느 에뷔테른느에게 “우리는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사랑했었지”라는 잔인한 유언으로,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영생에서의 사랑을 위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투신하게 한 사내. 그래서 그의 꿈을 이뤘고, 자신 또한 죽어서 비로소 불멸의 화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사내, 그 둘이 같이 묻힌 무덤의 묘석에는 이탈리아 말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 12일 드보로노에서 태어나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죽다. 바야흐로 영광에 쌓이려 했을 때 죽음이 그를 빼앗아 갔다. 잔느 에뷔테른느. 1898년 4월 6일 파리에서 태어나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죽다. 모든 것을 다 바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헌신적인 반려자였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20 16:56

'환갑' 전북예총, 전북예술대제전 개최..."다시 뛰는 전북예술"

전북예총이 오는 2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전북예총 창립 60주년 전북예술대제전’을 개최한다. 전북예술대제전의 주제는 ‘다시 뛰는 전북예술’. 올해는 전북예총 창립 60주년으로, 환갑이다. 이에 10개 협회가 함께 축제의 장에 나서 도민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크게 5개로 나눠 진행할 예정이다. △뭉클하게 영화 상영 △우아하게 전시회 △재미지(있)게 문화 토크쇼 △신명 나게 공연 △옹골지게 등이다. 전북영화인총연합회(회장 나아리)는 오전 9시 50분부터 11시 45분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1층 대회의실에서 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 주연의 <미나리>를 상영한다.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 주관해 도민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영화 상영을 기획했다. 전북문인협회(회장 김영), 전북미술협회(회장 백승관), 전북사진가협회(회장 한재원), 전북건축가협회(회장 조창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각각 시화전, 미술전, 사진전, 건축전을 연다. 전북예총은 재미지(있)게 문화 토크쇼도 기획했다. 강사는 국민 배우 이순재다. 주제는 문화의 힘, 예술의 가치다. 이후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열고 오후 3시에는 신명 나게 공연을 선보이며, 오후 4시에는 옹골지게 행운권 추첨을 진행한다. 공연에는 전북무용협회(회장 노현택)의 전라교방무, 전북음악협회(회장 이석규)의 테너 삼중창, 전북국악협회(회장 소덕임)의 창극 ‘나뭇꾼막’, 전북연극협회(회장 조민철)의 퓨전마당극 ‘춘향전’, 전북연예예술인협회(회장 김영배)의 최신 대중가요 가수 등이 무대에 오른다. 옹골지게 행운권 추첨에서는 가능한 전북예술대제전에 참석한 도민 대다수가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전자제품, 공예품, 주유권, 한지 넥타이 등 다양한 선물을 준비했다. 전북예총 관계자는 “도민, 시민 할 것 없이 당연히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무료로 누릴 수 있다. 인원 제한 역시 따로 없지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규모가 200석 정도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 누구나 시간 맞춰서 오면 행사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호 회장은 “전북예술문화의 중심이자 대표 단체인 전북예총 창립 60돌은 큰 의미가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전북예술문화60년사>를 발간했다. 올해는 10개 협회 13개 시ㆍ군 예총이 모두 참여하는 창립 60주년 기념 행사와 도민과 함께하는 전북예술대제전을 개최하게 됐다”며 도민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바랐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20 16:54

김일륜 명인의 모든 것...가야금 전집 공개

‘전주 출신’ 가야금 연주자 김일륜 명인이 중요한 음악 활동을 선별해 12장의 CD(음반)와 124쪽 해설지로 엮은 <길 The Road>를 공개했다. 김일륜 명인의 음악세계를 이룬 뿌리부터 그동안 일궈온 음악의 열매까지 한데 묶어 가야금계의 ‘거목’을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12장의 CD(음반)는 김일륜 명인의 내공과 함께 음악적 인연을 빚어 올린 산물의 모음집이다. 산조로 시작해 창작곡으로, 독주로 시작해 앙상블로 나아가는 등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김일륜 명인만의 노련미와 음반마다 시대를 빛내는 예인들과 맞춰온 호흡이 녹아 있다. 이는 음악적 여정을 담은 ‘소리의 기록’과도 같다. 124쪽 해설지는 산조, 창작곡 등 해설과 작곡가들과의 인연이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오늘날 현장의 살아 있는 기록을 담당하는 평론가(윤중강, 송혜진 등)의 글이 김일륜 명인의 음악세계를 대변한다. 또 김일륜 명인의 중요한 사진과 자료도 담겨 있다. 김일륜 명인은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음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이후 이화여대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 예술대 전통예술학부 교수, 중앙가야스트라 예술감독, 아시아琴교류회 회장, (사)가야금연주가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19 16:48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록주, 너를 사랑한다

박록주 명창은 경북 구미 출신으로 판소리에 일생을 바치며 치열하게 살다간 거장이다. 또한, 사랑도 사연이 많았던 인물로 소설가 김유정과의 일화가 유명하다.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나와 연희전문학교에 다녔던 유명한 소설가로 1935년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조선일보 '소낙비'가 당선이 된다. 이후 조선중앙일보에 '봄.봄'을 발표했고 1936년에 '산골나그네', '동백꽃'을, 1937년에는 '땡볕' '따라지' 등을 여러 지면에 발표했다. 하나같이 우리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단편소설로 지금도 그의 작품은 사랑받고 있다. 김유정은 1937년 지병인 폐결핵으로 서른 해 남짓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 직전에 청순하고 애절한 사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박록주 명창을 향한 애절한 순애보이다. 김유정의 절친한 휘문고보 친구 안회남이 유정 사후에 그를 그리워하면서 쓴 소설 '겸허 김유정전'에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정이 맨 처음 연애한 이성은 한 유명한 기생이었다. 물론 짝사랑이다. 그 시절의 유정은 점잖은 집안의 처녀들을 퍽 경멸하고 싫어하였는데 이것도 그의 가정에 대한 울분의 폭발이었으며 ㅡ중략ㅡ 유정이는 그때가 이십을 조금 넘은 때였고 그녀는 적어도 그보다 오륙 세는 위였을 것이다> 현실의 소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김유정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박록주를 첫 사랑했다. 그가 박록주에게 보냈던 편지와 박록주가 쓴 글이다. <1926년 가을. 내 나이 24세. 잠자는 나의 가슴에 장미 한 송이가 꽂힐 줄이야. 추석이 갓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겉봉엔 내 이름 석 자가 정성 들인 글씨로 씌어 있었다. 발신인은 '봉익동 00번지 김유정'이라는 사람이었다. 생소한 이름이어서 의아스러운 마음으로 흥분 속에 겉봉을 뜯었다. # 박록주 선생에게 저는 전문학교에 다니는 김유정입니다.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올시다. 나이는 18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봉익동 00번지에서 살고 있사옵니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은 형님과 누님이 저를 돌봐주고 있사옵니다. 박록주 선생님이여, 저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에게 당돌하게 편지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김유정 올림 # ㅡ중략ㅡ 수많은 편지가 왔고 나는 그를 만나 말했다. "학생이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지 딴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더구나 나는 기생의 몸, 학생의 신분으로서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당신이 나의 마음을 받아줌으로써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ㅡ중략ㅡ 내(박록주) 마음은 아파서 얼른 오르지 못하고 같이 서 있었다. 유정에게 말했다. "이제 가세요", "가겠습니다. 저를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립니까?", "기다리세요"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얼마 후 나는 유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을 미리 알았다면 한마디 말이라도 다정히 하여 줄 걸 하고 후회스럽기조차 했다. 6.25 피난처에서 나는 친구 동생을 통해서 <동백꽃>이란 유정의 소설집을 처음 대했고 그가 그런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에게 너무 쌀쌀히 대한 것이 새삼 죄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사상 1973년 4월호 중 '록주, 너를 사랑한다'] > 그렇듯 이 세상 모든 운명의 사랑은 뜨겁게 오고, 소리 없이 떠나간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16 16:5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작가 - 김다연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읽고 나는 자주 부끄럽고 지난한 삶에 짓눌려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곤 한다. 지병이 되어버린 무기력증은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젊은 날의 나는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고 고백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외우며 무기력증을 떨쳐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시인의 고백은 내게서 힘을 잃었다. 무기력증이 엄습할 때마다 삶의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버둥대다 바닥이다 싶을 때까지 내려간 뒤, 겨우 올라오기를 반복하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무기력이 일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김다연 시인의 시집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을 만났다. 무얼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기에 시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삶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책장에 꽂아져 있던 파스텔블루 표지의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이란 시집이 제목처럼 내 손에 우연히 잡혔을 뿐이었다. 그렇게 펼친 시집에서 “머리와 가슴 사이/우물이 있다//생각은 짜고/감정은 차갑다//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좋았으리,//그것만 퍼내면/된다”는 「시인의 말」을 접하고 순간, 멈칫했다.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그것만 퍼내면/된다”고 말하는 시인이 나를 꾸짖는 듯했다. 절망하지 않으려고 욕망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차가워진 감정. 해서, 무기력한 삶을 어찌하면 좋을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도 같았다. 어찌 살라는 것인데, 하며 다소 공격적인 마음으로 첫 시 「은행잎지전나비」를 읽었다. “새살이 밀어내는 딱지처럼 몸속의 푸른 독毒 뿜고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면 더욱 무기력해질 뿐인데 시인은 “이 얼마나 눈부신 날개인가?”라고 말했다. “밤마다 가려운 쪽으로 기우는 나무,”가 나임을 알기에 뒤척임 없이 잠들었다가도 가려워 깨고 마는데 시인은 또 노래했다. “상처 아물리던 그늘이 날개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울컥’을 삼키자/코뚜레가 뚫렸다”로 시작하는 「38도9부」에서 시인은 내게 보여주었다. 살아 있어 느끼는 절망과 고통 속 열병 끝에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고. “손가락을 내 머리에 겨누는 버릇이 생겼”다 해도 “빈 총에 쓰러져줄 줄 아는 애인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놓지 않으니 「방아쇠 증후군」은 희망이었다.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무기력증이 사라졌고 “여그가 그라고 안 좋다 안 흡디요!”「뭐뎌」라며 다시,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만약에 당신이 나와 같다면, 시집을 펼치고 글자를 읽어 나가자. 오독(誤讀)하여 더욱 좋았던 「아카시아」를 비롯해 「한도를 초과한 말」, 「가라앉히다」, 「정지론」 등 많은 시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문신 시인의 해설과 김유석 시인의 추천 글도 당신을 맞을 것이다. 어떤 시는 분명, 당신의 삶에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 생기를 불어넣으리라 믿는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공저로는 <1집 스마트 소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2021 신예작가>가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15 17:33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또 다른 사람 피카소 - 4

그의 심부름으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같이 이탈리아에 갔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여자 잔느 에뷔테른느가 그를 만나기 전날 밤, 살아있는 신을 만난다는 감격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면회가 거절되었다는 일화 등에서 더욱 당시의 모습들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친구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마찬가지다. 유태계 이탈리아 화가로서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피카소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전시 계획이 생겼으니 어디에 가서 내 그림들을 선별해 그림을 이탈리아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 가서 잔느 에뷔테른느와 함께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혼자 피카소를 만났을 때, 그 방에는 힘찬 말의 소묘가 있었다. 말은 에드가 드가라는 화가가 전유물처럼 많이 그린 것 아닌가? 그래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물었다. “저것은 드가 선생의 것인가?” “드가같이 계집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힘찬 데생을 할 수 있겠나? 그것은 대 피카소 것일세.”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만들고 이상한 취급을 받을 때 기욤 아폴리네르의 입체파 화가들이라는 책으로 활성화되었을 때, 거의 모든 화가들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고 그릴 때의 일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계속 시도해 봤으나 그게 잘 되지 않아 고민을 할 때다. 피카소에게 “모든 사물을 그렇게 봐야 하나?” 대답은 너무나 피카소다웠다. “누가 그래? 나는 벌써 끝났어.” 사진작가 데이비드 덩컨은 피카소의 허락을 받고 그의 집에서 며칠 묵으며 그의 일상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 일정이 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빼라고 하셔도 됩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아니 무슨 말을 하시오? 당신이 본 대로 나를 찍은 것이고, 그러니 이 사진들은 모두 진실 그대로지요.”라며 펄쩍 뛰는 것이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사내 아닌가.

  •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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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3 16:48

제14회 전북청년미술상에 김성수 작가

제14회 전북청년미술상의 주인공은 김성수(입체, 38) 작가다. 전북청년미술상은 유휴열 화백을 중심으로 장르별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전북 최초의 민간주도 미술상이다. 1990년 출범 이후 회화, 조각, 도예,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14명 작가를 수상자로 배출했다. 운영 상의 어려움으로 2006년 중단 이후 2021년에 다시 부활했다. 김성수 작가는 전북청년미술상이 중단됐던 때 미술에 입문했다. 심사위원들이 김성수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인해서다.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창작 및 전시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응모자 중 가장 젊은 나이임에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창작에 몰두했으며 대중과 소통하려고 하는 작가적 성향 등이다. 그는 "나의 작업 모티브는 어릴 적 유희에서 기인한다. 추억 속의 편린들을 발굴하고 이것을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잊혀진 일상 경험으로 간주하며 조형적 각색 통해 일반화함과 동시에 대중사회와 공유하는 소통을 꾀한다"고 본인만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김성수 작가의 작품 특징은 자유롭게 만지고 당기고 올라탈 수 있도록 제작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형극에서 볼 수 있는 알루미늄 관절 모형 모빌에 빛을 투사해 벽면에 생성된 그림자까지로도 표현과 감상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에 심사위원 중 김윤진 화가는 “그의 창작열의 끝과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폭 진화하는 모습은 이 지역의 젊은 동료들의 귀감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됐다”고 전했다. 김성수 작가는 “역사가 있는 미술상을 수상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드리고, 동기부여와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작가에게는 창작지원금 500만 원과 유휴열 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는 개인전 특전이 수여된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12 16:31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 대상에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에서 일반부 대상에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청소년부 최우수상에 고창강호항공고농악부가 선정됐다. 한국예총 전라북도연합회(회장 소재호)가 주최하는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가 지난 11일 진안문예체육회관에서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개최됐다. 전라북도 민속예술제는 전라북도 민속예술제는 한국민속예술제에 출전할 전북 대표 작품을 선정하는 뜻깊은 자리다. 이어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예술을 발굴•재현해 이를 보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민속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개최되는 행사다. 이번 제63회 전라북도 민속예술제에는 일반부 5팀(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 순창읍농악단, 익산기세배보존회, 군산성산농악회, 전라좌도 진안군농악단), 청소년부 1팀(강호항공고등학교 농악부)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중 최우수 작품은 오는 10월 27일에 열리는 제63회 한국민속예술제와 제31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여된다. 조진국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작품은 바쁜 농촌생활 속에서도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뤄 한마음으로 연습을 충실히 해 온 팀이 많아 의미가 있었다”며 “대상을 받은 김만경외애밋들노래보존회는 원형이 잘 보존된 작품으로 지역에 맞는 작품성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소재호 회장은 “민속예술제에 참가한 작품들은 우리 지역의 보물들”이라며 “전라북도에는 소중히 보존하고 반드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민속예술이 많다. 아쉽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거나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보존하고 계승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12 16:3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세계문화유산 임실 필봉농악

지난 4일 단옷날을 맞이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는 신명 나는 연희 굿판이 펼쳐졌다. 굿판을 주도한 우리 지역의 임실 필봉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된 소중한 마을굿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일찍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유도했던 상쇠(연희판의 꽹과리를 제일 잘 치며 연희를 주도하는 사람)가 계셨는데 제일 먼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으로 초대하면서 그 계보는 시작된다. 계보를 이어 두 번째 송주회 상쇠가 필봉농악을 지켰으며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상쇠 양순용에 의해 전승의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었던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한 분이다. 지난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1980년대, 양순용 명인은 우리의 전통 연희굿에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필봉농악을 정성으로 전수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임실 농악의 진가를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전승과 진흥에 노력하시다가 1995년 작고하시고 명인의 아들 양진성, 양진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필봉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 임실 필봉농악을 잠시 살펴보자. 필봉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룬다. 그리고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며 연희를 행한다. 타 여느 농악처럼 종류에는 섣달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 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 등이 있지만 이 중 임실 필봉농악 판굿은 가장 연희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지난 단오일, 임실 필봉농악 정기발표회 ‘단오야 필봉가자’에는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뒷굿인 노래굿, 돌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등 연희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판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또한, 공연에서 뒷굿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과 탈머리굿도 선보여 많은 관객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이중 도둑잽이굿은 마을공동체의 질서와 결속, 화합을 목적으로 실연하는 연극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연희와 더불어 필봉문화촌 마을 어귀에 창포물 머리감기, 족욕하기, 단오선 부채 만들기, 화채 나눠먹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 체험도 힘께 진행하여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힘든 어깨를 펴고 함께 만나 소통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정한 연희는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열게 하고 소중히 하나 됨을 추구한다. 현실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만, 단옷날의 필봉농악처럼 희망찬 나래를 펴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판을 모두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러한 살판 위에 우리네 삶을 멋지게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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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6

<금요수필>빨간 머리 병아리

해마다 3월이면 마당에는 햇병아리가 그득했다.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용비 마련이나 식구들 보양식 감으로는 닭만 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네집 할 것 없이 병아리를 길렀지만 사료를 사서 기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주로 방목이었다. 아버지는 덕가리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씩 꺼내 머리에 빨간색 물감을 발라 마당에다 훅 던지며 "잘 주워 먹고, 잘 찾아오너라." 하시던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 한 배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스무 마리 정도였는데 아버지는 허실 없이 키워야 한다며 암컷을 더 챙기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요놈들을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딸내미가 사달라는 별표 운동화랑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지.'하셨다.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나는 운동화를 사준다는 말씀에 병아리를 정성껏 돌보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강아지는 뒷전이고 병아리부터 찾았다. 만약 병아리가 보이지 않으면 입술을 쭉 빼고 '구- 구-구'를 외치며 집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입술이 얼얼해져 헛바람이 나오도록 한참 찾다보면 엉뚱하게도 뒷집 대밭 속에서 어미 닭과 함께 삐약거리며 따라오는 병아리를 보면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대숲은 족제비나 들고양이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행여 잡아먹힌 병아리는 없는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곤 했었다. 이렇게 돌보아도 병아리 수는 차츰 줄어 열서너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알에서 깬 지 3~4개월쯤 자라면 중병아리라 했고 대략 6개월이 지나면 암탉은 알을 낳았으며 어미 닭도 이 무렵이면 젖떼기라도 하듯이 새끼들을 아프지 않을 만큼 쪼아댔다. 3~4개월이 지나면 암수 자웅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수컷은 암탉과 달리 다리가 길고 꺼벙했지만, 벼슬이 돋고 혈기가 넘쳐 눈도 불그스레 번쩍거리며 가끔 하늘로 목을 쳐들고 '나는 왕이다'고 외치듯 '꼬끼오' 소리도 제법 질렀다. 수컷들은 암컷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싶은 자리다툼 싸움이 갈수록 치열했다. 피가 나도록 상대방을 마구 쪼아대며 싸우다가 한 쪽이 날개를 서서히 접으며 눈꺼풀을 내리깔면 한바탕 싸움은 끝났다. 그뿐만 아니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파헤쳤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아들이라더니, 우리집도 남동생 넷이 모이면 수탉처럼 형과 아우가 따로 없이 서로 욕지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며 자랐다. 사실 나도 병아리가 아니던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날 때쯤이면 대추 볼때기가 발그스름했다. 아침 일찍부터 대추나무 밑을 서성였던 일이며, 벌집이 달린 줄도 모르고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주인집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놀라 신발짝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벗겨진 신발짝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날이 밝았다. 날이 밝자, ‘최 생원 계신가?’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때는 무서워 떨었건만, 지금은 토방에 놓인 신발짝 하나마저 왜 이리도 그리움으로 밀려오는지! 여섯 달만 잘 키우면 알을 낳을 것이고, 그러면 운동화와 크레용도 사줄 수가 있다고 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은 내 어린 시절 병아리와 함께 자라면서 머릿속에 도장 찍힌 희망이었다. 병아리는 자라서 어김없이 알을 낳았는데 딸 결혼식도 보지 못할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 선반에 올려놓고 저고리 동정을 달아 벽에 걸어 놓았건만, 입어보지도 못하신 아버지였다. 지금도 달걀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별표 운동화가 머릿속에 떠 오른다. 최정순 수필가는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대한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속 빈 여자‘외 4권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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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순창 고추장

지난 29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는 성금연가락보존회(대표 지성자)가 주최·주관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한바탕 이수자 발표회’가 있었다. 연주된 가야금산조는 춘사 성금연이 구성한 산조로 창작자의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견과 이해를 통한 반복으로 다듬고 다듬어진 가락의 창조물이다. 성금연 명인은 일찍이 1960년대 파리민속예술제와 1972년 최초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었으며, 음악가로만 아니라 국악예술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봉직하며 교육자로서도 익히 알려진 가야금의 명인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3월 지성자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하였는데 그녀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이어받고 일찍이 8세 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가야금의 명인이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고제古制의 예스러움과 투철한 예술 감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지성자 명인은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 오랜 세월 삶의 이치를 가락으로 구성하고 가녀린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원초적 소리이다. 그리고 같은 산조라 해도 각 개인 환경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고 나타내는 마음 표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전통 악기 중 가야금은 그러한 산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다. 가야금산조는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 또한 다채롭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 구분에서 굿거리가 삽입된 점이 특징이며 다른 유파流派에 비하여 간결하고 경쾌하며 감칠맛이 있다. 감칠맛을 논할 때 우리는 전통음식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추장하면 영조英祖와 전라북도 순창이 떠오르는데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였고, 가장 오래 장수한 왕이다. 장수의 비결이 있음 직하나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의는 매번 설사와 어지럼증으로 입맛이 없는 영조를 걱정했지만, 가을 보리밥에 고추장, 즙저만 있으면 족하다며 늘 검소한 수라를 드셨다 한다. 이러한 고추장의 감칠맛은 왕의 건강을 지켰고 그 맛의 비결은 지금도 순창 지역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 그 둘은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하고 색다른 멋과 맛에 있다. 가야금의 요동치는 선율은 맛깔스러운 별미와도 같고 고추장의 감칠맛은 가야금 선율의 휘몰아치는 감동과 같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구성진 가락과 감칠맛에 동요되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삶을 지켜왔다. 자. 이제 우리 가야금산조를 듣고 즐기며 순창의 고추장을 영조처럼 탐식하며 감칠맛을 즐겨보자. 그리 녹록지 않은 세상의 삶이지만 우리네 마음에는 감칠맛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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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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