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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3) 우리 옷, 한복(韓服)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3) 우리 옷, 한복(韓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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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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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한복. /사진제공=김혜순 한복 명장
봄나들이 한복. /사진제공=김혜순 한복 명장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을 잘 입으면 누구나 돋보인다는 의미로 쓰인다. ‘왕자와 거지’에서도 왕자의 옷으로 바꿔 입으면 거지도 왕자의 신분이 된다지만, 반면 직위를 내려놓을 때에는 ‘옷을 벗는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렇다 보니 생활의 필수품에서부터 관습을 대표하는 것으로 옷을 들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고유한 ‘우리 옷, 한복’이 있다.

한복에는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얼이 깃들어 있다. 선조들이 한반도에 자리한 때부터 추위를 막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지어 입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했다. 선사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골침’은 옷을 엮고 꿰매는 도구로 고조선 시대부터 초의생활(草衣生活)에서 벗어나 나무의 껍질이나 마로 옷감을 짠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우리 옷은 수렵 활동에 적합한 북방 특성인 스키타이계 복식으로 점차 농경 생활에 편리하게 변화했으며, 삼국 시대에 들어서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복식 제도가 만들어졌다.

삼국 시대부터 한복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저고리, 바지, 치마, 두루마기가 상의와 하의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는 신분에 따라 복식이 구분되었는데 지배계층의 복식은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그러자 834년 신라 42대 흥덕왕은 사치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어 백성들의 의생활을 규제하였다. 이 법령으로 신분에 따라 복식의 종류와 재질을 제한했으며 화려한 복식이 허용되지 않은 평민들은 우리 고유의 옷을 주로 입었다. 삼국의 기본 복식은 모양과 색만 다양해졌을 뿐 기본 구성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그 모습은 신라 백제의 기록과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와 고구려 문양 옷
고구려 벽화와 고구려 문양 옷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고유의 기본 양식과 중국에서 들여온 외래 양식으로 구성된 복식이 공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통일 후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복식이 많아지면서 지배계층은 옷은 화려해졌고, 고려 시기, 특히 고려 후기 원나라 몽골족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몽고풍이 유행했다. 반대로 원나라에서는 고려풍습이 유행하면서 서로 복식 문화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조선 시대는 건국 초기까지 고려의 복식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가, 점차 특유한 형태로 변화해 차츰 독자적인 복식 제도와 체계를 갖추었으며 궁중과 양반들의 예복이 발달했다.

예를 표현하고 지키기 위해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 등에는 신분의 복식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여 왕과 관료, 일반 백성의 신분에 따라 소재, 색, 문양, 장신구 등에 차등을 둔 복식 제도를 만들었다. 독자적인 복식 제도가 있었지만, 지배층은 상황에 따라서 중국의 복식과 우리 고유의 복식을 모두 입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은 시대에 따른 변화 속에서도 우리 고유의 한복을 그대로 입었다.

성리학이 발달한 시기 바깥일 위주로 생활하는 남성은 겉옷인 포(袍)가 다양하게 발달했고, 가정 위주로 생활을 하는 여성의 경우 저고리가 발달하였다. 옷 위에 입는 포에 비하여 짧은 상의를 지칭하는 여성의 저고리는 세종 시기 한자어 ‘적고리(赤古里)’로 등장하며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는 치마가 한글 ‘쳐마’로 기록되어있다. 조선 초 허리선까지 내려오던 저고리가 중‧후기에는 가슴선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저고리는 당시 상황과 유행에 따라 짧았다 길어지기를 반복했다.

한복은 입체적인 체형에 맞게 만드는 옷이 아니라 평면적인 형태로 짓는 옷이지만, 한복을 입으면 입체적이고 풍성해 보인다. 이는 받침옷인 속옷부터 겉옷까지 겹겹이 여러 옷을 겹쳐 입는 특유의 입는 법을 가지고 있어서, 속으로부터 차올라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자연스레 체형을 보완하고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선으로 아름답게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통의 날, 보통의 장소에서 한복 입은 모습을 보기 쉽지 않지만, 왕의 복식을 입은 어진이 모셔진 전주의 경기전 일대 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고운 모습이 ‘한복문화 지역거점’도시로 지정된 전주를 꽃처럼 수 놓고 있다.

최근, ‘한복문화 지역거점’도시로 한복 전시를 열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남원에서는 ‘보통의 남원사람’을 기록하면서 ‘한복 찾기’에 나섰는데, 옷장 속에 간직한 김금선(1941년 생)의 기억이 담긴 한복이 수집되었다. “이 두루마기는 시어머니가 지으신 거라 80년 된 거로 시아버지의 깨끗한 성품이 그대로 보여. 매일 같이 풀 메기고 다듬던 게 여적 있었네. 우덜은 예전에 시집갈 때 평생 입을 옷을 지어갔어”라며 옷을 매만지는 손길에서 그녀의 인생이 엿보인다.

남원 80년 한복(김금선 소장 두루마기)
남원 80년 한복(김금선 소장 두루마기)

이렇듯 한복은 우리 삶의 흔적이자 문화이다. 가끔 중국에서 한복에 오지랖을 더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사실 ‘오지랖’의 유래는 가슴을 감싸는 웃옷의 부분을 칭하는 말이다. 오지랖이 넓으면 가슴을 넓게 감싸 좋다는 것인데, 오히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북한은 한복을 ‘민족 옷’ 또는 ‘조선 옷’이라고 칭하며 한복 문화인 ‘조선옷 차림 풍습’을 2016년 국가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는 한복과 관련된 무형문화재가 기능부분인 침선장, 자수장 등으로 지정된 상태로, 한복 입는 문화는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 고장의 전주와 남원은 한복 입는 문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한복문화를 무형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충분한 지역이다. 봄날, 우리의 옷 한복이 남북 한복 문화를 오지랖 넓게 아우르며 세계에서 우리 문화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켜 그 화사한 날개를 활짝 펼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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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1-03-19 08:42:29
한복이 고품스럽고 멋지기는 한데 화장실이라도 가거나 입고 벗는게 복잡하여 결혼식날 폐백 인사를 할 때 입고 신혼 초 설 명절에 몇 번 입은게 전부다. 요즘은 생활한복이라고 간소화하여 입고 벗는게 편하게 보였다.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때 입는 옷은 한복 스타일을 차용해 간소화하여 편리하였던 느낌이 좋아 한 벌 사서 가끔 집에서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