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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5) 선운사의 봄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5) 선운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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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14 20: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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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의 봄 풍경과 전라도무장현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선운사의 봄 풍경과 전라도무장현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예나 지금이나 선운사는 봄 풍경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봄날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라고 묻는 노랫말을 따라 흐드러진 꽃과 눈물처럼 지는 춘백을 보고만 와도 좋다. 이즈음의 선운사는 뒤꼍에 있는 춘백의 붉은 꽃에 더해 오래된 배나무의 꽃도 화사하다.

봄빛이 가득한 배꽃과 어우러진 ‘지장보궁’에는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279호로 지정된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선운사 도솔암에 봉안된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과 같은 형태의 불상이다. 지장(地藏)보살은 하늘과 인간 세상 그리고 지옥세계에 있는 중생까지도 남김없이 구제해 주는 자비의 보살이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지장보살은 정토(淨土) 신앙이 유행했던 고려 시대 후기 널리 신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장보살은 악의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지옥의 고통을 받는 모든 중생까지도 구원하여 모든 악업에서 해탈하게 하는 보살로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살로 받들어진다.

지장보살은 다른 보살과 달리 머리에 보관을 쓰지 않고 삭발한 민머리의 모습으로 대부분 표현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두건을 쓴 모습이 유행하였다. 선운사의 두 지장보살도 두건을 쓴 모습으로 그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선운사가 모두 불에 탄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화를 면한 불상이다.

보물 제279호인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청동 표면에 금칠하여 금동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두건과 유사한 보관을 머리에 쓴 모습으로 이마에 두른 두건에서 띠가 내려와 귀를 덮고 가슴까지 흘러 내려있다. 온화하게 내려 보는 눈과 수려한 코와 작은 입술 그리고 굵게 주름진 삼도가 표현된 짧은 목에 후덕한 얼굴이다. 목걸이를 한 건장한 몸은 장식이 더해진 주름진 두꺼운 옷에 가려져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당당한 풍채로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 정도 들어서 엄지와 넷째 손가락을 맞댈 듯 굽혔고, 왼손은 아랫배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약간 구부린 수인으로 손금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 지장보살 중 가장 아름다운 지상보살로 손꼽히는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에는 기적 같은 사연이 전해진다. 1936년 일제강점기 일본인 2명과 도굴꾼에 도난당해 거금에 팔려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였다. 하지만 이를 소유했던 일본인이 자수하듯 연락을 해와 선운사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처음 소장한 일본인의 꿈에 지장보살이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꿈을 꾼 이후로 병이 들고 점차 가세가 기울게 되자 두려운 마음에 금동지장보살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 버렸다.

다음에 소장하게 된 이에게도 어김없이 꿈속에 지장보살이 나타나 돌려보내 달라고 했으나 이를 무시하자,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어 그 역시 두려움에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 후에도 소유자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소장한 사람들마다 기이한 꿈을 꾸고 수난이 계속된 일들이 알려졌고, 결국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일본인이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본디 제자리인 선운사로 모셔갈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과 반환기념 사진. /사진제공=선운사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과 반환기념 사진. /사진제공=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에 선운사로 돌아왔다. 반환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갔던 일행이 찍은 기념사진에는 함께 간 선운사 이우운 주지 스님의 이름과 함께 간략한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선운사로 돌아온 금동지장보살좌상은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관음전과 성보박물관에 모셨다가 2019년 지장보궁을 건립 봉안하여 81년 만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선운사는 일본에서도 조선 땅의 모든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러 돌아오고자 했던 지장보살의 사연을 비롯하여 구원과 나눔에 관한 전설이 많이 깃든 사찰이다. 선운사에서 멀지 않은 해안가의 검단리는 선운사 창건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선운사는 신라왕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 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그 중, 용이 살던 못을 메우고 ‘구름 위에 누워서 참선한다’는 뜻으로 선운사(禪雲寺)를 창건했다 알려진 검단선사의 이야기는 현신한 지장보살과 다르지 않다.

그는 빈한했던 지역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겨 소금을 굽고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봄과 가을이면 소금을 바치며 ‘은혜를 갚는 소금으로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의 이름도 ‘검단리’로 했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보살피고 지옥에 들어가서라도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과 검단선사의 설화가 웅숭깊다.

선운사 보은염 관련 벽화.
선운사 보은염 관련 벽화.

예전과 다른 일상으로 온전한 봄날을 즐길 수 없지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본다. 바람 불어 설운 날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도 살펴보고 자비와 구원의 손길이 깃든 선운사의 가치를 온전히 마음에 담아 올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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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2021-04-15 15:26:52
선운사에는 이른 봄에 가면 동백이 있고, 5월경에 가면 주변에 청보리밭의 전경, 추석무렵은 상사화 등 계절마다 특징이 있는데 원만하신 지장보살좌상이 두 분이나 계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