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1-05-06 23:44 (목)
색의 과소비 시대
색의 과소비 시대
  • 기고
  • 승인 2021.05.03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어. 색 때문인 것 같아.” 꽃을 구경하던 이의 말이었다. 봄은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니, 색이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꽃의 정체(正體)는 형태, 색상, 향기다. 그 셋을 모두 음미한 후에야 꽃의 정체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냥 시간의 일이고, 색의 일이고, 취향이 달라진 정도의 일일까?

꽃의 정체 중 하나인 색은 문화의 정체이기도 하다.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현란한 색들을 만나게 된다. 거리의 간판들이 무채색이었다면 우리 눈은 훨씬 심심했을 것이다. 거리의 간판들이 보여주는 색은 원칙이 없다. 그걸 본다면 누구든 자유로운 색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정말 색은 지금 자유로운 것일까?

색채전문가 미셸 파스투로(1947∼)는 『파랑의 역사』에서 “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반적 경향이나 분석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복잡한 문화 구조라 할 수 있다. (중략) 색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 문화를 초월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색은 자유보다는 통제와 구분을 위한 장치였고, 자유롭지 못한 역사가 대부분이었다. 조선시대의 붉은색은 서민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귀한 색이었고, 군부독재 시대에는 사상적 불온함을 담았다는 의미로 읽혀 금단의 색이었다. 한국인의 옷은 흰옷이라는 상징이 있지만, 『경국대전』에서 일반 백성의 흰옷은 금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흔한 옷 색이 되었다. 색이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동양보다 먼저 자유를 찾은 유럽에서도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색의 세계인 미술 작품 속에서도 인상주의 시대에 들어서서야 색은 자유를 얻었다.

색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색은 신화, 상징, 메시지다. 색이 다양하다는 것은 신화, 상징, 메시지가 넘쳐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색을 만날 때마다 신화, 상징, 메시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신화는 사라졌고, 상징은 수시로 바뀌며, 고작 메시지를 얻을 뿐이다. 그 메시지조차도 상업적이고, 어지럽게 다가온다. 색을 가장 많이 탄생시키는 것은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보여주는 색은 소비 욕망과 닿아 있다. 플라스틱과 포장지에 입힌 색은 현란하고 육감적이다.

색은 분명 문화다. 하지만 색도 과소비의 경계가 있다. 현시대의 색들은 그 경계를 넘은 것 같다. 다양한 색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색의 다양함이 곧 자유의 수준까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이나 정당, 이익단체, 사상단체 같은 곳에서 유포하는 색의 굴레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색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색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풍성해진다.

인류의 시간이 색을 계급적,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길을 달려왔지만 아직 멀었다. 코로나시대에도 색은 과거의 악습으로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증오범죄는 ‘유색 혐오’와 맞닿아 있다. 봄꽃 핀 들판 같은 색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지만, 색은 문화적 소비물이다. 과도한 상징이나 메시지를 퍼부으며 함부로 소비되는 색은 세계와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과소비도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어느 것도 넘쳐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