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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북일보 인터넷신문 - 전체기사</title>
        <link>http://www.jjan.kr</link>
		<description>전북일보 인터넷신문</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lastBuildDate>Tue, 07 Apr 2026 10:55:00 +0900</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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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충남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문장준역사’와 ‘창산후인 조석헌역사’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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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3/20260403500108.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53438bc5017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문장준역사 첫장. &amp;nbsp;/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3/20260403500109.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5344106d017e&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조석헌역사 첫장. &amp;nbsp;/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충남 태안은 충청도에서 가장 격렬히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었고 단일지역에서 매우 많은 동학농민군이 사망한 곳이다. 태안지역 동학농민군은 9월 기포 이후 10월 28일 홍주성전투에 이르는 전과정에 참여하였는데, 그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amp;lt;문장준역사(文章峻歷史)&amp;gt;와 &amp;lt;창산후인 조석헌역사(昌山后人 曺錫憲歷史)&amp;gt;에 담겨 있다.&amp;nbsp;&lt;br&gt;특히 이들 기록물이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생존한 동학농민군들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준·조석헌 두 사람 모두 1894년 11월 일본군이 태안지역에 들이닥쳐 동학농민군을 체포·처형하는 피바람이 부는 과정에서도 어렵게 살아 남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3/20260403500111.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5344deaf018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문장준역사 1894년 10월 1일. &amp;nbsp; &amp;nbsp;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lt;문장준역사&amp;gt;는 충남 서산군 원북면 방갈리에서 출생한 문장준이 1894년 9월부터 1923년까지 직접 체험한 주요 사실들을 국한문체로 양면괘지 15면에 담아 냈다. 세월의 무게에 비해 많은 기록분량은 아니다. 이 기록은 충남 내포지역에서 자신이 체험한 동학 활동을 간추린 것으로, 태안 동학군 지도자들의 기포상황과 태안관아 공격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홍주성 패전 후의 도피생활과 1897년 이후의 동학 지방조직 재건과정, 1906년 이후의 천도교 지방조직 등을 요약 기술하여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amp;nbsp;&lt;br&gt;이 기록물에 따르면, 문장준(?-1923)은 태안의 동학농민혁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인물이다. 그는 1894년 2월에 예포 대접주 상암 박희인의 지도로 동학에 입도하였다. 갑오년 기포 당시 동학 육임의 직임 중에 도집(都執)을 맡고 있었다. 방갈리 접주인 문장로(8촌 간)의 접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1일에 태안에서 기포한 뒤 내포지역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10월 24일 승전곡전투, 홍주관아에서 파견한 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10월 26일 예산 신례원 관작리전투, 충남 내포지역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최대 전투였던 10월 28일 홍주성전투 등에 참전하였다.&amp;nbsp;&lt;br&gt;다행히 이들 전투에서 살아남아 해미를 거쳐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나, 일본군이 태안에 온 11월 15일 민보군에게 체포되어 서산을 거쳐 보령 수영 감옥에 갇혀 있다가 11월 23일경 석방되어 다시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민보군의 만행이 거세지자, 김선여를 비롯한 동지 5명과 가족을 데리고 태안에서 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피신하여 이리저리 떠돌다가 광덕산 만복골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다.&amp;nbsp;&lt;br&gt;이때 문장준과 같이 광덕산 만복골로 피신한 동학농민군은 이영규(1863-1915), 김봉호(1872-1954), 이선종(1875-1958), 함한석(1870-1938) 등이 있었다. 광덕산 만복골은 산이 높지 않으면서도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태안에서 피신한 동학농민군들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집단 생활을 하다 다시 태안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또는 아산･예산 등지로 옮겨 살았다. 그러다 예산 간양리에 최종 정착한 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923년에 노환으로 작고하였다.&lt;br&gt;다행히 이와 같은 사실은 문장준이 1923년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기억을 &amp;lt;문장준 역사&amp;gt;라는 기록으로 남겨놓아 오늘에 전하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3/20260403500112.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534596eb018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조석헌역사 1894년 11월 1일. &amp;nbsp; &amp;nbsp;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lt;창산후인 조석헌역사&amp;gt; 역시 1862년 11월에 서산군 원북면 신두리에서 태어난 조석헌이 1894년부터 1918년까지 경험한 공사관계를 양면괘지 142면 분량으로 정리한 회고담이다. 이 기록물은 1908년 11월에 처음 정리한 초고본을 1931년에 재정리하였다. 개정본에서는 초고본을 보완하면서 국문 표기들을 한자표기로 고쳐 성명과 지명을 알아보기 쉽게 했다.&amp;nbsp;&lt;br&gt;주로 1894년 10월에 태안·서산에서 기포한 과정과 여러 전투 상황은 물론, 1895년 이후의 해월 최시형의 도피과정, 그리고 동학 지도부의 동학 재건활동, 1906년 후의 천도교 충남 서부지역 활동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895년 이후 해월의 피신경로는 어느 기록보다 자세하여 동학 후기사 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amp;nbsp;&lt;br&gt;이 기록물에 따르면, 조석헌(1862-1931)은 서산군 원북면 신두리에서 오위장(五衛將)까지 지낸 조응진(曺應振)의 네째로 태어나 자작농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여 왔다. 1894년 3월에 동학에 입도하여 5월에 접주가 됐으며, 1894년 10월 기포부터 참전해 승전곡전투→신례원전투→홍주성전투 등에 참가한 뒤 혼자 떠돌다 우연히 대접주 박희인을 만나 같이 동행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박인호를 모시면서 동학의 맥을 이어갔다.&amp;nbsp;데&lt;br&gt;그러나 그의 도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 때는 천안 목천 남면 초정리와 경북 상주 화북면 장암리 등등 여러 곳에 숨어살며 모진 고생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접주 상암 박희인의 뜻을 받들어 해월 최시형의 은신처를 찾아다니며 서해지방의 여러 산물들을 공급하는가 하면 연락 임무도 담당했었다. 해월 최시형이 순도한 후인 1898년부터는 동학 재건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lt;br&gt;그는 이곳저곳을 옮겨 살면서 끝내 태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15년에 예산 간양리에 정착하여 천도교에 헌신하였다. 1923년경에는 천도교 예산군 종리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 동학과 함께 한 생애를 마감하였다. 다행히 힘겹고 불안한 삶 속에서도, 그는 1908년부터 세 차례 수정 보완하여 태안 동학농민혁명과정과 그 이후 행적을 정리한 &amp;lt;조석헌 역사&amp;gt; 전기를 남겨놓았다. 이 기록물은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말해주는 기억의 창고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amp;nbsp;&amp;nbsp;&lt;br&gt;이처럼 &amp;lt;문장준 역사&amp;gt;와 &amp;lt;창산후인 조석헌역사&amp;gt;는 태안 동학농민혁명사를 구체적으로 증언해주는 기록물로서 매우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이에 기초하여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생생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의 회고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태안 동학도들이 목숨 바쳐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것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인내천의 나라,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다.&amp;nbsp;&lt;br&gt;이들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 태안기념사업회(회장 문영식)에서 2006년에 &amp;lt;북접일기-태안접주 조석헌과 문장준의 동학농민혁명 일기&amp;gt;로 번역 출판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아카이브에도 탑재되어 있어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lt;br&gt;특히 이들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에서 생존한 동학농민군의 생애 회고담이라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전후 역사를 통사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생존한 동학농민혁명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점, 동학이 천도교로 발전한 밑바탕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 동학농민혁명 이후 파란만장한 근현대 역사 파도 위에서 민초들의 피나는 역경과 눈물겨운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다는 점 등은 이 기록물이 가지고 있는 큰 사료적 가치가 아닐 수 없다.&amp;nbsp;&lt;br&gt;다만, 회고담이라는 점, 그래서 주관적인 측면이 있고 생략되거나 망실된 부분들이 있고 상암 박희인의 활동에 국한되어 있는 점 등은 기록물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기록물의 가치는 여전하다. 이들 기록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두 사람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나, 근현대 역사를 헤쳐나가는 두 사람의 투쟁적인 삶과 역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제작되었으면 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5/2026040550038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5c871203054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양식(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충남 태안은 충청도에서 가장 격렬히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었고 단일지역에서 매우 많은 동학농민군이 사망한 곳이다. 태안지역 동학농민군은 9월 기포 이후 10월 28일 홍주성전투에 이르는 전과정에 참여하였는데, 그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lt;문장준역사(文章峻歷史)&gt;와 &lt;창산후인 조석헌역사(昌山后人 曺錫憲歷史)&gt;에 담겨 있다. 특히 이들 기록물이 중요한 것은 동학농… ]]></description>
			<pubDate>Fri, 03 Apr 2026 21:25:29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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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기고</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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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뉴스와인물] 이승필 대표 “전북도민의 문화적 자부심 일궈내겠다&quot;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40250030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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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2/2026040250029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4cdea7327ea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승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가 전당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조현욱 기자&amp;nbsp;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생의 매 순간을 뜨거운 신명으로 채우는 사람. 맑은 표정과 눈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동력의 실체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내가 원하는 삶이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는 무서운 진리를 깨친 덕분이다. &amp;nbsp;이승필(62)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이름 앞에 붙는 ‘예술경영인’ &amp;nbsp;같은 정체성이 이를 증명한다. 청년 시절, 농과대학 진학을 후회하며 ‘가지 않은 길’을 선망했기에 이후의 삶은 그렇게 만들지 않으리라 몸부림친 결과일지도 모른다.&lt;/p&gt;
 &lt;p&gt;현재 그를 설명하는 주된 수식어는 여수 예울마루를 예술의 섬으로 일궈낸 주역, &amp;nbsp;전략가이자 시 쓰는 인문학자인데 이것도 범상치 않다. 대기업 입사 이후 사회공헌팀장과 GS칼텍스 재단 사무국장을 거친 그는 지방 발령을 자청했다. 그렇게 2012년부터 12년 동안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신규 조성 책임자와 초대관장으로 지내며 남해안권 거점 문화공간으로 안착시켰다.&amp;nbsp;&lt;/p&gt;
 &lt;p&gt;지난 1일 전당에서 만난 이승필 대표는 자신을 “공간 경영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어느 도시공학자가 말했어요. 도시가 어떻게 시민을 환대하는가에 따라 시민과 도시가 변화한다고요. 저 역시 공간이 어떻게 관객을 환대하는가를 고민해요. 사람과 공간은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거든요.” 공간에 입힐 애티튜드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그의 몫. 그러니 공간마다 그의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다.&lt;/p&gt;
 &lt;p&gt;조직 운영과 경영 방식에서도 그만의 서사가 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존중의 가치를 제1의 원칙으로 삼는다. 관객과 조직 구성원을 대할 때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겠다는 의지이다. 이제는 전당에 오는 관객들이 행복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대표. 앞으로 그가 일궈낼 전당의 미래를 물었다.&lt;/p&gt;
&lt;/div&gt;
&lt;p&gt;&lt;strong&gt;-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제5대 대표로 취임하신 지 한 달입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lt;/strong&gt;&lt;br&gt;“통과의례 같기도 하지만 전임자 송별식부터 주요 부서 업무파악‧구성원 면담, 기관장 방문인사 등으로 분주했습니다. 취임식과 언론 접촉 등을 통해 전당의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실감나는 한 달이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대기업에서의 조직관리 경험과 예울마루에서의 현장 경륜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어떤 시너지를 낼까요?&lt;/strong&gt;&lt;br&gt;“국내 예술계에서 설계와 시공부터 초기 세팅, 그리고 12년의 경영까지 한 호흡으로 책임져본 케이스는 드물 겁니다. 대기업 시절 기술과 마케팅, 노사관계 등 조직 관리의 근육을 키웠던 세월이 밑거름이 됐습니다. 제게 현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전문성을 증명할 가장 확실한 무대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풍부한 현장 경험 때문일까요. 취임하자마자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핵심 소명 중 하나로 꼽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 혁신을 꿈꾸시나요?&lt;/strong&gt;&lt;br&gt;“어느 건축전문가가 준공 25년이 지난 건물을 사람 몸에 비유하니 ‘일흔 살’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예울마루를 직접 짓고 관리해본 경험에 비춰봐도 그렇습니다. 공연장의 첨단 전자부품들은 5년만 지나도 부품수급이 어려워지고, 10년이면 내장재를 교체해야 하는 주기가 돌아옵니다. 그런데 전당은 지난 25년 동안 부분적인 유지보수만 있었을 뿐, 전면적인 리모델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기가 목전에 와 있습니다. 다행히 전북도와 전북도의회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공감해주셔서 올해 리모델링을 위한 기초 용역 예산을 확보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리모델링을 하려면 예산 확보가 관건일 텐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십니까?&lt;/strong&gt;&lt;br&gt;“최소 5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꺼번에 진행하기에는 운영 여건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마스터플랜을 세워 단계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려 합니다. 방향은 명확합니다. 21세기 기술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되 철저하게 ‘고객 중심’과 ‘효율 우위’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수 예울마루 시공 경험이 전당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설계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세계 수준의 공연 유치를 언급하셨습니다.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왜 이러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lt;/strong&gt;&lt;br&gt;“전당은 연간 70건 이상의 기획사업을 치러낸 저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전북의 열망과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특히 2036년 전주올림픽을 ‘K-컬쳐 올림픽’으로 유치하려는 도민들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전북을 주목하게 할 강력한 한방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를 ‘들여오는 기획’과 ‘나가는 기획’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quot;&lt;/p&gt;
&lt;p&gt;&lt;strong&gt;-들여오는 기획과 나가는 기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lt;/strong&gt;&lt;br&gt;“‘들여오는 기획’은 도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지난 25년간 전당 무대에서 접하지 못한 세계 3대 오케스트라(베를린·빈·뉴욕 필하모닉) 유치를 꿈꿉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전주에서 울려 퍼질 때 그 감동은 ‘지역의 품격’으로 치환될 것입니다. 반대로 ‘나가는 기획’은 우리 원형 콘텐츠의 세계화입니다. 태권도와 동학을 결합한 &amp;lt;태권유랑단 녹두&amp;gt;가 선봉입니다. K-문화의 흐름을 타고 ‘녹두’를 넘어 ‘춘향’, ‘흥부’ 시리즈로 확장해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세계 수준으로 보여주는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야 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태권도와 판소리를 결합한 소리킥 시리즈도 관심이 가는데요.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려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lt;/strong&gt;&lt;br&gt;“공연장이 단순히 대관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직접 작품을 만드는 제작극장이 돼야 합니다. ‘전북의 소리’라는 원형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버무려 낼 것인가,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태권소리극 ‘소리킥’ 시리즈입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라는 언어에 우리만의 깊은 맛인 판소리를 입히는 전략입니다. 최근 제작된 &amp;lt;태권유랑단, 녹두&amp;gt;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를 다루지만 인간의 보편적 화두인 ‘꿈’을 판타지적으로 풀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업적 명품이 되는 과정, 기대하셔도 좋습니다.”&lt;br&gt;&lt;br&gt;&lt;strong&gt;-전북 14개 시군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구상하시나요?&lt;/strong&gt;&lt;br&gt;“매해 예술과 대중을 아우르는 70여 건의 사업을 펼칩니다. 특히 20년간 이어온 ‘찾아가는 예술극장’은 이제 단순한 방문을 넘어 세 가지 전략을 꾀하려고 합니다. 첫째, 현지 예술인의 자생적 생태계를 돕는 플랫폼이 되겠습니다. 둘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택트’ 중계로 오지까지 문화소외를 없애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내외 기관과 아티스트 풀(Pool)을 공유하는 광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겠습니다.&quot;&lt;/p&gt;
&lt;p&gt;&lt;strong&gt;-프로는 성과로 증명한다”라며 강력한 휴먼웨이 업그레이드를 주문하셨습니다. 대표님만의 리더십은 무엇인가요?&lt;/strong&gt;&lt;br&gt;“구성원의 수준이 전당의 수준이고 리더의 안목이 곧 전당의 안목입니다. 제가 성과를 강조하는 이유는 각자가 자기 분야의 프로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의 특성과 협력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것이 제 숙제입니다. 개인의 성과는 투명하게 인정하고, 조직 전체의 신명을 끌어올려 성과를 만들겠습니다. &amp;nbsp;사람이 바뀌면 공간이 바뀌고, 도민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성과로 증명하겠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lt;/strong&gt;&lt;br&gt;“취임사에서도 밝혔듯이 하드웨어 업그레이드, 콘텐츠 업그레이드, 휴먼웨어 업그레이드, 고객서비스‧안전‧ESG 업그레이드 등 4대 업그레이드를 통해 도민 문화예술 향유권 증진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오고 싶은 전당, 공연이든 &amp;nbsp;전시든 다녀가면 힐링이 일어나는 3H(Hope‧Happy‧Healing)의 전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Δ 이승필 대표는&amp;nbsp;&lt;br&gt;이 대표는 1964년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학교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GS칼텍스에 입사해 2007년부터 GS칼텍스재단 사회공헌팀장과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2012년부터 2024년까지 GS칼텍스 예울마루 초대 관장을 맡아 공연장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 문화예술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2011년 한국창조문학회에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여수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문예회관연합회 이사 및 호남제주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공연예술포럼과 공연예술경영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lt;/p&gt;
&lt;/div&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생의 매 순간을 뜨거운 신명으로 채우는 사람. 맑은 표정과 눈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동력의 실체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내가 원하는 삶이야?”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는 무서운 진리를 깨친 덕분이다. 이승필(62)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이름 앞에 붙는 ‘예술경영인’ 같은 정체성이 이를 증명한다. 청년 시절,… ]]></description>
			<pubDate>Thu, 02 Apr 2026 15:32:41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401500631</guid>
			<title><![CDATA[ [인생 후반전, 전북으로 향하다] 전북떠났던 베이비붐 세대, 이도향촌의 시작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40150063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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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1/20260401500626.pn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4826ef5b7c1e&quot;&gt;
&lt;/figure&gt;
&lt;p&gt;전북의 인구 감소는 더 이상 출생률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일자리와 소득을 따라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지역은 빠르게 고령화됐다. 반면 최근에는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은 중·장년층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흐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lt;/p&gt;
&lt;p&gt;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13만 명으로 전체 이동 인구의 69.6%를 차지했다.&amp;nbsp;&lt;/p&gt;
&lt;p&gt;이들의 평균소득은 1년 사이 22.8% 증가한 반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한 청년의 소득 증가율은 7.6%에 그쳤다.&amp;nbsp;&lt;/p&gt;
&lt;p&gt;일자리와 임금 격차가 청년 이동을 사실상 ‘단방향 구조’로 고착시키고 있는 셈이다. 전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청년 순유출률은 –1.3%로 전국 평균의 두 배를 넘고, 2023년 한 해에만 약 5800명이 순유출됐다.&lt;/p&gt;
&lt;p&gt;이처럼 청년 유출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청년 유입 중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 주목되는 흐름은 중·장년층의 귀환이다.&amp;nbsp;&lt;/p&gt;
&lt;p&gt;수도권에서 직장 생활을 마친 이들은 일정한 자산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북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인구 보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새로운 인적 자산으로 평가된다.&lt;/p&gt;
&lt;p&gt;문제는 이들을 붙잡을 정착 기반이다. 전직 지원, 창업 인프라, 지역 일자리, 생활 커뮤니티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귀환이 장기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amp;nbsp;&lt;/p&gt;
&lt;p&gt;전문가들은 “전북 인구 정책은 ‘유입을 기다리는 구조’에서 ‘들어온 인구를 정착시키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lt;/p&gt;
&lt;p&gt;이 같은 흐름은 지역 산업 현장의 인력난과도 맞닿아 있다.&amp;nbsp;&lt;/p&gt;
&lt;p&gt;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역 중소기업의 51.4%가 인력 부족을 겪고 있으며, 제조업은 60% 이상이 인력난을 호소했다. 특히 기업의 52.2%는 50대 이상 인력 채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숙련도와 책임감, 장기 근속 가능성을 강점으로 평가했다.&lt;/p&gt;
&lt;p&gt;한경협 관계자는 “중·장년층의 지방 이동 수요는 분명 존재하지만, 정착을 뒷받침할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유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4/01/20260401500627.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482750f87c2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정모 씨가 가꾸는 조경수 모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39;서울 은행원에서 나무 농부로&#39;…임실서 시작된 ‘전환의 삶’&lt;/p&gt;
&lt;p&gt;임실 청웅면의 한 밭. 정정모(70) 씨는 요즘 하루 대부분을 나무 사이에서 보낸다.&lt;/p&gt;
&lt;p&gt;대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30여 년을 근무한 그는 정년퇴직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남긴 땅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lt;/p&gt;
&lt;p&gt;정 씨는 30년 넘게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남긴 밭이 있었지만, 귀향의 결정적 이유는 생계보다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lt;/p&gt;
&lt;p&gt;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조경수 몇 그루를 심고 가꾸며 시간을 보내던 일이 점차 규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나무가 자라면서 판매 문의가 이어졌고, 입소문을 타며 거래처도 늘었다. 지금은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는 ‘주업’이 됐다.&lt;/p&gt;
&lt;p&gt;정 씨는 “처음엔 소일거리였는데, 지금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며 “나무를 키우는 재미도 있고, 용돈벌이도 되니 자연스럽게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 같은 선택은 전형적인 귀농·귀촌 정책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을 통해 농업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산과 경험, 그리고 삶의 전환 욕구가 맞물리며 형성된 사례다. 실제 그는 “특별히 지자체에 기대하는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lt;/p&gt;
&lt;p&gt;다만 이러한 개인 중심의 귀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역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농자재 수급, 유통 경로, 의료와 교통 등 생활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정착의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lt;/p&gt;
&lt;p&gt;정 씨처럼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오는 세대는 일정한 자산과 사회 경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착 지원을 넘어, 생산과 소비가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퇴직 후 다시 시작”…익산 금마에서 마트를 연 김 씨&lt;/p&gt;
&lt;p&gt;익산시 금마면의 한 골목. 해가 채 뜨기 전, 작은 마트 앞에 물류 차량이 멈춰 서고 상자들이 하나둘 내려진다. 가게 문을 연 김모 씨(56)의 하루는 상품 진열로 시작된다.&lt;/p&gt;
&lt;p&gt;김 씨는 수도권에서 30년 가까이 식품 유통·물류업에 종사했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이어왔지만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고향인 익산 금마로 돌아와 자신만의 마트를 열었다.&lt;/p&gt;
&lt;p&gt;단순한 귀향은 아니었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일군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컸다. 조직의 일원이 아닌, 스스로 책임지는 생계를 선택한 것이다.&lt;/p&gt;
&lt;p&gt;하지만 지역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금마는 유동 인구가 적고 소비 규모 자체가 제한적이다. 개업 초기에는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단골 확보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구매력이 높고 방문이 잦은 젊은 소비층이 부족한 점은 가장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lt;/p&gt;
&lt;p&gt;전환점은 외부에서 찾아왔다. 지역에 외국인 계절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소비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이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설정하고 베트남·태국·중국 식료품을 들여왔다. 결과적으로 상품 구성이 다양해지며 매출도 점차 안정세를 보였다.&lt;/p&gt;
&lt;p&gt;현재 이 마트는 지역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가 함께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판매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활권이 만나는 접점 역할도 하고 있다.&lt;/p&gt;
&lt;p&gt;김 씨는 “농촌은 인구가 적은 것보다 소비가 약한 게 더 큰 문제”라며 “주민 상당수가 장보기나 여가를 위해 대전 등 외부 도시로 나가면서 지역 내 돈이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처럼 전북에서 점차 늘고 있는 ‘전직형 귀환’의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일정한 경력과 기술을 가진 중장년층이 돌아와 새로운 생계를 구축하는 흐름이다. 다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개인 역량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내 소비 기반과 산업 생태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북의 인구 감소는 더 이상 출생률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일자리와 소득을 따라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지역은 빠르게 고령화됐다. 반면 최근에는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은 중·장년층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흐름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은 13만 명으로 전체 이동 인구의 69.6%를 차지했다.… ]]></description>
			<pubDate>Wed, 01 Apr 2026 17:27:48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이준서</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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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가족의 재발견]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비비가 던진 ‘관계 안전망’이라는 화두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2550030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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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5/20260325500297.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237d14fb62c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좌측부터)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와 비비사회적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봄봄, 이사장 김난이, 이미정 씨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대한민국에서 중장년 비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돌봄의 이중고’를 견디는 일이다. 20~30대 시절 1인 가구의 삶이 자유와 독립의 만끽이었다면 40대 중반을 넘어선 이들에게 닥치는 현실은 기본값이 된 부모 돌봄이다. 비혼이라는 이유로 가족 돌봄의 최전선에 놓이지만 정작 “부모님이 떠난 뒤 나를 돌볼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회와 국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lt;/p&gt;
&lt;p&gt;전주를 기반으로 20년간 비혼여성공동체를 일궈온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이하 비비)’와 비비사회적협동조합(김난이 이사장·이미정·활동가 봄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주거모델을 제안한다. 단순히 잠만 자는 방이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봄을 나누는 ‘공동체 주택’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공간은 물리적 건축물을 넘어 우리 사회의 빈약한 안전망을 보완할 ‘관계의 실험실’이다.&lt;/p&gt;
&lt;p&gt;△‘주거권’의 재정의: 원룸과 고시원은 줄 수 없는 것&lt;br&gt;기존 1인 가구 정책은 주로 청년층의 진입 지원이나 고령층의 빈곤 해결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중장년 여성 1인 가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저가임대주택이 아니다. 이들이 정의하는 진정한 주거권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포함된다. ‘소통할 수 있는 친구’, ‘안전을 확인해 줄 이웃’,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적정 수준의 공간’이다. 김난이 이사장은 “원룸과 고시원은 개인의 고립을 전제로 한 공간”이라며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 주택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독립 공간을 갖추되, 필요할 때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공유 공간과 관계를 핵심으로 삼는다. 이는 물리적 단절을 막는 동시에 정서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실질적인 대안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5/20260325500298.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237eb23962c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비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I 안부서비스는 왜 ‘행정편의주의&#39;일까&lt;br&gt;최근 전북자치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중장년 고독사를 막기 위해 AI 안부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이를 두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행정주의적 사고”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고독과 고립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람 간의 정서적 연결이 끊어져 발생하는 ‘사회적 질병’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계 대신 커뮤니티 코디네이션과 같은 인적자원이 중심이 된 돌봄체계가 훨씬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다고 제언한다. 시혜적인 서비스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이 직접 모여 고민을 나누는 지역 소모임 등 ‘사람 중심의 인프라’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다.&lt;/p&gt;
&lt;p&gt;△전북 여성 노인 고립, 송천동에서 답을 찾다&lt;br&gt;비비사회적협동조합은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송천동의 ‘여성근로자아파트’ 부지를 여성 1인 가구 공동체 주택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북의 65세 이상 노인 1인 가구 비율은 25.3%(2023년 기준)로 전국 4위에 달하며, 전국 평균(22.1%)을 크게 웃돈다. 특히 도내 1인 가구 중 여성 비중이 51.6%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노후화로 철거 위기에 놓인 공간을 리모델링해 여성 중장년‧노인 공동체 주택으로 거듭나게 하자는 것이다.&amp;nbsp; 실제 이 모델이 실현된다면 전북의 여성 노인 1인 가구 비율과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상징적 거점이 될 수 있다. 매년 비비의 활동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10팀 이상의 견학팀이 전주를 찾는다. 인구 감소의 해답을 단순히 외지인 유입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중장년층의 삶의 질을 높여 ‘생활인구’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5/2026032550030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2381d7e462c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비비 내부 모습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5/20260325500304.pn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2384677662d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비비 내부 모습(왼쪽은 요가실, 오른쪽은 비비의 색깔이 담긴 포스터) /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공동체 근육’을 기르는 법, 응답과 책임&lt;br&gt;공동체 주택이 장밋빛 환상만은 아니다. 비비는 20년 넘는 시간 동안 관계의 실험을 이어오며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공동체 근육이라는 점이다. 이 근육의 핵심은 ‘응답능력’과 ‘책임’이다. 김 이사장은 “느슨한 관계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갈등을 견디고 소통하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고, 공동의 결정에 책임지는 훈련 없이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여성주의 공부와 독서모임을 통해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는 사이가 되는 것, 그래서 서로에게 “도와달라” 말할 수 있는 신뢰를 쌓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주택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자산이다.&lt;/p&gt;
&lt;p&gt;△ 다양한 친밀함이 허용되는 도시를 향해&lt;br&gt;비비가 제안하는 공동체주택은 단순한 ‘비혼 여성들만의 섬’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집해온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이라는 협소한 틀을 깨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자는 선언이다. 전주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소수자에 대한 낙인을 거두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미정 씨는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갈등을 조절하며 맞춰가겠다는 책임이 동반된다면 사회적 비극인 고독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 전화기를 보급하는 것보다 시민들이 서로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 송천동의 낡은 아파트 부지가 단순한 철거 대상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돌봄 모델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대한민국에서 중장년 비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돌봄의 이중고’를 견디는 일이다. 20~30대 시절 1인 가구의 삶이 자유와 독립의 만끽이었다면 40대 중반을 넘어선 이들에게 닥치는 현실은 기본값이 된 부모 돌봄이다. 비혼이라는 이유로 가족 돌봄의 최전선에 놓이지만 정작 “부모님이 떠난 뒤 나를 돌볼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회와 국가는 답을 내놓지 못… ]]></description>
			<pubDate>Wed, 25 Mar 2026 14:52:3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322500435</guid>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1894년의 진실을 복원하는 제3의 증언, ‘동학문서(東學文書)’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2250043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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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130여 년 전 진실 품은 뮈텔 주교의 유산&lt;br&gt;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당시의 현장을 가장 입체적으로 증언하는 한 이방인의 기록과 마주한다. 바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이자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을 지낸 구스타프 뮈텔(Gustave Mutel, 한국명 민덕효(閔德孝)) 주교가 남긴 ‘뮈텔 문서(Mutel 文書)’이다. 185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880년 조선에 잠입한 이래 1933년 사망하기까지 그는 한국 천주교사의 산증인으로 살았다. 특히 1890년 교구장 취임 이후 그가 갈무리한 13,451건의 방대한 문서는 당대의 정치, 사회, 종교상을 투영하는 거대한 기록의 보고이다. 작고하신 이이화 선생님(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가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료를 총망라하여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을 1996년에 발간하였는데, 이때 뮈텔 문서 중에서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을 추출하여 이를 ‘동학문서(東學文書)’라고 명명하였다. 이 문서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를 묘사한 1차 사료로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lt;/p&gt;
&lt;p&gt;△전국 사제들이 구축한 ‘거미줄 정보망’&lt;br&gt;『동학문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정보의 ‘현장성’과 ‘광범위함’에 있다. 뮈텔 주교는 서울에 머물면서도 전라도 무장, 영광, 정읍 등 혁명의 발원지에 파견된 사제들과 긴밀한 서신을 주고받았다. 당시 천주교는 포교의 안전과 교도 보호를 위해 동학농민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사활을 걸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들은 단순한 소문을 넘어선 실시간 현장 보고서였다. 전주 전동성당의 보두네 신부나 전라 서남부의 베르모렐 신부 등은 동학농민군의 진격과 후퇴를 바로 곁에서 목격하며 주교에게 서신을 보냈다. 뮈텔 주교는 이 생생한 리포트를 날짜별로 정리하고 자신의 분석을 덧붙였다. 특히 프랑스 공사관과의 외교적 채널을 통해 입수한 대원군 관련 밀서나 조정의 대응책 등은 이 기록물이 사적인 일기를 넘어 당대 최고위급 정보가 집결된 ‘기록의 허브’였음을 보여준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2/20260322500431.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1522029e578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동학도 개국 음모 건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1893년의 예언과 저항의 불씨&lt;br&gt;수록된 『동학문서』는 동학농민혁명이 폭발하기 일 년 전인 1893년부터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을 포착하고 있다. &amp;lt;동학도 개국 음모 건(東學徒開國陰謀件)&amp;gt;(1893-51)은 무장, 영광, 정읍의 오태원 등 지도부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새 나라를 꿈꿨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동학이 단순한 민란을 넘어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목표를 가졌음을 시사하며, 특히 선운사 석불 비결 탈취 사건과의 연관성은 농민군의 종교적·정치적 배경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초가 된다. 또한 &amp;lt;동학 벽보(東學 壁報)&amp;gt;(1893-54)와 &amp;lt;동학도 기독교 배격 벽보(東學徒基督敎排擊壁報)&amp;gt;(1893-57)는 당시 동학농민군이 가졌던 강렬한 ‘척양척왜’ 의식을 보여준다. 선교사 존스(Jones)의 집 등에 게시된 벽보에서 엿보이는 서양인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은 동학의 민족주의적 성격이 서구 문명과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amp;lt;용담대아 통고(龍潭大衙 通告)&amp;gt;(1893-58) 역시 척양척왜를 주장하며 전라감사에게 보낸 통고문으로, 혁명 전야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2/20260322500429.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1520e2f4578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흥선대원군 효유 동학도문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정치적 역학 관계와 권력의 내면&lt;br&gt;동학농민혁명이 본격화된 1894년의 기록은 더욱 정교해진다. 문서의 백미인 &amp;lt;흥선대원군 효유 동학도문(興宣大院君 曉諭東學徒文)&amp;gt;(1894-304)은 프랑스 공사 르페브르의 권고로 대원군이 동학도에게 보낸 효유문과 이에 화답한 호서 지역 18개 구역 접주들의 답서를 담고 있다. 이는 대원군과 동학농민군 사이의 은밀한 협력과 긴장 관계를 증명하는 핵심 사료로, 조정 내 권력 투쟁이 동학이라는 거대한 파도와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amp;lt;의병 의금 소모 밀유(義兵義金召募密諭)&amp;gt;(1894-303, 305)는 일본군의 범궐 이후 이건영을 소모사로 임명하여 일본군을 축출하려 했던 조정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한 아래로부터의 봉기일 뿐만 아니라, 당시 중앙 정치권력의 변동과 밀접하게 반응하던 복합적인 사건이었음을 증명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2/2026032250043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15216cf5578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순영문 효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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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2/20260322500433.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1524c88f578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무장현 동학 포고문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집강소’ 체제의 실상과 새로운 질서의 모색&lt;br&gt;문서 중 &amp;lt;순영문 효유문(巡營門曉諭文)&amp;gt;(1894-314)과 &amp;lt;윤 신부 서간 초(尹神父書柬草)&amp;gt;(1894-327)는 동학농민혁명 이후의 지방 행정 변화를 생생히 전하고 있다. 전라감사 김학진이 농민군에게 ‘집강(執綱)’ 설치를 약속하며 민폐 교정을 다짐하는 장면은 민관 협치의 초기 모델로서 집강소가 가졌던 행정적 위상을 뒷받침한다. 특히 천주교 사제와 관찰사 사이의 문답에서 “동학군이 집강 설치 후 오히려 작폐를 금하고 있다”는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당시 동학농민군이 단순한 파괴자가 아닌, 지역 질서의 유지자이자 행정의 파트너로서 기능했음을 제3자의 기록을 통해 재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또한 &amp;lt;무장현 동학 포고문(茂長縣東學布告文)&amp;gt;(1894-321)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의지를 천명하며 탐관오리를 규탄하는 농민군의 목소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lt;/p&gt;
&lt;p&gt;△외세의 개입과 국제 정세의 파고&lt;br&gt;『동학문서』는 한반도 내부의 갈등에 그치지 않고, 이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기록했다. &amp;lt;외병 진주 상황 건(外兵進駐狀況件)&amp;gt;(1894-312)과 &amp;lt;일본군 진주 상황 보고(日本軍進駐狀况報告)&amp;gt;(1894-320)는 청국군과 일본군, 심지어 영국군과 러시아 함대의 동향까지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amp;lt;남중 소란 후 각국 병선 출입록(南중騷亂後 各國兵船出入錄)&amp;gt;(1894-326)은 제물포를 출입한 각국 군함의 이름과 목적지를 도표화하여 기록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뒤흔든 국제적 사건이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외부자의 기록은 당시 조선 정부가 처했던 외교적 고립과 위기 상황을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게 해준다.&lt;/p&gt;
&lt;p&gt;△제3자의 시선이 완성하는 역사의 모자이크&lt;br&gt;『동학문서』의 진정한 가치는 ‘객관적 거리두기’에 있다. 관(官)의 기록은 농민군을 ‘비도(匪徒)’로 매도하기 일쑤였고, 농민군의 기록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주관성을 띠기 마련이다. 반면 프랑스 신부들의 시각은 그들만의 종교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과 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서 목격한 사실을 가감 없이 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자료들은 날씨와 물가, 유언비어의 유포 과정까지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어 미시사(Micro-history) 연구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뮈텔 문서에서 선별된 이 26종의 사료는 1894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가장 세밀하고 날카로운 조각이다.&lt;/p&gt;
&lt;p&gt;△기록이 지켜낸 역사의 무게&lt;br&gt;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며, 진실은 다양한 관점이 모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뮈텔 주교가 수집 정리하고 연구자들이 선별한 『동학문서』는 이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인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들과 상호 보완하며, 이 문서들은 130여 년 전 이 땅에서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함성을 더욱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박제된 유물이 아닌,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서 『동학문서』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기록이 지켜낸 역사의 무게만큼, 우리는 1894년의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22/20260322500432.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d-1522947c578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130여 년 전 진실 품은 뮈텔 주교의 유산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당시의 현장을 가장 입체적으로 증언하는 한 이방인의 기록과 마주한다. 바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이자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을 지낸 구스타프 뮈텔(Gustave Mutel, 한국명 민덕효(閔德孝))… ]]></description>
			<pubDate>Sun, 22 Mar 2026 19:47:09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315500157</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이병관 고려대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장 “지역의료 완성에 최선”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1550015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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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15/20260315500133.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ef5394fd3d6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병관 고려대학교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장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개원 14주년을 맞이한 대자인병원이 지난달 고려대학교의료원과 교류협력을 체결하고 ‘고려대학교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대자인병원은 이번 협력이 단순한 명칭 및 로고 변경을 넘어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선진 진료 시스템과 의료 기술을 지역에 이식해 ‘원정 진료’ 없는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관 병원장을 만나 이번 교류협력 체결의 배경과 지역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향후 청사진을 들어봤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최근 대자인병원이 고려대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으로 명칭과 로고를 변경하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대자인병원이 개원한 지 올해로 14년째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미래형 통합 의학을 지향하는 재활 전문 병원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종합병원으로 바뀌는 큰 전환이 있었습니다. 최근 의료 수요가 고급화되고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한번 최고의 선진 의료 기술을 받아들여 리브랜딩을 진행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최고 수준의 서울 상급종합병원과 긴밀한 교류협력을 진행하게 됐는데, 큰 변화와 변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고려대의료원과 교류협력은 어떻게 추진됐나요.&lt;/strong&gt;&lt;/p&gt;
&lt;/div&gt;
&lt;p&gt;“교류협력 병원을 도입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더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과 연구 결과를 분석해 고려대학교와 접촉했습니다. 이후 1년 동안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교류협력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상급종합병원과의 교류협력 체결은 전북특별자치도에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이번 교류협력을 통해 대자인병원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먼저 이름을 고려대학교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으로 변경했고, 로고와 유니폼도 바꾸는 외적인 변화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실질적인 교류협력 부분인데, 고려대의료원에서 사용하는 내부 행정 시스템과 진료 시스템을 받아 진료의 기준을 올려서 표준화할 예정입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는 고려대의료원과 연결해 치료한 뒤 병원으로 회송해 치료를 이어가는 등 긴밀한 협력을 이어갈 방침입니다. 또한 고려대의료원이 보유한 우수한 의료자원, 특히 최고 수준의 로봇 수술 기술을 배우고 의료진 교류와 연수 등도 진행할 계획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교류협력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고려대의료원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의료 기술력 등 장점을 빠르게 받아들여 우리 병원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앞으로 이 지역 환자들이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비슷한 수준의 모든 진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병원이 가지고 있던 통합 의학적인 마인드와 우수한 기술력을 합쳐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앞으로 신관 완공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작게 시작했던 병원이 계속 확장되면서 현재 여러 건물을 이용하고 있어 동선의 어려움과 환자들의 불편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신관 건물은 떨어져 있던 병원의 모든 건물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존에 흩어져 있던 영상 진단과 중환자 수술 등 기능을 중앙에 위치하도록 해 모든 기능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신관 건물에 암 방사선 치료기를 배치해 암 환자 진료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이번 교류협력 체결로 인해 오히려 지역 환자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모든 것들이 수도권에 모여있는 현재 상황 속에서 환자들이 지역을 떠나는 상황을 갈수록 막기 어려워지는 형편입니다. 어떻게든 지역 내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고 수도권에 못지않은 의료 편리성과 기술력을 확보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가져야 원정 의료를 막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에 갈 필요 없이 비슷한 진료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겨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진행한 교류협력이고,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수도권의 모든 진료 서비스를 이곳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면 치료를 위해 수도권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길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그간 지역의료의 위기와 붕괴에 대한 지적이 많았습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현재 많은 병원들이 지역에서 의사를 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생명과 직접 관련되는 필수 의료는 더욱 기피되는 과목이기 때문에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모든 병원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류협력을 진행한 측면도 있습니다. 향후 고려대의료원 교수들을 초빙하거나 교환해 &amp;nbsp;어떻게든 지역 내에서 의료 체계를 완결할 수 있도록 힘을 쓸 계획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의료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 많은데 대자인병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우리 병원은 몇 년 전부터 방향을 확실하게 정했습니다. 골든타임 안에 응급환자에게 수술과 처치를 진행해 생명을 살리는 중증·응급 필수의료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응급실 강화에 중점을 두고 관련 분야 의사들을 확보해 원활하게 응급실이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렇게 노력한 결과 많은 응급의학 전문의와 뇌혈관 의사를 확보해 거점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더 확실하게 중증·응급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 지역의료가 완성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마지막으로 도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저는 항상 지역이 살아나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특성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모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디디고 있고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지역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목표입니다. 도민들께서도 병원의 이러한 목표와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신뢰를 보내주신다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이병관 병원장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전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동대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lt;/p&gt;
 &lt;p&gt;이후 우석대학교 한의학과와 중국 남경 중의학대학 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인산의료재단 이사장과 정신병원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amp;nbsp;&lt;/p&gt;
 &lt;p&gt;이 병원장은 “앞으로도 지역의료체계의 신뢰성과 완결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lt;/p&gt;
&lt;/div&gt;
&lt;p&gt;김문경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개원 14주년을 맞이한 대자인병원이 지난달 고려대학교의료원과 교류협력을 체결하고 ‘고려대학교의료원 교류협력 대자인병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대자인병원은 이번 협력이 단순한 명칭 및 로고 변경을 넘어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선진 진료 시스템과 의료 기술을 지역에 이식해 ‘원정 진료’ 없는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 ]]></description>
			<pubDate>Sun, 15 Mar 2026 11:56:12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문경</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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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획]정근식 서울시교육감 “2026년은 교육 패러다임 전환 체감의 해…‘경쟁’ 넘어 ‘협력’으로”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125002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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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취임(2024년 10월) 1년 5개월을 맞은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의 행보가 거침없다.&lt;/p&gt;
&lt;p&gt;역사사회학자 출신다운 통찰로 교육을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짚어내는 그는 2026년을 ‘교육 패러다임 전환 체감의 해’로 선언했다.&lt;/p&gt;
&lt;p&gt;또 AI(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 단순한 지식 암기를 넘어선 ‘인간다움’과 ‘협력’의 가치를 역설한다.&amp;nbsp;&lt;/p&gt;
&lt;p&gt;더불어 전북을 비롯한 전국 자치단체와의 농촌유학 협력을 통해 도농 상생의 모델을 제시해 온 그는 이제 ‘2040년 수능 폐지’라는 파격적인 미래 설계를 통해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lt;/p&gt;
&lt;p&gt;이달 10일,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그가 그리고 있는 AI 시대에 걸맞는 서울시 교육의 청사진을 들어봤다.&lt;/p&gt;
&lt;p&gt;◇ 대담= 김준호 전북일보 서울본부장&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11/20260311500555.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c6745ba368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주요 정책 및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취임하신 지 1년 반 정도가 됐는데, 취임 초 제시하신 ‘창의·공감·자치·협력’의 가치가 학교 현장에 얼마나 안착되었다고 평가하십니까.&lt;/p&gt;
&lt;p&gt;“지난 기간동안 정책을 안착시켰고,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서울교육청 정책에 참여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상당히 잘 가고 있다’는 응답이 68%, ‘앞으로 3년 이내에 희망적으로 보인다’는 응답이 83% 정도 나왔습니다.”&lt;/p&gt;
&lt;p&gt;- 최근 AI가 사회 전체의 큰 변화를 몰고 오면서 교육 현장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맞는 교육,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lt;/p&gt;
&lt;p&gt;“AI 시대 교육의 핵심은 두 축입니다. 한편으로는 독서·토론·인문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AI 활용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질문하는 능력, 토론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오히려 고전적인 독서·토론 교육이 더 중요해집니다. 동시에 AI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도 길러야 합니다. 이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야 AI 시대 교육이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lt;/p&gt;
&lt;p&gt;- AI를 교육 현장에 접목시키는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지.&lt;/p&gt;
&lt;p&gt;“AI 시대 교육은 활용 교육과 윤리 교육, 개발 역량 교육이라는 세 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AI교육센터를 만들고 대학과 연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연세대는 교사 역량을, 서울시립대는 학생 AI역량 프로그램을 맡습니다. 올해 2월에는 이미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있고, 서울과학기술대와는 피지컬 AI 관련 협력도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 교실에서의 수업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체계도 마찬가지이고요.&lt;/p&gt;
&lt;p&gt;“옛날처럼 칠판 중심, 필기 중심 수업이 아니라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정확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에 맞춰 평가도 서술형, 논술형으로 확대합니다.“&lt;/p&gt;
&lt;p&gt;- 평가와 관련해 일각에선 AI채점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lt;/p&gt;
&lt;p&gt;“맞습니다.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입니다. AI를 활용하면 평가자의 주관성을 줄일 수 있어 오히려 더 공정할 수 있습니다. 서울형 모델은 교육과정을 먼저 충분히 학습시킨 뒤 기준이 분명한 AI가 채점하도록 합니다. AI가 1차 채점을 돕고, 최종 판단은 교사가 합니다. 현재 교사 채점과 AI 채점의 일치율이 0.8 정도인데, 데이터를 축적해 0.9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일치율은 1에 가까울수록 완벽한 일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0.8은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수준.)”&lt;/p&gt;
&lt;p&gt;- AI 교육에 대한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lt;br&gt;“학부모들도 ‘AI 인재가 돼야 하니 우리도 AI를 좀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학부모 교육센터, 학부모 학습센터를 더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학부모 지원체계 안에서 그런 계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 한편으론 지나친 AI 의존이 우려됩니다. 교육감께서는 이를 ‘생각의 외주화’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요.&lt;/p&gt;
&lt;p&gt;“가장 걱정되는 지점이 아이들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AI에게 묻게 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를 ‘생각의 외주화’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길을 외워서 찾아갔지만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만 갑니다. 그러다 보니 지리 감각이 떨어지죠. 글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가 들어오고 나서 손글씨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AI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생각 자체를 AI에 맡기는 인간이 됩니다. 인간이 기계의 주인이어야지, 기계가 주인이고 인간이 종속되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lt;/p&gt;
&lt;p&gt;-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lt;/p&gt;
&lt;p&gt;“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AI를 제대로 다루려면 무엇보다 질문을 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정확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교육의 핵심은 바로 그 질문 역량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잘못 가면 인간이 주체적 사고를 잃고 기계가 시키는 대로만 사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주체성, 근원적인 사고 능력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지식 기반 교육에서 역량 기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운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11/20260311500556.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c6843c0368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주요 정책 및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입니까.&lt;/p&gt;
&lt;p&gt;“저는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배움의 주체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질문하는 힘, 생각하는 힘, 타인과 협력하는 힘, 그리고 책임 있게 선택하는 힘이 교육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입니다.&lt;/p&gt;
&lt;p&gt;- 이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 있습니까.&lt;/p&gt;
&lt;p&gt;“‘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다움’을 기르기 위해서는 첫째, 가치 지향적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독서·토론·인문학 교육 2030 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습니다. 둘째, 타인과 협력하는 역지사지의 힘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역지사지 토론 모형’을 개발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셋째, 강력한 도구일수록 이를 안전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책임감’이 필수적입니다. 최근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 AI를 교육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안전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인간 중심의 AI 교육‘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경쟁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인간다움을 깨워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lt;/p&gt;
&lt;p&gt;- 질문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은 무엇인지.&lt;/p&gt;
&lt;p&gt;“독서·토론·인문학 교육은 바로 이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작품을 읽고 자기 나름의 문제를 설정하고, 질문을 만들고, 서로 토론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단지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책 속 핵심 개념을 이해하는 교육으로 가야 합니다. 자유·평등 같은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quot;&lt;/p&gt;
&lt;p&gt;- 현재의 대입 현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교육은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요.&lt;/p&gt;
&lt;p&gt;&quot;이런 교육이 고등학생과 입시를 앞둔 학생에게는 느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학 입시도 바꿔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 구조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서울대, 연고대 식의 수직적 대학 구조를 완화해야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lt;/p&gt;
&lt;p&gt;- 입시 제도 개편은 국가 차원의 일인데,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만으로는 버거울 것 같은데요.&lt;/p&gt;
&lt;p&gt;“맞습니다. 이 문제는 서울시교육청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거점국립대 교수협의회와 함께 대학 입시 제도 개선 논의를 제안해 왔습니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진로·융합선택과목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2033학년도 대입에는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제안했습니다. 2040학년도에는 학생 수가 크게 줄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수능 제도는 폐지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교육부는 수능 폐지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나머지 방향들은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근본 방향은 바뀌어야 합니다. 다만 변화 과정에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계적 접근이 중요합니다.”&lt;/p&gt;
&lt;p&gt;-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 격차에 대한 우려되고 있습니다.&lt;/p&gt;
&lt;p&gt;“AI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혹시라도 AI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AI 디지털 리터러시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초등 5학년과 고등 1학년 1만 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올해는 중학교 2학년까지 포함해서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검사할 계획입니다. 또 AI 디지털 리터러시 기초소양교육을 전 학교에 실시하고, AI 디지털 자료를 이용해 학생의 자기주도학습과 교사의 수업을 지원하는 체계를 갖출 계획입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11/20260311500557.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c691c0b368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AI(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주요 정책 및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다소 결이 다른 질문인데,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lt;br&gt;“학생인권과 교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이 잘 보장될수록 교권 존중도 더 강화됩니다. 인권은 상호 존중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체벌하고 학생을 억누르는 방식으로는 존중이 생기지 않습니다. 학생들을 존중해줄수록 선생님에 대한 존경도 커집니다. 한국 교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매우 질서 있는 편입니다. 그런 점도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lt;/p&gt;
&lt;p&gt;- 전국 시·도 교육청과 진행하고 있는 협력 사업이 있습니까.&lt;br&gt;“대표적으로 전북·전남·강원도·제주도·인천광역시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농촌유학’이 있습니다. 전북은 매우 중요한 협력지입니다. 2022년 시작 이후 누적 589명의 서울 학생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진안·임실·순창 등은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도시 학생에게는 생태 감수성을, 농촌 학교에는 활력을 불어넣는 도농 상생 모델을 계속 확대할 계획입니다. 농촌 학생은 서울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서울 학생은 농촌 지역의 삶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교육청과 전북교육청과 같은 협력은 단순한 행정 협력이 아니라 미래교육을 위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교육감협의회뿐 아니라 교육청 실무 차원의 협력도 더 강화돼야 합니다.&quot;&lt;/p&gt;
&lt;p&gt;- 앞으로 전북교육청과 특별히 협력할 사업이 있으신지.&amp;nbsp;&lt;br&gt;”지방선거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이 AI 시대 교육의 기본 방향, 농촌유학, 여러 교육협력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해력·수리력 진단검사, 진로·진학 상담 프로그램, 농촌유학 프로그램 같은 다층적 협력을 할 수 있습니다. 협력은 일방향이면 안 됩니다. 전북교육청이 서울 것을 따라오기만 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북교육청이 개발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서울에서도 받아들이고, 서울이 개발한 진단 도구나 교육 프로그램도 전북과 교류해야 합니다.&quot;&lt;/p&gt;
&lt;p&gt;- 취임 후 일선 교육 현장을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교수 출신이라 교육 현장을 잘 모른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lt;/p&gt;
&lt;p&gt;“제 전공은 역사사회학입니다. 교육을 단순히 학교 행정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 연결해서 봅니다. 오히려 보통 선생님들보다 더 폭넓게 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200곳이 넘는 현장을 다니며 매번 1~2시간씩 깊게 대화했습니다.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의 핵심은 협력입니다. 선생님·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할 때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lt;/p&gt;
&lt;p&gt;- 마지막으로 앞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어떤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lt;br&gt;“‘미래를 여는 협력교육’ 서울시교육감 정근식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임기가 끝난 뒤 ‘정근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갈등이 아닌 공존의 가치를 가르치려 애썼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서울 교육이 시민의 자부심이 되도록 끝까지 책임 있게 추진하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근식은…‘사회학자’에서 ‘서울 교육 수장’으로&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lef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30.07%;&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11/2026031150055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c7c5847368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1957년 전북 익산 황등 출생. 남성중-전주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형적인 ‘학자형 리더’이다.&lt;/p&gt;
&lt;p&gt;전남대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사회사학회장, 문재인 정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고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데 평생을 바쳐왔다.&lt;/p&gt;
&lt;p&gt;2024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제23대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취임했다. 정 교육감의 행보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2040학년도 수능 폐지’를 골자로 한 대입 제도 개편안이다.&lt;/p&gt;
&lt;p&gt;이는 AI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lt;/p&gt;
&lt;p&gt;더불어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기초학력 보장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대학과의 벽을 허무는 ‘통합적 교육 체계’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lt;/p&gt;
&lt;p&gt;또 교권 보호 실시간 모니터링과 신속대응팀 운영은 교사의 긍지를 회복시키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lt;/p&gt;
&lt;p&gt;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의 재선 도전 여부는 교육계 최대의 화두로, 최근 진보 진영 단일화 기구인 ‘2026 서울 민주진보교육감후보 단일화 추진위에 경선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재선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lt;/p&gt;
&lt;p&gt;정리=이준서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취임(2024년 10월) 1년 5개월을 맞은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의 행보가 거침없다. 역사사회학자 출신다운 통찰로 교육을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짚어내는 그는 2026년을 ‘교육 패러다임 전환 체감의 해’로 선언했다. 또 AI(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 단순한 지식 암기를 넘어선 ‘인간다움’과 ‘협력’의 가치를 역설한다. 더불어 전북을 비롯한 전국 자치… ]]></description>
			<pubDate>Thu, 12 Mar 2026 14:09:11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준호</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310500564</guid>
			<title><![CDATA[ [기획] ‘한국의 샤모니’ 꿈꾸는 장수군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1050056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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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장수군이 풍부한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국제산악관광도시 도전에 나서고 있다.&lt;br&gt;해발 1,000m 이상의 장안산과 팔공산을 품은 장수군은 전체 면적의 약 75%가 산지로 이루어진 전북특별자치도 동부 대표 산악지역이다.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며 깊은 숲과 능선,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lt;br&gt;군은 이러한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산악관광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해발 400~500m 고원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숲길은 트레일 러닝과 캠핑, MTB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자연 무대로 평가된다.&lt;br&gt;장수라는 지명은 ‘물은 길고 산은 높다’는 뜻의 수장산고(水長山高)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명에서 풍기듯 장수의 산골 오지는 개발 흐름에서 비켜나 잘 보존된 청정 자연은 오늘날 오히려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lt;br&gt;군은 이를 기반으로 산악레저와 관광을 결합한 체류형 관광 전략을 통해 지역 활력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6f0d1ba3208&quot; src=&quot;/content/image/2026/03/10/20260310500553.jpg&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5년 9월 25일 개최된 제6회 장수트레일레이스에 3000여 명이 참가했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사진제공=장수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국내 최초 100마일 코스…장수트레일레이스&lt;br&gt;장수 산악관광의 대표 콘텐츠는 장수트레일레이스다.&lt;br&gt;장수트레일레이스는 불과 몇 년 사이 국내 대표 산악러닝 대회로 성장하며 장수군의 산악관광 이미지를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lt;br&gt;특히 지난해 국내 최장 거리인 100마일(170.8km) 코스가 정식 운영되면서 국내 트레일러닝 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lt;br&gt;트레일러닝에서 100마일 코스는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상징적인 거리로 꼽힌다. 코스 운영과 안전 관리 부담이 매우 커 국내에서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거리로 알려져 있다.&lt;br&gt;실제 장수트레일레이스 100마일 코스에는 112명이 참가해 43명만 완주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코스다. 그만큼 참가자들에게는 도전의 상징적인 무대가 되고 있다.&lt;br&gt;대회 기간이면 장수의 마을마다 응원과 환대가 이어진다. 주민들은 선수들에게 간식을 나누고 응원을 보내며 대회 분위기를 함께 만든다. 보급소(CP)에서는 스태프가 선수들의 물병을 채워주며 완주를 돕는다.`&lt;br&gt;지역 학생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장수트레일레이스는 스포츠 대회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lt;br&gt;대회 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2년 약 150명으로 시작된 대회는 2023년 800여 명, 2024년 3000여 명, 2025년에는 5000여 명이 참가하는 국내 대표 산악러닝 대회로 발전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6f3f91c320a&quot; src=&quot;/content/image/2026/03/10/20260310500554.jpg&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제6회 장수 트레일레이스 참가 선수가 장안산 억새밭을 지나고 있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사진제공=장수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K-샤모니 챌린지’…산악자원 브랜드화&lt;br&gt;장수군은 산악자원을 하나의 관광 플랫폼으로 묶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lt;br&gt;대표적인 사례가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와 함께 운영하는 ‘장수 K-샤모니 마운틴 챌린지’다.&lt;br&gt;이 챌린지는 장수군 전역의 14개 명산을 하나의 브랜드로 연결해 산악지형 전체를 하나의 아웃도어 무대로 재해석한 프로그램이다.&lt;br&gt;참가자들은 블랙야크알파인클럽(BAC) 앱을 통해 덕유산 서봉과 장안산, 팔공산, 봉화산, 사두봉 등 주요 봉우리를 등반하며 인증을 진행한다.&lt;br&gt;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이 이어지는 장수의 산줄기는 산악지형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처럼 체험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하루에 한 봉우리만 오르는 일반적인 등산 방식과 달리 장수에서는 긴 산줄기를 따라 다양한 코스를 경험할 수 있다.&lt;br&gt;챌린지를 완주하면 블랙야크는 BAC코인을 제공하고 장수군은 기념품을 지급해 참가자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다.&lt;br&gt;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산악 브랜드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6f69d2e320c&quot; src=&quot;/content/image/2026/03/10/20260310500555.jpg&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5년 장수 산악레저 캠핑 페스티벌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사진제공=장수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캠핑·트래킹 결합…체류형 관광 확대&lt;br&gt;장수방화동자연휴양림에서 열린 산악레저 캠핑페스티벌은 장수 산악관광이 체류형 관광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lt;br&gt;3일 동안 진행된 행사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 400여 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캠핑과 트래킹, 숲 체험, 공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장수의 자연을 체험했다.&lt;br&gt;특히 방화폭포와 데크로드를 잇는 가족형 트래킹 코스는 난이도가 낮아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기 좋은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lt;br&gt;행사에서는 지역 관광지와 연계한 ‘장수 도장깨기 투어’도 운영됐다. 누리파크와 논개사당, 장수 5일장을 연결한 관광 프로그램은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지역 상권을 방문하도록 유도했다.&lt;br&gt;장수군은 캠핑과 트래킹, 관광을 결합한 체류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관광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6f78cde320e&quot; src=&quot;/content/image/2026/03/10/20260310500556.jpg&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제5회 장수 한우랑 사과랑 전국 자전거대회(MTB) 참가선수들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사진제공=장수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60km MTB 코스…산악자전거 특화지구 추진&lt;br&gt;장수의 산악지형은 MTB 라이딩에도 적합하다. 승마로드의 메타세쿼이아길과 장안산 임도를 연결한 약 60km 코스는 자연형 산악자전거 코스로 평가받고 있다.&lt;br&gt;지난해 열린 ‘장수 한우랑 사과랑 전국 MTB대회’에는 약 600명의 라이더가 참가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lt;br&gt;장수군은 민관협력 지역상생협약 사업의 일환으로 2026년까지 약 24억 원을 투입해 MTB 전용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lt;br&gt;난이도별 라이딩 코스와 웰컴광장, 안전시설 등이 조성되면 장수는 산악자전거 특화 관광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7065e36321a&quot; src=&quot;/content/image/2026/03/10/20260310500562.jpg&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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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훈식 장수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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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인터뷰] 최훈식 장수군수&lt;br&gt;“장수군의 산악관광은 단순히 행사를 많이 여는 것이 아닙니다. 장수의 산과 숲, 계곡이 지닌 자연의 흐름을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과 연결하는 과정입니다.”&lt;br&gt;최훈식 군수는 장수군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산악관광도시 전략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lt;br&gt;장수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관광과 산업, 생활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지역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lt;br&gt;최 군수는 장수의 산악레저 콘텐츠가 서로 다른 종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lt;br&gt;“트레일러너는 능선을 따라 숲을 달리고, MTB 라이더는 같은 산줄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체험합니다. 캠퍼들은 숲속에서 머물며 자연을 더 느리게 경험하죠. 이렇게 다양한 활동이 서로 이어지면서 장수의 산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대한 아웃도어 무대가 됩니다”&lt;br&gt;그는 산악관광을 단발성 행사나 이벤트가 아닌 미래 발전 전략으로 바라보고 있다.&lt;br&gt;트레일빌리지 조성과 민관 협력, 장수형 산악레저 상품 개발, 지역경제와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관광과 정주, 산업이 연결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lt;br&gt;최 군수는 “장수가 지향하는 국제산악관광도시는 대규모 개발이 중심이 아니다”라며 “자연과 주민의 환대, 청년의 참여, 민간 브랜드와 지역 문화가 어우러지는 장수형 산악 생활권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lt;br&gt;이어 “산악관광의 궁극적인 방향은 장수를 찾는 사람들이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자연을 함께 즐기고 머무는 생활 인구가 되는 것”이라며 “장수의 산과 숲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의 샤모니’ 국제산악관광도시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lt;br&gt;최 군수는 “장수의 자연은 이미 준비돼 있다”며 “이제 그 자연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일만 남았다”고 장수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lt;br&gt;현재 장수군은 산악레저와 관광,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광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lt;br&gt;자연과 사람,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산악관광 전략이 ‘한국의 샤모니’라는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lt;/p&gt;
&lt;p&gt;장수=이재진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장수군이 풍부한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국제산악관광도시 도전에 나서고 있다. 해발 1,000m 이상의 장안산과 팔공산을 품은 장수군은 전체 면적의 약 75%가 산지로 이루어진 전북특별자치도 동부 대표 산악지역이다.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며 깊은 숲과 능선,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군은 이러한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산악관광 활성화에… ]]></description>
			<pubDate>Tue, 10 Mar 2026 18:22:5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이재진</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309500115</guid>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김낙철 역사(金洛喆歷史)·김낙봉 이력(金洛鳳履歷)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0950011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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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9/20260309500109.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0bb4c282a4c&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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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낙철역사 1894년 4월 1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9/2026030950011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0bb948f2a4e&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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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낙철 역사 1895년 1월 3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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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김낙철 역사(金洛喆歷史)&lt;br&gt;전라도 부안의 접주 김낙철(1858∼1917)이 1890년 6월 7일(이하 음력) 동생 김낙봉과 함께 동학에 입도한 이래 1917년 12월 14일까지 일기 형식으로 남긴 자전적 기록이다.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있으며, 일기 형식이기는 하지만, 매일의 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동학이나 천도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상황이 있을 경우에만 기록하고 있다. 분량은 모두 38면이다.&amp;nbsp;&lt;br&gt;김낙철·김낙봉 형제의 본관은 부안이다. &amp;lt;김낙봉 이력&amp;gt;의 1890년 기록에 따르면 김낙철의 집안은 1,000년이 넘게 부안에서 대대로 살아온 명문고족[盛門高族]이었다. 이전 시기의 집안 내력은 상세히 알 수 없으나, 5대 동안 독자로 내려오다가 그의 부친 대에서 형제가 출생하였으며, 이 형제가 맨손으로 집안을 이루어 몸소 수만 환(圜)의 재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amp;lt;김낙철역사&amp;gt;에도 역시 자신이 부자였음을 밝히고 있다.&lt;br&gt;&amp;lt;김낙철 역사&amp;gt;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다른 자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낙철은 1890년 6월 7일 동생 낙봉과 함께 동학에 입도하였다. 열흘 뒤인 6월 17일에는 동생 낙주(洛柱)가 종제(從弟)인 낙정(洛貞)·낙용(洛庸)과 함께 입도하였다. 김낙철 등은 1890년 7월부터 포덕(布德)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891년 3월에는 포교한 신도가 몇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숫자의 신빙성 여부를 떠나 김낙철 형제 휘하 동학교도들의 규모가 적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정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낙철 형제가 부안 일대에서 전봉준과 손화중이 이끌던 동학농민군 주력부대와 부안 군수 사이에서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amp;nbsp;&lt;br&gt;김낙철과 낙봉 형제는 입도 초기부터 제2세 교조 최시형을 자주 찾아보고 직접 모시기도 하는 등 교단 내에서도 만만찮은 위상을 확보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1893년 2월 광화문 복합상소 때는 동생 낙봉만 참여하였으며, 이때 김낙철은 전라도 도도집(都都執=도집강)을 맡고 있었다. 이 무렵부터 각 지역에서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지만, 김낙철은 큰 문제 없이 포교를 이어갔다고 한다.&lt;br&gt;&amp;lt;김낙철 역사&amp;gt;에는 1894년 3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교단 측의 대응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김낙철은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당시 전봉준에 대해 “고부 전봉준이 민요(民擾)의 장두(將頭)로서 고부 경내의 인민을 선동한다는 말이 들리므로, 은밀히 그 속을 탐문해 보았더니 외면은 민요의 장두이나 내면은 스스로 동학의 두목이라 부르며 다른 사상을 품고 있었다.”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동생 낙봉을 최시형에게 보내는데, 최시형은 “저 봉준은 교인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니, 절대 상관하지 말고, 몰래 각 접(接)에 기별해서 모두 지휘에 따라 봄을 기다리라.”고 비밀리에 분부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김낙철은 이러한 분부 내용을 은밀히 각 접에 알리고 수도(修道)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봉준이 고부성을 무너뜨린 뒤 각 처의 “무뢰배”가 전봉준과 김개남의 포(包)에 몰려들었고, 부안까지도 위태롭게 되었다. 이때 부안 군수 이철화(李哲和)가 김낙철에게 “부안성을 지켜 외적(外敵)을 막아 달라”고 요청하자 4월 1일에 교인 수백 명과 함께 서도(西道) 송정리(松亭里) 신씨(辛氏)네 재각(齋閣)에 도소(都所)를 설치하였다. 동생 낙봉도 신소능(申少能)과 함께 부안 줄포(茁蒲)에 도소를 설치하여 타 지역 농민군을 방어하였으며, 이에 대해 온 고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lt;br&gt;그러나 12월 12일 김낙철과 낙봉 형제 모두 나주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의 지시를 받은 부안군수에 의해 체포되었다. 12월 23일 경군(京軍)과 일본군 30여명에 의해 압송되어 1895년 1월 3일에 나주 초토영(招討營)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김낙철 형제는 함께 구금된 농민군 32명과 함께 엄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월 6일 다른 농민군 대신 잡혀 온 3명은 석방되었고, 나머지 29명 가운데 김낙철 형제를 제외한 27명은 모두 포살되었다. 이 무렵 나주 초토영에는 보성군수 유원규(柳遠奎)과 장흥의 이방언(李方彦)이 갇혀 있었으며, 전봉준과 손화중은 그 전날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사실 등을 기록해두고 있다.&amp;nbsp;&lt;br&gt;김낙철 형제도 그로부터 6∼7일 뒤 서울로 압송되어 진고개[泥峴] 일본인 순사청(巡査廳)에 갇혀 조사를 받은 뒤 다음 날 감옥소에 들어갔다. 이때 서울 감옥소에는 성두한(成斗漢)이 수 백명의 농민군과 함께 옥에 갇힌 지 여러 날이 되었다고 했고, &amp;nbsp;손화중·전봉준·최경선(崔景善) 등이 갇혀 있었으며, 전봉준은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김낙철 형제는 김방서(金芳瑞)·이방언 등과 함께 3월 21일에 풀려나 3월 29일 한밤중에 몰래 부안(扶安) 인근의 갈촌(葛村)에 도착, 4월 4일 한밤중에 동생 낙봉(洛鳳)과 함께 낙봉 집으로 가서 곁방에 숨었다. 전봉준·손화중·최경원·김덕명 등이 체포된 뒤 나주에 구금되고 서울로 압송된 사정과 전봉준이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 성두한이 구금되어 있던 사실, 장흥 동학농민군 지도자 이방언이 체포되어 나주 초토영에 구금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된 뒤 이듬해 3월 21일 석방되기까지의 경과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후에도 부안 동도면 신월리의 친족 집에 토굴을 파고 고초를 겪으며 10개월 간 은신하여 생활한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 각지로 피신한 농민군들의 참상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amp;nbsp;&lt;br&gt;&amp;lt;김낙철 역사&amp;gt;의 원본은 익산에 거주하던 김낙철의 외손녀가 보관해 왔으며 천도교 중앙총부 자료실에는 그 사본이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9/20260309500111.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0bc06262a5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낙봉 이력 첫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9/20260309500112.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0bc40532a5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낙봉 이력 1894년 4월 3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김낙봉 이력(金洛鳳履歷)&lt;br&gt;&amp;lt;김낙봉 이력&amp;gt;은 1890년 부안에서 형 낙철과 함께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체험한 김낙봉(1860~1937)이 1937년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회고 형식으로 남긴 자전적 기록이다. 표지는 없으며, 본문 첫 장에 “金洛鳳履歷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는 이 자료는 한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 있고, 모두 127면이다. &amp;lt;김낙봉 이력&amp;gt;의 내용은 대부분이 앞에 소개한 &amp;lt;김낙철 역사&amp;gt;와 중복되지만,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amp;nbsp;&lt;br&gt;우선 김낙봉은 1893년 2월 교조 최제우에 대한 포교의 자유를 요구한 광화문 복합상소 때는 소수인 박광호(朴光浩), 제소(製疏) 손천민(孫天民) 등과 함께 참여하였고, 1893년 3월 보은 장내리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가 해산하라는 명령을 듣고 집에 돌아왔음을 기록해두고 있다.&amp;nbsp;&lt;br&gt;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형 김낙철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곧 “전봉준이 자신의 아버지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손에 죽은 일을 보복하기 위하여 민란을 일으켰다가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무장군(茂長郡)에 사는 손화중을 움직여서 큰 난리를 일으키려는 기미를 보고 마음과 정신이 두려웠다.”고 하였다. 또 형 김낙철의 편지를 들고 청산(靑山)의 문암리(文岩里)에 있던 대신사 최시형을 찾아 그로부터 “이것도 시운(時運)이어서 금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너는 형과 상의하여 접의 내부를 정중히 단속하고 숨어지내는 것을 위주로 하라‘”는 답신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때 최시형으로부터 동학 교단의 간부인 6임의 첩지(牒紙) 4,000여 장을 받았다고도 하였다.&amp;nbsp;&lt;br&gt;한편 김낙봉은 돌아가려는 최시형이 “서장옥(徐章玉)이 진산군(珍山郡)의 방축점(坊築店)에 회소(會所)를 마련하고 전봉준과 호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날이 저물기 전에 해산을 안 하면 큰 재앙이 대두할 것이다. 건장한 심부름꾼을 시켜 빨리 전하라”고 한 지시를 받고 진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김낙봉은 진산 농민군의 기세에 눌려 최시형으로부터 받은 지시를 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최시형이 “시운이라 어찌 할 수가 없으니 너도 빨리 내려가서 뒤에서 호응하라 했다&quot;고 거짓말을 전달한 후 도망하듯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진산의 농민군이 김낙봉이 떠난 다음날 금산군의 포군(砲軍)에게[이때 방축점의 농민군은 행상 김치홍(金致洪), 임한석(任漢錫) 등이 이끄는 행상과 읍민 1,000명에 의해 114명이 죽고 나머지는 해산하였다-필자]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도 기록해두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초기 동학교단의 대응과 진산 농민군의 활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또한 4월 3일 전봉준과 손화중 등이 포병 4,000여 명을 인솔하여 부안으로 들이닥쳐 군수 이철화를 잡아 꿇어앉히고 칼을 빼어 목을 쳐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 이때 김낙철이 손화중과 협의하여 이철화가 참혹한 화를 면하게 된 점 등을 기록하고 있다.&amp;nbsp;&lt;br&gt;&amp;lt;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amp;gt;에는 전체 내용 가운데 김낙봉이 동학에 입도하는 1890년부터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체포되는 1898년까지의 내용이 실려 있다. &amp;lt;김낙봉 이력&amp;gt;의 원본은 전주에 거주하는 증손자 김문철(金文哲)씨가 소장하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9/20260309500113.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d0bd5c6e2a5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배항섭(전 성균관대 교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김낙철 역사(金洛喆歷史) 전라도 부안의 접주 김낙철(1858∼1917)이 1890년 6월 7일(이하 음력) 동생 김낙봉과 함께 동학에 입도한 이래 1917년 12월 14일까지 일기 형식으로 남긴 자전적 기록이다.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있으며, 일기 형식이기는 하지만, 매일의 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동학이나 천도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상황이 있을 경우에만 … ]]></description>
			<pubDate>Mon, 09 Mar 2026 12:59:57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307500118</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가려운 곳 긁어주는 든든한 동료, 전북 여성의 자부심 깨울 것”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30750011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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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3/07/20260307500116.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c8c338cf2614&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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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명숙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이 지난 3일 재단 원장실에서 전북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허 원장은 이날 전북여성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재단의 새로운 역할과 비전을 강조했다. /사진=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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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오랫동안 전북 여성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봐 온 허명숙 원장에게 ‘여성’과 ‘가족’은 단순한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늘 마음이 쓰이는 이웃의 얼굴이었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할 삶의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고민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길을 찾으려 애써온 시간들. 그 진심은 이제 전북여성가족재단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지 이제 막 두 달. 아직은 ‘기관장’이라는 직함이 조금 낯설다고 웃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현장 곳곳을 향해 있다. 도민들에게 거창한 이름이 아닌,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조용히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마음에 담고 있다. 전북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떠올리면서다. 지난 3일,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실에서 허 원장을 만나 그가 그리고 있는 재단의 미래와 그 속에 담긴 진심을 들어봤다.&lt;/p&gt;
&lt;/div&gt;
&lt;p&gt;&lt;strong&gt;-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2개월, 어떻게 보내셨나요?&lt;/strong&gt;&lt;br&gt;“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취임하자마자 도의회 업무보고를 마쳤고, 지금은 경영평가보고서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기관장이라는 자리가 처음이다 보니 매일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방향을 잡기 위해 애쓰는 중입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제가 가장 먼저 들여다본 것은 재단 식구들의 마음이었어요. 직접 들어와 보니 직원들이 짊어진 업무의 무게가 상당하더라고요. 요즘은 ‘나부터 내 몫을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원장께서 생각하는 ‘내 몫’이란 어떤 의미인가요?&lt;/strong&gt;&lt;br&gt;“제가 중심을 잡고 조직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조직이 안정돼야 직원들이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고, 그 에너지가 전북여성들에게도 전달될 테니까요. 여성들이 재단을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기틀을 닦는 것이 저의 첫 임무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전북여성가족재단으로 출범하며 기능이 대폭 확장됐습니다. 재단의 새로운 정체성을 무엇이라 보십니까?&lt;/strong&gt;&lt;br&gt;“재단 출범은 정책의 ‘머리(연구)’와 ‘손발(실행)’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가장 공들이는 부분은 이 구조를 활용해 일상에서 체감하는 성평등 전북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민들이 일상 속에서 ‘세상이 참 평등해졌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재단은 전북 여성과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성과가 쌓이다 보면 재단은 전북 여성들이 어디서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성평등 지수가 높아진 전북은 지역 균형 발전의 표본이 될 것입니다. ‘재단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lt;/p&gt;
&lt;p&gt;&lt;strong&gt;- 청년 여성들의 지역유출이 심각합니다. 원장님이 구상하시는 ‘여성이 머물고 싶은 전북’은 어떤 모습입니까?&lt;/strong&gt;&lt;br&gt;“청년 여성들이 지역에 머문다는 것은 ‘이곳에서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고용과 주거 같은 삶의 기본 영역에 성평등한 관점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단순히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조화로운‘성평등한 일자리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성평등이 잘 구현된 사회일수록 출산율과 행복지수가 높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재단은 전북이 그런 매력적인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토양을 바꾸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lt;/p&gt;
&lt;p&gt;&lt;strong&gt;- 경력보유여성 4만 명 시대입니다. 재단 새일센터의 전략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lt;/strong&gt;&lt;br&gt;“그동안 경력단절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교육 부족’으로만 치부해 온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시대에 과거 방식의 단순 반복형 일자리는 금세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일센터를 단순 취업 알선 창구를 넘어 여성들의 인생 2막을 설계해주는‘경력재설계 플랫폼’으로 혁신하고 있습니다. AI(인공지능)나 SW(소프트웨어) 강사 양성과정 같은 고부가가치 전문 교육을 강화하고, 기업의 수요를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매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취업률이라는 숫자보다 고용 유지율입니다. 취업 후 6개월 이상 현장에서 잘 적응하고 성장하는지를 끝까지 살피는 사후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전북 여성들이 단기 근로자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전문가로 대우받도록 돕겠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전북의 1인 가구 비중이 38.2%에 달합니다. 변화하는 가족형태에 대한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요?&lt;/strong&gt;&lt;br&gt;“가족 풍경이 이미 크게 변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형태의 가족인가’를 따지기보다, 그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가족을 보호 대상이 아닌 당당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누구나 필요할 때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전북을 모두의 따뜻한 울타리로 만들겠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전북의 성평등 지수가 상향되었지만, 분야별 편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특히 개선이 시급한 지표는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갖고 계십니까?&lt;/strong&gt;&lt;br&gt;“성평등지수를 통해 확인한 전북 여성의 현실은 뼈아픕니다. 여성 고용점수는 전국 1위(87.4점)로 어느 지역보다 경제활동이 활발하지만, 정작 소득은 전국 최하위인 17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고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 있는 것이죠. 임기 내에 이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도를 비롯한 각 시군과 협력해‘성별임금격차 개선 조례’를 제정하는 등 실질적인 제도마련에 앞장서겠습니다. 단순히 통계 수치를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전북 여성들이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접받고 존중받는 문화를 지역의 새로운 상식으로 뿌리 내리겠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 직원들과의 소통 방식이 궁금합니다. 어떤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lt;/strong&gt;&lt;br&gt;“저는 포용적이고 다정한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향합니다. 직원들의 가려운 곳을 제때 긁어줄 수 있도록 ‘부서별 릴레이 점심 데이트’를 통해 격식 없는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 중입니다. 내부 구성원이 즐겁게 일하며 성장해야 그 에너지가 도민에게도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훗날 직원들에게는 ‘우리 마음을 참 잘 알아줬던 든든한 조력자’로, 도민들에게는 ‘전북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마지막으로 전북도민들께 전하는 약속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lt;/strong&gt;&lt;br&gt;“여전히 재단을 ‘문화강좌 듣는 곳’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재단은 여성과 가족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고민하고 5개 센터를 통해 현장에서 답을 풀어가는 ‘정책 실행기구’입니다. 이름만 거창한 재단이 아니라, 도민의 일상에 실속 있는 보탬이 되는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저희 재단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세요”&lt;/p&gt;
&lt;p&gt;△ 허명숙 원장은&amp;nbsp;&lt;br&gt;지난 1월 제2대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으로 취임한 허명숙 원장은 전주여고와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북일보에서 26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부국장을 역임했으며 전북연구원 여성정책연구소장과 전북대 입학처 입학사정관, 혁신개발원 객원교수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번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임기는 오는 2027년 12월까지다. &amp;nbsp;&lt;/p&gt;
&lt;p&gt;&lt;br&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오랫동안 전북 여성들의 삶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봐 온 허명숙 원장에게 ‘여성’과 ‘가족’은 단순한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늘 마음이 쓰이는 이웃의 얼굴이었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할 삶의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고민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길을 찾으려 애써온 시간들. 그 진심은 이제 전북여성가족재단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또 하나… ]]></description>
			<pubDate>Sat, 07 Mar 2026 23:54:3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24500377</guid>
			<title><![CDATA[ [팔도 건축기행] 전주대 ‘숲속 초막 셋’…뾰족한 지붕 선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긴장감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2450037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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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24.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6934d2028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 전경/전주 건축사협회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주대학교 교정의 가장 조용한 언덕을 오르면, 시선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녹슨 주홍빛의 조형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것이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이다. 건물의 모습은 마치 숲이 스스로 마련해둔 제단처럼 보인다. 이 건축은 존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다. ‘숲속 초막 셋’은 김준영 교수가 화려함 대신 침묵을 선택해 만든, 아주 작은 규모의 기도 같은 공간이다.&lt;br&gt;이 건축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뾰족하게 서 있는 지붕의 선이다. 각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은 공격적이라기보다 조용한 긴장을 만든다. 기도하는 사람이 몸을 곧게 세울 때의 집중과 닮아 있다. 외벽을 이루는 코르텐 강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색을 띠며 단단한 녹을 입는다. 재료가 낡아가면서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특성 덕분에, 이 작은 구조물은 성경 속 초막이 지닌 소박함과 일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작은 것 속에서 오히려 더 근원적인 세계가 보이는 방식이다. 강판이 접힌 선은 예리하지만, 숲과 만나는 순간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멀리서 보면 바람을 타고 내려앉은 새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걸린 천막 같다. 날카로운 형태가 자연 속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다.&lt;/p&gt;
&lt;p&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44.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77d7c002b7&quot;&gt;&lt;br&gt;안으로 들어가면 이 건축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삼각형으로 열린 내부는 기능을 채우기보다 시선을 비워두기 위해 존재한다. 천장의 꼭짓점에서 십자가가 가볍게 매달려 있는데, 벽에 고정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상징을 과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실내 사이를 잇는 얇은 선처럼 보인다. 십자가 아래로는 투명한 프레임이 놓여 있어 바깥 풍경이 그대로 실내로 들어온다. 안에서 무엇을 보라고 지시하지 않고, 숲과 하늘이 스스로 장면을 만들도록 여백을 남긴 구조다. 이곳에서 전시되는 것은 건축 자체가 아니라, 계절과 빛의 움직임이다. 이런 방식은 영적 공간이 가진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비워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 이 건축은 그 빈칸을 빛과 풍경으로 조용히 채운다.&lt;/p&gt;
&lt;p&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25.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6a3b9c0291&quot;&gt;&lt;br&gt;외부는 거칠다. 코르텐 특유의 붉은 녹이 표면에 스며들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비와 바람을 맞으며 생기는 이 색은 재료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벽면은 노출콘크리트 위에 찍힌 목재의 결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형태다. 콘크리트라는 단단한 재료 안에 나무의 흔적이 스며 있어, 표정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외부가 직선과 강한 표면으로 긴장을 만들었다면, 내부는 목재 결의 흐름 덕분에 자연스러운 이완을 유도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재료 사용의 차원이 아니라, 건축이 말하는 언어의 구조다. 밖에서는 스스로를 세우는 긴장감을, 안에서는 마음을 내려놓는 편안함을 경험하게 한다. 두 감정이 충돌하지 않고 조용히 균형을 이루는 방식, 바로 그 점에서 작은 건축이 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26.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6a7db1029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겨울 전경.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숲속 초막 셋’의 형식은 성경 마태복음 17장 4절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예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한 이 말은 서로 다른 세 존재가 한 순간을 공유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건축은 바로 이 순간을 공간으로 번역한다. 그래서 이 예배당은 세 개의 작은 집이 서로 이어진 구조를 가진다. 평면상으로는 분명히 나뉘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바라보면 경계는 흐릿하다. 독립과 연결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모호함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구성이다. 각 초막은 예수·모세·엘리야를 상징하며 각각의 방향성과 고유한 의미를 지니지만, 세 지붕은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가깝게 맞닿아 하나의 몸을 이룬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있고, 나뉘어 있지만 이어지는 구조다. 개별성과 공동체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은유는 소박한 6평 규모의 건축 안에서 겸손·순종·경건함 같은 초막의 상징을 조용하게 확장시킨다. 초막 셋은 그래서 작은 크기와 단순한 형태를 넘어, 한 순간을 함께 경험한 세 인물처럼 각자의 의미가 모여 하나의 깊은 울림을 만드는 건축이 된다.&lt;br&gt;밤이 되면 이 건축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야간 사진 속에서 빛은 강판 표면에 부드럽게 번지며, 종교적 상징보다 이 장소가 가진 고요한 기도를 먼저 느끼게 한다. 외부를 비추는 조명은 형태를 강조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건물이 숨을 쉬듯 존재하도록 만든다. 실내의 빛도 마찬가지다. 삼각형을 이루는 구조의 가장자리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조명은 공간을 밝히려고 애쓰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흐름을 따라간다. 빛이 공간을 지배하기보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침묵이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다. 어둠과 빛의 비율이 섬세하게 맞춰져 있어, 안에 서 있으면 호흡이 저절로 느려진다. 겉으로는 단순한 구조물이지만, 내부의 시간은 훨씬 더 깊고 조용하게 움직인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45.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7804d402b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내부전경.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이 작은 건축은 규모로는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오히려 크다. 눈앞의 형태를 넘어서, 건축이라는 활동 자체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건축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공간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 크기와 성스러움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숲속 초막 셋은 이런 질문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조용히 답을 보여준다. 크지 않아도 충분하다. 정직한 재료와 태도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풍경을 잘라내지 않고 품어낼 수 있을 때, 건축은 비로소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건축이 남기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하다. 작은 공간 속에서도 마음은 충분히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lt;br&gt;이 건축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공간 앞에서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된다면, 그 건축은 이미 제 역할의 절반을 한 것이다. 숲속 초막 셋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고, 시간을 적으로 두지 않으며, 숲과 사람 사이에서 아주 작은 숨처럼 자리를 잡는다. 이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건물의 것이 아니라, 바람과 빛,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내면이다. 작은 지붕 아래에서 건축은 다시 본질을 묻는다. 나는 무엇을 치유하고, 무엇을 회복시키는가. 그 질문이 조용히 오래 남는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3/2026022350043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896ad8c9029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준영 건축가.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김준영 건축가/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전북특별자치도 총괄건축가&amp;nbsp;&lt;/p&gt;
&lt;p&gt;김준영 교수는 건축을 ‘형태의 결과’가 아니라 삶과 시간,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건축가다. 그에게 건축은 눈에 보이는 완성보다, 만들어지는 동안의 태도와 사용되는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서울대학교에서 해양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자연의 질서와 구조적 사고를 익혔고, 해군 학사장교로 복무하며 분석과 책임, 공동체의 감각을 몸으로 배웠다. 제대 후에는 건축시공 실무를 통해 현장의 구조와 물성을 경험했다.&lt;br&gt;2001년 미국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에서 건축설계를 다시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에 들어섰고,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에서 활동하며 설계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 HOK Dallas에서 참여한 삼성엔지니어링 서울 본사 및 연구소 프로젝트는 AIA Dallas 우수건축으로 선정되었다. 이 해외 경험은 이후 그의 건축관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lt;/p&gt;
&lt;p&gt;그는 건축을 기술·예술·공공성·경험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종합적 실천으로 바라본다. 2012년 귀국 후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해 건축설계 교육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2017년에는 건축학과의 5년제 건축학전문교육 인증을 이끌었으며, 기획처 부처장, LINC 창의인재양성센터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과 지역을 잇는 역할을 맡아왔다.&lt;br&gt;연구의 중심에는 저층주거지의 공존과 재생, 지역 건축자산의 보존과 활용, 학교의 새로운 교육환경 설계(Home Base 프로젝트)가 있다. 이는 모두 지역의 삶을 존중하는 건축이라는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수렴된다. 2019년, 전주대학교 교정에 조성한 작은 기도공간 ‘숲속 초막 셋’은 그의 작업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6평 남짓한 이 작은 건축은, 규모를 줄이는 대신 사유의 깊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김준영 교수는 이 작업을 통해 “건축가로서 마음의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전라북도 건축문화상 금상을 수상했다.&lt;br&gt;&amp;nbsp;&lt;/p&gt;
&lt;p&gt;이종호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대학교 교정의 가장 조용한 언덕을 오르면, 시선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녹슨 주홍빛의 조형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것이 김준영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작은 예배당 ‘숲속 초막 셋’이다. 건물의 모습은 마치 숲이 스스로 마련해둔 제단처럼 보인다. 이 건축은 존재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다. ‘숲속 초막 셋’은… ]]></description>
			<pubDate>Tue, 24 Feb 2026 15:42:1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이종호</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25500225</guid>
			<title><![CDATA[ [천년의 종이, 전북의 내일을 쓰다] 지역의 물·흙·나무가 만든 종이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2550022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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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한지는 원료와 색채, 염색 방식, 후가공, 용도와 쓰임, 크기와 두께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세분된다. 이 가운데 생산지는 한지의 종류와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선자지(扇子紙), 간장지(簡壯紙), 유둔지(油芚紙), 태지(苔紙), 죽청지(竹靑紙), 화선(畵宣), 농선지(籠扇紙), 상화지(霜花紙) 등 도내에서 탄생한 한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종류가 월등히 다양하다. 왜 이처럼 다채로운 한지가 전북에서 꽃피울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짚어본다.&lt;/p&gt;
&lt;p&gt;한지는 기술로만 만들어진 종이라기보다 자연 속에서 형성된 결과물에 가깝다. 종이를 뜨는 방법 이전에 종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먼저 여러 땅에 자리 잡았다. 그 중 물과 흙, 나무, 그리고 사람의 생활 구조가 맞물리며 전북은 오랜 시간 한지 생산의 중심지로 기능해 왔다. 이처럼 전북의 한지는 공예품이기 이전에 지역 환경과 산업 구조가 함께 빚어낸 생활 기반 산업이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5/20260225500215.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9341d223097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시 왜망실에 위치한 닥나무 재배지/사진=전북일보 DB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주와 완주를 둘러싼 노령산맥 줄기는 이러한 배경의 출발점이다. 이 일대는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풍화된 토양이 넓게 분포해 배수가 원활하고 완만한 구릉 지형을 이룬다. 산지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모이며 수분 조건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닥나무는 과습과 건조에 모두 약하지만 배수가 좋고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환경에서는 섬유가 길고 질기게 성장한다. 자연스럽게 양질의 원료를 지역 안에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lt;/p&gt;
&lt;p&gt;윤지환 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전주·완주 지역을 둘러싼 노령산맥 줄기는 배수가 잘되는 토양과 완만한 구릉지를 형성해 양질의 닥나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제공했다”며 “철분이 적은 전주천과 만경강 수계 역시 한지의 밝은 색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주는 전라감영 소재지로 행정 수요가 많았고, 농한기 노동력이 결합되면서 한지 생산이 생활 산업 형태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lt;/p&gt;
&lt;p&gt;전북 지형의 또 다른 특징은 산지와 바다가 가까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산맥을 타고 이동하며 형성하는 적절한 습도와 남부 특유의 온화한 기후가 결합해 닥나무 생장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전주·완주·진안·장수 일대에 형성된 완만한 구릉과 침식 분지는 다양한 수계를 집중시키며 풍부한 수량을 확보하게 했다. 이러한 지형·기후 조건은 닥나무 재배에 필요한 요소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5/20260225500213.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933fa1e5096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천/사진=전북일보 DB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종이의 품질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물이었다. 종이는 물 위에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닥섬유를 풀어 종이를 뜨는 과정에서 물의 성질은 색감과 내구성을 결정짓는다. 전주천과 만경강 수계는 노령산맥을 이루는 화강암 계열 암석을 거치며 철분 등 불필요한 미네랄 성분이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 철분 함량이 낮은 물은 종이 변색을 줄이고 밝은 색을 유지하는 데 유리해 전주 한지가 오랫동안 ‘곱고 질긴 종이’로 평가받는 배경이 됐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5/20260225500214.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93404d99097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라감사가 행정∙사법∙군사의 업무를 총괄했던 선화당의 복원된 현재 모습/사진=전북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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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그러나 자연 조건만으로 생산 중심지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전북, 특히 전주는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설치된 행정 중심지이자 경제·문화 거점이었다. 행정 문서와 기록, 출판에 필요한 종이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국가는 필요한 종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주 지역 생산을 관리했다. 전주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설치됐던 점, 왕실 부채 생산을 담당했던 선자청이 운영됐던 사실도 종이 수요를 꾸준히 유지한 배경으로 꼽힌다. 도시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권력과 문화가 집중된 생산의 공간으로 기능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5/20260225500216.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9342fa84097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사고/사진=전북일보 DB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이 같은 행정 수요는 농업 구조와 맞물리며 한지 생산을 생활 산업으로 확산시키는 요인이 됐다. 전북은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벼농사가 활발했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활용 가능한 노동력이 풍부했다. 농민들은 농사와 병행해 종이 생산에 참여했고 이는 특정 장인 집단 중심이 아닌 마을 단위 산업 형태로 발전했다. 원료 재배와 생산, 소비가 동일 공간 안에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한지는 지역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됐다.&lt;/p&gt;
&lt;p&gt;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기반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값싼 수입 닥나무 유입으로 지역 재배가 위축되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수질 관리 비용이 증가하면서 생산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지던 원료 재배와 생산, 소비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자연과 산업, 생활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던 구조가 점차 분리되고 있는 셈이다.&lt;/p&gt;
&lt;p&gt;이에 윤 교수는 한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원료 공급을 넘어 문화적 수요 기반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그는 “전주시와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가 닥나무 재배지를 확대하고 장인들에게 원료를 공급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며 “전주 장인들이 생산한 한지가 궁궐과 종묘 보수에 활용되는 것처럼 공공 수요 기반도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lt;/p&gt;
&lt;p&gt;이어 “앞으로는 전주가 전통문화의 중심 도시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지 수요를 획기적으로 늘릴 문화생태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통 창호 개발, 출판·미술 창작 지원, 체험 관광과 이벤트 활성화 등이 한지 산업과 문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lt;/p&gt;
&lt;p&gt;전현아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한지는 원료와 색채, 염색 방식, 후가공, 용도와 쓰임, 크기와 두께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세분된다. 이 가운데 생산지는 한지의 종류와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선자지(扇子紙), 간장지(簡壯紙), 유둔지(油芚紙), 태지(苔紙), 죽청지(竹靑紙), 화선(畵宣), 농선지(籠扇紙), 상화지(霜花紙) 등 도내에서 탄생한 한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 ]]></description>
			<pubDate>Wed, 25 Feb 2026 14:33:58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전현아</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22500431</guid>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lt;동비토론(東匪討論)&gt;과 &lt;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gt;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2250043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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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2/20260222500427.jpg&quot; storyid=&quot;0a000b0d-9c7b-1fb7-819c-84eb8cf9045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동비토론 첫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2/20260222500428.jpg&quot; storyid=&quot;0a000b0d-9c7b-1fb7-819c-84ebc1c7045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동비토론 1894년 11월 4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lt;동비토론(東匪討論)&amp;gt;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있던 이회원(李會源)이 강원도 지역 동학농민군 진압 &amp;nbsp;문서를 모아 놓은 것이다. 동학농민군 진압과 관련한 감영(監營), 순영(巡營), 의정부(議政府) 등의 상급 기관의 관문(關文) 및 전령(傳令), 이들에게 올리는 강릉부의 첩보(牒報), 그리고 주변 관아를 상대로 보낸 관문(關文) 및 전령(傳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문서들을 &amp;lt;동비토론(東匪討論)&amp;gt;으로 묶은이는 이회원으로 추정된다. 그의 생몰년대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amp;lt;선원속보(璿源續譜)&amp;gt;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권39(卷之三十九)에 따르면 1830년(순조 경인) 4월 19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효령대군파 15대손이다. 족보에 따르면 생원(生員)에 급제하고 음승지(蔭承旨)를 거쳐 소모사(召募使)를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회원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관동소모사(關東召募使)를 역임하였으므로 이 족보에 나온 인물임이 확실하다.&amp;nbsp;&lt;br&gt;이회원은 그의 조상인 효령대군 11대손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강원도 강릉에 정착하여 선교장(船橋莊)을 건립한 이래 1830년 출생하여 1844년(헌종 10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1883년(고종 20년) 순창원(順昌園) 수봉관(守奉官)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86년 사헌부 감찰, 이듬해에 의금부 도사와 공조좌랑을 지냈으며, 이후 상서원(尙瑞院) 별제(別提) 등의 관직을 거쳤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에는 당상관인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고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제수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회원을 일컬어 ‘전승지(前承旨)’라고 하는 것이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2/20260222500429.jpg&quot; storyid=&quot;0a000b0d-9c7b-1fb7-819c-84ec42d1046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임영토비소록 첫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2/2026022250043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7b-1fb7-819c-84ec74110463&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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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토비소록 1894년 9월 6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lt;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amp;gt; 또한 동학농민군 토벌을 지휘했던 이회원의 관련 기록이다. 여기서 임영(臨瀛)은 강릉의 별칭이다. 그런데 작성자가 불분명하다. 작성자가 선교장 주인 이회원이라는 설과 이회원이 아니라 그의 지인일 것이라는 설로 엇갈렸다. 실제로 &amp;lt;임영토비소록&amp;gt;을 읽어보면 이회원을 ‘본읍(本邑) 정동면(丁洞面) 선교(仙橋)의 이(李) 승지(承旨)’로 지칭하여 작성자 본인과 이회원을 구분짓고 있어 이회원이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amp;nbsp;&lt;br&gt;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자료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회원이 본인을 3인칭으로 설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자료의 모두(冒頭)에는 이단의 성행을 개탄하고, 동학을 두고 요망한 술수이며 재물을 갈취하려는 방도로 규정하는 사설이 길게 실려 있다. 아무래도 강릉 지역 동학농민군 토벌의 총 책임을 맡았던 이회원 본인이 아니면 작성하기 어려운 사설로 보인다.&amp;nbsp;&lt;br&gt;다음으로 1894년 8월 20일 이래 강릉 및 주변 지역에서의 동학농민군 활동 및 토벌에 대한 서술이 보이는데 11월 차기석(車箕錫)과 박학조(朴學祚)를 처형하고 수급을 원주 순무영에 보내어 관동 일대의 동비(東匪) 평정을 마무리 짓는 내용이 길게 이어진다. 여기서도 이회원은 ‘전승지(前承旨)’, ‘강릉부사(江陵府使)’만으로 지칭되고 이회원 본인이라고 서술되지 않는다.&amp;nbsp;&lt;br&gt;그런 다음에 “어떤 객(客)이 돈천재(沌泉齋)를 지나다 주인(主人)이 쓴 토비소록(討匪小錄)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실록입니다’라고 말하니 주인이 쳐다보고 탄식하여 말하는” 문답이 이어진다. 여기서 돈천재(沌泉齋)는 이회원이 기거하는 선교장에 있는 활래정(活來亭)의 별호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미 토비소록(討匪小錄)을 언급하였다는 것은 문답 이전의 동학농민군 토벌 내용이 바로 &amp;lt;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amp;gt;임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의 문답은 “토비소록(討匪小錄)”, 즉 &amp;lt;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amp;gt;의 사족이라고 할 수 있다. 문답을 보면 문답의 돈천재 주인이 “내가 수령의 지팡이를 짚고서”라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돈천재 주인은 수령, 즉 강릉부사의 지팡이를 짚은 이회원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amp;lt;임영토비소록&amp;gt;의 작성자는 이회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amp;nbsp;&lt;br&gt;&amp;lt;통비토론(東匪討論)&amp;gt;이 강릉부사로 재직하던 이회원이 순영(巡營) 등 상급 기관 및 주변 관아와 주고받은 공문서를 엮은 것이라면, &amp;lt;임영토비소록(臨瀛討匪小錄)&amp;gt;은 그가 동학농민군 진압 과정에서 스스로 느낀 감정과 토벌 과정에 대한 자신의 서술, 그리고 객(客)과의 문답을 통한 자기 정당화를 담은 개인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자료를 동시에 검토하면 강원도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군의 활동 상황과 토벌 과정에 대하여 공문서를 통하여 드러나는 공식 기록과 당시 토벌의 책임을 맡았던강릉부사 이회원의 개인적 인식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lt;br&gt;이 두 자료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강원도 강릉 지역의 동학농민군 활동 및 이에 대한 진압 상황은 다음과 같다. 1894년 8월 20일부터 동학교도들이 강릉 대관령 서쪽 대화면(大和面)을 침범하여 대관령을 넘어간다고 큰소리쳤다. 이들은 “강릉의 어떤 부잣집은 우리들을 위해 술을 빚고 소를 잡아 저장하여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선교의 이 아무개는 우리를 해치려고 창검을 점고하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선교의 이 아무개’는 이회원을 지칭한다.&lt;br&gt;9월 4일에는 영월과 평창, 정선 등 5개 고을의 동학의 무리 수천 명이 강릉부사가 바뀌는 때를 엿보아 일제히 강릉 읍내에 들어와서 삼정(三政)을 바로잡을 것을 칭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다만 이들은 다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amp;nbsp;&lt;br&gt;이러한 가운데 10월 1일 이회원이 강릉부사에 제수되고 이후 관동소모사를 겸직하게 되었다. 이제 강릉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11월 2일 강릉 영서의 봉평(蓬坪) 등에 있던 동학농민군도 이미 토벌당하여 동학농민군 지도자 7명이 체포당하고 나머지 무리들도 모두 체포되었다. 더 이상 강릉을 공략할 수 없었던 동학농민군은 정선과 평창에 집결하였다.&amp;nbsp;&lt;br&gt;이에 대응하여 이회원는 양양(襄陽)과 삼척(三陟)에서 군정(軍丁)을 모집하였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平昌)에 속해 있는 봉평에서의 전투는 11월 4일에서 5일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 동학농민군이 패배하여 9명이 참수되었다. 한편 내면(內面)에는 강원도 중부 영서 내륙 동학교단의 중심지였던 홍천(洪川)에서 도소(都所)를 꾸리고 홍천 서석 풍암리 전투에서 패배하고 쫓겨온 차기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린(麒獜), 인제(麟蹄), 양양(襄陽), 간성(杆城) 등에 통문을 보내고 군호(軍號)로 동학농민군을 모아 봉평을 공략하고자 하였다.&amp;nbsp;&lt;br&gt;그러나 11월 9일 순영중군행진소(巡營中軍行陣所)가 정선(旌善)까지 진출하였다. 일본군도 정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정선의 동학농민군은 도망가서 흩어졌다. 이미 11월 7일 강릉에서 나온 포군이 순영 중군과 함께 정선읍으로 가서 동서로 나누어 동학농민군을 물리쳤다. &amp;nbsp;&amp;nbsp;&lt;br&gt;한편 차기석은 정선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내면에 있다가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1월 16일 무렵 관군이 내면 동학농민군 지도자 차기석과 오덕현(吳德玄), 그리고 집강 박석원(朴碩元) 등 3명을 사로잡은 보고가 도착하였다. 결국 11월 22일 차기석은 박학조와 함께 교장(敎場)에서 참수당하였고, 수급은 원주 순무영으로 보내졌다. 이로써 &amp;lt;임영토비소록&amp;gt;에 따르면 강원도 강릉 지역의 동학농민군 토벌은 사실상 일단락되었다.&amp;nbsp;&lt;br&gt;&amp;lt;임영토비소록&amp;gt; 말미에 있는 주인과 객(客)의 문답에 따르면 주인의 활동으로 인하여 “일본군이 동쪽으로 오는 형세를 모면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영동의 주민들이 안도할 수 있었다”는 객(客)의 질의가 나온다. 이는 이회원의 ‘밝은’ 지휘가 일본군의 영동 진입을 막은 점에서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행위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사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는 점에서 강릉부사 이회원과 일본군은 같은 입장이었고, 일본군의 영동 진입을 막기 위하여 동학농민군을 토벌하였다는 것은 나름 본인은 일본군도 막았다고 하는 군색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일본군을 경계한 점은 조선의 고을 수령으로서 최소한의 중심은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amp;lt;임영토비소록&amp;gt;은 “상(上)의 32년 을미(乙未) 국월(菊月) 하한(下澣) 돈천재(沌泉齋)에서 짓다”로 끝맺는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25/20260225500170.jpg&quot; storyid=&quot;0a000b0d-9c88-10b4-819c-932634c9091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유바다 고려대학교 교수
 &lt;/figcaption&gt;
&lt;/figure&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lt;동비토론(東匪討論)&gt;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있던 이회원(李會源)이 강원도 지역 동학농민군 진압 문서를 모아 놓은 것이다. 동학농민군 진압과 관련한 감영(監營), 순영(巡營), 의정부(議政府) 등의 상급 기관의 관문(關文) 및 전령(傳令), 이들에게 올리는 강릉부의 첩보(牒報), 그리고 주변 관아를 상대로 보낸 관문(關文) 및 전령(傳令… ]]></description>
			<pubDate>Sun, 22 Feb 2026 19:40:09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19500239</guid>
			<title><![CDATA[ 전북, 1400조 연기금의 땅 ‘대한민국 금융지도’ 다시 그린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1950023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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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4/2026021450000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7a690f9059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지난 12일 전북도청 도지사 접견실에서 세계 최대 수탁은행인 뉴욕멜론은행(BNY)과 금융산업 발전 방안 및 글로벌 협력 확대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가운데 김관영 지사(왼쪽)와 서봉균 한국대표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북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북에 자리 잡은 지 9년,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이끄는 ‘제3금융중심지’ 도전이 마침내 결승선 앞에 다다랐다.&amp;nbsp;&lt;/p&gt;
&lt;p&gt;그동안 3차례 대통령 공약에 이름을 올리고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전북은 포기 대신 인프라 구축과 글로벌 금융사 유치라는 묵묵한 준비를 택했다. 특히 민선 8기들어 금융중심지 조성을 위한 기틀이 단단히 다져지고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lt;/p&gt;
&lt;p&gt;뉴욕 월스트리트부터 국내 양대 금융그룹까지 러브콜에 응답하기 시작한 지금, 1400조 원 규모 연기금의 땅이 대한민국 금융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lt;/p&gt;
&lt;p&gt;△1400조 연기금의 땅, 미완의 금융생태계&lt;br&gt;2017년 2월, 약 14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전북 혁신도시에 둥지를 틀었다. 수도권을 떠나 호남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역사적 순간이었다.&amp;nbsp;&lt;/p&gt;
&lt;p&gt;전북은 국내 유일하게 거대 연기금 운용 기능을 품은 지역이 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융 생태계는 여전히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amp;nbsp;&lt;/p&gt;
&lt;p&gt;운용 기능과 금융산업 집적 사이의 구조적 단절이라는 숙제가 전북 앞에 놓인 것이다.&lt;/p&gt;
&lt;p&gt;민선 8기 김관영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amp;nbsp;&lt;/p&gt;
&lt;p&gt;그가 꺼내 든 해법은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었다. 서울이 종합 금융의 심장이고, 부산이 해양·파생 금융의 거점이라면, 전북은 자산운용과 농생명, 기후에너지라는 세 축을 엮어 차별화된 금융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다.&amp;nbsp;&lt;/p&gt;
&lt;p&gt;기존 금융중심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lt;/p&gt;
&lt;p&gt;전북 금융중심지의 꿈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지역 공약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이래, 2022년 윤석열 정부, 2025년 이재명 정부까지 세 차례 연속으로 대통령 공약에 반영됐다.&amp;nbsp;&lt;/p&gt;
&lt;p&gt;현실의 벽은 높았다. 2019년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는 추가 지정을 보류했고, 2023년 제6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에서도 전북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인프라 개선과 금융 모델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권고만 돌아왔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4/2026021450000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79f35bc059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3년 2월 22일 전라북도 금융도시 추진위원회가 출범한가운데,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북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좌절 앞에서 택한 ‘뚝심 행정’&lt;br&gt;번번이 무산되는 상황에서 전북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전북은 지적받은 약점을 하나씩 메우는 데 집중하며 뚝심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2021년에는 국민연금공단 제2사옥인 글로벌기금관을 준공하고, 금융빅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 같은 해 전북테크비즈센터가 문을 열었고, 2023년에는 금융혁신 공유오피스가 조성되며 금융기업의 근무 여건이 한층 개선됐다.&lt;/p&gt;
&lt;p&gt;제도적 기반도 차곡차곡 마련됐다. 김관영 지사는 전북자치도 출범에 맞춰 전북특별법에 금융산업 육성 특례 5개 조항을 반영했다. 입지보조금 50억 원 한도, 설비설치자금 30억 원 한도, 고용보조금과 교육훈련보조금까지 아우르는 촘촘한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했다.&amp;nbsp;&lt;/p&gt;
&lt;p&gt;지난해 8월에는 전국 최초로 핀테크 육성지구 지정을 이끌어내며 디지털 금융의 교두보를 확보했고, 같은 해 11월 한국핀테크지원센터 전북분원 유치에도 성공했다.&lt;/p&gt;
&lt;p&gt;인력 양성에도 공을 들였다. 기금운용 전문인력 130명을 배출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해 백오피스 인력 210명을 양성했다. 핀테크 벤처기업과 금융빅데이터 기업을 연간 12개사씩 키워내며 금융 혁신 생태계의 씨앗을 뿌렸다. 공약은 반복됐지만 실현이 요원해 보이던 시기, 김 지사는 “때가 오면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며 묵묵히 기반을 다졌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4/20260214500003.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7a1c704059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 금융중심지 연계 로드맵/전북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뉴욕 월스트리트부터 KB·신한까지, 금융권 러브콜&lt;br&gt;김관영 지사는 국내 기반다지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그는 직접 미국 뉴욕과 보스턴을 찾아 BNY멜론 본사와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전북의 가능성을 직접 설파한 것이다. 현지 금융 주재원들과의 네트워킹도 병행하며 국제 금융계에 전북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lt;/p&gt;
&lt;p&gt;그 결실은 숫자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과 협력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사무소 9곳이 전북에 둥지를 틀었다. 2024년에는 BNY멜론 전주사무소가 확장 이전하며 글로벌 금융기관의 존재감을 키웠다. 같은 해 6월에는 우리금융그룹, 국민연금공단이 전북자치도와 금융산업 육성 협력 협약을 체결하며 민관 협력의 틀을 다졌다.&lt;/p&gt;
&lt;p&gt;국내 대형 금융그룹들도 화답했다. 최근 KB금융그룹은 전북혁신도시에 ‘KB금융타운’을 조성해 총 250여 명의 인력을 상주시키겠다고 발표했다. KB증권과 KB자산운용 전주사무소, AI 기반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링크, KB손해보험 광역스마트센터까지 입점시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다. 신한금융그룹도 300명 이상이 근무하는 자본시장 핵심 거점을 전주에 구축하는 데 가세했다.&lt;/p&gt;
&lt;p&gt;양종희 KB금융 회장이 전주 출신이고,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임실 출신이라는 지역 연고도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김 지사의 끈질긴 설득과 체계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2월 중에는 도-KB금융-국민연금 간 업무협약 체결과 신한 금융허브 출범식이 예정돼 있어, 전북 금융 생태계는 한층 두터워질 전망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4/2026021450000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79fe51d0595&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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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영지사가 지난 4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만나 전북 제3 금융중심지 지정 방안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전북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마침내 던진 승부수,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로&lt;br&gt;올해 1월 29일, 전북도는 금융위원회에 금융중심지 지정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지난해 4월부터 9개월간 공들여 작성한 ‘전북 금융중심지 개발계획’이 안에 담겼다.&amp;nbsp;&lt;/p&gt;
&lt;p&gt;부처·전문가·유관기관 자문을 거치고, 도민설명회와 금융기관 간담회, 도의회 의견 청취를 진행한 뒤 도시계획위원회의 원안 가결을 끌어낸 결과물이다.&lt;/p&gt;
&lt;p&gt;주요 개발 계획으로는 혁신도시와 만성지구 일원 3.59㎢ 부지에 중심업무지구, 지원업무지구, 배후주거지구를 배치한다. 중심업무지구에는 전북국제금융센터와 금융혁신 클러스터 복합단지가 들어서고, 자산운용·농생명·기후에너지라는 세 특화 금융 영역을 키운다는 청사진이 담겼다.&amp;nbsp;&lt;/p&gt;
&lt;p&gt;새만금 해상풍력단지와 신공항 개발에 따른 금융 수요에 대응하고, AI 데이터센터의 제2 백업 거점으로 새만금을 육성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lt;/p&gt;
&lt;p&gt;전북이 금융중심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산운용, 리스크관리, 금융데이터 분석, 회계·법률 서비스까지 청년 선호도 높은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 목표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4/2026021450000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7a293cf059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 금융중심지 구역 조감도/전북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금융산업의 수도권 과밀로 지방의 일자리와 청년 인재 유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융중심지 지정은 단순 개발이 아닌 ‘지역소멸 대응형’ 국가전략 거점 구축이라는 게 전북도의 설명이다.&lt;/p&gt;
&lt;p&gt;금융위원회는 올해 제7차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평가단 구성과 현장 실사,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종 의결을 앞두고, 10년 가까이 달려온 전북의 여정이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lt;/p&gt;
&lt;p&gt;김관영 지사는 “국민연금이라는 세계적 자산이 전북에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한 금융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은 지역의 숙원이자 국가적 과제”라며 “그동안 쌓아온 인프라와 제도,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가 어우러져 마침내 제3금융중심지의 꿈을 현실로 만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이어 “전북 금융중심지는 청년들이 돌아오는 도시, 지역 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북에 자리 잡은 지 9년,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이끄는 ‘제3금융중심지’ 도전이 마침내 결승선 앞에 다다랐다. 그동안 3차례 대통령 공약에 이름을 올리고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전북은 포기 대신 인프라 구축과 글로벌 금융사 유치라는 묵묵한 준비를 택했다. 특히 민선 8기들어 금융중심지 조성을 위한 기틀이 단… ]]></description>
			<pubDate>Thu, 19 Feb 2026 14:15:39 +0900</pubDate>
			
				<category>정치</category>
				<category>정치일반</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백세종</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11500279</guid>
			<title><![CDATA[ [설 특집] 전주,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다 - ② 전주 관광타워복합개발사업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1150027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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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210.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af451d07dc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전북일보 자료사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옛 대한방직 부지, 멈춰 있던 시간 깨우다&lt;/p&gt;
&lt;/div&gt;
&lt;p&gt;전주서부신시가지 내 20년 넘게 활용되지 못했던 옛 대한방직 부지가 본격적인 개발 절차에 들어갔다. 녹슨 굴뚝과 노후 공장 건물이 자리하던 공간에 관광 타워와 주거·상업·문화·공공 기능이 결합한 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amp;nbsp;&lt;/p&gt;
&lt;p&gt;1970년대 조성된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은 한때 1000여 명이 근무하며 전북 섬유산업과 지역 제조업을 이끌던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섬유산업이 쇠퇴하고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공장은 문을 닫았다. 이후 도심 한복판의 거대한 공장 단지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장기간 방치됐다. 2000년대 이후 서부신시가지가 형성되며 주변은 빠르게 신도심으로 변화했지만, 대한방직 부지만은 공업지역 모습 그대로 남아 ‘도심 속 단절된 섬’으로 남았다.&lt;/p&gt;
&lt;p&gt;도심 한복판에 23만㎡가 넘는 대규모 부지가 수십 년 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는 사실은 도시 구조 측면에서 커다란 손실이었다. 단절된 공간은 주변 상권의 흐름을 가로막았고, 기반 시설 확충과 도시 재편의 기회 역시 제한해 왔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19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af12d6e7da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 관광타워복합개발사업 조감도 /전주 관광타워복합개발사업 조감도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주 대변혁 출발점의 신호탄&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지난 2017년 ㈜자광은 대한방직 부지를 1980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7년 만에 도시계획 변경 사전협상 대상지로 지정돼 2024년 12월 전주시와 사업 시행 협약을 체결하며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들어섰다.&lt;/p&gt;
&lt;p&gt;지난해 9월 ‘전주 관광타워복합개발사업’ 주택건설 사업계획이 승인되면서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총사업비 6조 40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의 상징은 470m 높이의 관광 타워 전망대로, 360도 파노라마 뷰로 설계돼 도심 한복판에서 새만금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전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관광 타워는 연간 3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기능하며, 전주시 관광산업 전반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lt;/p&gt;
&lt;p&gt;49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 3536세대와 200실 규모의 8층 호텔, 복합쇼핑몰도 2030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주거·상업·문화시설이 결합한 복합 공간이 형성되면 도심의 상시 유동 인구는 증가하고, 상권과 생활 인프라의 밀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그동안 유휴부지로 인해 단절됐던 생활권이 다시 이어지며, 정체돼 있던 도시의 흐름에도 새로운 활력이 더해질 것이다.&lt;/p&gt;
&lt;p&gt;이 사업으로 전주시는 용도지역 변경에 따른 토지가치 상승분을 공공기여로 환수해 총 2528억 원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1100억 원은 △홍산로 지하차도 개설 △홍산교~서곡교 언더패스 설치 △마전교 확장 △마전들로 교량 신설 △세내로 확장 △효자5동 주민센터 신축 등 교통망과 생활 인프라 확충에 투입된다. 나머지 1428억 원은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과 기반 시설 설치에 활용될 계획이다.&lt;/p&gt;
&lt;p&gt;이와 별도로 도로, 경관녹지, 근린공원, 공영 지하주차장 등 약 467억 원 규모의 시설이 무상 귀속되며, 360억 원이 투입되는 전주시립미술관은 건립 이후 전주시에 기부채납될 예정이다. 또한 ㈜자광은 지역사회 공공기여 증대를 위해 △교육 장려 △소외 계층 돌봄 △지역 문화 지원 △지역 경제 상생 등의 사업을 공사 준공 후 연간 25억 원 이상씩 20년간 자발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공공시설과 현금 환원을 합치면 총 3855억 원의 규모에 달한다.&lt;/p&gt;
&lt;p&gt;부지 개발은 생활 인프라 확충을 넘어 지역 경제 전반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대학교 경제연구소는 공사 기간 건설·장비·자재·숙박·식음 분야는 물론, 중소상인 중심의 소비 유발 효과까지 더해 연간 2조 5000억 원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사업 협약에는 개발사업 공사 시 지역업체 30% 이상, 공공시설 공사 시 50% 이상 참여를 명시해 지역 경제와의 직접적인 연결 구조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공사 기간 중 약 3만 개, 향후 복합시설 운영 단계에서는 약 3천 개의 상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주 관광 타워, 새로운 도심 관광 거점으로&lt;/strong&gt;&lt;/p&gt;
&lt;/div&gt;
&lt;p&gt;국내외 주요 도시들은 대형 타워를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사람과 자본이 순환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남산서울타워, 도쿄 스카이트리, 마카오 타워는 관광·상업·문화 기능을 집적해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주변 상권과 도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사례들은 초고층 타워가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lt;/p&gt;
&lt;p&gt;엣 대한방직 부지에 들어설 관광 타워 역시 전망대 관람을 중심으로 문화·상업·주거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 조성돼 방문객의 체류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인근 상권과 생활권으로 소비가 이어지는 구조로 계획됐다. 관광 수요가 특정 지점에 집중되지 않고 도심 전반으로 확장되며, 지역 경제 전반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lt;/p&gt;
&lt;p&gt;관광 타워는 전주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상징적 건축물이자 도심 관광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며, 기존의 공장 부지는 관광과 일상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으로 재편돼 전주의 미래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lt;strong&gt;우범기 전주시장 “전주의 미래 100년 책임질 사업”&lt;/strong&gt;&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28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095f0a7e6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우범기 전주시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MICE 복합단지 조성과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은 전주의 향후 100년을 책임질 핵심 사업입니다.”&lt;/p&gt;
 &lt;p&gt;우범기 전주시장은 “MICE 복합단지 조성은 전주시가 직접 추진하는 공공사업이고 옛 대한방직 부지 개발은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며 “추진 주체와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업은 전주시의 도시 구조를 재편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lt;/p&gt;
 &lt;p&gt;그러면서 “전시·회의·문화·창업·숙박·상업 기능이 결합한 MICE 복합단지는 전주 경제의 거점이 되고, 관광 타워와 주거·상업·문화·공공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시설은 관광·상업의 중심이 되어 지역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전주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lt;/p&gt;
 &lt;p&gt;우 시장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이 변화가 전주를 강한 경제도시이자 글로벌 MICE 거점도시로 도약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lt;/p&gt;
&lt;/div&gt;
&lt;p&gt;강정원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옛 대한방직 부지, 멈춰 있던 시간 깨우다 전주서부신시가지 내 20년 넘게 활용되지 못했던 옛 대한방직 부지가 본격적인 개발 절차에 들어갔다. 녹슨 굴뚝과 노후 공장 건물이 자리하던 공간에 관광 타워와 주거·상업·문화·공공 기능이 결합한 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1970년대 조성된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은 한때 1000여 명이 근무하며 전북 섬유산업과 지… ]]></description>
			<pubDate>Wed, 11 Feb 2026 13:45:16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강정원</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11500147</guid>
			<title><![CDATA[ [설 특집] 전주,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다 - ① 전주 MICE 복합단지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1150014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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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물길이 바뀌어야 땅의 모양이 달라지듯, 도시의 변화 역시 사업이 만들어 낼 ‘흐름’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전주 도심에 변화의 신호가 켜지며, ‘MICE 복합단지 조성’과 ‘대한방직 부지 개발‘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트였다. 이 두 개의 프로젝트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전주의 공간 구조와 도시 기능에 어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지 살펴본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13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a8755737d2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옛 전주종합경기장 전경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옛 전주종합경기장, 전주 경제 심장부로 다시 뛰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옛 전주종합경기장은 수십 년 동안 각종 체육대회와 행사, 축제가 열리며 전주 시민의 일상과 도시 성장의 변화를 함께 기록해 온 상징적인 장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시설이 노후화되고 이용이 줄어들면서 활용도가 점차 낮아졌고, 다양한 활용 방안이 논의됐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장기간 표류했다.&lt;br&gt;민선 8기 출범 이후 전주시는 방향을 잡지 못했던 옛 전주종합경기장 부지에 ‘MICE 복합단지’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체육시설로 사용되던 공간을 전시·회의·문화·상업 기능이 어우러진 MICE 복합단지로 재구성해 전주 경제의 심장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140.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a894f057d3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MICE 복합단지 조감도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전주컨벤션센터 중심으로 완성되는 MICE 복합단지&lt;/p&gt;
&lt;/div&gt;
&lt;p&gt;전주 MICE 복합단지가 조성되는 옛 전주종합경기장 일원은 약 12만 1231㎡ 규모로, 전시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산업·숙박·쇼핑 기능을 갖춘 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8월 착공식을 시작으로 올해 7월까지 내부 도로와 주차장, 구조물 등을 철거하는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2027년 1월에는 도로·주차장·녹지 등 기반 시설을 조성하는 2단계 사업에 착공할 계획이다.&lt;br&gt;전주 MICE 복합단지의 핵심 시설인 전주컨벤션센터는 전북 최초의 복합 전문 전시·회의 시설로, 이를 통해 전주는 전국 단위 대규모 전시와 국제회의를 유치할 수 있는 여건을 처음으로 갖추게 된다.&lt;br&gt;전주컨벤션센터는 연면적 8만 3000㎡, 총사업비 3000억 원 규모로 2028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며, 면적으로는 현재 국내 20여 개 컨벤션센터 중 7번째 규모다. 실내 전시장 1만㎡와 옥외 다목적 광장 1만㎡는 대형 전시와 박람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2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회의실과 22개의 중·소회의실, 화상회의실과 중역회의실을 갖춰 국제회의부터 학술대회, 산업전시까지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변에는 개방형 광장과 녹지를 함께 배치해 특정 행사에만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일상적으로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된다.&lt;br&gt;한국문화원형 콘텐츠 체험 전시관은 연면적 7300㎡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2027년 개관 예정이다. 전주의 전통과 지역 문화 자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체험형 공간으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통해 관람 중심의 전시가 아닌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전시 환경을 구현한다.&lt;br&gt;전주시립미술관은 연면적 1만 2000㎡, 지하 1층·지상 3층으로 조성되며 MICE 복합단지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한다. 기획전시실·상설전시실·어린이갤러리·수장고·교육체험실 등을 갖춰 국내외 기획전과 지역 작가 전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할 수 있는 복합 문화시설로 구성된다. 컨벤션센터 방문객이 별도의 이동 없이 문화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돼 국제행사와 문화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다.&lt;br&gt;G-타운은 연면적 1만 600㎡에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의 AI 실증혁신센터다. AI 기반 콘텐츠 제작·실증 스튜디오와 AI 창업 인큐베이팅 기능을 강화한 기업 입주 공간 등으로 구성돼, 전주시가 추진 중인 피지컬 AI-J 밸리 조성과 맞물려 MICE 복합단지의 산업적 기능을 담당한다.&lt;br&gt;방문객 체류 기반 구축을 위한 200실 이상 규모의 4성급 호텔과 지하 4층·지상 5층 크기의 판매시설도 함께 조성된다. 숙박과 쇼핑 기능을 집적해 행사 참가자의 체류와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lt;br&gt;이들 시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설계됐다. 컨벤션센터에서 일정을 마친 방문객은 인접한 체험관과 미술관으로 이동하며, 비즈니스로 시작된 체류가 문화·예술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후 판매시설로 동선이 이어지면서 소비 활동으로 연결된다. 또한 전주 한옥마을, 덕진공원 등 주요 관광지와 인근 먹거리 상권과의 연계를 통해 MICE 복합단지는 단순한 행사 공간을 넘어 문화와 산업, 소비가 어우러지는 도시 활동의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14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a8dcf287d4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컨벤션센터 조감도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전주컨벤션센터 운영 위한 준비 본격화&lt;/p&gt;
&lt;/div&gt;
&lt;p&gt;전주시는 시설 조성과 함께 전주컨벤션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시컨벤션센터 운영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전담 조직 구성과 단계별 운영 전략을 마련해 개관과 동시에 가동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amp;nbsp;&lt;br&gt;국내외 전시·회의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지역 주력 산업 기반의 전주형 특화 MICE 콘텐츠 발굴도 추진된다. 전북 지역 내 60여 개 혁신도시 공공·연구기관의 회의·전시 수요를 연계해 초기 운영 기반을 확보하고, 대형 국제행사뿐 아니라 중·소규모 회의와 산업전시, 공공기관 행사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운영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lt;br&gt;올해 1월 개최된 ‘제1회 전주 MICE Day’에서는 전주컨벤션센터 홍보와 함께 지역 MICE 산업 활성화를 위한 유관기관 간 협약이 체결됐다. 전주를 MICE 거점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과 방향성을 공유하며 운영 준비와 전주형 글로벌 MICE 브랜드 구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lt;br&gt;컨벤션센터 운영이 본격화되면 국제회의와 전시, 세미나 등 대형 MICE 행사를 유치해 지역 내 신규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성장, 관광객 유입 확대 등 다양한 경제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lt;br&gt;전주컨벤션센터 건립은 전주가 글로벌 MICE·비즈니스 이벤트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운영 역량과 도시 기반을 함께 키워가는 과정으로, 전주의 글로벌 도시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lt;/p&gt;
&lt;p&gt;강정원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물길이 바뀌어야 땅의 모양이 달라지듯, 도시의 변화 역시 사업이 만들어 낼 ‘흐름’에 달려 있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전주 도심에 변화의 신호가 켜지며, ‘MICE 복합단지 조성’과 ‘대한방직 부지 개발‘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트였다. 이 두 개의 프로젝트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전주의 공간 구조와 도시 기능에 어떤 새로운 흐… ]]></description>
			<pubDate>Wed, 11 Feb 2026 11:37:1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강정원</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15500022</guid>
			<title><![CDATA[ [설날, 여기 어때] 가족·친구들과 특별한 추억 여행…전북관광 명소 14선 추천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1550002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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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lt;/strong&gt;&lt;/mark&gt;&lt;/p&gt;
&lt;p&gt;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amp;nbsp;&lt;/p&gt;
&lt;p&gt;전북특별자치도는 새해의 기운과 고즈넉한 전통 문화,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도내 관광지 14선을 추천했다. 가족·친구 할 것 없이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내 14개 시·군의 관광 명소를 엄선했다.&amp;nbsp;&lt;/p&gt;
&lt;p&gt;추천 명소는 시(市) 단위 전주·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 군(郡) 단위 완주·진안·무주·장수·임실·순창·고창·부안 순으로 정리했다.&amp;nbsp;&lt;/p&gt;
&lt;p&gt;손미정 전북도 관광산업과장은 “전북 곳곳에 숨은 관광 자원을 둘러보며 정겨운 지역의 멋과 온기를 느끼고, 가족·친지들이 함께 의미 있는 설 명절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1.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8d9af057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 색장정미소.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전주 색장정미소&lt;/strong&gt;&lt;/mark&gt;는 100여 년 된 정미소를 전시형 카페로 재해석한 문화 쉼터다. 고가구와 민속품 전시를 감상하며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위치해 명절 연휴에도 실내에서 관람과 휴식을 동시에 즐기기 좋은 관광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2.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8dba2057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군산 은파호수공원.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군산 은파호수공원&lt;/strong&gt;&lt;/mark&gt;은 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수변 조명이 어우러진 전북 대표 힐링 관광지다. 겨울 설경 속 산책과 조명 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적합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3.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912fd057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익산 왕궁보석테마관광지. 익산시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익산 왕궁보석테마관광지&lt;/strong&gt;&lt;/mark&gt;는 실내·외 체험 콘텐츠를 갖춘 복합 관광지다. 보석광장부터 보석박물관, 다이노키즈월드, 공룡테마공원, 어린이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함께 모이는 설 명절 기간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4.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a4625057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읍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관 1894 달하루.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정읍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관 1894 달하루&lt;/strong&gt;&lt;/mark&gt;는 정읍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빛과 미디어 아트로 체험할 수 있는 복합 전시관 공간이다. 체험형 콘텐츠와 어린이 참여 공간을 갖춰 세대별 관람 수요를 충족하는 실내 관광지다. 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설 명절 당일에는 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6.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ab0a0057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남원 바래봉 눈썰매장. 남원운봉읍행정복지센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남원 바래봉 눈썰매장&lt;/strong&gt;&lt;/mark&gt;은 허브밸리 내 운영되는 겨울 체험 명소다. 일반·어린이 눈썰매와 눈놀이 동산 등 다양한 가족형 콘텐츠를 마련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상 상황 등에 따라 운영 유무가 달라질 수 있어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5.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aa946057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제 지평선 새마루 스마트복합 쉼터.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김제 지평선 새마루 스마트복합 쉼터&lt;/strong&gt;&lt;/mark&gt;는 구 동진강 휴게소를 리모델링해 조성했다. 1층에는 편의점, 북 쉼터, 수유실, 식당과 농특산물 판매장인 지평선몰이 있다. 2층에는 카페, 휴게(전망) 공간이 있어 여행객과 지역 주민 모두 쉬어가도록 구성돼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7.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bd1be057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완주 삼례 비비정 전망대. 완주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완주 삼례 비비정마을&lt;/strong&gt;&lt;/mark&gt;은 ‘맛과 풍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나들이 명소다. 대표 공간인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에서는 시골 밥상을 맛보고, 카페 비비낙안에서는 전통차와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비비정 전망대는 겨울 하늘과 들녘이 어우러져 명절 연휴를 감성적으로 마무리하기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10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79.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c2e36058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진안 부귀산 전망대. 진안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진안 부귀산 전망대&lt;/strong&gt;&lt;/mark&gt;는 진안고원과 마이산 풍광이 한눈에 담기는 곳이다. 겨울 산행 부담 없이 탁 트인 조망이 장관을 이룬다. 맑은 날에는 고원지대의 시원한 능선과 마이산 실루엣이, 일출·일몰 시간에는 겨울 하늘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10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0.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c9223058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무주 초리넝쿨마을. 무주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무주 초리넝쿨마을&lt;/strong&gt;&lt;/mark&gt;은 매년 12~2월 초리꽁꽁놀이축제가 열린다. 눈썰매, 얼음썰매, 깡통기차, 빙어잡기 등 겨울 놀이 체험이 운영된다. 연탄불로 군밤, 떡 굽기와 달고나 만들기 등 시식 체험까지 더해 겨울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1.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d119f058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장수 방화동 생태길.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장수 방화동 생태길&lt;/strong&gt;&lt;/mark&gt;은 장안산 군립공원 입구에서 방화동가족휴가촌까지 이어지는 계곡형 탐방로다. 맑은 물소리를 따라 숲길을 걷는 이 코스는 도심에서 벗어난 정적인 힐링을 선물한다. 겨울철에는 계곡의 투명한 물빛과 차분한 숲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10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2.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d3eed058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임실창고 1964. 임실창고 1964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임실창고 1964&lt;/strong&gt;&lt;/mark&gt;는 쌀 창고의 구조와 분위기를 최대한 보존한 카페다. 옛 창고의 원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미를 제공하며, 임실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지정환 신부를 기리기 위해 임실군에 처음 부임한 연도 1964년에서 착안해 가게명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3.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da4f3058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순창 썬웨이어드벤처 글램핑. 전북도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순창 썬웨이어드벤처글램핑&lt;/strong&gt;&lt;/mark&gt;은 총 42채의 독채형 객실로 구성된 글램핑 장소다. 가족·커플은 물론 애견 동반도 가능하다. 숙소 앞 개별 마당에서 바비큐와 불멍을 즐길 수 있어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다. 바로 옆에 순창발효테마파크도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4.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dfd53058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고창 옛도심 조양관 카페. 고창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고창 옛도심 조양관 카페&lt;/strong&gt;&lt;/mark&gt;는 1935년에 건립된 고창의 대표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목조 여관에서 출발해 기생들이 머물던 고급 사교장, 연극을 가르치던 공간으로 이용됐다. 광복 이후에 조양관 식당으로 운영됐으며, 최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카페형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3/20260213500085.pn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561e477b058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부안 휘목미술관. 부안군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mark class=&quot;marker-yellow&quot;&gt;&lt;strong&gt;부안 휘목미술관&lt;/strong&gt;&lt;/mark&gt;은 야외 조각 정원과 실내 전시 공간, 카페 갤러리로 구성돼 있다. 실내형 문화 쉼터로, 전시 관람과 아트 카페 휴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설 명절 연휴 나들이 코스로 부담 없이 들르기 좋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새해의 기운과 고즈넉한 전통 문화,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도내 관광지 14선을 추천했다. 가족·친구 할 것 없이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내 14개 시·군의 관광 명소를 엄선했다. 추천 명소는 시(市) 단… ]]></description>
			<pubDate>Sun, 15 Feb 2026 16:13:56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현우</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11500414</guid>
			<title><![CDATA[ [전북에서 시작한 선택, 새로운 기업이 되다] 동선식품 오지훈 대표, 익숙한 식재료에 새로운 쓰임을 더하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1150041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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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div class=&quot;item type-3&quot;&gt;
 &lt;p&gt;진안군에서 2022년 사업을 시작한 제조기업 동선식품(대표 오지훈)이 전통 식재료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앞세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누룽지를 쌀과자로 재탄생시킨 간식류부터 한우를 활용한 조림 반찬까지, ‘익숙하지만 신선한 식품’이라는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성장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전북지역에서 활동 중인 청년 창업기업의 사업 모델과 성장 사례를 소개한다. 기업의 창업 배경과 사업 철학 등을 소개해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기록할 계획이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34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1eb81e7ed5&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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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훈 대표가 박람회에서 판매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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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학원·요양기관 거쳐 식품업으로 현장에서 발견한 ‘간식 시장’의 가능성&lt;/strong&gt;&lt;br&gt;동선식품의 출발은 일반적인 식품 창업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오 대표는 전주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 운영 경험을 거쳐 요양기관을 먼저 창업한 경험이 있다. 이후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먹거리, 특히 간식이 차지하는 비중과 시장의 크기를 체감하게 됐다.&lt;br&gt;오 대표는 “어르신 간식부터 가족이 함께 먹는 간식까지, 식품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다”며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쌓이면서 직접 제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식품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400.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3054e67f3f&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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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선 식품이 제작한 튀룽.&am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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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trong&gt;‘튀룽’으로 재해석한 누룽지 ‘건강식에서 젊은 간식으로의 전환’&lt;/strong&gt;&lt;br&gt;현재 동선식품의 대표 제품은 누룽지를 활용한 쌀과자 ‘튀룽’이다. 기존 누룽지가 건강식 이미지에 머물며 딱딱하고 담백한 식감으로 소비됐다면, 튀룽은 유탕 공정과 다양한 시즈닝을 접목해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lt;br&gt;오 대표는 “전통 누룽지를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 목표였다”며 “건강함은 기본으로 가져가되, 선택의 기준은 ‘맛’이 되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에 튀룽은 간식은 물론 술안주로도 즐길 수 있는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401.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30562d7f41&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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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선식품이 새로 개발한 고추장 등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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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조림 반찬으로 확장하는 사업 축 ‘간편식 시대의 ‘허전한 식탁’을 채우다‘&lt;/strong&gt;&lt;br&gt;최근 동선식품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또 다른 축은 조림 반찬류다. 연근조림과 고추조림 등에 한우를 더한 제품으로, 간편식 위주의 식사 문화 속에서 부족해지기 쉬운 반찬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lt;br&gt;오 대표는 “요즘은 레토르트나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림 반찬 하나만 있어도 식탁이 훨씬 든든해진다”며 “조림류는 간식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일상에 꼭 필요한 식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동선식품은 이 조림 반찬류를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설정하고 있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399.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30544d7f3d&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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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선식품 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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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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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trong&gt;매출 8억 원…성장 뒤에 있었던 위기 플리마켓 현장에서 찾은 돌파구&lt;/strong&gt;&lt;br&gt;동선식품은 2025년 기준 약 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그러나 이 과정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lt;br&gt;오 대표는 “2024년에는 매출이 크게 줄어들며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며 “신제품을 출시하고, 직접 플리마켓 현장을 뛰며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현금 흐름을 확보한 것이 위기를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힘든 시기일수록 더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이 결국 전환점이 됐다”고 덧붙였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진안 쌀로 직접 만드는 공정 ’원물부터 관리하는 제조 경쟁력‘&lt;/strong&gt;&lt;br&gt;동선식품의 경쟁력은 원료 선택과 제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시중 유사 제품 상당수가 수입 반가공 원료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동선식품은 진안 지역 쌀을 사용해 직접 밥을 짓고 누룽지를 만들어 가공한다.&lt;br&gt;오 대표는 “직접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고 비용도 더 들지만, 품질과 신뢰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라며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식품 제조라는 점 역시 회사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34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1ebf447ed9&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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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선식품이 박람회에 참여해 홍보 및 판매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동선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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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다 ‘소규모 조직이 안고 있는 현실과 과제’&lt;/strong&gt;&lt;br&gt;현재 동선식품에는 가족을 제외하고 3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지역 특성상 청년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점은 오 대표의 큰 과제이다.&lt;br&gt;대표는 “농촌 지역이다 보니 고령 인력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업을 꾸준히 키워가고 싶다”고 말했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592.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85af3d00bf&quot;&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북청년사관학교 통해 성장 기반 강화 ‘네트워크와 지원사업의 시너지’&lt;/strong&gt;&lt;br&gt;동선식품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지역본부가 운영하는 전북청년사관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업 확장 기반을 다졌다. 오 대표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창업가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큰 도움이 됐다”며 “마케팅과 설비 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지원사업과 아이템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조림 반찬, 해외로 나간다 ‘급속 냉동 통해 수출 확대 구상’&lt;/strong&gt;&lt;br&gt;동선식품은 향후 조림 반찬류를 중심으로 내수 시장에서 입지를 확실히 다진 뒤, 급속 냉동 기술을 접목해 해외 수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lt;br&gt;대표는 “이미 해외 바이어들과 거래 경험이 있어, 3년 이내 조림 제품의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는 것이 목표이다&quot;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11/2026021150034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4b1ea6bc7ec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동선식품 오지훈 대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지치기 전에 결과를 만들어야” ‘창업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lt;/strong&gt;&lt;br&gt;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시작하기 전에는 충분히 의심하고 고민해야 하지만, 막상 시작했다면 지치기 전에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버티는 힘과 실행력이 결국 사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조언했다. 오지훈 대표는 “앞으로도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하지만 신선한 식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브랜드로 남고 싶다”며 “사업의 성공을 통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lt;/p&gt;
&lt;/div&gt;
&lt;p&gt;김경수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진안군에서 2022년 사업을 시작한 제조기업 동선식품(대표 오지훈)이 전통 식재료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앞세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누룽지를 쌀과자로 재탄생시킨 간식류부터 한우를 활용한 조림 반찬까지, ‘익숙하지만 신선한 식품’이라는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성장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전북지역에서… ]]></description>
			<pubDate>Wed, 11 Feb 2026 14:46:22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경수</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205500059</guid>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홍재일기(鴻齋日記)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20550005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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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05/20260205500054.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2b66066d67a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홍재일기 5권(1890-1894) 표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05/20260205500055.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2b667f8167a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홍재일기 5권 1894년 3월 27일 백산 봉기 관련 내용.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05/20260205500056.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2b66e58667a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홍재일기 6권(1895-1904) 표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a href=&quot;https://cdn.jjan.kr/data2/content/attachFiles/2026/02/05/20260205500060-홍재일기.hwp&quot;&gt;홍재일기.hwp&lt;/a&gt;&amp;lt;홍재일기(鴻齋日記)&amp;gt;는 1책(19.5cm×22cm), 2책(23×19), 3책(21.5×19.5), 4책(20×20), 5책(19.5×20), 6책(21×21), 7책(21×19.5)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부안군 남하면(현재의 주산면)에서 활동했던 유생 기행현(奇幸鉉, 1843∼?)이 1866년 3월 10일부터 1911년 12월 30일까지 45년간 농촌 지식인 기행현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장기간에 걸쳐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탐문한 내용을 일기로 작성하였다. 그가 살던 시기는 개항 이후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기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치사회의 변동 양상은 어떤 시기보다도 급격하게 전개되었다. 일기의 최종 부분은 그의 중년과 만년에 해당하는 근대화와 정치 사회적 격변과 이후 식민지로의 진행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보고들은 내용과 주민들의 사정과 생활 형편, 조세 부과, 날씨와 자연재해, 호구조사, 물가와 시세 변동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lt;br&gt;&amp;nbsp;일기에서 서술하고 있는 시기는 병인양요 무렵부터 시작해서 경술국치로 인한 대한제국 멸망 무렵까지이다. 기행현의 일기는 근대 이행기 정치사회 변동은 물론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로, 동학농민혁명을 전후로 한 부안과 고부지역 사람들의 삶의 내용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내용은 1893년과 1894년의 기록으로 금구 원평의 동학집회, 고부농민항쟁과 안핵사 이용태의 작폐, 백산대회 등과 관련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1894년 4월 9일 자 일기에 “동학인이 지나간 곳은 풀 한 포기 밟히지 않고 벌레 한 마리 죽지 않았다”라고 하여 동학농민군의 생명 존중 사상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1894년 6월 17일 자 일기에 “곳곳의 동학인들이 당당하게 횡행하면서 나쁜 짓을 하고 폐해를 끼치며 거리낌 없이 살인을 하니 대소 인민들이 그 기세에 두려워하였다”라고 적고 있듯이 농민군에 대한 기행현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홍재일기󰡕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전북대학교 이재연구소에서 부안군의 지원을 받아 이를 탈초하고 2권의 책으로 번역 발간하였다.&amp;nbsp;&lt;br&gt;&amp;nbsp;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안지역의 새로운 사례를 전해주는 귀중한 사료이자 1894년 전후의 국내 상황을 폭넓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최근 발견된 국내 자료 중에서 매우 가치 있는 사료로 판단된다. 기행현은 1866년부터 1911년까지 일기를 썼는데. 특히 1894년 동학농민혁명 중심지에 거주하면서 동학농민군⋅관군⋅일반백성⋅장사꾼⋅민보군⋅유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 내역을 기록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홍재일기󰡕는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 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홍재일기󰡕에서 담고 있는 주요 사건과 내용을 간략히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t;/p&gt;
&lt;p&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05/20260205500052.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2b64c98167a1&quot;&gt;&lt;br&gt;&amp;nbsp;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도 동학농민군 잔여 세력의 활동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색출과 토벌을 위해 부안지역에도 유회소(儒會所)가 설치되었고 농민군 체포와 처단은 1895년부터 1904년 러일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기행현은 이들도 ‘구 동학도’와 ‘신 동학도로’ 구분하여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동학농민군 색출을 위해 전라도 각 군과 읍에는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와 사상통제를 위한 향약(鄕約)이 광범위하게 실시되었는데, 특히 개항 이후 일상화되었던 오가작통제는 러일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도 부안지역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작통제는 각 마을에서 매달 2회에 걸쳐 시행하였는데 주민들은 각기 호신용 무기를 소지하고 훈집소에 모여 점검하는 형식인데 그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작성하여 비치해 두었다.&lt;br&gt;&amp;nbsp;그는 동학농민군 외에도 여타 변혁운동에 대해서도 일기에 언급하였다. 고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이후 대둔산으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한 동학농민군 최후항쟁과 전봉준⋅손화중이 서울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된 사실도 들었다. 기행현은 이후 경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민란소식을 들었고, 대한제국 시기 초반 제1⋅2차 제주민란과 서울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과 함께 특히 전라도 정읍과 고창⋅흥덕⋅김제 등 주변 지역에서 크게 활동하던 영학당(英學黨) 관련 내용도 일기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당시 정부에서는 영학당을 ‘서양 종교를 빙자하여 침학하고 폐단을 일으키는 무리’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는 영학을 동학의 변형으로 평가하면서도 영학⋅동학⋅서학 등으로 엄밀하게 구분하여 이해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거주지인 부안지역은 영학이 없어 태평하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홍재일기는 을미사변 이후부터 시작되어 남한대토벌 작전까지 이어지는 호남의병에 대해서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lt;br&gt;&amp;nbsp;국망 직전의 일기에서 그는 “‘무신 난리는 웬 난리? 기유 생난리에 큰 개 작은 개가 시냇가에 드러누워 임자를 기다리네’”라는 당시 회자되던 동요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일본인의 왕궁 매입과 철거 등을 통해 무너지는 조선 왕실과 망국적 사태를 우려하면서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권리를 양위하는 조칙 번역문과 칙령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한편 호남의 곡창지대인 부안지역은 일본인들의 토지 점탈과 식민지 농업기반의 거점이 되었다. 일기에 그는 일본인의 부안지역 토지 점탈과 그들의 소작인과 마름 고용의 사례를 적고 있다. 그의 아들도 일본인의 논을, 그 역시 후지모토 합자회사의 논을 소작하였다. 부안지역의 일본인 토지매입과 그로 인한 소작권 변경은 일제의 대한제국 병합 직후부터 본격화되었고 그 여파는 기행현 자신에게도 피부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자료는 그의 후손 기곤 씨가 소장하고 있으며, 2024년 국가유산청에 의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amp;nbsp;&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2/05/20260205500053.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c-2b654e8867a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조재곤(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홍재일기.hwp&lt;홍재일기(鴻齋日記)&gt;는 1책(19.5cm×22cm), 2책(23×19), 3책(21.5×19.5), 4책(20×20), 5책(19.5×20), 6책(21×21), 7책(21×19.5)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부안군 남하면(현재의 주산면)에서 활동했던 유생 기행현(奇幸鉉, 1843∼?)이 1866년 3월 10일부터 191… ]]></description>
			<pubDate>Thu, 05 Feb 2026 10:28:07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122500563</guid>
			<title><![CDATA[ [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 이병춘의 ‘이풍암공실행록’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12250056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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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22/20260122500557.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e55dc0b63c0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풍암공실행록 - &amp;nbsp;표지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지난해 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을 소개하는 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지면을 통해 소개된 기록물들은 130여년 전 이 땅을 뜨겁게 달구었던 혁명의 증거이자,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185건이 동학농민혁명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등재 당시의 절차적 이유나 소장처의 사정, 혹은 뒤늦게 발굴되어 미처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기록물이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lt;br&gt;&amp;nbsp;이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전북일보와 함께 &amp;lt;동학농민혁명 세계기록유산 미등재 기록물&amp;gt;이라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연재에는 신영우(충북대 명예교수),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왕현종(연세대 교수), 조재곤(서강대 연구교수), 유바다(고려대 교수), 김양식(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가 필진으로 참여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비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지만, 역사적 가치만큼은 등재 기록물 못지않은 ‘숨겨진 기록’들을 세상에 내보일 계획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22/20260122500558.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e55e5c2a3c0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풍암공실행록 - &amp;nbsp;첫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22/20260122500560.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e55f21523c0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풍암공실행록 - 전봉준 원평집회 주도 내용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amp;nbsp;역사는 기록을 먹고 자란다. 특히 격변기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주류를 이루기 마련이어서, 그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낸 민초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관변 기록이나 훗날 정리된 회고록들이 존재하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이후의 삶까지 일관되게 기록한 당사자의 육성 자료는 매우 드물다.&lt;br&gt;&amp;nbsp;이러한 갈증을 해소해 줄 귀중한 사료가 세상에 나왔다. 바로 풍암(灃菴) 이병춘(李炳春, 1864~1933) 선생의 활동을 기록한 《이풍암공실행록(李灃菴公實行錄)》이다. 이 자료는 이병춘 선생의 손자인 이길호 천도교 전주교구장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함으로써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이 구술하고 문하생 김재홍이 정리하여 1915년에 완성된 이 기록은, 동학 입도부터 동학농민혁명 참여, 도피 생활, 갑진개화운동, 그리고 천도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근대사의 격랑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lt;br&gt;&amp;nbsp;이병춘은 1864년 전라도 임실 상동면 왕방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지극한 효심으로 마을의 칭송을 받던 인물이었다. 엄동설한에 병든 어머니를 위해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구했다는 일화나,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지닌 성실함과 간절함을 대변한다. 이러한 ‘성력(誠力)’은 1888년 동학에 입도한 후, 개인의 효(孝)를 넘어 광제창생(廣濟蒼生)이라는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되었다.&lt;br&gt;&amp;nbsp;《이풍암공실행록》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그동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준다는 점이다. 역사학계의 오랜 쟁점 중 하나였던 1893년 전봉준 장군의 행적이 명확히 드러났다. 기록은 “四月에 更會于忠淸道報恩郡帳內)하야 始設倡義所하니 其時에 古阜郡全琫準은 亦會于全羅道金溝郡院坪이라”, 즉 4월에 충청도 보은 장내에 모여 창의소를 설치하니, 이때 고부군 전봉준은 전라도 금구군 원평에 모였는데 내응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라고 적고 있다. 이는 보은집회와 대칭되는 원평집회를 전봉준이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그동안 정황상으로만 추정되던 사실이 당사자의 기록을 통해 입증된 셈이다.&lt;br&gt;&amp;nbsp;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교단의 최고 지도자였던 해월 최시형의 구체적인 동선이 밝혀진 점도 놀랍다. 우금치 전투 패배 이전인 1894년 10월부터 11월 사이, 최시형이 남원과 임실 등지를 순행하며 겪었던 일들이 날짜와 장소, 동행인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패퇴한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임실 갈담까지 내려온 손병희가 최시형을 만나 다시 북상하는 과정은 혁명 지도부의 최후 항전과 도피 과정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퍼즐 조각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과 최시형의 동학교단이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했는지를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이다.&amp;nbsp;&lt;br&gt;&amp;nbsp;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이 기록은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이 겪어야 했던 처절한 생존의 기록이기도 하다. 진산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야기, 민보군(내부의 적)의 추적을 피해 산속에서 솔잎과 나무껍질로 연명했던 도피 생활의 참상은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대목은 1895년 3월의 일화다. 잠시 집에 들렀던 이병춘이 다시 도피를 결심하며 아내와 짜고 벌인 ‘위장 부부싸움’ 장면이다. “아무 까닭 없이 떠나면 마을 사람들이 동학 때문에 떠난다고 의심할 테니, 우리가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척합시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살림살이를 집어 던지며 아내와 싸우는 시늉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신념을 이어가기 위해 연극을 해야 했던 한 혁명가의 인간적인 고뇌와 기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lt;br&gt;&amp;nbsp;이후 이병춘은 “해월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전국을 떠돌고 있다. 상주에서 꿈속의 계시처럼 최시형을 만나고, 최시형 사후에는 다시 강원도 산골을 뒤져 손병희를 찾아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는 단순한 추종자가 아니었다. 스승을 잃고 방향을 잃은 교도들을 다시 규합하고, 손병희를 중심으로 교단을 재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amp;nbsp;&lt;br&gt;&amp;nbsp;자료는 갑진개화운동과 천도교 성립 과정에서의 비화도 풍부하게 담고 있다. 1904년 손병희의 지시에 따라 단발을 단행하고 흑의를 입으며 개화운동을 이끌던 모습, 이에 대한 관의 탄압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동학이 어떻게 근대 종교인 천도교로 탈바꿈하며 민족운동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병춘은 이후 3·1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대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amp;nbsp;&lt;br&gt;&amp;nbsp;《이풍암공실행록》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다. 이것은 구조와 제도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었던 ‘행위자’의 복권이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혁명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던, 효자이자 남편, 그리고 신실한 구도자였던 이병춘을 만난다. 그리고 그가 겪어낸 고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동학농민혁명이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피와 눈물,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쓰인 살아있는 역사임을 깨닫게 된다.&lt;br&gt;&amp;nbsp;이토록 귀중한 자료가 130여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우리 앞에 도착하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연구자들의 몫이다. 이 자료에 담긴 풍부한 사실들을 기존 사료들과 교차 검증하고 분석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더욱 온전하게 복원해야 한다. 특히 최시형 사후 교단의 분열과 재편 과정, 손병희와 김연국의 갈등 등 교단 내부의 내밀한 사정에 대한 기록은 심도 있는 후속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lt;br&gt;&amp;nbsp;끝으로 소중한 집안의 보물을 기꺼이 내어주신 이길호 교구장님께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풍암공실행록》의 발굴이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그 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새로운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빛바랜 책 속에 담긴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최진욱, 「이풍암공실행록」의 내용 검토와 사료적 가치 분석」, 『기록과 자료로 본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연구소 학술총서 5, 2025.12, 이병규, 「자료소개 이풍암공실행록」, 『동학농민혁명 연구』 3,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 2024.11 참조)&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26/20260126500425.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f90eb0dd447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지난해 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을 소개하는 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지면을 통해 소개된 기록물들은 130여년 전 이 땅을 뜨겁게 달구었던 혁명의 증거이자,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185건이 동학농민혁명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description>
			<pubDate>Thu, 22 Jan 2026 20:18:10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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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뉴스와 인물] 권영철 전북병무청장 “도민에게 신뢰받는 병무행정 구현”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12550005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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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권영철 제46대 전북지방병무청장이 취임했다. 전북지방병무청장은 전북 지역의 병역자원 관리부터 현역병 입영, 사회복무요원과 예비군 운영까지 병무행정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다. 신임 권 청장은 형식보다 현장을, 관행보다 국민 불편 해소를 강조하며 취임 직후부터 직원 소통과 현안 점검에 나섰다. 특히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 정착과 경제적 취약자 지원, 디지털 병무행정 고도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전북일보는 신임 청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병무행정 운영 방향, 전북 지역 병역의무자들을 위한 정책 구상을 들어봤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24/20260124500006.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ed20ade43d5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권영철 전북지방병무청장이 전북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신임 청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오늘 전북지역의 대표 언론사인 전북일보를 통해 취임 소감을 말씀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29일부로 전북지방병무청 제46대 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전북지역의 지방병무청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전북지역 병역의무 이행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청장 취임 후 다짐하신 것이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부임하는 날 국립임실호국원을 찾았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참배하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지켜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받들어 공정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병무행정을 구현해 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북병무청의 주요 업무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amp;nbsp;&lt;/strong&gt;&lt;/p&gt;
&lt;/div&gt;
&lt;p&gt;“ 병무청은 법률에 따라 국민의 신성한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관리하는 국가기관입니다. 안정적인 국방력 유지를 위해 병역자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병역이행 문화를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북지역 병역자원 관리, 현역병 입영, 사회복무요원 소집 및 복무관리, 예비군 편성 및 병력동원소집 등 병역이행 전반에 관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또한 병역의무자의 입영연기, 국외여행 허가, 병역이행 관련 각종 증명서 발급 등 다양한 민원업무도 처리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별도의 취임식 없이 각 과 순시 후 호국원 참배로 업무를 시작하셨습니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저는 평소 형식보다는 실용을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취임식과 같은 행사보다는 각 부서를 직접 방문하여 직원들과 눈을 맞추고 가까이서 직접 소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처음 만나는 직원들과 신뢰를 쌓고 조직의 화합을 도모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업무적으로는 새로 부임한 후에 시급한 현안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히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기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면서 2026년 한 해의 각오를 다짐하고자 호국원을 참배했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현장 중심의 적극 행정을 강조하셨는데, 병무행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병무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역의무는 모든 국민이 법률에 따라 부담해야 하므로, 병역을 이행하는 과정 및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병무행정에서 공정성이 훼손될 경우 병무행정 뿐만아니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병무청에서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병무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병역이행의 모든 과정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지방병무청은 이러한 병무행정이 집행되고 국민들과 직접 만나는 접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현지 실정이 다를 수 있으므로, 현장을 중심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우리 기관의 모든 직원이 낡은 규제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현재 전북 지역의 병역명문가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현황, 그리고 병역명문가 예우를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amp;nbsp;“병무청은 병역이행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병역이행자의 헌신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자 2004년부터 병역명문가 선양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병역명문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전국적으로 3만 1000여 가문, 우리 전북도 내에는 600여 가문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전북도 내 모든 지자체가 병역명문가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자체가 운영하거나 위탁하는 시설에서 이용료, 입장료, 주차료를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 전북지방병무청에서는 ‘병역명문가 직계가족 장학금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사)개벽장학회와 협약을 맺은 이후 2023년 5명을 시작으로 2024년에는 6명, 2025년에는 8명으로 지원대상이 매년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병역명문가 예우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동참이 높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민간기관과의 업무협약을 확대하여 더 많은 병역명문가들이 지역사회로부터 존중을 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북병무청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인가요.&lt;/strong&gt;&lt;/p&gt;
&lt;/div&gt;
&lt;p&gt;&amp;nbsp;“먼저 전북병무청에서는 ‘경제적 취약자에 대한 무료치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 사업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병역의무자를 대상으로 지정병원과 협약을 맺어 무료로 치료를 지원해주는 사업입니다. 2016년에 대자인병원과 처음으로 협약을 맺은 후 2024년 예수병원과 추가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최초에는 정신과 질환만 지원하였으나 현재는 모든 진료과목에 대해 무료치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 행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의 관행과 규정에 머물러 있는 행정서비스는 국민에게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청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자체 제안 경진대회를 반기마다 개최해 제도개선안을 발굴하고 있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북지역 병무행정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전북 지역은 도농복합지역으로 분류되는 시·군이 다수 존재합니다. 따라서, 지역적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안내와 행정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역과 정보 접근성이 낮은 지역을 구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직접 찾아가는 병무행정 서비스를 해당 지역 여건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전북지역 병역의무자가 어느 곳에 살고 있든 소외나 불편을 겪지 않도록 현장에 맞는 병무행정을 운영해 나가겠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임기 내 목표하시는 바가 있다면.&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우선 공정하고 도민에게 신뢰받는 병무행정을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병역판정검사, 현역병 입영, 사회복무요원 소집 및 복무, 예비군 편성 및 병력동원소집 등 병역이행의 모든 과정을 점검하여 공정성이 더욱 제고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즐겁게 출근하고 일할 수 있어야, 국민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기관장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디지털 병무행정 서비스를 고도화하고자 합니다. 병역의무자들이 젊은층이고,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병역의무자들이 병무행정 서비스를 더욱 간편하고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병무행정의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마지막으로 전북 지역 병역의무자와 도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amp;nbsp;&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전북지방병무청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유관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전북도 병역의무자와 도민분들이 병무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아울러, 병무행정과 관련된 제언은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반영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전북지방병무청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권영철 제46대 전북지방병무청장은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행정고등고시 37회에 합격해 공직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국방부 전력정책과장, 국방부 보건복지관, 방사청 국방기술보호국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12월 전북지방병무청장으로 부임했다. 권 청장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받들어 공정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병무행정을 구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lt;/p&gt;
&lt;/div&gt;
&lt;p&gt;김문경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권영철 제46대 전북지방병무청장이 취임했다. 전북지방병무청장은 전북 지역의 병역자원 관리부터 현역병 입영, 사회복무요원과 예비군 운영까지 병무행정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다. 신임 권 청장은 형식보다 현장을, 관행보다 국민 불편 해소를 강조하며 취임 직후부터 직원 소통과 현안 점검에 나섰다. 특히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 정착과 경제적 취약자 지원, 디지털 병무행… ]]></description>
			<pubDate>Sun, 25 Jan 2026 09:48:1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문경</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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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뉴스와인물] 박춘원 신임 전북은행장 “트랜스포메이션 원년으로 만들 것”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11850017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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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8/2026011850015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f6421ff27a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박춘원 신임 전북은행장. /전북은행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3&quot;&gt;
 &lt;p&gt;전북은행 제14대 박춘원(59) 은행장이 취임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전북은행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역동의 시기. 리더의 책임감과 능력에 따라 전북은행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행장은 전북은행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책임을 말하며, 질적 성장과 디지털 전환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강조했다. 그는 JB우리캐피탈 대표 시절 이뤄낸 수익성을 토대로 전북은행을 이끌어나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amp;nbsp;이를 통해 전북은행이 지역 금융의 버팀목이자 미래 성장의 주역으로 도약한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amp;nbsp;전북일보가 박춘원 은행장을 만나 그의 다짐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amp;nbsp;&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전북은행 신임 은행장으로 취임하신 소감과 각오를 말씀해 주십시오.&amp;nbsp;&lt;br&gt;&amp;nbsp;“전북은행은 JB금융그룹의 모기업이자, 반세기 넘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저력이 있는 은행입니다. 이러한 전북은행의 책임자로 일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금융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엄혹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은행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만큼,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전북은행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변화의 시기에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amp;nbsp;인적자본, 문화자본, 시스템자본 등 3대 자본을 구축하고 임직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행 중심의 경영을 통해 전북은행의 새로운 도약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amp;nbsp;&lt;br&gt;&amp;nbsp;&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앞서 &amp;nbsp;강조하신 ‘3대 자본’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요.&amp;nbsp;&lt;br&gt;&amp;nbsp;&quot;본인이 생각하는 경영의 핵심은 인적자본, 문화자본, 시스템 자본이라는 세 가지 자본을 얼마나 균형 있게 구축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amp;nbsp;&lt;br&gt;&amp;nbsp;‘인사가 만사’라고 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적자본입니다. &amp;nbsp;성과와 전문성을 기준으로 평가받는 조직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외부의 우수 인재도 적극적으로 영입할 것입니다. 둘째로 문화자본입니다.상하간의 벽을 낮추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토론문화가 일상화 된 조직을 만들고자 합니다.&amp;nbsp; 셋째는 시스템 자본입니다. 손익과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AI기반 업무 혁신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겠습니다&quot;&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지역 및 금융 환경이 녹록치 않습니다.&amp;nbsp;&lt;br&gt;&amp;nbsp;“현재 금융환경은 단순한 경기 순환의 조정 국면을 넘어 구조적인 변화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은행 산업은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산업인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전략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전북은행 역시 분명한 위기 앞에 있지만,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리스크를 정확히 진단하고 빠르게 대응하며, 선택과 집중을 명확히 한다면 지금의 환경은 전북은행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전략은 무엇입니까.&amp;nbsp;&lt;br&gt;&amp;nbsp;“전북은행의 ‘트랜스포메이션’을 키워드로, 핵심 전략을 설정했습니다. 먼저 자산 포트폴리오의 고도화와 리스크 관리의 전략적 혁신입니다. 외국인 대출, 자동차담보대출, 햇살론 등 전북은행이 강점을 가진 전략대출을 중심으로 핵심사업을 확대하고 한층 정교화 된 리밸런싱 전략으로 기반사업의 내실을 다지며 RORWA기반의 자산 운용을 통해 흔들림 없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입니다. 계좌별 손익관리, 손익 빈티지 분석 등을 통해 리스크와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위기는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기회는 조기에 포착하는 전략적 리스크 관리를 실현할 것입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디지털과 AI, 가상자산 전략에 대한 구상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amp;nbsp;&lt;br&gt;&amp;nbsp;“디지털 경쟁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크립토 뱅크(Crypto Bank)’로의 전환을 적극 검토할 생각입니다. 국내 최초 가상자산 담보대출과 같은 혁신적인 상품을 통해 새로운 금융 수요를 선점하고, 스테이블코인 사업 참여 등 디지털 금융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습니다. 특히 고팍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유망 핀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디지털 자산 관련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AI Agent를 도입해 휴먼 에러를 최소화하고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도 추진하겠습니다&quot;&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외국인 금융과 IB, 해외 사업 등에 대한 전략도 궁금합니다.&amp;nbsp;&lt;br&gt;&amp;nbsp;“전북은행이 외국인 금융 분야는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통합 채널 전략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타행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야 합니다. 외국인 금융라운지 확대, 무빙라운지 운영, 브라보코리아 앱 고도화 등을 통해 사용자 중심의 과감한 프로세스 개선으로 명실상부 ‘외국인 종합금융 NO.1’ 은행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새로운 기업금융 기회 창출로 전북은행만의 차별화된 IB경쟁력을 구축할 것입니다. 해외 자회사인 PPCBank 역시 캄보디아를 넘어 동남아 금융 시장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amp;nbsp;-그룹사간 시너지를 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amp;nbsp;&lt;br&gt;&amp;nbsp;“캐피탈과 은행은 형식은 다르지만 금융의 본질은 같습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JB우리캐피탈에서는 자산 규모 확대보다는 수익성과 자산의 질을 우선하는 전략에 집중했고, 기업대출과 인수금융 확대, 사업성 중심의 투자로 실질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캐피탈에서 쌓은 포트폴리오 재편과 리스크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은행의 자산구조를 다각화하고 캐피탈과의 협업을 통해 VC투자 등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함으로써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창출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지역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lt;br&gt;“전북은행은 지역을 대표하는 은행으로서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선택이 아닌 사명입니다. 지역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지역 금융의 중추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교육과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 곳곳에 온기를 더할 수 있도록 꼼꼼히 들여다보겠습니다. 2026년을 전북은행 역사상 가장 빛나는 ‘트랜스포메이션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북은행 임직원은 도전을 거듭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열정과 도전의 자세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그 여정에 고객 및 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전남 해남 출신인 박춘원 행장는 서울대 자원공학과와 시카고대 MBA 과정을 졸업했다. 그는 1990년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로 시작해 베인앤드컴퍼니코리아 이사, 아주캐피탈 대표 등을 거치며 금융 및 경영전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amp;nbsp;박 행장은 “아무리 좋은 전략도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실행의 힘은 조직 문화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무 전문성을 기반으로한 &quot;유니버셜 뱅커 양성을 통해 강력한 전북은행을 만들겠다&quot;고 목소리를 높였다.&lt;br&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8/20260118500163.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f64df7327a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박춘원 신임 전북은행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gt;
&lt;p&gt;김경수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북은행 제14대 박춘원(59) 은행장이 취임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전북은행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역동의 시기. 리더의 책임감과 능력에 따라 전북은행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행장은 전북은행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책임을 말하며, 질적 성장과 디지털 전환 그리고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강조했다. 그는 … ]]></description>
			<pubDate>Sun, 18 Jan 2026 13:51:07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경수</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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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신 팔도 핫플레이스] 평창 설원 겨울여행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11550021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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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5/20260115500207.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0164ff4221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알펜시아스키장_리프트이동 /알펜시아 리조트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강원도가 본격적인 겨울왕국으로 접어들었다. 태백산맥을 따라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는 1월, 평창은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설질을 갖춘 스키 명소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국 스키 문화의 뿌리이자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평창에는 전통과 규모, 운영 노하우를 두루 갖춘 스키장들이 밀집해 있다. 모나용평 스키장, 휘닉스 스노우파크, 알펜시아 스키장은 각기 다른 개성과 강점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스키어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며 강원도 겨울관광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5/20260115500209.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017aa47221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모나용평_사진자료_스키장 슬로프 &amp;nbsp;/모나용평 리조트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모나용평, 스키로 시작해 특별한 여행으로 확장&lt;br&gt;1975년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스키장을 개장한 모나용평은 지난 반세기 동안 스키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개장 당시 리프트 시스템과 체계적인 슬로프 운영을 도입하며 한국형 스키 문화의 기반을 다져왔고, 축적된 운영 경험을 통해 국내외 스키어의 신뢰를 쌓아오고 있다.&lt;br&gt;모나용평 스키장의 경쟁력은 발왕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형적 조건이다. 해발 1,458m의 고지대와 안정적인 기온은 설질 유지에 유리하고, 일조량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 시즌 초반부터 슬로프 조성에 강점을 보인다. 여기에 수십 년간 쌓아온 제설과 정설 기술이 더해지며, 매 시즌 균일한 슬로프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lt;br&gt;이 같은 운영 역량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경기 운영을 통해 국제무대에서도 검증됐다. 국제스키연맹(FIS)의 기준을 충족하는 제설 설비와 안전 관리 체계는 올림픽 이후에도 유지·발전되며, 스키장 운영의 품질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총 28면의 슬로프와 14기의 리프트로 구성된 대규모 인프라는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다양한 수준의 스키어를 수용한다.&lt;br&gt;최근 모나용평은 스키장 운영의 방향을 ‘경험 중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즌 말미를 장식하는 ‘발왕수플래시’는 물웅덩이 퍼포먼스를 결합한 이색 콘텐츠로, 관람과 참여형 요소로 재미를 더했다.&lt;br&gt;스키 외에 문화적 콘텐츠도 강화됐다. 발왕산 자락에 조성된 미디어아트 전시관은 빛과 소리, 향기가 어우러진 체험형 예술공간으로, 날씨와 관계없이 즐길 수 있어 겨울 여행 동선을 입체적으로 확장시켰다. 여기에 왕복 7.4km로 국내 최장 거리를 자랑하는 발왕산 관광케이블카는 스키를 타지 않는 방문객도 겨울 산의 풍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lt;br&gt;모나용평 관계자는 “50년간 축적된 설질 관리 노하우와 운영 기술, 발왕산이 가진 지형적 강점은 모나용평의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라며 “스키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경험에 문화·예술·체험 콘텐츠를 더해, 국내외 고객에게 스키를 넘어선 겨울 여행을 제안한다”고 말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5/20260115500210.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01844b0221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휘닉스파크 슬로프 전경 &amp;nbsp; /휘닉스파크 리조트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휘닉스 스노우파크, 30년 전통에 ‘환대’를 더하다&lt;br&gt;휘닉스 파크는 해발 700m 청정 고원지대에 자리한 평창의 대표 종합리조트다. 휘닉스 스노우파크를 중심으로 호텔 및 콘도미니엄, 휘닉스 컨트리클럽, 워터파크 블루캐니언 등 다양한 휴양·레저시설을 갖추고 있어 숙박과 휴식, 여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다. 휘닉스 스노우파크는 매 시즌 국내에서 가장 이른 개장을 이어온 스키장으로, 기후 대응과 제설 운영 면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특히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설상 종목 경기장 중 하나로 지정돼 ‘휘닉스 스노우 경기장’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슬로프 조성과 경기 지원 시설을 갖췄다.&lt;br&gt;특히 올 시즌은 개장 30주년을 맞아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lt;br&gt;휘닉스 파크는 2026년 1월부터 모든 리프트권을 ‘웰컴패스(Welcome Pass)’로 통합 운영한다. 단순히 리프트 이용권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을 맞이하는 환대의 개념을 담았다. 웰컴패스에는 따뜻한 음료 ‘웰컴 드링크’가 기본 혜택으로 포함돼, 리프트를 이용하는 동안 몸을 녹이며 쉴 수 있도록 했다.&lt;br&gt;앞서 휘닉스는 이번 시즌 국내 스키장 최초로 시즌권 구매 시 만 19세 미만 소인 2인 무료 혜택을 도입하는 등 가족 단위 이용객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이번 웰컴패스 역시 이러한 이용자 혜택 확대 흐름의 연장선이다.&lt;br&gt;현재 휘닉스 스노우파크는 파크 슬로프를 포함해 총 18개 슬로프를 보유하고 있으며, 순차적으로 전면 개장을 진행 중이다. 주간과 야간은 물론 주말과 연휴에는 심야 운영까지 이어져 다양한 일정의 이용객을 수용하고 있다. 스키 외에도 다양한 부대시설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휘닉스 파크의 또 다른 강점이다.&lt;br&gt;휘닉스 스노우파크 관계자는 “30주년을 맞은 올 시즌에는 안전한 슬로프 관리와 안정적인 운영을 최우선에 두고 있다”며 “웰컴패스 도입을 비롯해 이용객들이 스키를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운영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5/20260115500211.jpg&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c018bacd221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알펜시아스키장 &amp;nbsp;/알펜시아 리조트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스키여행의 베이스캠프,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장&lt;br&gt;겨울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질과 환경, 그리고 편의성이다. 대관령 청정 자연 속에 자리한 알펜시아 스키장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겨울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평가받는다.&lt;br&gt;알펜시아 리조트는 매년 안정적인 제설과 설질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쾌적한 슬로프 환경을 유지해 왔다. 눈썰매장 1면을 포함해 총 7면의 슬로프로 구성돼 있으며, 4인승 리프트 1기와 6인승 리프트 2기 등 총 3기의 리프트를 갖춰 최대 3,000명까지 동시 수용이 가능하다.&lt;br&gt;슬로프 구성 또한 초급자 코스 ‘알파’, 중급자 코스 ‘브라보’, 상급자용 ‘찰리·델타·에코’, 최상급자 코스 ‘폭스트롯’까지 갖춰 자신의 실력과 취향에 맞는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lt;br&gt;특히 알펜시아 스키장은 완만하고 넓게 설계된 슬로프가 특징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구조 덕분에 스키어와 보더 모두 여유롭고 쾌적한 라이딩이 가능하며, 매일 진행되는 정설 작업을 통해 최상의 설질을 유지한다. 가족 단위 방문객과 초보자에게 부담이 없는 이유다.&lt;br&gt;알펜시아 스키장의 가장 큰 매력은 시설을 넘어 자연조건에서 드러난다. 생체리듬에 적합한 해발 고도, 대관령의 맑고 차가운 공기, 국내 최저 기후는 최상의 스키 환경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눈구름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습기가 제거돼 만들어지는 ‘파우더 스노우’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설질로 평가받는다. 자연과 어우러진 스키장 풍광 역시 스키어들의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lt;br&gt;겨울 액티비티도 강화됐다. 새로 단장한 눈썰매장 ‘슬라이딩 파크’는 정상 출발 지점에서 내려오는 튜브형 썰매 코스로, 봅슬레이 코스도 함께 운영된다. 전 구간에 걸쳐 경사도 조정과 안전 펜스 설치, 보호매트 보강 등 안전 설비를 대폭 보강했으며, 하단에는 회전튜브를 설치해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amp;nbsp;&lt;br&gt;이와 함께 각종 렌탈이 가능한 스키하우스와 정상의 스키힐 라운지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알펜시아는 스키와 휴식, 낭만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겨울 여행지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lt;/p&gt;
&lt;p&gt;강원일보=강동휘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강원도가 본격적인 겨울왕국으로 접어들었다. 태백산맥을 따라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는 1월, 평창은 국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설질을 갖춘 스키 명소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국 스키 문화의 뿌리이자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평창에는 전통과 규모, 운영 노하우를 두루 갖춘 스키장들이 밀집해 있다. 모나용평 스키장, 휘닉스 스노우파크, 알펜시아 스키장… ]]></description>
			<pubDate>Thu, 15 Jan 2026 14:21:3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60114500271</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전북도선관위 문승철 상임위원 “도민 모두 결과 승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거 만들겠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6011450027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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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3/20260113500410.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b63c77e11ad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문승철 전북도선관위 상임위원이 전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지난해 7월 1일자로 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문승철(57) 상임위원이 취임했다.&amp;nbsp;&lt;br&gt;상임위원은 광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종합사무를 총괄하고 지휘하는 책임자이기도 하다.&lt;br&gt;문 상임위원이 취임한지 6개월, 올해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amp;nbsp;150일도 남지 않은 지난 13일 상임위원을 만나 올해 선관위 선거관리와 감시등 각오를 들어봤다.&lt;/p&gt;
&lt;p&gt;-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부임하신 지 어느덧 6개 월 여가 되셨습니다. 6월 3일에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치러지는데요.&amp;nbsp;&lt;br&gt;“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도민 여러분과 소통하며 선거현장을 살핀 지도 벌써 반년이 흘렀습니다.&lt;br&gt;&amp;nbsp;이번 지방선거는 공직선거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단위의 선거이지만, 사실 우리 도민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지역대표를 뽑는 매우 중요한 선거입니다.&lt;br&gt;&amp;nbsp;저는 이번 선거를 준비하며 ‘공평무사’라는 고사성어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조금의 사사로움도 없어야 한다’는 이 말은 우리 선관위원회의 존재가치와도 부합한다고 할 것입니다.&amp;nbsp;&lt;br&gt;&amp;nbsp; &amp;nbsp;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근간이 흔들이지 않도록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이번 지방선거관리에 임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도민 모두가 결과에 승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거로 만들겠습니다.&lt;br&gt;&amp;nbsp; &amp;nbsp;유권자의 참여가 없는 선거는 그 본연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전북지역의 향후 4년을 이끌어갈 진정한 일꾼이 선출될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lt;/p&gt;
&lt;p&gt;-지방선거를 관리에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관리하실 것인지 궁금합니다.&lt;br&gt;“이번 선거관리의 핵심으로 삼고 싶은 점은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lt;br&gt;먼저, 완벽한 선거관리를 통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입니다.&lt;br&gt;&amp;nbsp;후보자등록부터 사전투표, 투·개표에 이르는 모든 선거과정에서 빈틈이 없도록 준비하고, 주요 선거 과정은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여 선거결과에 도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lt;br&gt;다음으로,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엄중한 대처입니다.&amp;nbsp;&lt;br&gt;위반행위의 사전예방에 초첨을 두고 할 수 있는 사례 중심으로 충분한 안내를 우선할 것입니다. 다만, 기부 및 매수행위, 공무원의 선거관여, 딥페이크 등을 이용한 허위사실공표 및 비방행위 등 선거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선거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여 엄중 조치하겠습니다. &amp;nbsp;&lt;br&gt;마지막으로, 유권자 중심의 선거 정보 제공입니다.&amp;nbsp;&lt;br&gt;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하여 방송·신문 등 언론을 비롯하여 위원회 홈페이지, SNS 등을 활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알 권리가 충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lt;/p&gt;
&lt;p&gt;- 보통 지방선거는 많은 선거가 한 번에 치러지게 되는데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어떤 선거가 치러지고, 주요일정은 어떻게 되나요?&lt;br&gt;“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도지사선거, 교육감선거, 시·군의 장선거, 지역구도의원선거, 지역구시·군의원선거, 비례대표도의원선거, 비례대표시·군의원선거 등 7개 선거가 동시에 치러집니다. 여기에 더해서 군산시에서는 대야면과 회현면을 제외한 지역에서 국회의원 재선거도 같이 치러집니다.”&lt;/p&gt;
&lt;p&gt;-구체적인 일정이 있을까요?&lt;br&gt;“네, 이번 지방선거의 주요일정을 보면 먼저 2월 3일에는 도지사 및 교육감선거 예비후보자등록이 이뤄지고요. 2월 20일에는 도의원, 시장 및 시의원선거 예비후보자등록, 3월 22일에는 군수 및 군의원선거 예비후보자등록, 5월 14~15일에는 후보자 등록신청, 이후 5월 21일부터 선거일 전날인 6월 2일까지 선거운동기간입니다.&lt;br&gt;여기에 5월 29일과 5월 30일 이틀동안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것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lt;/p&gt;
&lt;p&gt;-선거가 5개월도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선관위의 전반적인 준비상황도 궁금합니다.&lt;br&gt;“우리 전북 선관위는 오는 1월 20일 도지사 및 교육감선거 입후보설명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선거관리에 돌입하게 됩니다.&amp;nbsp;&lt;br&gt;&amp;nbsp; &amp;nbsp;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투표소 인프라 구축’입니다. 도내 243개소 사전투표소와 560여개소 일반투표소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리 직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꼼꼼이 점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권자의 투표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amp;nbsp;&lt;br&gt;&amp;nbsp; &amp;nbsp;선거관리를 위해서는 약 1만 5000여명의 대규모 인력이 필요합니다. 공무원 및 공공기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 등과 긴밀히 협의 중이며, 확보된 인력에 대해서는 실무교육을 강화하여 완벽한 선거사무를 구현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lt;/p&gt;
&lt;p&gt;-선거 때마다 일부에서 선거에 대한 불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불신 해소를 위해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lt;br&gt;“요즘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실체 없는 허위사실이 마치 사실인 듯 나돌고 있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lt;br&gt;우리 선관위도 지난 대선에서 일부 미흡한 선거관리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교훈삼아 (사전)투·개표 담당 사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lt;br&gt;&amp;nbsp;이 외에도 선거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안이 있습니다. 사전투표소별 관내관외 사전투표자수를 1시간 단위로 공개하고, 사전투표함 보관장소는 CCTV로 24시간 공개하며, 우편투표 접수 전 과정에 정당추천위원 참여를 비롯하여 사전투표함 이송 시 참관인이 동행하도록 할 것입니다.&lt;br&gt;&amp;nbsp;개표에서는 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확인절차를 강화하여 투표지를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이 직접 눈으로 하나 하나 확인하는 ‘수검표’를 시행할 것입니다.&lt;br&gt;또 도내 학계 등 중립적인 인사들이 참여하는 공정선거참관단을 운영해 외부의 시각에서 절차사무 관리의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고 선거관리의 신뢰성을 확보해 나가겠습니다.“&lt;/p&gt;
&lt;p&gt;-지방선거는 아무래도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공무원의 선거개입이나 기부행위 등 선거법위반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신지요.&lt;br&gt;“도내에서는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25건,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선거 44건, 2025년 제21대 대통령선거 69건의 선거법 위반행위가 발생했습니다.&lt;br&gt;&amp;nbsp; &amp;nbsp;선거법 위반행위를 단속함에 있어서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예방에 초점을 두고 할 수 있는 사례위주로 충분한 안내를 실시할 예정입니다.&lt;br&gt;&amp;nbsp; &amp;nbsp;다만, △기부 및 매수행위 △공무원의 선거관여행위 △허위사실공표·비방△여론조사결과 왜곡 공표 △유사기관·사조직 설치·이용 등의 행위는 중대선거범죄로서 선거에 미치는 파장이 크므로 무관용의 원칙으로 관계 기관에 고발 등 엄중 조치할 계획이니 도민들께서도 이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lt;br&gt;&amp;nbsp; &amp;nbsp;우리 선관위는 현재 광역조사팀과 지역별 공정선거지원단을 활용하여 감시·단속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중에 있습니다.“&lt;br&gt;&lt;br&gt;-요즘 AI시대로 선거 때마다 딥페이크 영상 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행위에 대한 금지 및 처벌기준이 있는지요.&lt;br&gt;“최근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 등을 통해 제작한 영상이나 이미지 등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이 이러한 영상이나 이미지를 활용할 때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amp;nbsp;&lt;br&gt;가상의 정보라는 사실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 1000만원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며, 제한기간에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편집·유포·상영 또는 게시를 하는 경우와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표시를 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공표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되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lt;br&gt;&amp;nbsp; &amp;nbsp;우리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허위사실공표·비방 특별대응팀’을 운영해 온·오프라인상의 왜곡된 정보에 적절하게 대응하겠습니다.“&lt;/p&gt;
&lt;p&gt;-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전통적으로 다른 선거에 비해 낮았습니다. 선관위의 투표독려 홍보방식이 있으신가요.&lt;br&gt;“역대 전북지역 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제8회 지방선거가 48.6%, 제22대 국회의원선거는 67.4%, 이번 21대 대통령선거는 82.5%로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다른 공직선거에 비하여 낮습니다.&lt;br&gt;투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50%도 되지 않는다면 선출된 당선인의 대표성에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선관위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amp;nbsp;&lt;br&gt;도내 대학교 미디어 전공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을 SNS에 게시하는 등 온라인을 활용한 홍보와 함께 유명 유튜버와 협업하여 유권자들이 알아야 할 선거정보를 알기 쉽게 제공할 예정이며, 방송 등 언론매체를 활용한 투표참여 홍보, 스포츠 선수들의 투표독려 홍보영상 제작 방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유권자의 투표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고 합니다.&lt;br&gt;유권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인식하시고 투표에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lt;/p&gt;
&lt;p&gt;-마지막으로 유권자와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lt;br&gt;“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amp;nbsp;&lt;br&gt;&amp;nbsp;올해 실시되는 지방선거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우리 지역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lt;br&gt;&amp;nbsp; &amp;nbsp;근거 없는 비방이나 허위사실에 현혹되지 않고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 자질과 능력을 꼼꼼히 따져 우리 동네를 희망으로 이끌어 갈 적임자를 선출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lt;br&gt;&amp;nbsp; &amp;nbsp;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분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의 전 과정을 공정하고 흠결없이 관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월에 펼쳐질 민주주의의 축제에 주인공으로 참여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lt;/p&gt;
&lt;p&gt;●⋯문승철 상임위원은&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13/20260113500408.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b91-11f6-819b-b63c726e1ad1&quot;&gt;
&lt;/figure&gt;
&lt;p&gt;문 상임위원은 제주 출신으로 대구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선거과장, 총무과장, 지도과장, 제투특별자치도 선관위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lt;br&gt;신중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선관위 총무와 선거, 지도 부서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선거 행정 업무의 ‘달인’이라고 불린다.&lt;br&gt;온화한 성품과 합리적인 일처리로 솔선수범하면서 구성원을 잘 이끈다는 평을 받는 등 조직 내 신망이 높다.&lt;br&gt;또한 부임지역에서 지역 선거 입지자들과 지역현안 파악에도 능통하다.&lt;br&gt;문 상임위원은 인터뷰에서 “최근 전북 현안이 많던데 그 현안들을 잘 해결해줄 분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원합니다“고 말했다.&lt;br&gt;그는 “전북 현안으로는 새만금 신공항 문제와 행정통합 찬반, RE100산단 조성 등 중요 현안이 많은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lt;br&gt;그러면서 그는 전북선관위역시 맡은 선거관리 및 지도, 홍보 등의 업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지난해 7월 1일자로 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문승철(57) 상임위원이 취임했다. 상임위원은 광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종합사무를 총괄하고 지휘하는 책임자이기도 하다. 문 상임위원이 취임한지 6개월, 올해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150일도 남지 않은 지난 13일 상임위원을 만나 올해 선관위 선거관리와 감시등 각오를 들어봤다. -전북… ]]></description>
			<pubDate>Wed, 14 Jan 2026 14:13:3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백세종</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31500148</guid>
			<title><![CDATA[ [여론조사] 설문지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31500148</link>
			
			<content:encoded><![CDATA[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입니다.&amp;nbsp;&lt;br&gt;저희는 내년 6월 3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응답하신 내용은 통계법 제33조 비밀의 보호 조항에 따라 절대 비밀이 보장되며, 본 조사 내용은 통계적 목적으로만 이용될 것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만 시간을 내어 응답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본 조사에 관한 문의사항은 02-3415-5100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SQ1. 지역&lt;br&gt;1) 고창군&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2) 군산시&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3) 김제시&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4) 남원시&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5) 무주군&lt;br&gt;6) 부안군&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7) 순창군&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8) 완주군&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lt;br&gt;9) 익산시&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lt;br&gt;10) 임실군&lt;br&gt;11) 장수군&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lt;br&gt;12) 전주시 덕진구 &amp;nbsp;&lt;br&gt;13) 전주시 완산구&amp;nbsp;&lt;br&gt;14) 정읍시 &amp;nbsp; &amp;nbsp;&amp;nbsp;&lt;br&gt;15) 진안군&lt;br&gt;99) 그 외 지역 ☞ 면접중단&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SQ2 .성/연령&lt;br&gt;1) 남성 ( ____ 세) &amp;nbsp; &amp;nbsp;&amp;nbsp;&lt;br&gt;2) 여성 ( ____ 세)&amp;nbsp;&lt;br&gt;☞ 만 17세이하 면접중단&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먼저,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여쭙겠습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1. 내년 6월3일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서 출마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다음 인물 중 선생님께서는 누가 가장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보기는 무작위 순입니다. (보기 1~4번 Rotation)&lt;br&gt;1. 김관영 현 전북자치도지사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안호영 현 국회의원&lt;br&gt;3. 이원택 현 국회의원&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정헌율 현 익산 시장&lt;br&gt;5. 그 외 인물&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없다&lt;br&gt;9. (읽지 말 것) 결정 못했다/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2. 선생님께서 내년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보기 1~5번 Rotation)&lt;br&gt;1. 인물과 능력&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정책과 공약&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3. 후보의 출신지역과 학교&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소속 정당 및 정치적 성향&lt;br&gt;5. 도덕성과 청렴성&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br&gt;&lt;br&gt;문3. 선생님께서는 도지사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 유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기 1~5번 Rotation)&lt;br&gt;1. 추진력과 결단력 있는 리더&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도민과 소통하는 협력형 리더&lt;br&gt;3. 행정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리더&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춘 리더&lt;br&gt;5. 지역 균형발전을 실현할 리더&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4. 선생님께서는 도지사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기 1~7번 Rotation)&lt;br&gt;1. 일자리 창출과 기업 유치&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농촌과 농업 기반 강화&lt;br&gt;3. 지방소멸 대응 및 청년 정책&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문화관광 인프라 확충&lt;br&gt;5. 교통,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인프라 확충&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복지, 의료서비스 향상&lt;br&gt;7. 중앙정부와의 협력 확대&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8.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5. 선생님께서는 전북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기 1~8번 Rotation)&lt;br&gt;1. 피지컬AI, 방위산업,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완주-전주 통합&lt;br&gt;3. 전주올림픽 유치&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공공기관 2차 이전&lt;br&gt;5.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공공의대 건립&lt;br&gt;7. 새만금 특별자치단체 추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8. 새만금 신공항 건립 &amp;nbsp;&lt;br&gt;9. (읽지 마시오)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6. 정부가 매립 계획의 현실성과 예산 효율성을 이유로 새만금 사업 계획 수정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amp;nbsp;선생님께서는 도지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보기 1~2번 Rotation)&lt;br&gt;1. 사업이 축소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 설득에 나서야 한다&lt;br&gt;2. 사업이 축소되더라도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다음으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여쭙겠습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7. 내년 6월에는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감 선거도 치러집니다. 선생님께서는 내년 전북자치도 교육감 출마가 거론되는 다음 인물 중 누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보기 1~6번 Rotation)&lt;br&gt;1. 전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 자문위원, 현 우석대 대외협력부총장 김윤태&lt;br&gt;2. 전 전교조 전북지부장, 현 전국교육자치혁신연대 상임대표 노병섭&lt;br&gt;3. 전 민주시민교육교원노조 정책실장, 현 좋은교육시민연대 대표 유성동&lt;br&gt;4. 전 전북대 총장, 현 진짜배기 전북교육포럼 상임대표 이남호&lt;br&gt;5. 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현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천호성&lt;br&gt;6. 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부교육감, 현 전북대학교 특임교수 황호진&lt;br&gt;7. 그 외 인물&lt;br&gt;8. 없다&lt;br&gt;9. (읽지 말 것) 결정 못했다/모름/무응답&lt;br&gt;&amp;nbsp;&amp;nbsp;&lt;br&gt;문8. 선생님께서 내년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보기 1~5번 Rotation)&lt;br&gt;1. 인물과 능력&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정책과 공약&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3. 전문성 및 현장 경험&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이념적 방향성과 가치관&lt;br&gt;5. 도덕성과 청렴성&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br&gt;&amp;nbsp;&amp;nbsp;&lt;br&gt;문9. 선생님께서는 내년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감 선거에서 다음 중 어떤 유형의 인물을 가장 선호하십니까? (보기 1~5번 Rotation)&lt;br&gt;1. 교직 경력이 풍부한 교육자형&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교육행정 전문가형&lt;br&gt;3. 혁신교육 중심 개혁형&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학부모와 지역사회 중심 실용형&lt;br&gt;5. 안정과 균형을 중시하는 조정형&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10. 선생님께서는 전북자치도교육청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 1~7번 Rotation)&lt;br&gt;1. 교육시설과 학교 환경 개선&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교사 복지와 근무 여건 개선&lt;br&gt;3. 디지털.AI 기반 학습 확대&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진로.직업 교육 강화&lt;br&gt;5. 학생 인권과 학교 민주주의 강화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lt;br&gt;6. 학부모 참여 확대&lt;br&gt;7. 학력 신장&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8. 기타(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다음으로. 정당지지도와 국정운영 평가 관련하여 여쭙겠습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11. 선생님께서는 현재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 보기는 무작위 순입니다. (보기 1~5번 Rotation)&lt;br&gt;1. 더불어민주당&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국민의힘&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3. 조국혁신당&lt;br&gt;4. 진보당&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5. 개혁신당&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7. 그 외 다른 정당&lt;br&gt;98. 없다 ☞ 문11-1로&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 ☞ 문11-1로&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11-1. (재질문)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생각되는 정당은요? 보기는 이전에 불러드린 순서와 동일합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문12. 선생님께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lt;br&gt;1. 매우 잘하고 있다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잘하고 있는 편이다&lt;br&gt;3. 잘못하는 편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4. 매우 잘못하고 있다&lt;br&gt;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lt;br&gt;마지막으로 통계처리를 위한 질문입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DQ1. 선생님께서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lt;br&gt;1. 경영/관리/전문/자유직&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사무관련직&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3. 전문기술직(엔지니어, 전문기술인 등)&lt;br&gt;4. 자영업&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5. 서비스/판매/영업직&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6. 농/임/수산업&lt;br&gt;7. 생산/단순노무직&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8. 주부&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9. 학생&lt;br&gt;10. 무직/기타&lt;br&gt;99. (읽지 말 것)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DQ2. 선생님의 이념 성향은 다음 중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lt;br&gt;1. 매우 진보&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2. 진보적인 편&lt;br&gt;3. 중도적&lt;br&gt;4. 보수적인 편&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5. 매우 보수&lt;br&gt;9. (읽지 마시오) 모름/무응답&lt;/p&gt;
&lt;p style=&quot;text-align:justify;&quot;&gt;▣ 바쁜 시간 내어 조사에 참여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입니다. 저희는 내년 6월 3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응답하신 내용은 통계법 제33조 비밀의 보호 조항에 따라 절대 비밀이 보장되며, 본 조사 내용은 통계적 목적으로만 이용될 것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만 시간을 내어 응답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본 조사에 관한 … ]]></description>
			<pubDate>Wed, 31 Dec 2025 14:54:0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전북일보</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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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전북에서 시작한 선택, 새로운 기업이 되다] ① 프롤로그 : ‘기술·아이디어 하나로’ 지역경제 미래를 여는 청년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950055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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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52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e1cb0b464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15기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생들이 전주 한옥마을에 모여 스타트업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3&quot;&gt;
 &lt;p&gt;전주에 사는 김모(30대·여)씨는 오늘도 노트북을 펴고 사업계획서를 다듬고 있다. 아직 직원도 없고, 사무실도 구하지 못했지만, 그의 모니터 안에는 분명한 목표가 담겨져 있다.&amp;nbsp;&lt;/p&gt;
 &lt;p&gt;지금 이 순간에도 전북 곳곳에서는 김씨처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사업가들이 전북을 출발선으로 삼아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시장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lt;br&gt;전북에서의 창업은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농생명과 바이오, 지능형 기계·부품, 환경·에너지, 콘텐츠와 플랫폼 산업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전북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산업 기반 위에 기술과 아이디어가 결합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amp;nbsp;&lt;br&gt;이들은 이미 완성된 성공담의 주인공이 아니다. 이제 막 기업의 형태를 갖추거나, 시장을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 있는 청년 창업가들이다. 전북일보는 올 한 해 동안 그들의 성장을 매월 1회씩 기록한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530.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e1cb53464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br&gt;&lt;strong&gt;지역의 산업에서 아이디어를 찾다.&lt;/strong&gt;&lt;br&gt;전북에서 시작한 청년 기업가들의 공통점은 지역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과 식품, 제조와 부품, 환경과 에너지 등 전북의 산업은 오랜 시간 지역 경제를 떠받쳐 왔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도내에서 운영 중인 창업기업은 4만3367곳에 달한다. 국가데이터 조사 결과 매달 2000~4000여 건의 신규 창업기업이 생겨난다. &amp;nbsp;&lt;br&gt;최근에는 이 산업 위에 기술과 데이터를 접목한 창업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농생명 분야에서는 스마트 기술과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고, 기계·부품 산업에서도 자동화·지능화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lt;br&gt;지역 산업을 기반으로 한 창업은 자연스럽게 전북과 기업의 성장을 연결한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은 경쟁력을 쌓아간다. 전북에서 시작한 창업이 단순한 로컬 비즈니스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이유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53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e1cbb3464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참여 기업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전북청년사관학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창업이 지역의 미래가 되는 순간&lt;/strong&gt;&lt;br&gt;청년 창업은 개인의 도전을 넘어 지역의 미래와 직결된다. 하나의 기업이 만들어지면 일자리가 생기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지역 산업에 스며든다. 전북에서 시작한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역 경제의 구조는 더욱 다층적으로 확장된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며 기업을 키워갈 수 있는 환경은 곧 전북 경제의 지속성을 높이는 토대가 된다.&lt;br&gt;전북에서 창업을 선택한 청년 사업가들은 지역을 떠나는 대신, 지역에서 기회를 만들고 있다. 전북의 자원과 인프라, 사람들과 연결되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은 전북만의 창업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전북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창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lt;/strong&gt;&lt;br&gt;이 같은 창업 흐름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도 점차 체계를 갖추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창업성공패키지(청년창업사관학교·글로벌창업사관학교)는 청년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현하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사업화 자금 지원을 비롯해 창업 공간 제공, 단계별 교육과 멘토링, 투자 연계까지 패키지 형태로 운영되며 창업가들이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lt;br&gt;특히 전북(전주)캠퍼스는 농생명바이오와 지능형 기계·부품 등 지역 주력산업과 연계된 분야를 중심으로 창업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지역 산업과 맞닿은 창업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전북의 산업구조 역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는 전북에서 시작한 기업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53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e1cd6a464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참여 기업인들.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lt;/strong&gt;&lt;br&gt;창업 지원 정책의 성과는 매출,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등의 지표로도 확인된다. 최근 수년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거친 기업들은 다양한 성과를 쌓으며 성장해 왔다. 일부 기업은 전국 단위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까지 진출하며 전북에서 시작한 창업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lt;br&gt;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전북에서 기업을 시작하고 도전을 이어가는 청년 사업가들의 시도 자체가 전북 창업생태계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일수록 전북 경제는 더욱 탄탄한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전북에서 시작한 선택의 의미&lt;/strong&gt;&lt;br&gt;전북에서 창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업지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산업과 사람,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북에서 시작한 청년 기업가들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는 기업의 정체성과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lt;br&gt;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늘어날수록 전북 경제는 더욱 역동적인 구조로 변화하게 된다. 창업은 전북 경제의 다음 장을 여는 중요한 열쇠다.&lt;/p&gt;
&lt;/div&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청년 기업인들을 키우는 경험과 기회”&lt;/strong&gt;&lt;/p&gt;
 &lt;p&gt;지난해 15기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에 했던 기업 관계자는 “창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막막했던 부분을 청년사관학교를 통해 많이 해소했다”며 “전북은 식품특화지역이기 때문에 지원 등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컸다. 기업들이 초기에 성장하고 자립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lt;br&gt;그러면서 “전북의 경우 국토의 중간에 있고 식품 생산지이기 때문에 현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부분이 컸다.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를 하면서 투자를 받게 됐는데, 창업을 시작하는 전북 청년들에게는 좋은 경험과 기회가 되고 있다”고 웃음지었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경수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에 사는 김모(30대·여)씨는 오늘도 노트북을 펴고 사업계획서를 다듬고 있다. 아직 직원도 없고, 사무실도 구하지 못했지만, 그의 모니터 안에는 분명한 목표가 담겨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북 곳곳에서는 김씨처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사업가들이 전북을 출발선으로 삼아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시장을 … ]]></description>
			<pubDate>Mon, 29 Dec 2025 16:10:22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경수</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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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천년의 종이, 전북의 내일을 쓰다] “아득한 시간 버티는 한지…만드는 시간도 이어져야죠”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950025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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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337.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9c8bea44c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전통한지원의 2대의 반자동 한지 뜨는 기계 중 1대만 운영되고 있다. /전현아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주의 한지 공방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은 종이가 마를 때가 아닌 물을 올리지 않는 날이다.&amp;nbsp;&lt;/p&gt;
&lt;p&gt;대야는 비어 있고, 대나무 발은 벽에 기대 있다. 장인은 공방에 나와 있지만 종이를 뜨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물의 온도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은 안 뜹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종이를 만들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한지를 둘러싼 시간이 달라졌다는 징후에 가깝다.&lt;/p&gt;
&lt;p&gt;견오백지천년(絹五百紙千年).&lt;/p&gt;
&lt;p&gt;비단은 오백 년을 가고, 한지는 천 년을 간다는 이 말은 여전히 인용된다. 실제로 한지는 시간을 견뎌왔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한 장의 종이가 1300 년 가까운 세월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종이는 기록을 지켜냈고, 기록은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종이가 견딘 시간과, 그 종이를 만들어온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16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6646d2436e&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amp;nbsp;지난 26일 전주전통한지원에서 한지 장인이 한지를 뜨고 있다. /전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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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전주는 오랫동안 한지의 도시였다. 조선시대 전국 한지 생산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전주한지는 왕실 진상품이자 외교 문서로 쓰였다. 닥나무가 자라고, 철분이 적은 물이 흐르며, 종이를 뜨는 기술이 지역 안에서 축적됐다. 종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기록과 행정, 예술을 떠받치는 문화의 바탕이었다.&lt;/p&gt;
&lt;p&gt;이 바탕 위에서 전주의 문화도 함께 성장했다. 출판과 서예, 공예가 종이를 중심으로 엮였고, 종이를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한지를 쓴다는 것은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종이는 소비재이기 이전에 생활의 일부였고, 한지는 삶의 속도에 맞춰 쓰였다.&lt;/p&gt;
&lt;p&gt;하지만 지금 전주에서 한지는 일상보다는 상징에 가깝다. 공방은 남아 있지만 매일 종이를 뜨지는 않는다. 생산보다 체험이 앞서고, 판매보다 전시가 많아졌다. 장인은 종이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종이를 설명하는 사람이 됐다. 한지를 사러 오는 사람보다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진 풍경은 한지가 놓인 현재의 좌표를 보여준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17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67385e437e&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amp;nbsp;지난 26일 전주전통한지원에서 한지 장인이 한지제작 작업 중이다. /전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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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전주전통한지원을 운영하는 강갑석 전주한지장은 이 변화를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상황이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쓰임새가 없어지다 보니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한지를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업’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뜻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17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67cacb4382&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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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p;nbsp;전주전통한지원에서 판매 중인 전주 한지. /전현아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강 장인은 “예전에는 직원이 40~50명씩 있었고, 판로가 있었기 때문에 큰돈은 못 벌어도 유지는 됐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양길로 접어들더니 지금은 버틸 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공방을 줄이고, 팔복동에 있던 공장도 정리했다. 한지 장판 생산을 위해 새로 지었던 시설 역시 코로나19를 거치며 문을 닫았다. 그는 “지금은 팔리지도 않는데 재고만 계속 쌓이고 있다”고 했다.&lt;/p&gt;
&lt;p&gt;종이를 뜨는 일은 손의 노동이자 시간의 노동이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벗기고, 두들기고, 섞고, 뜨고, 말리는 과정은 수십 번의 손길을 거친다. 옛사람들이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른 것도 아흔아홉 번의 손길 뒤에 마지막 백 번째 손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지금 그 백 번째 손을 이어갈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lt;/p&gt;
&lt;p&gt;“밥벌이가 안 되는데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lt;/p&gt;
&lt;p&gt;강 장인의 말은 담담했지만 무거웠다. 기술을 온전히 이어받을 후계자는 없고, 오랜 세월 함께 일해온 인력만 남아 있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분도 40년 가까이 함께한 사람이라 끝까지 같이 가는 것뿐”이라며 “그분이 그만두는 날이 오면, 그날이 한지원을 정리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lt;/p&gt;
&lt;p&gt;올해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등재가 된다고 해서 쓰임새가 생기느냐”는 반문이 먼저 나왔다. 그는 “기록으로 남는 건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으면 만드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며 “이제는 산업으로 보기는 어렵고, 문화로서 보존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국가가 장인을 고용해 보존하는 구조가 아니라면 지속은 어렵다는 지적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185.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68c0684390&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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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공예품전시장에 전시된 김선애 지승장의 투각화병.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한지는 천 년을 간다고 말하지만, 장인은 그렇지 않다. 전주에 남은 전통 한지 장인들의 평균 연령은 높아졌고, 기술을 전수할 구조는 충분하지 않다. 종이는 남아 있어도, 종이를 만드는 시간은 줄어드는 역설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지가 ‘문화유산’으로 불리는 순간, 동시에 ‘현재의 기술’에서 멀어지는 아이러니도 함께 존재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182.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683a13438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amp;nbsp;전주전통한지원에서 판매 중인 전주 한지 지끈. /전현아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그럼에도 한지는 여전히 가능성의 재료다. 기록과 예술, 공예와 디자인, 보존과 복원의 영역에서 한지는 다른 종이가 대신할 수 없는 자리를 지닌다. 중요한 것은 한지를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시대의 선택지로 다시 불러올 것인가다.&lt;/p&gt;
&lt;p&gt;본보는 이 질문에서 기획 ‘천년의 종이, 전북의 내일을 쓰다’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한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다시 증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한지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종이를 뜨는 사람과 종이가 쓰이는 자리를 기록하려 한다. 천 년을 견딘 종이와, 지금 사라지고 있는 시간을 함께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기획의 출발점이다.&lt;/p&gt;
&lt;p&gt;천년의 종이는 아직 남아 있다. 이제 묻는다. 이 종이를 만드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lt;/p&gt;
&lt;p&gt;전현아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의 한지 공방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은 종이가 마를 때가 아닌 물을 올리지 않는 날이다. 대야는 비어 있고, 대나무 발은 벽에 기대 있다. 장인은 공방에 나와 있지만 종이를 뜨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물의 온도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은 안 뜹니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종이를 만들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라기보… ]]></description>
			<pubDate>Mon, 29 Dec 2025 14:09:09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전현아</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28500179</guid>
			<title><![CDATA[ [2026 신년기획] 라면 한 봉지에서 시작된 기적, ‘전주 함께 시리즈’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850017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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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8/2025122850015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30e5b453f9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5년 12월 10일 덕진공원에서 열린 ‘전주와 함께라면 축제’에서 우범기(왼쪽 두 번째) 전주시장이 한 아이를 안고 라면을 기부하고 있다.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전주시가 추진해 온 ‘전주 함께 시리즈’는 복지를 제도의 영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라면 한 봉지에서 출발한 나눔은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일상의 공간에 스며들며 세대 돌봄과 지역경제로 확장됐다. ‘전주함께라면’을 시작으로 함께힘!피자, 함께미소, 함께주방, 함께장터, 함께라서로 이어진 흐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지를 일상에 연결해 왔다. 함께 시리즈가 확장해 온 과정을 따라가며, 시민 참여가 일상의 공간 속에서 복지로 이어진 방식을 살펴본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8/2025122850016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32337fe3f9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4년 6월 전주 평화동 학산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전주함께라면 개소식 모습.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라면 한 봉지로 만든 일상의 복지, 전주 함께 시리즈의 출발&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전주함께라면’으로 시작한 전주형 복지정책 ‘함께 시리즈’가 새로운 도시형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행정이 모든 위기가구를 찾아낼 수 없었던 한계를 넘어 ‘시민이 직접 복지를 만드는 구조’를 구현한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lt;/p&gt;
&lt;p&gt;전주시는 혼자 사는 중장년과 은둔형 위기가구,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으로 어려움에 놓인 가정 등 제도 밖에서 발생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주목했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이런 위기를 제때 발견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전주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복지 공간을 일상 곳곳에 마련하는 전략을 선택했다.&lt;/p&gt;
&lt;p&gt;그 첫 단계가 라면 한 봉지를 매개로 한 ‘전주함께라면’이다. ‘함께라면’은 복지관과 청소년시설 등에 라면 나눔 공간을 조성해 누구나 별도의 신청이나 심사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라면을 채우고, 도움이 필요한 시민이 아무런 부담 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다.&lt;/p&gt;
&lt;p&gt;‘함께라면’의 핵심은 순환이다. 시민의 기부로 채워진 라면이 또 다른 시민의 식사가 되고, 복지관을 반복적으로 찾는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일상적인 대화와 이용 과정에서 생활 상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상담을 통해 복지 신청과 지원으로 이어진다. 제도 밖에 머물던 위기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것이다.&lt;/p&gt;
&lt;p&gt;‘함께라면’은 2024년 6개 복지관에서 시작해 2025년 청소년시설 2곳에 추가로 개소했다. 이후 라면에 커피와 책을 더한 복합 복지공간 ‘함께라떼’로 발전하며, 현재 함께라면 8개소, 함께라떼 6개소가 운영 중이다.&lt;/p&gt;
&lt;p&gt;효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4년 12월 기준 ‘함께라면’ 누적 이용자는 6만 8000여 명, ‘함께라떼’ 이용자는 3만 2000여 명에 이른다. 두 공간을 통해 이어진 후원은 총 994회로 라면과 커피, 즉석밥 등 물품과 성금을 합쳐 약 1억 8000만 원 규모다. 이 과정에서 맞춤형 지원으로 이어진 위기가구 발굴도 211건에 달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8/2025122850016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312cf173f9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함께미(米)소(笑)’ 프로젝트에 참여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세대를 잇고, 나눔을 넓히다…함께 시리즈가 만든 변화&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전주함께라면’의 방식은 이후 확장되는 ‘전주 함께 시리즈’ 전반을 떠받치는 출발점이 됐다. 시민 참여와 일상 공간을 기반으로 한 접근은 세대 돌봄과 나눔, 지역경제 영역으로 확장됐다.&lt;/p&gt;
&lt;p&gt;‘전주 함께 시리즈’의 세 번째 나눔 사업인 ‘함께힘!피자’는 세대를 잇는 복지 모델이다. 이 사업은 후원금으로 재료를 마련하고 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간식을 아동·청소년 시설에 전달하는 구조다. 어르신에게는 일자리 기회를,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전주시 3개 시니어클럽이 참여해 피자 796판, 샌드위치 743개, 찐빵 85박스를 87개 지역아동센터와 공동생활가정 등에 전달했다.&lt;/p&gt;
&lt;p&gt;독거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시민참여형 나눔 프로젝트인 ‘전주함께미(米)소(笑)’도 추진됐다. 이 사업은 정부가 추진한 민생소비쿠폰 사용 금액의 10%를 기부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온정을 나누는 방식이다. 지난 한 해 794건의 후원이 이어졌고, 성금과 물품을 합쳐 약 2억 3000만 원 규모의 기부가 모였다. 모인 후원은 돌봄이 필요한 독거노인에게 백미와 누룽지, 식료품 등의 형태로 전달됐다.&lt;/p&gt;
&lt;p&gt;나눔을 실천하는 공유공간으로는 ‘전주함께주방’이 자리 잡았다. 함께주방은 시민과 자생단체, 봉사단체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조리 공간이다. 사전 신청을 통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만들어진 음식은 이웃과 나누게 된다. 전주시는 노송동 천사마을, 전주푸드 효천점에 이어 최근 전주시자원봉사센터에 3호점을 추가로 조성하며 운영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lt;/p&gt;
&lt;p&gt;상생의 문화를 지역경제 회복으로 연결한 ‘전주함께장터’도 함께 추진됐다. 함께장터는 기업과 공공기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착한 소비 운동으로,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이용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사업이다. 특히 9월부터는 산업단지 노동자들의 건강 증진과 사기 진작을 위한 산단 노동자 아침 식사 지원이 본격 추진돼 큰 호응을 얻었다. 산단 거점지역 2곳에서 소상공인의 선결제와 시민 후원금으로 마련한 김밥, 컵밥, 샐러드 등을 새벽 출근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은 총 13회에 걸쳐 진행됐으며 846개 업체, 4325명의 노동자가 든든한 아침 식사를 지원받았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8/20251228500176.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332bf413fb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5년 3월 ‘전주함께장터’에 참여한 청년 스타트업 6개사 대표가 우범기 전주시장(오른쪽 네 번째), 이동노동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주시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일상 속으로 스며든 복지, 다음 장을 준비하다&lt;/strong&gt;&lt;/p&gt;
&lt;/div&gt;
&lt;p&gt;함께라면에서 함께라떼, 함께힘!피자, 함께미소, 함께주방, 함께장터로 이어진 ‘전주 함께 시리즈’는 2025년 전북특별자치도 시·군 우수정책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한 지금까지 전국 45개 기관이 전주를 방문해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했고, 이 가운데 익산과 경기 광명시‧파주시 등 5개 지역에서는 ‘함께라면’을 실제로 도입해 운영하는 등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lt;/p&gt;
&lt;p&gt;2025년 12월 덕진공원에서 열린 ‘전주와 함께라면 축제’는 함께 시리즈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행사였다. ‘라면 1개 기부 후 입장’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민들의 흥미를 이끌었고 누구나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행사를 통해 라면 6456개와 성금 120만 원이 모였으며, 시는 축제를 계기로 ‘쉬운 기부 문화’를 더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lt;/p&gt;
&lt;p&gt;온정의 흐름은 책을 매개로 한 새로운 나눔으로 이어졌다. 전주시는 지난해 12월 책을 매개로 한 새로운 함께 시리즈인 ‘함께라서(書)’를 발표했다. 함께라서는 시민과 기업, 지역 서점이 참여해 책을 기부하고 나누는 방식의 복지사업이다. 기증된 도서는 독서 소외계층과 시민에게 전달되며, 책을 매개로 한 나눔 활동을 일상에서 이어가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lt;/p&gt;
&lt;p&gt;전주시는 시민과 기업, 단체 등의 자발적인 책 기증을 바탕으로 나눔을 확산하고, 다 읽은 책을 다시 나누는 실천을 통해 참여의 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먹거리 중심으로 전개돼 온 기존 ‘함께 시리즈’에 책을 더해, 나눔의 영역을 확장할 방침이다.&lt;/p&gt;
&lt;p&gt;‘전주 함께 시리즈’는 시민의 참여를 통해 복지를 생활 속에서 축적해 나가고 있다. 라면 한 봉지에서 시작된 나눔은 세대를 연결하고 지역 경제 회복으로 이어졌으며, 이제는 책을 매개로 한 새로운 나눔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시민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이 하나씩 넓혀지며 일상 속 복지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lt;/p&gt;
&lt;p&gt;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 함께 시리즈는 라면 한 봉지, 커피 한 잔 같은 작은 나눔이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생활권 기반 복지 공간을 넓히고 시민 참여형 나눔 문화를 만들어 ‘함께 사는 도시 전주’의 복지 패러다임을 차분히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lt;/p&gt;
&lt;p&gt;강정원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시가 추진해 온 ‘전주 함께 시리즈’는 복지를 제도의 영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라면 한 봉지에서 출발한 나눔은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일상의 공간에 스며들며 세대 돌봄과 지역경제로 확장됐다. ‘전주함께라면’을 시작으로 함께힘!피자, 함께미소, 함께주방, 함께장터, 함께라서로 이어진 흐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지를 일상에 연결해 왔다. … ]]></description>
			<pubDate>Sun, 28 Dec 2025 13:28:0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강정원</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31500149</guid>
			<title><![CDATA[ [2026 전북일보] 유익한 뉴스 다양화, 디지털 혁신 가속화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3150014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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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6/01/01/2026010150001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76a911044e8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북일보 사옥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2026년 새해 창간 76주년을 맞는 전북일보는 독자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다양한 뉴스를 지면과 디지털 등을 통해 제공하겠습니다.&amp;nbsp;&lt;/p&gt;
&lt;p&gt;△지방선거 유권자 중심 공정보도&lt;br&gt;전북일보는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을 돕겠습니다. 후보자를 동등한 기준으로 보도하며 선거보도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지키겠습니다. 후보 선택의 올바른 판단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별 쟁점이나 현안 등 정책과 공약 중심으로 보도하겠습니다.&lt;/p&gt;
&lt;p&gt;△전북의 희망찬 삶 담은 연중기획&amp;nbsp;&lt;br&gt;전북일보는 올해 다양한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청년 유출과 동시에 진행되는 중년 귀환의 흐름을 기록하는 ‘인생 후반전, 전북으로 향하다’, 시장을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 있는 청년 창업가들의 이야기인 ‘전북에서 시작한 선택, 새로운 기업이 되다’, 과거 돌봄 안전망이었던 가족제도의 해체의 대안을 모색하는 ‘가족의 재발견’, 올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하는 한지를 조명하는 ‘천년의 종이, 전북의 내일을 쓰다’ 등을 연중기획으로 마련했습니다. &amp;nbsp;&lt;/p&gt;
&lt;p&gt;△디지털 콘텐츠 경쟁력 강화 역점&lt;br&gt;전북일보는 새해에도 디지털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튜브·소셜미디어 기반 영상뉴스 제작에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자체 영상제작 스튜디오를 구축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겠습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로컬 콘텐츠 생산을 통해 전북 최고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힘을 쏟겠습니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2026년 새해 창간 76주년을 맞는 전북일보는 독자 여러분에게 유익하고 다양한 뉴스를 지면과 디지털 등을 통해 제공하겠습니다. △지방선거 유권자 중심 공정보도 전북일보는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독자 여러분의 올바른 선택을 돕겠습니다. 후보자를 동등한 기준으로 보도하며 선거보도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지키겠습니다. 후보 선택의… ]]></description>
			<pubDate>Wed, 31 Dec 2025 14:54:0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전북일보</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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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가족의 재발견] 어떻게 돌볼 것인가 : 이웃과의 느슨한 연대, 친족보다 든든한 울타리 가능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950028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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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233.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79b3c843f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진출처=클립아트 코리아&am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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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초고속 고령화 파고 속에서 과거 돌봄 안전망이었던 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있다. 한 가구를 구성하는 사람의 수가 1970년 평균 5.2명이었다면 2022년에는 2.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1인 가구가 처음으로 800만 가구를 넘었고 가족이라는 기존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원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 제도는 혈연과 이성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에 개인의 삶을 가족 질서 안으로 밀어넣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의 존엄 속에 관계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북일보는 새로운 관계 모델인 1.5가구의 도래를 활용해 지역사회 돌봄 공백과 사회적 고립 등 위기의 현실을 조명하고 해법을 모색한다/편집자주&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237.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7b41be43f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진출처=클립아트 코리아&am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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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27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8d22b7444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진출처=통계청&amp;nbsp;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 가족이 사라진다&amp;nbsp;&lt;/strong&gt;&lt;br&gt;전북에서 가족의 모습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북 지역 평균 가구원 수는 2022년 기준 2.1명 안팎으로 불과 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다. 1970년대 5명 이상이 일반적이던 가구 형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대 구성별 가구 비율 가운데 전북은 1세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국 1세대 비율은 19.0%로 집계됐지만 전북은 43.7%로 전국보다 전북이 24.7%포인트 많았다. 1인 가구 비중 역시 전국(35.5%)보다 전북(37.7%)의 비중이 높아 가족의 소규모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가족의 해체, 1인가구의 증가는 결혼과 출산 감소, 만혼‧비혼의 확산,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 겹치면서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고령화가 더해지면서 고령 1인 가구 역시 지속적으로 많아지는 추세다.&lt;/p&gt;
&lt;p&gt;&lt;strong&gt;△ 가족 해체…돌봄의 위기&amp;nbsp;&lt;/strong&gt;&lt;br&gt;가족 규모의 축소는 단순한 생활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이 자연스럽게 맡아왔던 돌봄의 기능이 함께 약화되고 촘촘해야 할 사회안전망이 헐거워진다. 노부모를 돌보는 자녀, 아픈 가족을 보살피를 구성원, 일상 속 위기를 함께 감당하던 가족의 역할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면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전북은 돌봄 공백이 문제로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국 평균을 웃도는 상황에서 돌봄 인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가족 해체로 돌봄 공백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의 구조적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9/2025122950023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87ae76143f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진출처=클립아트코리아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 느슨한 연대 1.5가구 부상&amp;nbsp;&lt;/strong&gt;&lt;br&gt;전주시 평화동에 거주하는 70대 후반의 A씨는 수년째 혼자 생활하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자녀들은 타 지역에 거주 중이다. 평소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몸이 아플 때나 위급 상황이 생길 경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불안한 마음이 크다. A씨는 “가족이 가까이 있지 않다 보니 아플 때가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령 1인가구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돌봄의 부재다. 과거에는 가족이 자연스럽게 맡아왔던 병원 동행, 식사준비, 일상 안전 확인 등의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공 돌봄 서비스가 일부 제공되고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정해진 시간에만 방문이 이뤄지거나, 기본적인 안부 확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일상 전반을 떠받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복지 현장에서는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제도 이용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제도의 기준에 맞지 않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목받는 것이 비혈연 기반의 돌봄 관계 즉 1.5가구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이웃과 지인, 지역 구성원들이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안부를 나누고 서로를 살피는 방식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령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소규모 모임이나 일상 교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고립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lt;/p&gt;
&lt;p&gt;&lt;strong&gt;△ 생존 담보로 한 돌봄, 핵심은 0.5가구 &amp;nbsp;&lt;/strong&gt;&lt;br&gt;전문가들은 이러한 관계를 개인의 선택과 존엄을 전제로 한 새로운 돌봄 방식으로 보고 있다. 혈연이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망이 지역사회 안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해체가 이미 현실이 된 오늘날, 돌봄을 다시 가족 안으로만 돌려보내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추주희 교수는 “고령화 사회라는 파고 안에서 전북의 1인 가구는 1.5가구처럼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에서와 지역에서의 1.5가구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원래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등의 트렌드를 담고 있지만, 전북에서는 취향이 아닌 생존과 돌봄의 문제로 시선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령인구가 전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만큼 1.5가구에서 0.5는 고립사를 막고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타자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추 교수는 “지역사회 이웃과의 느슨한 연대는 어쩌면 가장 취약한 사람들끼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며 “1인 가구 체제 속에서 청년부터 중‧장년, 고령층까지 지역에서 안전하게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주거사회정책 등을 논의하는 시간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은 줄었지만 돌봄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지역사회에 던져진 과제다.&lt;/p&gt;
&lt;p&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초고속 고령화 파고 속에서 과거 돌봄 안전망이었던 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있다. 한 가구를 구성하는 사람의 수가 1970년 평균 5.2명이었다면 2022년에는 2.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1인 가구가 처음으로 800만 가구를 넘었고 가족이라는 기존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원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 제도는 혈연과 이성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 ]]></description>
			<pubDate>Mon, 29 Dec 2025 14:24:2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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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인생 후반전, 전북으로 향하다] 중장년 고향으로 유턴…전북 인구전략 새틀 짜야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3050059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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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30/2025123050063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e74f34d4c7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5년 전북 취업박람회 모습. /사진=전북일보 DB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북은 지난 20년 간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 대상 지역이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지만 청년층 유출은 멈추지 않았고, 도내 14개 시·군 중 대부분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놓였다. 저출산·고령화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인구 감소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분명해졌다.&lt;/p&gt;
&lt;p&gt;그러나 최근 통계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포착된다. 산업화 이후 타지로 떠났던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정년퇴직, 삶의 전환을 계기로 다시 전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여전히 현역이며, 수도권과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세대다.&lt;/p&gt;
&lt;p&gt;전북일보는 새해를 맞아 ‘청년 유출’과 동시에 진행되는 ‘중년 귀환’의 흐름을 기록한다. 이번 기획은 돌아온 50대의 삶과 선택을 통해, 전북이 이들을 지역 소멸을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인적 자산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30/2025123050063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e74da9a4c7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4년 전북 소멸위험지수./사진=호남지방통계청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균형발전 20년, 전북 인구는 왜 더 빠르게 줄었나&lt;/p&gt;
&lt;p&gt;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가 본격 도입된 2005년 이후 20년간 중앙정부는 균형발전과 지방 활성화를 목표로 약 203조 원의 재정을 전국에 투입했다.&amp;nbsp;&lt;/p&gt;
&lt;p&gt;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의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국 소멸위험지역은 2005년 33곳에서 2024년 130곳으로 늘었고, 지방 인구 감소 속도는 오히려 가팔라졌다.&lt;/p&gt;
&lt;p&gt;전북의 상황은 전국 평균보다 훨씬 심각하다. 균특회계 도입 당시 약 185만 명이던 전북 인구는 2025년 기준 175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20년 사이 정읍시 한 곳이 통째로 사라진 것과 맞먹는 규모다. 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11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며, 전체 지자체의 약 80%가 인구 소멸 위험 단계에 놓여 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lt;/p&gt;
&lt;p&gt;인구 감소의 중심에는 청년층 유출이 있다. 통계청과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종합하면 전북은 최근 수년간 청년 순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전북의 청년 순유출률은 –1.3%로 전국 평균(–0.5%)의 두 배를 넘는다.&amp;nbsp;&lt;/p&gt;
&lt;p&gt;같은 특별자치도인 강원보다도 높은 수치로, 전북이 청년 인구 이동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lt;/p&gt;
&lt;p&gt;청년들이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인구 이동에 따른 소득 변화’ 분석에 따르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의 평균소득은 1년 새 22.8% 증가한 반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한 청년의 소득 증가율은 7.6%에 그쳤다. 일자리의 질과 임금 격차가 청년 이동을 사실상 단방향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는 셈이다.&amp;nbsp;&lt;/p&gt;
&lt;p&gt;전북 역시 이 구조에서 예외가 아니다.&lt;/p&gt;
&lt;p&gt;전문가들은 전북의 인구 감소를 단순한 자연 감소나 출산율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산업화 이후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 구조, 상대적으로 취약한 광역 교통망, 정주 여건의 한계가 겹치며 청년층 이탈이 구조화됐다는 분석이다.&amp;nbsp;&lt;/p&gt;
&lt;p&gt;균형발전 재정이 투입됐지만, 일자리·주거·교통이라는 핵심 축을 동시에 개선하지 못하면서 정책 효과가 인구 유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lt;/p&gt;
&lt;p&gt;결국 지난 20년간의 균형발전 정책은 전북에 재정을 공급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청년이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 전북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소멸위험 비중을 기록하는 지역으로 남게 됐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30/20251230500593.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e571f014c1a&quot;&gt;
&lt;/figure&gt;
&lt;p&gt;△줄어드는 청년, 늘어나는 중년…전북 인구 전략의 전환점&lt;/p&gt;
&lt;p&gt;청년층이 빠져나가는 사이, 전북에서는 또 다른 인구 이동이 관측된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유입이다. 수도권에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거나, 부모 돌봄·주거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전북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lt;/p&gt;
&lt;p&gt;이들의 귀환은 전통적인 귀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순한 고향 회귀가 아니라 은퇴 이후 삶의 재설계, 전직·창업, 생활비 구조 전환이 맞물린 결과다. 통계청 인구 이동 자료에서도 전북은 청년층 감소와 달리 중·장년층에서는 순유입 흐름이 나타난다.&lt;/p&gt;
&lt;p&gt;문제는 전북의 인구 정책이 이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정책은 있으나 일자리·교통·주거의 핵심 조건과 분절돼 있고, 중·장년층을 위한 전직·재교육·정주 지원은 체계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lt;/p&gt;
&lt;p&gt;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전북처럼 청년과 중년 모두에게 구조적 약점이 있는 지역은 전국 공통 사업만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청년에게는 광역 통근권과 일자리 연계, 중년에게는 재취업·창업·돌봄을 묶은 전북형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어 “청년 유출을 막는 동시에 돌아오는 중년을 지역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구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인구 감소는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30/2025123050059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6e572c3b4c1c&quot;&gt;
&lt;/figure&gt;
&lt;p&gt;△돌아온 50대, 전북이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는 사라진다&lt;/p&gt;
&lt;p&gt;청년 유출과 중·장년 귀환이라는 엇갈린 흐름은 전북 인구 구조가 이미 전환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amp;nbsp;&lt;/p&gt;
&lt;p&gt;문제는 이 변화가 정책적 준비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이 떠난 자리를 중·장년이 채우고 있지만, 전북은 이들을 지역의 새로운 인적 자산으로 연결할 제도와 환경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다.&lt;/p&gt;
&lt;p&gt;수도권과 대기업, 공공기관, 전문직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한 50대는 단순한 ‘인구 숫자’가 아니다.&amp;nbsp;&lt;/p&gt;
&lt;p&gt;산업 경험과 조직 운영 노하우, 기술과 인맥을 축적한 현역 인력이다. 그러나 전북으로 돌아온 이후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제한적이다. 전직·재취업을 위한 교육 체계와 지역 산업과의 연결 통로는 부족하고, 생활권 단위의 교통·의료·돌봄 인프라도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lt;/p&gt;
&lt;p&gt;이 때문에 귀향 이후 다시 수도권으로 이동하거나, 지역 정착에 실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중·장년층의 귀환이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일시적 인구 이동에 그칠 뿐, 지역 활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청년 유출을 막지 못한 구조가 중·장년 귀환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lt;/p&gt;
&lt;p&gt;전북의 인구 전략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된 상황에서 인구 감소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미 나타난 인구 이동의 방향을 어떻게 지역 정책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소멸의 속도와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돌아오는 50대를 지역의 노동력과 돌봄 자원, 공동체 리더로 연결할 수 있다면 전북의 인구 구조는 또 다른 균형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lt;/p&gt;
&lt;p&gt;전북일보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026년 연중기획으로 ‘돌아온 50대’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amp;nbsp;&lt;/p&gt;
&lt;p&gt;수도권을 떠나 전북을 다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정착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과 한계는 무엇인지,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자 하는지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 전할 계획이다.&lt;/p&gt;
&lt;p&gt;이를 통해 청년 유출 이후 전북이 맞이한 새로운 인구 흐름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지역 정책과 사회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고민하려 한다.&lt;/p&gt;
&lt;p&gt;이준서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북은 지난 20년 간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핵심 대상 지역이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됐지만 청년층 유출은 멈추지 않았고, 도내 14개 시·군 중 대부분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놓였다. 저출산·고령화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인구 감소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포착된다. 산업화 이후 타지로 … ]]></description>
			<pubDate>Tue, 30 Dec 2025 17:22:12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이준서</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27500008</guid>
			<title><![CDATA[ 새해 일출은 전북에서⋯해돋이 명소·축제 총정리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750000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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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7/2025122750000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5d17a54c3df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지난해 새해 익산 백제왕궁(왕궁리 유적) 왕궁리오층석탑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전북일보 DB(익산=송승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가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온다. 환히 밝아오는 첫 해를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amp;nbsp;&lt;/p&gt;
&lt;p&gt;27일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전북 지역의 첫 일출(오전) 시각은 남원 7시 39분, 임실·장수 7시 40분, 전주 7시 41분, 정읍 7시 42분, 익산·부안 7시 43분, 군산·변산 7시 44분이다. 이외 시·군(천문연 천문우주지식포털 제공)은 순창·진안 7시 40분, 무주 7시 41분, 고창·완주 7시 42분, 김제 7시 43분이다.&lt;/p&gt;
&lt;p&gt;도내 가볼만한 해돋이 명소와 축제를 소개해 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익산 백제왕궁(왕궁리 유적)&lt;/p&gt;
&lt;p&gt;익산은 특별한 일출 명소를 가지고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왕궁(왕궁리 유적)이다. 매년 해돋이를 보러 산과 바다에 갔던 사람이라면 주목할만하다.&amp;nbsp;&lt;/p&gt;
&lt;p&gt;백제왕궁은 일출부터 일몰, 별이 반짝이는 늦은 밤까지 모든 시간이 아름다워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모여 든다. 특히 왕궁리 오층 석탑 뒤로 떠오르는 해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일출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전해진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7/20251227500002.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5cfd256c3df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6 백제왕궁 해맞이 행사 포스터. 익산시 인스타그램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이곳에서 내년 1월 1일 오전 7시에 2026 백제왕궁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따뜻한 차를 나누며 소망을 적은 소원문을 거는 ‘여명 소원 나눔’을 시작으로 몸과 마음을 깨우는 해맞이 요가, 익산시립합창단 공연에 이어 일출 직후 소원종 퍼포먼스를 진행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안 변산반도 국립공원&lt;/p&gt;
&lt;p&gt;보통 일출은 동해, 일몰은 서해가 장관을 이룬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부안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서해지만, 힘찬 일출과 환상적인 일몰 명소로 꼽힌다. 파도, 빨간 해의 조화는 마치 수채화 작품 같다고 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7/20251227500003.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5cfda10b3df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6 부안 해맞이 행사 안내. 부안축제 인스타그램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부안군은 오는 31일 변산해수욕장 일원에서 2025 변산해넘이축제를 갖고, 다음 날인 새해는 6곳에서 해맞이 행사를 연다.&amp;nbsp;&lt;/p&gt;
&lt;p&gt;변산(변산해수욕장)·상서(개암사)·계화(계중마을회관)·백산(백산성지)면은 오전 6시, 하서면(석불산 주차장 일원)은 오전 6시 20분, 부안서림신문(해뜰마루)은 오전 7시에 시작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군산 해돋이공원&lt;/p&gt;
&lt;p&gt;이름부터 일출 명소의 기운이 느껴지는 군산 선양동 해돋이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amp;nbsp;&lt;/p&gt;
&lt;p&gt;실제로 선양동은 군산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이하는 동네라는 뜻이라고 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담은 채만식의 소설 &amp;lt;탁류&amp;gt;의 주인공 초봉이가 살던 곳이다. 조정래의 소설 &amp;lt;아리랑&amp;gt;의 배경이기도 했다.&amp;nbsp;&lt;/p&gt;
&lt;p&gt;이렇듯 선양동의 해돋이공원은 작지만, 오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군산 시내 중심부에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더러 앞이 탁 트여 있어 군산 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7/20251227500004.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5cfe20ed3df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2026 탁류길 해돋이 문화제. 군산시 인스타그램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내년 1월 1일 오전 7시 이곳에서 2026 탁류길 해돋이 문화제가 열린다. 예술인들의 기념 무대를 시작으로 일출 시각에 맞춰 해맞이 퍼포먼스, 지역 인사 덕담, 시민 희망 인터뷰 등이 이어진다. 행사 후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준비한 떡국도 나눠 먹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제 성산공원&lt;/p&gt;
&lt;p&gt;김제시청 옆 성산공원 역시 군산 해돋이공원처럼 김제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공원으로 불린다. 도심 속의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amp;nbsp;&lt;/p&gt;
&lt;p&gt;오르막길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평탄한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어 산책 명소로도 분류된다.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 체험원 등이 조성돼 있어 가족 단위로 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7/20251227500005.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5d07c53d3df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제시 2026 병오년 해맞이 행사. 김제시 인스타그램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이곳에서도 오전 7시부터 김제시 2026 병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새해 소망을 적어 새해 맞이 소원의 탑을 만들고, LED 호롱불을 들고 새해 인사와 함성을 지르고, 올해의 운세가 담긴 행운쿠키를 먹을 수 있다.&amp;nbsp;&lt;/p&gt;
&lt;p&gt;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가고,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온다. 환히 밝아오는 첫 해를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27일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전북 지역의 첫 일출(오전) 시각은 남원 7시 39분, 임실·장수 7시 40분, 전주 7시 41분, 정읍 7시 42분, 익산·부안 7시 43… ]]></description>
			<pubDate>Sat, 27 Dec 2025 09:11:1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현우</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24500140</guid>
			<title><![CDATA[ “산타 준비됐어?”⋯아이들보다 더 바쁜 어른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450014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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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3/2025122350056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4a271614361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시의 한 조명가게에서 커플이 형형색색 빛을 내는 트리와 장식품을 쇼핑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0,75%,60%);&quot;&gt;&lt;strong&gt;◇울면 안돼 울면 안돼&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120,75%,60%);&quot;&gt;&lt;strong&gt;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0,75%,60%);&quot;&gt;&lt;strong&gt;선물을 안 주신대&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120,75%,60%);&quot;&gt;&lt;strong&gt;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0,75%,60%);&quot;&gt;&lt;strong&gt;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lt;/strong&gt;&lt;/span&gt;&lt;strong&gt;/&lt;/strong&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hsl(120,75%,60%);&quot;&gt;&lt;strong&gt;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마스가 왔다. 여기저기 휘황찬란한 트리가 반짝이고, 상점마다 캐롤이 들려오는 때가 되면 산타만큼 바쁜 사람이 있다.&amp;nbsp;&lt;/p&gt;
&lt;p&gt;바로 어른들이다. 수상한 암호문처럼 보이는 “山ㅌr HOME BANG門(산타 집 방문)”이라는 제목의 아파트 안내문을 붙이는가하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산타 영상을 만드는 등 크리스마스 준비에 분주하다.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한 따뜻한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것이다.&lt;/p&gt;
&lt;p&gt;24일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이슈를 한데 모아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4/20251224500131.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4f7d65e037c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보배드림에 올라온 크리스마스 관련 아파트 안내문. 보배드림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아이들은 못 읽는 안내문?&lt;/p&gt;
&lt;p&gt;마치 암호문 같은 산타 모집 안내문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lt;/p&gt;
&lt;p&gt;지난달 말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등에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이색 안내문 ‘SSANㅌr MOZIP(산타 모집)’이 공유됐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을 전해 줄 산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한글, 한자, 영어를 섞어 어른들만 알아볼 수 있게 작성한 게 특징이다.&lt;/p&gt;
&lt;p&gt;이를 본 누리꾼들은 “암호문 같지만 다 읽히는 게 신기하다”, “이게 바로 어른들의 배려다&quot;, “아기들 동심 지켜”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4/2025122450013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4f866aa737d2&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산타 AI 검색하면 뜨는 사회관계망서비스 피드. 인스타그램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quot;진짜 산타 할아버지예요?&quot;⋯AI 산타 등장&lt;/p&gt;
&lt;p&gt;부모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산타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lt;/p&gt;
&lt;p&gt;그동안 부모가 산타 분장을 한 채로 선물을 전달했다면, 이제는 AI 기술로 진짜인 것처럼 산타를 만드는 방식이다. 산타가 베란다 창문·현관문을 통해 들어오고, 잠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등 여러 형태로 제작이 가능하다.&lt;/p&gt;
&lt;p&gt;쌍둥이 남매를 둔 박모(39) 씨는 “나중에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지금이라도 산타가 있다고 믿는 이 순수함을 지켜 주고 싶다. 산타를 창문으로 들어오게 해야 할지,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4/20251224500139.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4f89a05837d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 노라드 웹사이트 메인 사진. 노라드 캡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quot;우리집은 언제 오지?&quot;⋯산타 위치 추적&lt;/p&gt;
&lt;p&gt;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산타 위치를 추적해 온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노라드)가 올해도 준비를 마쳤다. 한국 기준 오늘(24일) 오후 6시부터 추적이 가능하다.&lt;/p&gt;
&lt;p&gt;노라드는 무려 70년 동안 크리스마스 이브 때면 산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lt;/p&gt;
&lt;p&gt;올해부터 미국 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웹사이트를 통한 전화 연결 기능을 도입했다. 한국어, 영어 등 총 9개 언어로 서비스된다. 노라드 공식 웹사이트(&lt;a href=&quot;https://www.noradsanta.org/ko/&quot;&gt;https://www.noradsanta.org/ko/&lt;/a&gt;)에서도 산타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lt;/p&gt;
&lt;p&gt;해당 이벤트는 지난 1955년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lt;/p&gt;
&lt;p&gt;당시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한 신문에 백화점의 ‘산타에게 전화 걸기’ 광고가 실렸다. 전화번호가 잘못 기재되면서 노라드의 전신인 대륙방공사령부(CONAD·코나드)에 산타의 위치를 묻는 전화가 쇄도하는 해프닝이 계기가 됐다.&lt;/p&gt;
&lt;p&gt;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울면 안돼 울면 안돼/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선물을 안 주신대/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오늘 밤에 다녀 가신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마스가 왔다. 여기저기 휘황찬란한 트리가 반짝이고, 상점마다 캐롤이 들려오는 때가 되면 산타만큼 바쁜 사람이 있다. 바로 어른들이다. 수상한 암호문처럼 보이는… ]]></description>
			<pubDate>Wed, 24 Dec 2025 17:50:06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현우</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21500333</guid>
			<title><![CDATA[ [2025년 하반기 전주시의회 의정 결산] “시민과 함께 전주의 미래 준비하는 의회 구현”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215003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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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2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95448b2c1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주시의회 제425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 모습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전주시의회가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 해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받들며 전주시민과 함께 전주의 청사진을 그린 2025년 하반기 의정활동을 의장단 및 각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410.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b02d372cb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남관우 의장 “지역 발전‧시민 복리증진 역점”&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남관우 의장은 제12대 후반기 원구성 이후 시민의 뜻을 받들어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역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에 역점을 두고 주민의 목소리가 시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전주시의회’를 구현하는 데 노력해 왔다.&lt;br&gt;그는 2025년 하반기 동안 ‘현장 중심’과 ‘시민 체감’을 핵심 가치로 삼아 의정활동에 매진했다.&lt;br&gt;남 의장은 “시민 한 분 한 분의 행복이 곧 전주의 미래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라면서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전주가 한 차원 더 도약하는 길을 만드는 데 시민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0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86cc712be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최주만 전주시의회 부의장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최주만 부의장 “원활한 의정활동 지원 최선”&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최주만 부의장은 의회의 열정적이고 전문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가시적 의정 성과를 창출해 왔다.&amp;nbsp;&lt;br&gt;특히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지방의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행정사무감사와 시정질문, 상임위원회 및 연구단체 활동 등을 통한 다양한 입법 정책의 대안 제시로 시민의 복리증진에 역점을 둔 의정활동을 펼쳤다.&lt;br&gt;최 부의장은 “답습된 관행을 탈피하고 획일화된 지역의 미래가 아닌 전주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정체성과 특색으로 전주다운 내일을 만들어 가겠다”면서 “앞으로도 남관우 의장과 함께 의원들을 지원하는 울타리 역할을 통해 전주시 발전의 초석이 되겠다”고 약속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0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87f1712be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운영위원회 모습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운영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운영위원회(김원주 위원장, 신유정‧이국‧이남숙‧이보순‧장재희‧정섬길‧천서영‧최지은 의원)는 의회의 전반적 업무가 원활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lt;br&gt;특히 의회 관련 사항을 심의·조율 및 각종 조례의 발의와 안건 심의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고 연구하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의원들의 역량 강화 연찬회를 개최하는 등 효율적인 의정활동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lt;br&gt;또한 의원 연구단체의 입법 활동과 정책개발 등 체계적인 의정활동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내실 있고 효율적인 의회 운영을 통해 의정활동이 시민 복리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힘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행정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행정위원회(최용철 위원장, 김성규‧김동헌‧김학송‧이기동‧이남숙‧장재희‧최명권 의원)는 시민의 편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행정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lt;br&gt;행정위는 시민의 목소리가 시정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전주시의 예산이 투명하고 적재적소에 집행됐는지 수시로 점검하는 등 집행부 감시·견제에 노력하고 있으며, 건전한 재정 운영을 통해 지역 간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데도 열정을 다했다.&amp;nbsp;&lt;br&gt;또한 ‘전주시 공공자금 운용 및 관리 조례안’을 통해 전주시 공공자금의 효율적인 운용·관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 시민 복리증진에 기여했으며, ‘전주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조례안’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강화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0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89d55e2bf0&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복지환경 위원회 위원들이 덕진공원 대표 관광지 조성 사업에 대해 설명 듣고 있다.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복지환경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복지환경위원회(김윤철 위원장, 김정명‧양영환‧온혜정‧이국‧채영병‧천서영‧최주만 의원)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안정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환경보전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lt;br&gt;특히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복지 수요와 환경에 관한 관심을 반영해 더 나은 시민의 삶을 위한 열정적인 의정활동에 매진하고 있다.&lt;br&gt;복지환경위는 ‘전주시 장애인 일자리 창출 및 고용촉진 지원 조례’를 개정해 중증장애인의 일할 권리와 사회참여 기회를 보장하고자 했고, ‘전주시 심폐소생을 위한 응급의료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심폐소생을 위한 응급장비 확충과 관리 등을 제도화해 지역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데도 이바지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1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8be1d32bf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문화경제위원회 위원들이 송천동 체육 시설 현장을 방문했다.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문화경제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문화경제위원회-문화예술 진흥‧관광 콘텐츠 개발 노력&lt;br&gt;문화경제위원회(박혜숙 위원장, 이성국‧김원주‧송영진‧신유정‧이보순‧장병익‧전윤미‧한승우 의원)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예술 진흥과 관광 콘텐츠 개발 및 산업화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활성화에 힘썼다.&lt;br&gt;문경위는 세계적인 전통문화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전주의 명성을 드높이고 전통과 미래가 조화되는 잘 사는 전주를 만들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amp;nbsp;&lt;br&gt;특히 관광 콘텐츠 개발 및 산업화를 통한 고용 창출과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 중점을 두고, 소상공인의 육성 및 지원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진해 왔다.&amp;nbsp;&lt;br&gt;또한 인공지능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인공지능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전주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활용 지원에 관한 조례안’를 제정했고, 글로벌 제작사 유치를 촉진하고 지역 영상산업의 진흥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주시 로케이션 인센티브 조례안’을 통과시켰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21/2025122150031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f8f25b02bf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도시건설위원회 위원들이 기자촌 재개발 정비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도시건설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도시건설위원회(박형배 위원장, 김세혁‧김현덕‧박선전‧이병하‧정섬길‧최명철‧최서연‧최지은 의원)는 효과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개발로 쾌적하고 안전한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했다.&lt;br&gt;위원회는 전주시의 각종 개발 사업이 도시 균형발전 등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간담회와 토론회를 적극 개최하며, 더 많은 전주시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lt;br&gt;특히 의용소방대의 현장 대응능력을 강화해 전주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전주시 의용소방대 지원 조례안’을 제정했으며, 모범운전자 지원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전주시 모범운전자연합회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예산결산특별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예산결산특별위원회(최명철 위원장, 최지은‧이기동‧양영환‧박선전‧이병하‧정섬길‧채영병‧김학송‧신유정‧장재희‧전윤미‧천서영‧한승우 의원)는 투명한 예산집행과 재정효율성 극대화에 초점을 두고 위원회를 운영했다.&lt;br&gt;예결특위는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산 심의에 힘썼으며,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로 예산이 적재적소에 사용되도록 노력했다.&amp;nbsp;&lt;br&gt;또 2026년도 본예산안 심의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급하지 않은 사업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진행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적정성 및 시민의 의견 반영 여부를 자세히 검토해 예산안을 의결하는 등 전주시의 밝은 미래를 위한 본연의 역할에 매진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strong&gt;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행정사무감사특별위원회(이남숙 위원장, 장병익‧김현덕‧김동헌‧송영진‧김성규‧김세혁‧김정명‧온혜정‧이국‧이보순‧이성국‧최명권‧최서연 의원)는 전주시정에 대한 내실 있고 심도 있는 감사를 추진했다.&lt;br&gt;행감특위는 11월 18일부터 26일까지 시정 전반에 대한 행정사무 감사를 시행했다. 올해 감사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집행부에서 추진해 온 각종 사업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시민의 혈세가 효율적으로 운용되었는지 예산집행 과정을 중점적으로 확인했으며, 전주시가 추진한 주요 시책들의 추진 결과 등을 점검했다.&lt;/p&gt;
&lt;p&gt;강정원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시의회가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 해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받들며 전주시민과 함께 전주의 청사진을 그린 2025년 하반기 의정활동을 의장단 및 각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남관우 의장 “지역 발전‧시민 복리증진 역점” 남관우 의장은 제12대 후반… ]]></description>
			<pubDate>Sun, 21 Dec 2025 15:27:38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강정원</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18500451</guid>
			<title><![CDATA[ [팔팔 청춘] 우리는 ‘늦깎이’ 배우·작가·가수다⋯&quot;이 시대에 고마워&quot;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1850045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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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8/20251218500443.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0444f8926e4&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내년 2월 28일까지 하얀양옥집에서 열리는 ‘서툴지만 반가운, 나의 예술!&#39; 전시회 메인 공간. 박현우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5&quot;&gt;
 &lt;p&gt;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북도지사 관사 ‘하얀양옥집’이 53년 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매 분기 도민 참여형 전시가 열리며, 색다른 예술 실험으로 주목을 받아왔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올해 마지막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amp;lt;서툴지만 반가운, 나의 예술!&amp;gt;은 김제 용평마을·고창 월봉마을·완주 화정마을 어르신 23명과 전북 예술인 이랑고랑·책마을해리·쟈니컴퍼니 3팀이 함께 만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시는 김제 용평마을(영상물), 고창 월봉마을(시), 완주 화정마을(영상물) 순서로 이어진다. 김제는 마을 사람이 목격했다는 도깨비 이야기를, 고창은 삶 속에 스며들었던 세월을, 완주는 한평생 살아온 마을을 작품에 담았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동안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 잡고, 굽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완성한 결과물이다. 각 마을의 초고령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봤다. 작품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 전시하니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물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들 “늙은이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안에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예술을 접한 어르신들의 조용한 기쁨이 느껴졌다.&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8/20251218500359.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01b3fb2263c&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제 용평마을 박점순 어르신. 이랑고랑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옛날 같으면 땅 속에 있었을 텐데, 시대를 잘 타고 났당게요.&lt;/p&gt;
&lt;/div&gt;
&lt;p&gt;김제 용평마을에 사는 ‘늦깎이 배우’ 박점순(91) 씨는 오늘도 마을회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길을 나서는 발걸음만큼은 누구보다 당차다.&lt;/p&gt;
&lt;p&gt;박 씨는 “평소 걸어 다니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선생님이 왔다고 하면 지팡이 짚고, 보행 보조기 밀고, 전동차 타고 꼭 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시골 늙은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다 해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설명했다.&lt;/p&gt;
&lt;p&gt;특히 최근 배우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에는 무서운 것처럼 움찔거리는 연기를 하라고 했다. 연기라고 할 것도 없는데, 한 번에 잘했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다 준비해 왔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놀라는 척만 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에 청소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lt;/p&gt;
&lt;p&gt;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이미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의 인생이 더 궁금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천당이라고 표현하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lt;/p&gt;
&lt;p&gt;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건 ‘팔팔 청춘’의 공통 질문인 인생 조언이었다. 박 씨는 “내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남 눈총 받지 말고, 내 도리는 내가 해야 한다”고 삶의 원칙을 밝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8/20251218500360.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01d6172263e&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고창 월봉마을 (정면 왼쪽부터) 최영애·최복수 어르신. 책마을해리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하다가 귀찮으면 집에 가버려. 근데 잘하면 재미 있잖어, 안 그려?&lt;/p&gt;
&lt;/div&gt;
&lt;p&gt;지난달 말 눈이 내린 고창 월봉마을에서 만난 작가 최복수(89)·최영애(79) 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주옥같았다. 웃을 때는 마치 10대 소녀처럼 수줍어 보였지만, 이야기만 시작하면 단숨에 인생 선배의 얼굴로 바뀌었다.&lt;/p&gt;
&lt;p&gt;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어땠느냐는 질문에도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lt;/p&gt;
&lt;p&gt;복수·영애 씨 모두 “하다가 귀찮고, 피곤하면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재미 있으면 또 하고, 그랬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며 ”못된 짓거리 안 하고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몸이 성하지 않다 보니 오랜 시간 작업하는 게 힘들었던 어르신들이다.&amp;nbsp;&lt;/p&gt;
&lt;p&gt;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짧은 시에 기나긴 삶을 다 담았다. 놀랍게도 작품 하나에서 그들의 삶이 다 느껴졌다. 작품을 보면서 두 어르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꿈을 물었지만, 대답은 ‘나’가 아닌 자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lt;/p&gt;
&lt;p&gt;복수 씨는 “애만 키웠다. 애들 키우고, 결혼 잘 시키는 게 꿈이었다”고, 영애 씨도 “우리 자식들 착하게 잘 크고, 잘 되는 게 내 꿈이었다”고 했다.&lt;/p&gt;
&lt;p&gt;또 이 마을에서 결혼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두 어르신의 마을 사랑도 남달랐다.&lt;/p&gt;
&lt;p&gt;복수 씨는 “다들 잘 지내서 큰 사고 없이 사는 것 같다. 배추도 맛있고, 대파도 맛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영애 씨는 “젊은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는데, 성실하게 잘 산다. 그게 자랑이다”고 답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8/2025121850036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3021ca232646&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완주 화정마을 이장순 어르신. 전북일보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이 나이 먹드락 안 죽고 이렇게 사니까 얼마나 재미 있어.&lt;/p&gt;
&lt;/div&gt;
&lt;p&gt;김제 용평마을은 배우 박점순, 고창 월봉마을은 작가 최복수·최영애가 산다면 완주 화정마을은 가수 이장순(91)이 산다. 연로한 나이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지만, 노래 부를 때만큼은 가수 저리 가라다.&lt;/p&gt;
&lt;p&gt;이 씨는 “어떨 때는 말할 때도 목소리가 안 나온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도 안 돼서 노래는 못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해 보라고 해서 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수줍게 웃었다.&lt;/p&gt;
&lt;p&gt;노래가 잘 나왔다는 기자의 말에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었다.&lt;/p&gt;
&lt;p&gt;그러면서 “전북일보 기자님들이랑 노래 부르는 (쟈니컴퍼니) 선생님들이 와서 같이 해 주니까 너무 재미가 있다. 늙은이들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느나”면서 “이것도 걸어 다닐 수 있으니까 한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참 기쁘다”고 했다.&lt;/p&gt;
&lt;p&gt;이처럼 작은 활동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이 씨에게도 한때 꿈은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 부모님 탓에 공부라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가슴 깊숙이 숨겨 놓은 꿈은 경찰이었다.&lt;/p&gt;
&lt;p&gt;그는 “이제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배우지도 못 했는데, 생각만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는 다 그랬다”며 담담하게 말했다.&lt;/p&gt;
&lt;p&gt;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은 다들 꿈도 이루고 하지 않느냐며 “그냥 다들 재미있게 잘 살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최고인 듯하다. 옆에 있을 때는 중요한지 몰라도, 늙으면 있을 때 잘할 걸 생각이 든다“고 조언했다.&lt;/p&gt;
&lt;p&gt;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북도지사 관사 ‘하얀양옥집’이 53년 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매 분기 도민 참여형 전시가 열리며, 색다른 예술 실험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 마지막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lt;서툴지만 반가운, 나의 예술!&gt;은 김제 용평마을·고창 월봉마을·완주 화정마을 어르신 23명과 전북 예술인 이랑고랑·… ]]></description>
			<pubDate>Thu, 18 Dec 2025 16:07:48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현우</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15500372</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황석영 작가는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15500372</link>
			
			<content:encoded><![CDATA[ &lt;p&gt;황석영 작가는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단편소설 &amp;lt;입석부근&amp;gt;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amp;lt;탑(塔)&amp;gt;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lt;/p&gt;
&lt;p&gt;1989년 베트남 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amp;lt;무기의 그늘&amp;gt;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amp;lt;오래된 정원&amp;gt;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amp;lt;손님&amp;gt;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amp;lt;손님&amp;gt; &amp;lt;심청, 연꽃의 길&amp;gt; &amp;lt;오래된 정원&amp;gt;이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으며 &amp;lt;오래된 정원&amp;gt;이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amp;lt;해질 무렵&amp;gt;은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고, &amp;lt;철도원 삼대&amp;gt;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lt;/p&gt;
&lt;p&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황석영 작가는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단편소설 &lt;입석부근&gt;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 ]]></description>
			<pubDate>Mon, 15 Dec 2025 15:32:0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15500312</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황석영, 600년 팽나무에 ‘한국 근대사’를 새기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1550031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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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5/20251215500293.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20873cda17ca&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황석영 소설가를 지난 12일 군산 영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하루에 담배를 2갑씩 태운다는 그는 “마크 트웨인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담배를 끊는 일이라고 했는데, 결국 못끊는다는 얘기&quot;라며 농을 던졌다. 그러면서 “나도 한 30번 정도 담배를 끊었었다&quot;고 &amp;nbsp;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마주 앉은 그는 쾌활한 이야기꾼의 모습이었다. 어떤 질문엔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졌고, 어떤 물음엔 냉소적인 태도가 비치기도 했다. 감정을 가다듬고 다스려 눈빛마저 잔잔했던 기존 언론 속 모습과는 딴판이라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예. 그럽시다”라고 했다.&lt;/p&gt;
&lt;p&gt;황석영(82) 소설가를 지난 12일 군산 영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26년 KAALA(칼라) Festival 시범 개최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최근 5년 만에 신작 &amp;lt;할매&amp;gt;(창비)를 출간하기도 했다. 수차례 요청한 인터뷰가 여러 시의적 의미와 맞물려 이뤄졌다.&lt;/p&gt;
&lt;p&gt;소설은 군산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를 중심축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생명‧생태 관점에서 엮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새의 뱃속에 있던 씨앗이 서해 갯벌에 내려앉았고, 그 씨앗이 600년을 버틴 팽나무 ‘할매’로 자라난다.&lt;/p&gt;
&lt;p&gt;&amp;lt;할매&amp;gt;는 문학적일 듯하지만 학구적이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미군부대 건설 예정지에 홀로 남겨져 있다. 소설에는 동아시아 최대 자연습지였으나 간척으로 파괴된 새만금 갯벌 문제와 환경 파괴의 참상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는 이야기에 역사성과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꼬박 1년을 자료 수집에 매달렸다. 한국문학사 정점에 서 있는, 한 빛나는 소설가가 인간과 자연에게 보내는 희망 섞인 위로인 셈이다.&lt;/p&gt;
&lt;p&gt;이 인터뷰를 통해 소설로는 알 수 없던 황석영을 만나고 싶었다. 한국전쟁, 베트남 참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을 겪으며 격동의 세월을 통과한 역사의 산 증인이자, 이야기로 말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소설가.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태우는 애연가이자 스스로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약속한 작가. 세상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인간과 세상에 누구보다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 그래서 더욱 특별했던 황석영 작가와 신작 &amp;lt;할매&amp;gt;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5/20251215500300.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208b2da917d8&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황석영 소설가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신작 &amp;lt;할매&amp;gt;의 중심 소재인 600년 된 팽나무가 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가님에게 이 나무의 첫인상은 어떠했나요?&lt;/strong&gt;&lt;br&gt;“제가 군산에 온 지 3년이 됐습니다. 오자마자 팽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냐하면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오래전 인연을 맺어왔거든요. 박정희 유신 때 시위하는 현장에서 문정현 신부를 알게 됐으니까요. 그때 정의구현사제단이 처음 시작돼서 문정현 신부가 끌고 가던 시기였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는데, 그분이 군산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래서 제가 “한번 만납시다”라고 요청을 했고,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어요. 그즈음에 팽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팽팽문화제’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함께 행사에 참석했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팽나무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에서 말년을 보낼 생각으로 막걸리 4병을 사서 나무에 부었죠. 그때 서원문을 하나 읽었거든요. 제가 “이 나무(팽나무)를 주인공으로 소설 한편 쓰겠다” 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소설을 쓰게 됐어요. 약속을 지키는 데 3년이 걸린 셈이네요&quot;&lt;/p&gt;
&lt;p&gt;&lt;strong&gt;-팽나무의 시선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가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긴 자연 묘사가 특징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lt;/strong&gt;&lt;br&gt;“자연 묘사를 원고지 2~300매씩 길게 쓴 건 평생에 처음이에요. 누군가는 글을 보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처음 써봤는데 의외로 자연을 묘사하면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어요. 오랜만에 문장을 다듬어가면서 글을 쓰니, 언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기쁨을 느낀 것 같아요. 긴 묘사를 위해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조류·기후·별자리까지 생태학과 관련한 책이란 책은 다 뒤져봤죠”&lt;/p&gt;
&lt;p&gt;&lt;strong&gt;-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신가요?&lt;/strong&gt;&lt;br&gt;“곤충학자 파브르 알죠? 다들 파브르 곤충기는 알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이 식물에 대해서도 연구를 엄청 했더라고요. 단순히 곤충에만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파브르 식물기’라는 책도 번역돼서 나와 있어요. 책을 읽었는데 과학적 현상 안에 서사가 들어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뿌리와 잎의 작용을 나열하는 전개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나가요. 생물학자가 아니라 대단한 문장가구나 싶었어요. 이런 결의 책을 1년 동안 읽었어요.”&lt;/p&gt;
&lt;p&gt;&lt;strong&gt;-8월, 군산에서 출범한 칼라(KAALA)문화재단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lt;/strong&gt;&lt;br&gt;&amp;nbsp;&quot;앞에 K자가 붙었지만, 원래는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가 있어요. 문학적 탈식민주의, 제3세계 체제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허위 개념에 대항하여 역사적 현실과 도덕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해온 회의죠. 1960년대 이런 목표에 문학을 지지하고 장려한다는 취지로 ‘로터스(LOTUS)’ 상이 제정됐고 매년 작가 3인을 선정해서 수상했어요. 문학뿐 아니라 문화의 모든 장르에까지 범위를 넓혀갔고 민중 차원의 문화 교류와 새로운 창조를 공동의 과제로 삼았죠. 제3세계 문학의 고유한 상상력과 민중적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거죠. AALA를 모티브로 KAALA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돼요. 군산에서는 과거 수탈의 흔적이자 군사적 패권과 전쟁을 반대하는 민주주의와 평화 연대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KAALA는 그 기억을 전시와 서사, 예술적 상상력으로 전환해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화적 남남협력(South-South Solidarity)을 제안하고자 해요&quot;&lt;/p&gt;
&lt;p&gt;&lt;strong&gt;-군산에서 도모하려는 ‘연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amp;nbsp;&lt;/strong&gt;&lt;br&gt;“우리나라는 식민지까지 되었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냈어요. 내부에서 민중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희생했지만, 대단한 일이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UN(유엔)에서 우리에게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우리는 그 길을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허덕이는 이들도 많아요.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형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주의와는 다른 문명을 지구상에서 만들어나가자는 이야기죠. 미중 패권경쟁으로 나가고 있는데 우리 살길만 찾아서 나가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다각외교를 통해서 정신·문화적으로 교류하고 협조하는 비동맹운동이 필요하죠. 과거에 있었던 ‘AALA’와의 연대를 새롭게 재편성해서 시작하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가디언 트리 프라이즈’라는 상을 신설해 문학·미술·영화 그리고 환경평화 부문까지 시상할 예정이에요.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개발도상국 통칭) 나라들의 작가들을 군산에 초청해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죠. 격년으로 열어 비엔날레로 정착시키려고 해요.”&lt;/p&gt;
&lt;p&gt;&lt;strong&gt;-재단을 ‘민간 주도’로 시작한 이유가 있으신가요?&lt;/strong&gt;&lt;br&gt;“관이 주도를 하게 되면 사람이 자주 바뀐다는 흠이 있어요. 사람이 바뀌면 본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될 위험성이 크죠. 한국에서 하는 일들이 대개 관을 주도로 움직이고 나중에 민간에서 운영 위탁을 맡는데, 저는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좋은 사례가 부산국제영화제죠. 지방자치의 가장 큰 약점이 시민들이 지방정부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시의원과 도의원들이 권력자마냥 행동하죠. 시민들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정책방향이 수두룩한데도 말이죠&amp;nbsp;&lt;/p&gt;
&lt;p&gt;&lt;strong&gt;-최근에 문화예술 분야 정부포상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사실 두 차례나 상을 거절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번에 수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lt;/strong&gt;&lt;br&gt;“이제 나이도 들었고요. 두 번이나 거절해서 이번에 또 안 받으면 오해할 것 같아서 받았어요. 작가가 된 지 64년이 됐어요. 줄 사람들 다 주고 나니까 이제 제 차례가 온 거라고 생각해요. 후배들도 ‘왜 안 받으세요’라고 원망 섞인 말들을 해서(웃음)…. 계속 수상을 거부하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해질 것 같아서 이번에는 고사하기가 어렵더라고요”&lt;/p&gt;
&lt;p&gt;&lt;strong&gt;-“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셨습니다.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amp;nbsp;&lt;/strong&gt;&lt;br&gt;“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글을 쓰고 싶어요. 하루 일과가 글을 읽고 쓰는 일 외에는 특별할 게 없어요. 쓰고 싶은 이야깃거리도 너무 많죠. 제가 겪은 게 많으니까 할 이야기가 많죠. 그래서 항상 ‘이 이야기를 써볼까?’,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궁리해요. 죽기 전에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불가능할 정도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quot;&lt;/p&gt;
&lt;p&gt;&lt;strong&gt;-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lt;/strong&gt;&lt;br&gt;“이제 (저도) 전북사람이 됐습니다. 말년을 군산에서 보낼 생각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시고 오다가 다 만나면 따뜻하게 인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마주 앉은 그는 쾌활한 이야기꾼의 모습이었다. 어떤 질문엔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졌고, 어떤 물음엔 냉소적인 태도가 비치기도 했다. 감정을 가다듬고 다스려 눈빛마저 잔잔했던 기존 언론 속 모습과는 딴판이라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예. 그럽시다”라고 했다. 황석영(82… ]]></description>
			<pubDate>Mon, 15 Dec 2025 14:56:0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14500331</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김상남 “설립 20주년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 강소 연구기관으로 성장”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1450033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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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14/2025121450008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1a84b9a5123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상남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이 지난 10일 연구원의 미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민주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특허 출원·등록 120건, 논문 게재 156편, 연구과제 수행 161건, 기능성 제품 개발 258건….&lt;/p&gt;
&lt;p&gt;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전주시 출연기관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의 성적표다. 직원 24명 가운데 연구직 인력이 13명(박사급 7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김상남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이 연구원을 ‘강소 연구기관’이라 표현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lt;/p&gt;
&lt;p&gt;그러나 언제까지 ‘작지만 강한’ 연구기관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김 원장의 가장 큰 고민도 연구원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아 헴프, 푸드테크, 피지컬 AI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lt;/p&gt;
&lt;p&gt;김 원장이 생각하는 연구원의 미래 비전은 무엇일까. 다음은 연구원의 지난 성과와 향후 계획을 정리한 내용이다.&lt;/p&gt;
&lt;p&gt;-원장으로 취임하신 뒤 주력한 과제는 무엇이었고, 그 성과는 어땠나요?&lt;/p&gt;
&lt;p&gt;“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연구원을 운영해 왔습니다. 첫째는 연구원의 경쟁력 강화입니다. 지난 20년간 47건의 특허기술과 156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지만 연구 인력과 장비, 시설 등 인프라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연구 시설·장비 개선 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연구 성과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전주시 농생명기업 육성 지원 강화입니다. 이와 관련 한국인정기구(KOLAS) 자격 획득을 목표로 교육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창업보육센터 구축, 연구소기업 확대 등을 통해 기술 창업에서 스케일업까지 이어지는 기업 성장 지원 플랫폼 조성으로 기능을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셋째는 헴프 산업, 기능성식품 규제자유특구, 전주 K-푸드 클러스터 등 미래 신성장 동력 사업 발굴입니다. 넷째는 내·외부 네트워크 강화입니다. 농촌진흥청과 한국식품연구원 등 국가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립식량과학원 등과의 협업을 통해 전주비빔밥 활성화를 위한 품종 개선 등 지역 상생 모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원장님이 보기에 지난 20년간 연구원이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lt;/p&gt;
&lt;p&gt;“우리 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전주 농생명산업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습니다. 전주 미나리, 바디나물, 전주 모주 등 지역 농생명 자원을 기능성 소재로 개발하고 기술이전·사업화를 통해 기업 경쟁력 향상과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했습니다. 맞춤형 기술 지원으로 애로기술 해결 289건, 시제품 개발 258건, 고용 창출 700명 이상이라는 성과도 만들어냈습니다. 특허 등록·출원 120건, 기술이전 12건, 기술료 수입 약 1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성과는 ‘연구를 위한 연구’를 버리고 기업, 농가, 지자체의 수요를 기반으로 &amp;nbsp;과제를 기획하고 이 결과를 현장에 연결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체질은 바꾼 결과라고 봅니다.”&lt;/p&gt;
&lt;p&gt;-연구원이 지역 농가와 기업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무엇인가요?&lt;/p&gt;
&lt;p&gt;“연구원의 가장 큰 긍정적 효과는 경제적 파급 효과에 기반한 선순환 체계 구축입니다. 지역 농산자원의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고부가가치 소재로 개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주 미나리 추출 복합물 숙취해소제 ‘깨나리’, 전주 모주 기반 비건 마스크팩 등이 있습니다. 기술 이전을 통해 기업들이 전주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도록 유도하면서 안정적인 판로 확보와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했습니다. 최근 5년간 연구원 지원을 받은 기업들의 누적 매출은 1100억원을 넘었습니다. 전주 농산물 구매액도 20억원 이상입니다.”&lt;/p&gt;
&lt;p&gt;-연구원장으로서 전주, 전북의 농생명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보시나요?&lt;/p&gt;
&lt;p&gt;“전북과 전주의 농생명산업의 경우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는 강점입니다. 반면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로 앵커기업이 부족하고, 우수 인력 확보와 스케일업 단계에서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앞으로는 농생명·그린바이오 자원과 역량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강화하고, 연구·실증·사업화가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도록 조정하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lt;/p&gt;
&lt;p&gt;-앞으로 전주시의 농생명산업을 그린바이오 중심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lt;/p&gt;
&lt;p&gt;“전주시는 전통농업과 도시농업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지역의 국가 연구기관, 대학 등과 &amp;nbsp;상생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연구원의 바이오소재 개발 역량, 분석·평가 인프라를 결합할 경우 전주시를 전북의 그린바이오산업 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농생명 자원·데이터·인프라를 공유하는 통합 구조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 연구원에서는 AI 기반 전주형 웰니스 플랫폼을 연구 중입니다.&lt;/p&gt;
&lt;p&gt;-국립식량과학원장, 국립농업과학원장 등 과거 국가 연구기관 책임자로서의 경험이 현재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을 이끄는데 어떤 자산이 되고 있나요?&lt;/p&gt;
&lt;p&gt;“국가기관 근무를 통해 두 가지 자산을 얻었습니다. 국가 R&amp;amp;D 정책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연구 행정 시스템 관리 경험입니다. 국가 농업정책, R&amp;amp;D정책에 대한 이해는 연구원의 전략 수립과 국비 확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500여명 규모 조직을 운영한 경험은 연구과제 관리와 행정 관리 등 책임 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실질적인 자산이 됐습니다.”&lt;/p&gt;
&lt;p&gt;-후배 리더나 연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lt;/p&gt;
&lt;p&gt;“리더는 혼자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공감, 협업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세대와 전공이 함께 일하는 조직일수록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연구와 업무는 디테일에서 성과 차이가 나며, 장기 연구가 많은 농생명 분야에서는 자기 관리와 스트레스 관리 역시 중요한 역량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lt;/p&gt;
&lt;p&gt;-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lt;/p&gt;
&lt;p&gt;“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을 전주형 농생명 산업의 설계자이자 실행 주체로 확고히 자리매김시키는 것입니다. 기능성 소재화부터 임상,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연구 인력·시설·장비 현대화와 창업 보육 기능 강화를 통해 전북 농생명산업을 주도하는 거점 연구기관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lt;/p&gt;
&lt;p&gt;△김상남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은&lt;/p&gt;
&lt;p&gt;김상남 원장은 강원 강릉 출신으로 서울대 농업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농생명대학원에서 농촌사회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정선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뒤 농촌진흥청에서 대변인, 농촌지원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김 원장은 농촌진흥청 개청 이후 처음으로 지도직(농촌지도직) 출신으로 원장 자리에 오른 사례로 꼽힌다. 국립식량과학원장, 국립농업과학원장 등 중책을 맡으며 연구·현장 연계를 강화해왔다.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으로서도 지역 농생명 산업 발전과 기술 지원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특허 출원·등록 120건, 논문 게재 156편, 연구과제 수행 161건, 기능성 제품 개발 258건….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전주시 출연기관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의 성적표다. 직원 24명 가운데 연구직 인력이 13명(박사급 7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김상남 전주농생명소재연구원장이 연구원을 ‘강소 연구기관’이라 표현한 것도 이러한 배… ]]></description>
			<pubDate>Sun, 14 Dec 2025 14:29:5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문민주</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9500596</guid>
			<title><![CDATA[ [핫플레이스] 완주 삼례, 근대 창고에서 하늘 전망까지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950059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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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완주군 삼례읍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궤적이 쌓인 곳이다. 인구 2만여명의 작은 도시지만, 근대 격동기를 한 몸에 안고도 만경강의 여유로운 풍경과 예술이 숨 쉰다.&lt;/p&gt;
&lt;p&gt;삼례는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집결지였으며, 동학 지도부와 교도 4만명이 모여 동학교조신원운동을 벌였던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공간을 품고 있다. 고대 군사적 거점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삼례토성이 최근 발굴됐고,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현장이 양곡창고로 남아있다.&lt;/p&gt;
&lt;p&gt;삼례에서 수천 년 인류의 삶, 군사와 행정의 거점, 근대 격동기 역사를 만날 수 있다.&lt;/p&gt;
&lt;p&gt;호남평야의 곡물을 실어 나르던 수탈의 현장은 예술과 역사, 강과 하늘을 함께 품은 문화여행 거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옛 양곡창고를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꾼 ‘삼례문화예술촌’을 중심에 두고, 만경강을 따라 비비정과 폐철교, 그리고 하늘 위 23층에서 360도 파노라마를 선사하는 ‘W-SKY23 전망대’,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삼례토성’까지 `우리 땅의 역사와 삶을 느끼는 여행지`로서 독보적이다.&lt;/p&gt;
&lt;p&gt;◇삼례 여행의 심장, 삼례문화예술촌&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586.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24348e005f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일제강점기 양곡창고에서 변신한 삼례문화예술촌. 완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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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 호남지방에서 수탈한 쌀을 삼례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지어진 양곡창고에서 출발했다. 광복 이후 2010년까지 농협 창고로 사용되던 이 건물을 완주군이 2011년 매입해 리모델링했고, 2013년 6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식민지 시기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대신, 그 흔적을 문화와 예술로 치유하는 재생 프로젝트였다.&lt;/p&gt;
&lt;p&gt;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목조 빗살무늬와 격자 모양의 특이한 내부 디자인, 각 100평 규모의 창고 5동이 집단화된 독특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창고 벽체가 일본식 건식 벽구조와 양철 마감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구조라는 점과 역사성이 인정되어 2013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lt;/p&gt;
&lt;p&gt;2017년에는 한국관광공사의 ‘열린관광지’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경사로와 장애인 전용 주차장,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화장실, 촉지 안내판과 휠체어 대여 서비스 등 무장애 설계를 갖춘 대표적인 무장애 관광지다.&lt;/p&gt;
&lt;p&gt;옛 목조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제1전시관, 복합문화공연장과 야외광장, 북아트센터·목공예 체험공간, 책·공예 소규모 상점과 카페 등이들어섰다. 주말 상설공연과 영화 상영, 목공·북아트 체험, 책 만들기 교육 등이 이어지며, 삼례문화예술촌은 문화정책의 실험실이자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쓰는 일상형 문화플랫폼이 됐다.&lt;/p&gt;
&lt;p&gt;최근에는 ‘스테이 삼례’를 슬로건으로 한 1박2일 런케이션 투어 ‘삼례너머로(路)’가 배움과 휴식을 함께 담은 특별한 여행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lt;/p&gt;
&lt;p&gt;‘삼례너머로’는 삼례문화예술촌을 중심으로 삼례책마을, 그림책미술관, 비비정까지 연결하는 이야기꾼 해설, 막걸리 테마 석식과 함께하는 ‘한방울의 비밀’ 브랜드공연, 비비정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무소음 헤드셋을 착용하고 걷는 만경강 달빛산책, 지역의 핫플 맛집인 홍식당에서 즐기는 ‘삼례 치맥’까지 만경강의 빼어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감성으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59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24a599f060d&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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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만 3만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모은 삼례 치맥축제 현장 모습. 완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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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지역주민이 중심이 되어 공공기관과 대학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축제인‘치맥 하삼:례’는 올해에만 3만여명이 다녀갔다. 완주 농산물과 함께하는 보부상마켓, 어린이 워터밤 축제 등 가족단위 프로그램이 사계절 내내 이어지며 매년 12만명이 찾는 생활형 명품관광지로 성장하고 있다.&lt;/p&gt;
&lt;p&gt;다양한 이야기와 경험이 모이면서 삼례문화예술촌은 완주를 대표하는 문화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lt;/p&gt;
&lt;p&gt;삼례문화예술촌의 진짜 매력은 이 공간이 여행의 종점이 아니라 ‘관문’이라는 점이다. 예술촌 광장에서 발걸음을 조금만 떼면 책과 예술, 강과 하늘, 그리고 1,500년 역사를 여행길이 펼쳐진다.&lt;/p&gt;
&lt;p&gt;◇만경강을 굽어보는 정자와 예술열차, 비비정&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58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2448590060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비비정에서 바라본 옛 철길에 놓인 예술 열자가 석양 속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완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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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figure&gt;
&lt;p&gt;비비정은 만경강을 따라 펼쳐진 전주·완주 8경 가운데 하나로, 강 위로 떨어지는 낙조와 안개, 철교와 강변 마을이 한 화면에 담기는 풍경으로 유명하다.&lt;/p&gt;
&lt;p&gt;이곳에서 바라본 강마당은 예부터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 불렸다. 한내(만경강)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떼를 비비정에서 바라본 모습을 뜻하는데, 지금도 해 질 무렵이면 강 위로 내려앉는 새떼와 붉게 물든 하늘이 옛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lt;/p&gt;
&lt;p&gt;강변 폐철교 위에 자리한 ‘비비정예술열차’는 옛 새마을호 객차 4량을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1량은 레스토랑, 2·3량은 갤러리와 카페, 4량은 테라스형 공연공간으로 구성됐다. 전망대 역할을 겸하는 열차 테라스에 서면, 만경강 철교와 비비정, 그리고 앞으로 조성될 ‘물고기철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lt;/p&gt;
&lt;p&gt;삼례문화예술촌에서 시작된 `근대역사 해설버스`가 비비정 일대를 주요 코스로 삼아 운영되고 있다. 옛 삼례역과 양수장, 대간선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노선은 곡물 수탈의 역사와 수리시설, 근대 교통망의 변화를 함께 보여주며, 삼례 일대의 시간 지층을 읽는 입체적인 여행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lt;/p&gt;
&lt;p&gt;비비정예술열차가 자리한 폐철교는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물고기철길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완주군은 전주와 함께 옛 철교 상부에 보행로와 전망 쉼터를 조성하는 ‘만경강 물고기철길’ 사업을 추진하고, 2025년 10월 기공식을 열었다.&lt;/p&gt;
&lt;p&gt;‘물고기철길’은 길이 405m의 보행로와 전망쉼터를 조성하고 조명, 솟대조형물 등 예술 장치로 꾸며, 낮에는 수변 산책로이자 사진 명소로, 밤에는 빛의 산책로로 기능하도록 기획됐다. 완주군은 비비정과 만경강철교를 하나의 수변 관광축으로 묶고,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시작하는 근대역사·수변관광 벨트를 완성할 계획이다.&lt;/p&gt;
&lt;p&gt;삼례문화예술촌에서 비비정과 물고기철길까지 이어지는 길은 근대역사 문화여행, 스탬프투어, 수변걷기 프로그램 등과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다. 물고기철길이 완공되면, 삼례 일대가 강과 철길, 예술과 산업유산을 한 번에 만나는 수변관광의 거점으로 한층 더 주목받을 전망이다.&lt;/p&gt;
&lt;p&gt;◇ 만경강 유역과 삼례문화벨트를 한눈에 ` W-SKY23 전망대`&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59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2482556060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우석대 본관 23층에 조성된 전망대 내부. 완주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우석대 본관 23층에 조성된 &amp;nbsp;‘W-SKY23 전망대’가만경강 유역과 삼례읍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lt;/p&gt;
&lt;p&gt;완주군이 우석대와 협력으로 만든 전망대에 서면 발 아래 만경강 유역에서부터 멀리 서쪽으로 정읍 갈재와 부안 내변산·새만금 일원, 동쪽으로는 전주와 익산 도심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lt;/p&gt;
&lt;p&gt;주변으로 완주 상운리 고분군과 배매산성, 삼례토성 등 마한·백제 시기 유적, 익산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고려 현종이 방문했던 삼례 역참터(현 삼례동부교회), 동학 삼례광장과 봉기 추정지(삼례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위해 만든 대간선수로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W-SKY23은 일반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이면서 동시에 ‘대학-지역-산업 연계’의 상징공간이기도 하다. 전망대 복합문화공간에서는 AI혁신포럼, 전북혁신포럼 등 지역혁신을 주제로 한 각종 회의와 포럼이 열리며, 우석대학교와 완주군, 전북특별자치도가 함께 미래교육과 AI 기반 지역발전모델을 논의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lt;/p&gt;
&lt;p&gt;삼례문화예술촌이 ‘땅 위에서 역사를 체험하는 공간’이라면, W-SKY23 전망대는 그 역사와 지형을 읽어내는 공중 지도인 셈이다.&lt;/p&gt;
&lt;p&gt;◇비비낙안을 품은 삼례토성&lt;br&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59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24cefe5060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고대 군사요충지였던 삼례토성 원경. 완주군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삼례토성은 최근 토성 내 지표에서 구석기 유물이 수습되면서, 이 지역의 역사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를 제공했다. 본격적인 성곽 축조는 약 1,500년 전, 마한 말에서 백제 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만경강 유역을 관할하던 행정·군사 거점으로 기능했다.&lt;/p&gt;
&lt;p&gt;삼국시대 전후에는 만경강 수운과 평야를 기반으로 고대 교통망과 정치권력의 변화를 보여주는 핵심 유적으로, 백제의 전북 진출 시기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금마 도성 방어체계의 주요 거점이자, 후백제 견훤이 중국 오월(吳越)과 교류하던 창구로 기능하는 등 대외문화 유입 통로로도 의미가 크다.&lt;/p&gt;
&lt;p&gt;고려·조선 시대에도 삼례토성 일대는 주요 교통로상의 요지로, 인근에 역참이 설치되는 등 지방행정 중심지 역할을 이어갔다. 만경강과 접한 곳에는 완산 8경 중 하나인 ‘비비낙안’과 관련된 비비정이 자리하고, 구릉 말단부에는 국가등록문화재인 옛 삼례양수장과 옛 만경강철교가 위치해 근대 수리시설과 교통 인프라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lt;/p&gt;
&lt;p&gt;현재 삼례토성 정상부에는 근현대에 조성된 물탱크가 남아 있고, 인근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물탱크를 활용한 소규모 전망시설을 통해 만경강 수변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amp;nbsp;&lt;/p&gt;
&lt;p&gt;완주=김원용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완주군 삼례읍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궤적이 쌓인 곳이다. 인구 2만여명의 작은 도시지만, 근대 격동기를 한 몸에 안고도 만경강의 여유로운 풍경과 예술이 숨 쉰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집결지였으며, 동학 지도부와 교도 4만명이 모여 동학교조신원운동을 벌였던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공간을 품고 있다. 고대 군사적 거점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 ]]></description>
			<pubDate>Tue, 09 Dec 2025 17:50:4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원용</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9500463</guid>
			<title><![CDATA[ [세계기록유산이 된‘동학농민혁명 기록물’] 갑오십이월민장책 등 7건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950046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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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지금까지 65회에 걸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소개하였다. 이번까지 소개하면 전체 185건을 모두 다루게 된다. 이번 회에는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7건의 기록물을 소개하고자 한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3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34aeb034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공문일록 1894년 4월 1일. 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공문일록(公文日錄)〉은 1857년(철종 8)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동래부(東萊府)에서 순영(巡營)·병영(兵營)·통영(統營), 중앙관청, 각 면(面) 사이에 오고 간 관문(關文)·감결(甘結)·문장(文狀)·전령(傳令)·사통(私通) 등을 날짜순으로 기록한 자료다. 표제는 《목록(目錄)》으로 되어 있다. 제1책~3책은 1892년 이전까지, 제4책은 1893년 7월부터 1894년 12월 10일까지, 제5책은 1894년 12월부터 1895년(을미) 윤5월까지 수록되어 있다. 7월 13일 부류배(浮流輩)의 와언(訛言) 선동과 동학란 효유에 대한 지시, 7월 23일 군국기무처 각종 개혁 의안의 내용을 소개하는 공문, 9월 23일 각지의 동학농민군에 대한 후속 조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 지역 동학농민군의 봉기에 대한 지방관아의 대책과 사후 조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37.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390f1034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사 1894년 6월 21일. 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정사(政事)〉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초기 인사 발령 기록이다. 편자는 미상이며 정리자(整理字)의 활자본이다. 1894년 6~7월 사이의 것으로 영의정 김병시(金炳始) 이하 의정부·육조 및 원릉·지방관에 이르기까지의 인사발령 사항이 망라되어 있다. 중앙부서의 관리뿐만 아니라 지방관리도 포함하고 있어 갑오개혁 초기 신설 관직과 관료들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42.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50cea034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예방색래보관록. 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예방색래보관록(禮房色來報關錄)〉은 1892년(고종 29)과 1894년에 동래부(東萊府) 소속 예방(禮房)에서 예전(禮典)에 관한 관문(關文)과 첩보(牒報)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제1책에는 1892년 1월에서 12월까지, 제2책에는 1894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내용이 편철되어 있다. 1894년 6월 이후 지방제도에 관한 사항 및 8월 소학교 등 신교육기관 설치 준비 사항을 기재하였다. 8월 이후에는 동학농민군의 진압과 관련하여 흥선대원군의 효유문과 고종의 윤음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갑오개혁으로 인한 중앙과 지방의 행정 변화와 동학농민군에 대한 대책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3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3d241034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공이공복철. 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공이공복철(公移公復綴)〉은 1894년 법무아문에서 경무청, 의정부, 외무아문, 군무아문 등과의 왕복 공문서를 모아 엮은 책이다. 전체 10책으로 되어 있다. 1책(1894.2.3.~1895.1.6.), 2책(1894년 9월~1895년 2월), 3책(1894년 12월~1895년 1월) 등 각 책별로 다양한 시기의 것이 모아져 있다. 일반 공용지 이외에도 각종 형태의 문서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5책과 6책, 9책에는 한성부와 경무청, 그리고 일본 영사 사이의 조회가 실려 있다. 일본영사 우찌다 사다즈치(內田定搥)가 장차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인 비괴(匪魁) 및 간여인을 붙잡을 경우 일본 공사가 같이 회동하여 심리할 것을 요청하는 문서를 수록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피체와 재판과정에 대해 법무아문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기관의 협조 사항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39.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4129b034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정유신간시수책-조병갑, 이용태. 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정유신간시수책(丁酉新刊時囚冊)〉은 1810년(순조 9)~1895년(고종 32) 3월까지 의금부에 수금(囚禁)·피죄(被罪)된 전·현 관원(官員)들의 피죄 관계 사항을 수록하였다. 의금부에서 각 시기마다 차례대로 기재하여 만들었다. 모두 17책이었으나 4책은 유실되고 13책이 전한다. 동학농민군과 관련된 시기는 13책으로 ＜칠지(七地)＞(1893년 1월~1895년 3월 8일)에 해당된다. 계사년과 갑오년에 처벌된 각종 관리들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상단에 죄를 받은 관리의 명단, 죄명, 시행 날짜와 방송일(放送日) 등 사유가 명시되어 있다.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 4.20)과 안핵사 이용태(李容泰)의 처벌(4.22)을 비롯하여 전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 5.2), 전 호남전운사 조필영(趙弼永, 5.21) 등 동학농민혁명 관련 부패관료에 대한 처벌 내용이 담겨 있다.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와 관련하여 각지의 지방관이 처벌받은 사항도 수록되어 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44.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6a48b035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갑오십이월민장책. 고려대 도서관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br&gt;〈갑오십이월민장책(甲午十二月民狀冊)〉은 1894~1895년 사이에 전라도 진안 각 면내 주민들이 올린 민장을 정리해 놓은 자료이다. 민장이란 일반인들이 올린 소송과 청원 따위에 관한 서류를 지칭한다. 이 자료는 여면(與面), 마령(馬靈), 두미(斗尾), 탄전(呑田) 등에서 올린 민장과 그 처리 내용을 각 면별로 정리해 놓았다. 여면과 마령면 등은 진안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전라도 진안에서 작성한 것이다. 작성 시기는 1894년 12월 17일부터 1895년 1월 29일 사이에 올린 민장이다. 이 시기는 동학농민군이 진압되고 생존한 동학농민군을 대대적으로 수색·체포하던 무렵으로, 내용 역시 동학농민군과 관련된 민장이 많다. 동학농민군이 진압된 이후 마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귀향한 동학농민군에 대한 조치 사항, 동학농민혁명에 따른 사회 혼란과 이를 틈탄 폐단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lt;br&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45.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6ee48035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통.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사통(私通)〉은 1894년 5월 15일 상주의 도약장소에서 농민군 토벌에 나서라는 글을 각 지역에 보낸 문서이다. 여기에는 조정에서 동학교도들 단속하라고 내린 금령에 따라 각 지역에서 이를 수행한 것을 책자로 만들어 올리라는 내용의 개인 통문을 기록했다. 끝에는 이 통문에 서명한 인사를 용유(龍遊), 광정(光亭) 장암(壯巖) 등 각 지역별로 구분해 적었다. 당시 경상도 상주지역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다.&lt;br&gt;지금까지 총 66회에 걸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185건의 개별기록물에 대해 작성 시기, 작성 주체, 주요 내용, 기록물의 성격과 의미 등을 설명하였다. 돌이켜보면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먼저 지면을 할애해 주신 전북일보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이 연재에 대해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원고를 써주신 필자 여러분이다.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님,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님, 조재곤 서강대 교수님, 왕현종 연세대 교수님, 유바다 고려대 교수님, 그리고 김양식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님께 감사드린다. &amp;nbsp;&lt;/p&gt;
&lt;p&gt;&amp;lt;끝&amp;gt;&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4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8c81f035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lt;/figcaption&gt;
&lt;/figure&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지금까지 65회에 걸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소개하였다. 이번까지 소개하면 전체 185건을 모두 다루게 된다. 이번 회에는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7건의 기록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문일록(公文日錄)〉은 1857년(철종 8)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동래부(東萊府)에서 순영(巡營)·병영(兵營)·통영(統營), 중앙관청, 각 면(面… ]]></description>
			<pubDate>Tue, 09 Dec 2025 15:56:4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9500343</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대한적십자사 전북특별자치도지사 김홍식 회장 “적십자 활동에 대한 관심 높이겠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950034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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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9/20251209500258.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fc-1398-819b-018c9157036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김홍식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amp;nbsp;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전북 지역의 복지 현장은 경기 침체와 기부 감소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취약계층을 직접 마주하는 최일선 복 지 기관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의 협력 역시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북 도민의 참여와 나눔을 기반으로 인도주의 활동을 수행해 온 대한적십자사의 책임은 한층 더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달 제34대 대한적십자사 전북특별자치도지사 회장으로 취임한 김홍식 신임 회장을 만나 적십자사 전북지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그리고 지역 복지 현안에 대한 구상 등을 들어봤다.&lt;/p&gt;
&lt;/div&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전북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역의 대표적인 인도주의 기관장의 위치는 부담과 걱정으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이런 사유로 대한적십자사 전북특별자치도지사 회장으로 처음 거론됐을 때도 고사했지만, 전 회장님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수락하게 됐습니다. 아직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지만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일해보려고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회장 취임 이전에도 적십자사 관련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는.&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축산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매년 농촌에 실습을 나갔습니다. 1980년대 당시 농촌의 상황과 농민들의 삶은 그렇게 넉넉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자발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병원 봉사 등 복지 활동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서 봉사할 때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면서 복지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금도 애틋하거나 안타까운 사연을 볼때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회장 취임 후 다짐이 있으실까요.&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전북 지역의 경제 규모 등이 타 지자체에 비해 비교적 작은데도 불구하고 기부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북 도민들의 마음이 참 따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도민들이 회비를 내주시고 기부도 해 주시고 있는 만큼, 적십자사가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제가 필요한 장소라면 어디든 발로 뛰며 현장을 찾아다니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두신 점이 있나요.&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자신이 적십자 회비를 얼마를 내는지 그 액수를 잘 모르시거나, 심지어 적십자 회비를 내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는 등 적십자 활동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십자사와 봉사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지 등을 홍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사무처에서도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있고, 봉사원분들도 많이 고생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언론도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적십자사의 기존 복지 사업 중 가장 중요한 사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적십자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혈액 사업과 청소년 사업 입니다. 매혈이 아니라 자진해서 동참하는 헌혈은 매우 고귀한 일이며,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 혈액 관련 사업입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봉사와 배려의 정신을 교육할 수 있는 RCY 활동도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 RCY 교육을 받아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사회가 매우 훈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을 볼 때 혈액 관련 사업과 RCY 사업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앞으로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추진하고 싶은 새로운 사회복지 사업이 있다면.&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아직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전북지사 직원들과 1년 정도 함께 일하고 논의하다 보면 전북에 어떤 복지 사업이 필요할 것인지 피부로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뛰는 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우리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면 발굴해서 추진할 생각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최근 경기 악화 등으로 인해 사회복지 관련 사업이 전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요즘 국내외로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만큼 모든 단체의 기부금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감소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연말에 복지시설 등을 대상으로 물품과 금전 후원이 많이 이뤄져야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고, 올해는 새로운 복지 사업보다는 적십자사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적십자 회원을 모집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2&quot;&gt;
 &lt;p&gt;&lt;i&gt;&lt;strong&gt;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lt;/strong&gt;&lt;/i&gt;&lt;/p&gt;
&lt;/div&gt;
&lt;p&gt;&lt;br&gt;“전북일보 독자분들이 적십자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그렇게 도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적십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북일보 독자분들과 도민분들이 적십자의 복지 활동에 있어 선도자적인 역할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lt;br&gt;&amp;nbsp;&lt;/p&gt;
&lt;p&gt;△김홍식 회장은&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8&quot;&gt;
 &lt;p&gt;김홍식 회장은 대광고등학교와 한경대학교,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amp;nbsp;&lt;/p&gt;
 &lt;p&gt;지난 2006년부터 전북도시가스㈜ 대표를 맡고 있으며, 2013년부터는 (재)목정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amp;nbsp;&lt;/p&gt;
 &lt;p&gt;대한적십자사와는 2009년 전북지사 상임위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어 2017년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 2019년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달 25일 제 34대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으로 취임했다.&lt;/p&gt;
 &lt;p&gt;김 회장은 &amp;nbsp;“국제적십자 운동의 7대 기본 원칙 위에 ‘사람이 사람을 돕는 따듯한 사회’라는 모토를 더해 적십자의 인도주의를 더 넓고 깊게 펼쳐 나가겠다”며 “지역사회와 연대를 강화해 신속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amp;nbsp;&lt;/p&gt;
 &lt;p&gt;그러면서 “투명하고 신뢰받는 조직운영으로 전북도민이 애정하는 적십자를 만들겠다”며 “앞으로도 대한적십자사 전북특별자치도지사에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lt;/p&gt;
&lt;/div&gt;
&lt;p&gt;김문경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북 지역의 복지 현장은 경기 침체와 기부 감소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에 취약계층을 직접 마주하는 최일선 복 지 기관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지역 사회와의 협력 역시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북 도민의 참여와 나눔을 기반으로 인도주의 활동을 수행해 온 대한적십자사의 책임은 한층 더 무거워지고 있다. … ]]></description>
			<pubDate>Tue, 09 Dec 2025 14:54:27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문경</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2500514</guid>
			<title><![CDATA[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경기도 용인현·진위현 관련 성책 4건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250051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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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2/20251202500507.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e0b8f001b8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왼쪽부터 용인현갑오년청인일병각영병정과거시공궤소입전급전망병정담군고가전성책(龍仁縣甲午年淸人日兵各營兵丁過去時供饋所入錢及戰亡兵丁擔軍雇價錢成冊), 용인현일병경군마병과거공궤소입전성책(龍仁縣日兵京軍馬兵過去供饋所入錢成冊), 진위현거륙월삭일본병전하래시소용곡물성책(振威縣去六月朔日本兵陣下來時所用穀物成冊), 진위현상하내병진공궤도성책(振威縣上下來兵陣供饋都成冊) &amp;nbsp;/서울대 규장각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동학농민군의 가을봉기와 경기도 군현&lt;/p&gt;
&lt;p&gt;일본군이 6월 21일 경복궁을 침범해서 국왕이 인질로 된 사건은 즉시 널리 알려졌다. 가장 먼저 전해진 지역이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군현이었다. 양반 유생들은 즉각 대항하지 못했고, 동학 조직이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경기도 동부의 지평과 양근, 동남부의 광주와 여주 그리고 이천과 죽산, 남서부에는 안성과 용인, 그리고 진위 등지의 동학에 농민들이 대거 합세했다.&lt;/p&gt;
&lt;p&gt;경기도 남부의 동학농민군은 가을봉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지방관아도 동학농민군의 활동을 막을 힘이 없었다. 일본의 내정 간섭 아래 있던 조선정부도 즉각 경군 병대를 파견하지 못했다. 그 시기에 지평에서 맹영재의 민보군이 결성되어 인근의 동학 근거지를 기습했다. 소모관이 된 명영재는 9월 24일 여주의 동학 근거지로 직행했다. 그러자 여주 동학의 거두인 임학선은 도계를 넘어 충청도 충주의 황산으로 몰려갔다.&lt;/p&gt;
&lt;p&gt;동학농민군에게 관아의 무기를 빼앗긴 안성과 인근 죽산의 지방관에 경군 지휘관이 임명되었다. 경군 병대를 이끌고 가서 동학농민군을 막으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경기도 남부의 동학농민군이 대거 황산으로 가서 합류했다. 기포령 직후 황산집결지의 동학농민군은 보은으로 몰려갔다. 이 세력이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논산에서 전봉준 군과 함께 공주 우금치전투를 전개하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일본군과 경군이 지나간 경기도 군현의 혼란상&lt;/p&gt;
&lt;p&gt;9월 중순 전라도에서 전봉준 장군이 재봉기를 결정하고, 9월 18일 충청도 청산에서 동학교주 최시형이 기포령을 내렸다. 정부도 9월 22일 청일전쟁 와중에 동학농민군 진압기구로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하고 경군 병대를 속속 파견했다. 일본군은 청과의 전쟁 목적으로 세운 부산과 서울 간 병참망과 군용전신선을 위협하는 동학농민군 진압을 목적으로 증파한 후비보병 제19대대가 서울로 들어왔다.&lt;/p&gt;
&lt;p&gt;경군 장위영 통위영 경리청 병대의 행군로에서 처음 거치는 군현이 경기도 남부 군현이었다. 이들 경군 병대의 지휘권까지 장악한 일본군의 남하 행군로도 겹쳐 있었다. 수시로 오가는 진압군 뒷바라지에 경기도 남부 군현이 시달렸다.&lt;/p&gt;
&lt;p&gt;양성현감이 경군 병대에 돈과 곡식을 보내는 운량감 직책을 겸했으나 때 없이 닥치는 진압군의 길 안내를 비롯 양식과 말먹이 등을 즉시 제공해야 했다. 도순무영은 “경유하는 모든 도로에서 각별히 호송하고, 제공하는 음식과 말먹이 등을 미리 대령”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과천과 수원을 비롯해서 여러 군현의 관아가 긴급 상태로 들어갔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과 돈을 제공했기 때문에 회계 장부도 갖춰야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용인현의 경비 장부 내용&lt;/p&gt;
&lt;p&gt;모든 관아는 공적으로 쓴 곡식과 비용 등을 장부에 기재한다. 여러 군현에서 당시 작성한 장부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다행히 규장각에 용인과 진위에서 만든 장부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장부는 날짜별로 기재해서 여러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lt;/p&gt;
&lt;p&gt;「용인현갑오년청인일병각영병정과거시공궤소입전급전망병정담군고가전성책」은 제목대로 갑오년에 청국인과 일본군 그리고 각 병영 병정이 지나갔을 때 제공한 경비와 들어온 돈, 그리고 사망한 병정의 시신을 운구한 가마꾼의 품삯을 기록한 본문 4쪽의 장부이다.&lt;/p&gt;
&lt;p&gt;6월 24일은 일본군 3백명과 통역 5명의 경비를 기재했다. 이 일본군은 경복궁 기습 직후 성환의 청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가던 혼성제9여단 소속 병정이었다. 이때 곡식 알곡을 담는 멱서리 10쌍을 9량 5전으로 매입했다. 그리고 백미 100말과 콩 10말을 가져갔다.&lt;/p&gt;
&lt;p&gt;6월 28일에는 양근에 있던 청국인 4명이 아산의 청국 진영으로 내려갔고, 7월 2일에는 청국인 5명이 광주에서 천안으로 내려갔다. 이날 반대로 청국어 통역 3명과 하인 2명이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성환전투 이후 통역은 청국군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9월 8일과 10일에는 평양 병정 33명과 장위영 총위영 경리청 병정 등 28명이 아산에서 올라왔다. 모두 청국군 지원병으로 보인다.&lt;/p&gt;
&lt;p&gt;을미년 1월 5일의 기록은 병정 김창운(金昌雲)의 시신을 충청도 청산에서부터 운구하는 사실이 나와 있다. 가마꾼 12명이 호상 병정 2명과 함께 왔다. 그런데 영동 용산전투에서 죽은 관군은 경리청 참모관 이윤철(李潤徹)과 병정 김창운(金昌云), 그리고 청주병영 병정 1명이었다. 청주 병정을 제외하면 2구의 시신을 운구했을 터인데 참모관 이윤철의 이름은 쓰지 않고 1구만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amp;nbsp;&lt;/p&gt;
&lt;p&gt;「용인현일병경군마병과거공궤소입전성책」은 1895년 1월 동학농민군 진압 후 서울로 올라가는 상황을 보여주는 본문 7쪽의 장부이다. 이 장부에서 2월 3일에 우선봉이 거느린 장위영 병대와 일본군이 서울로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7일에는 일본군 송파병참부에서 온 일병 3명이 동학농민군 조사를 위해 와서 2일 간 머물고 있다. 12일에는 군무아문이란 바뀐 명칭으로 북상하는 병대의 기록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진위현의 경비 장부 내용&lt;/p&gt;
&lt;p&gt;「진위현거육월삭일본병진하래시소용곡물성책」은 본문 4쪽의 장부이다. 1894년 12월에 기록한 장부로서 6월에 일본군이 가져간 곡물 등의 수효와 값을 기록했다. 일본군 혼성제9여단이 성환의 청국군을 공격할 때 서울에서 인부 2,000명과 짐말 77두로 군량 등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인부가 모두 도피해서 먹을 양식이 없었다. 그래서 수원 등 거치는 군현마다 강제로 세곡을 탈취하였다. 다음 표는 진위현 관아에서 탈취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2/20251202500510.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e0dad6f1b91&quot;&gt;
&lt;/figure&gt;
&lt;p&gt;「진위현상하내병진공궤도성책」은 9월 23일 경리청 병대가 왔을 때를 시작으로 선봉진인 통위영 병대가 지났을 때 등 여러 차례 경군이 진위현을 왔던 상황을 알려주는 본문 24쪽의 장부이다. 여기에 경리청의 영관 등 3명과 일본군 4명이 있는 것이 나온다. 이를 보면 일본군이 경군 활동에 간여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또 각 소대별로 인원과 짐말 및 마부를 기록해서 경군 병대의 규모를 전해준다.&lt;/p&gt;
&lt;p&gt;통위영 병대의 밥상은 상청 8상, 중청 66상, 하청 936상, 89필 말의 죽통 178통을 기재하였다. 모두 1,010명의 큰 부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당시 대진(大陣)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 자료는 12월에 이르기까지 각종 명색의 군사 관련 인원이 진위를 거쳐간 것을 보여준다.&lt;/p&gt;
&lt;p&gt;용인 관련 자료의 내표지에는 5년 보존과 명치 48년 12월 만기라고 쓴 것이 나온다. 1915년에 폐기하라는 표시이다. 다행히 예정된 인멸에서 살아남아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자료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라졌을 것이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2/20251202500511.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e0e19621b9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신영우(충북대 명예교수)
 &lt;/figcaption&gt;
&lt;/figure&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동학농민군의 가을봉기와 경기도 군현 일본군이 6월 21일 경복궁을 침범해서 국왕이 인질로 된 사건은 즉시 널리 알려졌다. 가장 먼저 전해진 지역이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군현이었다. 양반 유생들은 즉각 대항하지 못했고, 동학 조직이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경기도 동부의 지평과 양근, 동남부의 광주와 여주 그리고 이천과 죽산, 남서부에는 안성과 용인, 그리고 … ]]></description>
			<pubDate>Tue, 02 Dec 2025 16:55:57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기고</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8500120</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허전 전주정보진흥원장 “능동적인 사업 발굴로 기관 정체성 확립”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850012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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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11%;&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3/20251203500528.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e32dc0d2202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허전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이 지난 2일 전북일보와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2001년 설립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전주시 출연기관으로 전주·전북의 ICT·SW 산업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진흥원 입주기업만 해도 현재 75개사로, 입주율은 94%를 자랑한다. IT벤처센터, 1인창조기업지원센터, 전북메타버스지원센터 등은 공실이 없을 정도다.&lt;/p&gt;
&lt;p&gt;그럼에도 전북테크노파크,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 등이 그 역할을 확대하며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도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다.&lt;/p&gt;
&lt;p&gt;취임 1주년을 맞은 허전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을 만나 진흥원의 정체성, 경쟁력 확립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lt;/p&gt;
&lt;p&gt;-취임 1주년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진흥원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lt;/p&gt;
&lt;p&gt;“지난 1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들여다봤던 부분은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사업 방식이었습니다. 진흥원은 전주시 산업 진흥기관으로 전통적으로 국가 공모사업을 통해 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업무를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공모사업 규모 축소 등으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공모사업 위주의 수동적인 사업 발굴에서 제안사업을 통한 능동적인 사업 발굴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AI 신뢰성 혁신 실증사업’을 제안해 2026년 예산 반영까지 이뤄냈습니다. 또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 ‘AI 기반 VFX(특수효과) 후반제작시설 구축사업’을 제안해 2026년 전주시 직접 교부사업으로 반영됐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산업의 규모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다음으로 취임 전 제가 외부 시각으로 바라본 진흥원은 내부 갈등이 밖으로 표출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직원 간의 물리적 거리를 없애기 위해 워크숍, 체육대회 등 서로 부대끼며 갈등을 녹여낼 수 있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모두 다 해소됐다고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진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취임하신 이후 조직개편을 단행하셨죠. 정책 방향성이 담겼을 것 같은데요.&lt;/p&gt;
&lt;p&gt;“기존 진흥원은 사업 축소로 인해 경영기획단과 디지털융합사업단 2단으로 운영해왔습니다. 취임 후 한 달 동안 전주시가 출연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직진단 용역 결과 등 진흥원을 둘러싼 여러 사업 방향을 검토했습니다. 첫째 그 중심에 영화영상산업이 있었습니다. 진흥원은 영화 후반제작을 위한 음향 마스터링 스튜디오 운영 등 영화영상 사운드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영상산업이 버추얼 프로덕션, 특수효과 등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빠르고 재편되는 시점에 산업으로서의 영화영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영상산업본부를 신설했습니다. 다음으로 지역 산업의 AI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미래산업본부를 신설했습니다.”&lt;/p&gt;
&lt;p&gt;-말씀하셨듯 정부 또한 AI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흐름 속에서 진흥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lt;/p&gt;
&lt;p&gt;“진흥원은 지난 20여 년간 전주, 전북의 IT·CT산업을 이끌어 왔던 기관입니다. 이러한 역량을 통해 앞서 말씀드린 AI 신뢰성 혁신 실증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AI가 학습·생성하는 데이터나 결과물의 정확성, 편향성, 일관성 등을 평가하게 됩니다. 또 AI 인재 양성을 통해 AI 산업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실제로 진흥원은 2020년부터 ‘지역 ICT 이노베이션 스퀘어 확산사업’을 통해 매년 AI, 블록체인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현장 방문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lt;/p&gt;
&lt;p&gt;“지난해 전북 교육발전특구 사업을 통해 진흥원이 제안한 사업인 ‘IP 기반 미래 기업인 육성 프로젝트’로 초등학교를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열의를 보며 지역 미래 인재 육성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같은 교육발전특구 사업으로 진행한 ‘전주 영화영상산업 실습역량 강화형 도제식 프로그램’ 성과 공유회에 참석해 그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역 청년들의 열정만큼이나 높은 실력을 보고, 그들에게 조금만 더 기회를 주면 더 큰 재능으로 보답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lt;/p&gt;
&lt;p&gt;-전주 콘텐츠 산업 생태계는 성과도 많지만 동시에 ‘단건 프로젝트 중심’이라는 한계도 꾸준히 지적돼 왔습니다. 원장님은 이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시나요?&lt;/p&gt;
&lt;p&gt;“전주시는 기초자치단체로는 유일하게 메타버스 지원센터, 메타버스 허브센터, 메타버스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이를 통해 기업 지원, 인력 양성 등 가상 융합콘텐츠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G-타운 조성을 통해 지속적·안정적으로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나갈 계획입니다. 나아가 가상융합산업 지원센터 지정으로 향후 전북 광역 거점기관 지정까지 추진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기술 기반 신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발굴·시행해 나가겠습니다.”&lt;/p&gt;
&lt;p&gt;-오랫동안 지방행정을 경험하셨는데, 그 경험이 진흥원장으로서 역할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lt;/p&gt;
&lt;p&gt;“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진흥원은 전주시 출연기관으로 전주시 행정에 대한 이해가 첫걸음입니다. 절차와 시기에 맞춰 전주시 행정과 같은 방향·속도로 사업을 진행할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신산업을 발굴·추진하는 데 있어 타 기관과의 협업이 원활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남은 기간 진흥원장으로써 이루고 싶은 목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lt;/p&gt;
&lt;p&gt;“영화영상산업을 지역 산업에 연착륙 시키는 것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영화영상산업과 관련한 공모사업 등 많은 사업을 발굴·추진해 왔습니다. 이를 토대로 지역 내 영화영상산업 생태계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피지컬 AI 산업이 지역 신성장 산업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쉽지 않겠지만 전주시만의 대형 국책사업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전주시의 강점을 살리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첨단산업, 지역 기업을 한 단계 스케일업할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 발굴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lt;/p&gt;
&lt;p&gt;△허전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은&lt;/p&gt;
&lt;p&gt;허전(60) 원장은 부안 출신으로 전북대 사범대학 부속고 졸업,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학사), 전북대 대학원 행정학과(석사)를 졸업했다. 1986년 공직에 입문해 약 38년간 전북도 등에서 다양한 요직을 역임한 행정 전문가다. 전북도 총무과장, 환경녹지국장, 도민안전실장 등 도청 핵심 부서를 거쳤다. 전북도 중국사무소장과 김제시·익산시 부시장도 역임했다. 지난해 11월 제8대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임명돼 3년 임기를 시작했다.&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2001년 설립된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전주시 출연기관으로 전주·전북의 ICT·SW 산업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진흥원 입주기업만 해도 현재 75개사로, 입주율은 94%를 자랑한다. IT벤처센터, 1인창조기업지원센터, 전북메타버스지원센터 등은 공실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전북테크노파크, 전북콘텐츠융합진흥원 등이 그 역할을 확대하며 전주정보문화산업… ]]></description>
			<pubDate>Mon, 08 Dec 2025 13:39:31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문민주</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4500191</guid>
			<title><![CDATA[ [전북의 기후천사] 건지산 지키려고 시민들이 뭉쳤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450019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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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4/20251204500017.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e6d9b04b20f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지난달 10일 호성동 한 카페에서 만난 건 지산지키기시민모임 회원 이수진(왼쪽)씨와 이남희(오른쪽)씨. /사진=박은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건지산은 전주의 미래자산이에요. 기후위기 시대에 좋은 환경만큼 필요한 자산은 없다고 봐요. 시대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산을 깎아서 개발한다는 발상은 모순이죠”&lt;/p&gt;
&lt;p&gt;지난달 10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호성동 주민 이수진(34)씨의 말이다. 수진씨는 덕진공원 건지산 일대에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민간특례사업에 반대하는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 회원 7명 중 한 명이다.&lt;/p&gt;
&lt;p&gt;그의 말처럼 기후위기 임계점이 가까워졌다는 경고음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와 1년 치 비가 하루 만에 쏟아진 기상이변 현상,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온실가스 농도 등이 이를 증명한다.&lt;/p&gt;
&lt;p&gt;이수진씨는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시공원은 시민의 삶을 지켜주는 기후 안전망이고, 기후재난을 완화하는 생태시설이 건지산인데 30% 가까이가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개발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제는 개발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4/20251204500018.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e6da789d20f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담은 홍보물이 건지산 중턱에 부착되어 있다/사진=독자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은?&lt;/strong&gt;&lt;/p&gt;
&lt;p&gt;올해 9월 발족한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은 덕진공원‧건지산 일대에서 추진 중인 민간공원 특례 초고층 아파트 개발 계획에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시민모임이다. 모임에는 이수진 씨를 비롯해 건지산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 7명이 화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덕진공원은 모두의 것, 건지산 시민의 숲을 지켜주세요”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발 중단과 공원 보전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을 상시로 진행하고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4/20251204500022.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e6e112aa20f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과 뜻을 함께하는 공원녹지 아파트 건축반대위원회에서 ‘주민 알림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독자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왜 모이게 됐을까?&lt;/strong&gt;&lt;/p&gt;
&lt;p&gt;‘건지산’은 편백나무 숲과 오리나무 군락,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맹꽁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없는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로 보존된 곳이다. 전주 도심 녹지축의 핵심이자 도심의 산소공장으로 여겨진다. 그 공간이 지난 7월부터 도시의 미래로 떠올랐다.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되면서 예산이 부족한 전주시가 공원 일부에 초고층 아파트 개발을 허용하면서부터다.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 부지는 덕진공원 전체 면적의 7.86%에 해당된다. 축구장을 39개 지을 수 있는 면적이 개발의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시민 사회에선 “녹지 감소·시민 불편·경관 훼손·예산 낭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도시 개발 사업의 상업적 성격이 짙어 도시공원과 녹지를 파괴한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에서도 시민단체의 의견에 100% 공감하며 함께 행동하고 있다. 수진씨는 “숲의 일부가 잘려나간다면 결국 건지산 전체의 생태와 산책길, 시민의 삶터가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며 “연대해서 무자비한 개발을 막고 현재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알리기 위해 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4/20251204500023.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e6e217a420f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건지산지키기시민모임과 환경운동연합이 ‘건지산은 시민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지난 10월 9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건지산 숲길 걷기’를 진행했다. /사진=독자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 개발 관련 문제 아닌 기후위기 문제&lt;/strong&gt;&lt;/p&gt;
&lt;p&gt;수진씨는 산림 파괴를 둘러싼 개발 논의가 곧바로 기후위기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림이 탄소흡수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태 다양성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라 할 수 있어서다. 그는 “건지산 훼손이 단순한 지역 환경 문제를 넘어 장기적인 기후체계의 불안정성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심 가까이에 위치한 산림이 사라질 경우, 탄소배출 저감 효과가 줄어들고 기온 상승과 홍수‧가뭄과 같은 극단적 기후현상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또한 도시 숲의 가치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진다고 평가하는 추세다. 산림 보전이 기후위기 대응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 중 하나로서 개발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환경적 가치를 균형 있게 판단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이수진씨는 “기후회복력이라고 하죠? 아파트 하나 짓는데, 무슨 기후위기까지 논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대에 사는 주민들에겐 생존의 문제”라며 “아파트로 인해 잃게 될 자연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파트가 지어져도 더 이상 아파트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빈 건물이 방치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결국 더 많은 시민이 민간공원 특례사업 문제에 대해 알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건지산지키기시민모임 회원들을 비롯해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무자비한 개발을 저지하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lt;/p&gt;
&lt;p&gt;&lt;strong&gt;△ 건지산 지키기는 ‘내 일’ 아닌, ‘우리의 일&amp;nbsp;&lt;/strong&gt;&lt;/p&gt;
&lt;p&gt;인터뷰 진행 도중 건지산지키기시민모임 회원인 이남희(57)씨가 합류했다. 남희씨는 “건지산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의 기후를 지키는 일”이라며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거듭 당부했다. 행정의 막무가내 결정과 행동이 전주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건지산지키기 시민모임에서는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개발구역 일대를 돌며 주민 알림 활동을 펼쳐왔다.&lt;/p&gt;
&lt;p&gt;이들 모두가 일상에서 기후행동을 실천하고 있던 셈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남희씨가 당부의 말을 건넸다. 그는 ‘기후행동’이라는 것이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숲과 나무를 가꾸는 일부터라고 했다.&lt;/p&gt;
&lt;p&gt;이남희씨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열섬이 생기고 바람길을 막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기후변화가 나타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행정에서는 이런 상황을 못 본 척하고 있다. 멀쩡한 산을 훼손하면서 개발하는 게 전주를 위한 일인지 모두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amp;lt;끝&amp;gt;&amp;nbsp;&lt;/p&gt;
&lt;p&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건지산은 전주의 미래자산이에요. 기후위기 시대에 좋은 환경만큼 필요한 자산은 없다고 봐요. 시대는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데, 산을 깎아서 개발한다는 발상은 모순이죠” 지난달 10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호성동 주민 이수진(34)씨의 말이다. 수진씨는 덕진공원 건지산 일대에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민간특례사업에 반대하는 ‘건지산 지키기 시민모임’… ]]></description>
			<pubDate>Thu, 04 Dec 2025 14:18:00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2500248</guid>
			<title><![CDATA[ [뉴스와인물] 회사원에서 ‘선교사’로, 인생 후반기에 펼쳐진 반전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250024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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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2/20251202500216.jpg&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d76da95194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최관신 선교사가 영어·한글·치뗌보어 3개 언어로 된 성경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조현욱 기자&amp;nbsp;
 &lt;/figcaption&gt;
&lt;/figure&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제가 목사감은 아니죠. 형제들은 저를 사기꾼 같다고 하던 걸요?&lt;/p&gt;
&lt;/div&gt;
&lt;p&gt;그가 자신을 ‘목사감은 아니다’라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1년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부냐키리(Bunyakiri) 지역에서 피그미(Pygmy)족 전문 사역자로 활동한 사람. 교회 건축부터 부냐키리 예수병원 운영, 간호대학과 봉제학교 설립, 치뗌보(피그미 언어) 성경 번역 사역까지…. 불가능한 일을 해내왔다. ‘이 정도라면 전도목사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틀렸다. 그는 “보상을 바랬다면 절대 지금까지 사역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lt;/p&gt;
&lt;p&gt;최관신(68) 선교사의 이야기다. 실제 그의 인생이 스스로를 증명한다. 14년간 기아자동차 전주‧군산지점장으로 지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으니까. 그는 아프리카 최초의 종족인 피그미를 대상으로 교육과 의료‧복음 사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을 하려고 신학 공부를 했고, 일 년에 7~8개월간 가족들과 떨어져 콩고에서 생활했다.&lt;/p&gt;
&lt;p&gt;반전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인구 약 30만 명. 접근 자체가 고난도인 부냐키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틀이 소요됐다. 실제 스무 시간 이상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고 우기에는 진흙탕의 영향으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었다. 이동 수단은 아슬아슬하게 곡예 주행하는 오토바이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피그미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lt;/p&gt;
&lt;p&gt;지난달 26일 완주 소양면에 자리한 ‘작은 손 선교회’에서 만난 최관신 선교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얘기들은 무엇 하나 예측 가능한 게 없었다. 그래서 더욱 펄떡거렸던 피그미 사역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7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2/2025120250021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d7865bb194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지난달 26일 완주 소양면에 자리한 ‘작은 손 선교회’에서 만난 최관신 선교사가 피그미 사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amp;nbsp;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lt;strong&gt;-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lt;/strong&gt;&lt;/p&gt;
&lt;p&gt;“흑인 노예의 참상을 다룬 소설을 대학생 시절에 읽었습니다. 이후에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200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아프리카 선교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2009년 우간다 여성대회에 참여하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임파선염으로 죽어가던 아이를 만나 기도를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서 예수를 만났다는 강렬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프리카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을 느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특별히 피그미족을 중심으로 사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lt;/strong&gt;&lt;/p&gt;
&lt;p&gt;“2010년 콩고 고마 지역 세미나에서 한 목회자를 통해 피그미 마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누구냐, 우리가 죽인 적도 없는데 왜 우리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하느냐’라고 되묻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속’이라는 개념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 저는 피그미족에게 제대로 된 복음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피그미 사역을 시작한 이유이자, 하나님이 제게 주신 콜링이라고 확신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피그미족 언어인 ‘치뗌보어’ 성경 번역 프로젝트도 진행하셨다고요.&lt;/strong&gt;&lt;/p&gt;
&lt;p&gt;“치뗌보어는 문자가 없던 언어였습니다. 2015년 피그미 공주가 한국에 와 공연한 것을 계기로 전주대 소강춘 교수에게 도움을 구했고, 3년 6개월 끝에 문자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됐지만, 2020년부터 본격적인 성경 번역에 들어가 올해 누가복음초판 500부를 콩고에 보냈습니다. 피그미 주민들은 첫 성경책을 받아 잔치를 벌였고, 현재는 영어·한글·치뗌보어 3개 언어로 된 성경을 보급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아프리카는 낯선 곳이고, 특히 피그미족은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현지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lt;/strong&gt;&lt;/p&gt;
&lt;p&gt;“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과 의료 인력입니다. 특히 조산 교육이 시급합니다. 피그미 여성들은 10~11세에 출산을 시작해 평생 15명에서 20명의 아이를 낳는데, 70%가 5세 전에 사망합니다. 이유는 열악한 출산 환경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호대학을 세워 조산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 운영을 위해 의사·치과·간호 인력, 의료 장비, 행정 운영 지원이 절실합니다. 특히 치과 장비는 현지에서 가장 부족한 분야입니다.”&lt;/p&gt;
&lt;p&gt;&lt;strong&gt;- 활동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후회하는 순간은 없었는지요.&lt;/strong&gt;&lt;/p&gt;
&lt;p&gt;“제게 피그미족은 ‘사명’이기 전에 ‘만남의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그들을 도우러 간 게 아니라, 그들이 제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들의 환한 웃음,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볼 때마다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어려움으로 느껴지는데요.&lt;/strong&gt;&lt;/p&gt;
&lt;p&gt;“가족들은 제가 피그미 사역을 시작한 초창기 때부터 저의 뜻을 존중해줬습니다. 아내는 간호사로 오래 일했는데, ‘은퇴 전에 꼭 한 번 아프리카를 가보고 싶다’고 했죠. 실제로 병원 개관식 당시에 찾아와서 제 사역을 보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매년 함께 오지만 건강 문제로 올해는 쉬었습니다. 저 역시 안식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지내서 이제는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병원과 학교가 계속 운영되려면 당분간 사역 활동은 이어가야 할 듯 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선교사님께 ‘피그미족’과 ‘선교’는 어떤 의미인가요?&lt;/strong&gt;&lt;/p&gt;
&lt;p&gt;“제 사주에도 없던 길입니다. 그런데 인생 후반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피그미족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탕 하나에도 행복해하고, 작은 도움에도 감사해합니다. 저는 대단한 목사도 아니고, 선교사로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이것이 제게는 ‘행운’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존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피그미 사역 활동을 말하는 그에게선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시종 호탕한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것. 피그미족에게 배운 삶의 이치다. 그리고 그건 사역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이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평안을 빌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배웅하러 나선 길에 건넨 인사가 오래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그 역시 오래오래 평안하길 바라본다.&lt;/p&gt;
&lt;p&gt;△최관신 선교사는 2009년 7월부터 월드미션프론티어를 통해 아프리카 단기 선교를 하다가 2013년부터 피그미 전문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lt;/p&gt;
&lt;p&gt;박은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제가 목사감은 아니죠. 형제들은 저를 사기꾼 같다고 하던 걸요? 그가 자신을 ‘목사감은 아니다’라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11년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부냐키리(Bunyakiri) 지역에서 피그미(Pygmy)족 전문 사역자로 활동한 사람. 교회 건축부터 부냐키리 예수병원 운영, 간호대학과 봉제학교 설립, 치뗌보(피그미 언어) 성경 번역 사역까지…. … ]]></description>
			<pubDate>Tue, 02 Dec 2025 14:23:03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박은</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201500102</guid>
			<title><![CDATA[ “민생·미래·건전재정…2026년 전주 예산, 선택과 집중이 답”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2015001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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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전주시의회가 내년도 본예산 심사에 돌입한다. 전주시의 재정 여건이 빠르게 경직되는 가운데,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예산과 미래 먹거리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전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최명철(서신동) 위원장은 “2026년 예산은 전주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이라며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과감한 시도’로 예산 심사 기조를 세웠다”고 밝혔다. 이에 본보는 전주시 재정 운영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최명철 위원장을 만나 내년도 예산 심사 방향과 주요 쟁점, 의회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7/20251127500351.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c3e68a030c0d&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최명철 전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예산 심사 방향과 주요 쟁점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려운 시기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lt;/p&gt;
&lt;p&gt;“예산은 숫자가 아니라 시민의 생활을 바꾸는 도구입니다. 내년도 예산 심사는 시민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민생 중심을 최우선 키워드로 판단하겠습니다. 전주시 재정은 현재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급하지 않은 예산은 과감히 줄이고, 시민이 불편을 덜고 안전을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예산을 ‘어디에 쓰는냐’보다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한 때입니다. 아이 돌봄, 대중교통, 취약계층 지원, 재난·재해 대응, 노후시설 개선은 한순간도 늦출 수 없는 영역인 만큼, 이들 분야의 예산은 최대한 보호하고 더욱 강화할 계획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예결특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예결특위는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꼭 필요한 지출을 찾아내는 일도 해야 합니다. 시민의 삶과 직결된 사업을 지키고, 꼭 필요한 변화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의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의회가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해 예산을 검증하는 마지막 안전 장치인 만큼, 집행부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꼼꼼히 확인하고, 불합리한 예산은 바로잡으며, 미래를 위한 선택에는 책임있게 힘을 보태겠습니다. 예결특위는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 시민의 요구를 기준으로 심사할 것입니다. 의회가 신뢰받기 위해선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투명해야 합니다. 올해 심사에서도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예산 심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인가요.&lt;/p&gt;
&lt;p&gt;“증액은 반드시 타당성과 시민 편익이 우선으로, 감액은 사업 필요성, 실효성, 집행률, 중복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근거 있는 조정’을 원칙으로 할 것입니다. 의원 간 협의와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판단이 아닌 데이터와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한 심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예결위에 소식된 각 의원의 역할도 중요하고, 또 합심해서 의견을 도출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앞서 민생 중심 예산을 강조하셨습니다.&lt;/p&gt;
&lt;p&gt;“최근 경기 침체 속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소상공인 지원은 지역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게 핵심입니다. 이와 관련된 사업은 단기 효과뿐 아니라 지속적 파급력을 고려한 전략적으로 실질적인 매출 개선과 시장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현실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2026년은 전주의 인구정책 전환점이 될 해입니다. 청년 정주여건 개선, 어르신 안전·돌봄 예산 등 주민들과 직결된 예산은 반드시 챙기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생 중심의 예산 이외에 중점을 두실 분야는.&lt;/p&gt;
&lt;p&gt;“내년도 예산의 또 하나의 축은 ‘미래 투자’입니다. 청년·청소년 정책, 신성장산업 육성, 기후 대응 등은 전주의 장기적 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야입니다. 현재의 불편을 해결하는 민생 예산과 함께 앞으로 10년 뒤 전주의 모습을 바꿀 미래 투자가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합니다. 청년 정주여건 개선, 창업·문화 인프라 확충, 신성장 산업 기반 마련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전 사업이라고 해서 예산을 무조건 늘릴 수는 없는 만큼, 사업의 타당성, 단계별 목표, 예산 대비 효과 등을 꼼꼼히 따지는 등 ‘선택과 집중‘을 하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재 전주시 재정 건전성은 어떤가요.&lt;/p&gt;
&lt;p&gt;“전주시 재정의 구조적 문제 역시 심각하게 다뤄야 할 지점입니다. 전주시 지방채 규모가 이미 62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채가 계속 누적되면 미래 세대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만성 구조가 고착화되고 전주시 재정 악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재정 자립도 향상을 위한 원금상환 교육 및 재정문화 개선 등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몇 년째 반복되는 행사성 사업, 목적이 불명확한 사업, 실적 대비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은 이번 심사에서 엄정하게 검토하고 시민들 삶과 직결된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lt;/p&gt;
&lt;p&gt;“2026년은 전주의 미래 10년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시민의 안전과 삶을 책임질 예산인지, 전주의 미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예산인지 꼼꼼히 살피겠습니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삶이 좋아지는 전주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의 삶과 직결된 예산이 편성되도록 의회가 반드시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이렇게 구성됐습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1/20251201500095.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826e1a0143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왼쪽부터) 최명철 위원장, 최지은 부위원장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1/20251201500097.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827069e143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왼쪽부터) 이기동, 박선전, 양영환, 이병하, 정섬길 김학송 위원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2/01/20251201500098.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d8272180143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왼쪽부터) 신유정, 장재희, 전윤미, 채영병, 천서영, 한승우 위원 /전주시의회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위원장 - 최명철(서신동) 의원&lt;/p&gt;
&lt;p&gt;부위원장 - 최지은(덕진, 팔복, 송천2동) 의원&lt;/p&gt;
&lt;p&gt;위원 - 이기동(완산, 중화산1·2동)‧양영환(동서학, 서서학, 평화1·2동)‧박선전(진북, 인후1·2, 금암동)‧이병하(우아1·2, 호성동)‧정섬길(서신동)‧김학송(조촌, 여의, 혁신동)‧신유정(조촌, 여의, 혁신동)‧장재희(비례대표)‧전윤미(효자2·3·4동)‧채영병(효자2·3·4동)‧천서영(비례대표)‧한승우(삼천1·2·3, 효자1동)‧최지은(덕진, 팔복, 송천2동) 의원&lt;/p&gt;
&lt;p&gt;강정원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전주시의회가 내년도 본예산 심사에 돌입한다. 전주시의 재정 여건이 빠르게 경직되는 가운데,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예산과 미래 먹거리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전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최명철(서신동) 위원장은 “2026년 예산은 전주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이라며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과감한 시도’로 예산 심사 기조를 … ]]></description>
			<pubDate>Mon, 01 Dec 2025 13:27:0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강정원</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126500298</guid>
			<title><![CDATA[ [사회복지공동모금회-전북일보 공동 기획] 기부가 만든 주거 회복의 기적…위기 가정 두 곳의 변화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12650029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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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lef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6/20251126500288.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bea86aeb06f3&quot;&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쓰레기집에서 공부방으로” 기부로 만든 위기 아동가정의 변화&lt;/strong&gt;&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6/20251126500279.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bea4ac0106e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사랑의 공부방 사업 진행 이전(위)과 이후(아래) 모습/ 전북 사랑의 열매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전북 사랑의열매)는 한화에너지(주)군산공장의 기부금 300만 원을 바탕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여 있던 아동 가정에 ‘사랑의 공부방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lt;/p&gt;
&lt;p&gt;전북 사랑의열매의 기부금 배분을 받은 군산종합사회복지관이 처음 방문한 강모(9) 군의 가정은 좁은 공간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으며, 바퀴벌레가 집 안팎을 오가는 등 위생상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는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에 의존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고. 어머니 역시 경제활동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보호자가 양육과 돌봄을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6/20251126500283.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d-9ab4-1c25-819a-bea5ba1e06e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강 군의 아버지가 군산종합사회복지관에 보낸 편지 /전북 사랑의 열매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이러한 상황 속 강 군은 복지관 직원들에게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표현했다. 이에 전북 사랑의열매와 군산종합사회복지관은 단순 지원을 넘어 아이에게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결정했다. ‘사랑의 공부방 만들기’ 사업은 도배와 장판 시공, 책상·의자·조명·침구류·수납장 등 학습에 필요한 가구 일체를 새로 갖추는 방식으로 진행됐다.&lt;/p&gt;
&lt;p&gt;사업이 진행된 후 강 군은 매일 세안과 샤워를 하는 등 기본 위생 습관을 들였고, 집에 오면 자연스레 부모님과 함께 숙제를 하는 학습 습관도 자리 잡았다. 이전과 달리 표정이 밝아지고 본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등 정서적 변화도 일어났다.&lt;/p&gt;
&lt;p&gt;강 군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따로 방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고, 위생적인 부분에도 문제가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며 “이제 아이에게 처음으로 방을 마련해 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입을 모았다.&lt;/p&gt;
&lt;p&gt;특히 집 안 공기와 환경이 개선되었을 뿐 아니라, 그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안심된다고 했다.&lt;/p&gt;
&lt;p&gt;또한 자신만의 공부방이 생긴 후 강 군은 “유튜버가 되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분명한 꿈을 말하기 시작했다.&lt;/p&gt;
&lt;p&gt;부모님은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며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새로 마련된 공부방을 잘 지키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lt;/p&gt;
&lt;p&gt;사업을 진행한 군산종합사회복지관은 이번 사례를 ‘아동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개입’이라고 평가했다.&lt;/p&gt;
&lt;p&gt;복지관 관계자는 “현장에서 만나는 아동들은 공부 이전에 쉴 곳, 잠잘 곳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기본적인 생활 기준이 생긴 것이 사업의 가장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lt;/p&gt;
&lt;p&gt;그러면서 “이번 사례를 통해 느꼈던 점은, 공간만 바꿔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공부방이 마련된 이후에도 아이가 그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서지원·학습 멘토링·가족 기능 회복이 함께 이어져야한다”고 덧붙였다.&lt;/p&gt;
&lt;p&gt;&lt;strong&gt;지역사회가 함께한 화재 피해 지적장애인 가구의 새 보금자리 마련&lt;/strong&gt;&lt;/p&gt;
&lt;p&gt;전북 사랑의열매와 전북소방본부가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지적장애인 5인 가족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주거 재건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amp;nbsp;&lt;/p&gt;
&lt;p&gt;돌봄과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뤄지기 어려운 가족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모든 생활 기반을 잃은 가운데, 지역사회의 기부와 공공기관의 연계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만들고 있다.&lt;/p&gt;
&lt;p&gt;지난 7월 4일 순창의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은 순식간에 전소됐고, 내부 물품 역시 모두 불에 소실됐다. 다행히 가족 모두가 인근 복지관에 외출한 상태라 인명 피해는 없었다.&lt;/p&gt;
&lt;p&gt;그러나 화재 당시 충격을 직접 목격한 가족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었다.&lt;/p&gt;
&lt;p&gt;특히 어머니는 심리적 후유증으로 식사를 잘하지 못해 치료를 받아야 했고, 지금도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lt;/p&gt;
&lt;p&gt;아이들의 고모는 “빨리 집이 완성돼야 조카들이 다시 일상의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복지관 프로그램에도 매일 참여하는 아이들이 외진 임시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후 화재 조사를 진행하던 전북소방본부는 현장에서 가족들의 후견인으로 돌봄을 맡아온 고모를 통해 이들의 생활 여건을 확인하게 됐다.&lt;/p&gt;
&lt;p&gt;문춘호 전북소방본부 소방경은 “가족 모두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서로 의지하며 밝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고 꼭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다행히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운영되는 ‘119행복하우스’ 사업이 있었고, 해당 가구는 심의 끝에 만장일치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lt;/p&gt;
&lt;p&gt;현재 가족은 임시 주거지에서 지내며 새로운 집이 완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순창군과 전북소방본부, 전북 사랑의열매가 함께 마련한 예산을 통해 24평 규모의 주택 신축이 진행되고 있다.&lt;/p&gt;
&lt;p&gt;고모는 “불이 난 뒤 조카들과 한동안 집도 없는 상태였다”며 “사랑의열매와 소방본부, 순창군, 순창군의회, 사회복지직 공무원 등 지역사회에서 도와줘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lt;/p&gt;
&lt;p&gt;전북소방본부는 화재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지원으로 ‘임시거처와 긴급 생활비 마련’을 꼽았다. 집이 부분적으로 타더라도 연기와 물 손상으로 거주가 어려워, 반드시 임시 보금자리를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lt;/p&gt;
&lt;p&gt;이에 소방본부는 전소 시 신축을 지원하는 ‘119행복하우스’, 부분 수리를 돕는 ‘119안심하우스’, 숙박비·생활비 지원 등을 통해 피해 주민을 돕고 있다.&lt;/p&gt;
&lt;p&gt;문 소방경은 “화재 피해 주민 지원 사업을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운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도나 국가 차원에서 별도 예산이 투입된다면 더욱 많은 화재 피해 주민을 안정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lt;/p&gt;
&lt;p&gt;가족의 새로운 집은 내년 1월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가족들은 “안전한 집에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amp;lt;끝&amp;gt;&lt;/p&gt;
&lt;p&gt;&lt;strong&gt;“17년을 이어온 남매의 기부, 아이들의 작은 손길로 확산된 나눔,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일으킨 회복의 기적까지&quo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이번 공동기획은 ‘나눔은 한 사람의 선의에서 시작해,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전북일보와 전북 사랑의 열매는 앞으로도 전북 곳곳의 따뜻한 변화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이웃에게 전해 나가겠습니다.&lt;/strong&gt;&lt;/p&gt;
&lt;p&gt;김문경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쓰레기집에서 공부방으로” 기부로 만든 위기 아동가정의 변화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전북 사랑의열매)는 한화에너지(주)군산공장의 기부금 300만 원을 바탕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여 있던 아동 가정에 ‘사랑의 공부방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전북 사랑의열매의 기부금 배분을 받은 군산종합사회복지관이 처음 방문한 강모(9) 군의 가정은 좁은 공간이 쓰레기로… ]]></description>
			<pubDate>Wed, 26 Nov 2025 14:42:34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문경</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123500280</guid>
			<title><![CDATA[ [뉴스와 인물] 김항수 전북지방조달청장 “조달은 지역경제 움직이는 플랫폼…기업 성장 돕겠다”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1235002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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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 style=&quot;text-align:center;&quot;&gt;&lt;img class=&quot;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 src=&quot;/content/image/2025/11/11/20251111500142.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70ee7605050f&quot;&gt;&lt;/p&gt;
&lt;p&gt;김제에서 나고 익산에서 성장한 김항수 전북지방조달청장은 ‘현장에서 답을 찾는 공직자’로 통한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 팀 근무, 조달청 핵심부서 경험 등 30년 가까운 공직 경력을 쌓았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친화력’ ‘소통 형 리더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전북청장으로 취임한 그는 “조달은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플랫폼”이라며 전북 기업의 성장을 돕는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숨 가쁘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청장을 만나 조달행정의 방향, 지역기업 지원 전략, 조달 규제 혁신 등 전북 경제와 맞닿아 있는 과제들을 심도 있게 들여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취임 후 느낀 소감과 다짐이 있다면 한 말씀.&lt;/p&gt;
&lt;p&gt;“전북도민들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저는 김제에서 태어나 익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고향의 산업 구조와 기업 환경을 잘 아는 만큼 더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취임 직후부터 현장을 가장 많이 찾아갔습니다. 조달행정의 핵심은 결국 기업의 공장, 연구소, 협회 사무실 같은 바로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목소리를 제도 개선에 반영하는 것이 청장으로서 첫 번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북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lt;/p&gt;
&lt;p&gt;“전북은 규모가 큰 기업이 많지 않고 산업 기반도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하지만 대학·연구기관·지원기관이 가진 기술 역량을 모으면 충분한 기회가 있습니다. 공공조달시장은 특히 중소기업에게 매우 큰 성장 통로입니다.&lt;/p&gt;
&lt;p&gt;우리 청은 ‘공공조달 길잡이’ 프로그램을 강화해 기업이 조달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 겪는 어려움을 줄이고 있습니다. 제품 등록, 계약 절차, 기술 인증까지 전담 직원이 단계별로 안내하는 체계를 운영 중입니다. 올해만 60회 이상 컨설팅을 진행했고, 그 결과 10개 기업이 종합쇼핑몰·벤처나라·디지털서비스몰에 신규 등록했습니다. 익산·완주·김제 산업단지를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길잡이’도 확대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공조달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lt;/p&gt;
&lt;p&gt;“조달은 단순한 물품 구매가 아닙니다. 기업의 기술력과 품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실질적 경제정책입니다. 지역 중소기업이 조달을 기반으로 성장해야 지역경제도 함께 좋아집니다.&lt;/p&gt;
&lt;p&gt;우리 청은 ‘공공조달 파트너십 데이’를 정례화해 기업과 수요기관이 1:1로 상담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도내 공공기관과 협회가 함께 참여하면서 기업들은 판로를 확보하고, 기관들은 우수한 지역 제품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북중기청·전북교육청·중소기업중앙회·여성경제인협회 등과 협력해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lt;/p&gt;
&lt;p&gt;궁극적으로는 ‘조달-기술개발-고용확대-지역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올해 전북지방조달청의 성과를 꼽는다면.&lt;/p&gt;
&lt;p&gt;“올해 조달사업 실적은 이미 1조9천억 원을 넘었습니다. 연말에는 약 2조3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4년 연속 2조 원대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lt;/p&gt;
&lt;p&gt;‘공공조달 길잡이’와 ‘파트너십 데이’는 지역 중소기업이 단기 납품을 넘어서 장기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기관과의 협업도 강화해 기업의 판로 확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줬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행정의 신뢰를 높이고 조달청의 역할을 더 확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년 조달사업 실적 목표와 주요 방향은.&lt;/p&gt;
&lt;p&gt;“내년 목표는 2조5천억 원입니다. 하지만 숫자만 키우는 조달행정이 아니라 지역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lt;/p&gt;
&lt;p&gt;특히 AI·디지털서비스·친환경 등 신산업 분야에서 전북 기업이 공공조달시장에 안착하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기술기업에게 필요한 컨설팅과 현장 교육을 늘리고, 혁신제품 지정과 기술우수제품 판로 확보도 집중할 계획입니다. 공공조달을 통해 신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전북 경제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달 규제 개선 방향은.&lt;/p&gt;
&lt;p&gt;“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목소리는 “불합리한 요구 때문에 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수요기관의 과도한 조건이나 부당한 절차는 반드시 개선해야 합니다.&lt;/p&gt;
&lt;p&gt;우리 청은 지난 7월부터 기관·기업·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며 조달 전반의 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공정·자율·경쟁 중심의 조달 구조 개혁안을 마련하고, 기업의 부담을 줄이면서 품질·납기 등 필수 요소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비할 계획입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전북도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lt;/p&gt;
&lt;p&gt;“전북지방조달청은 단순히 계약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되고자 합니다.&lt;/p&gt;
&lt;p&gt;“지역 기업이 성장해야 전북이 성장한다”는 신념으로,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조달행정을 추진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답을 찾으며, 기업의 노력과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lt;/p&gt;
&lt;p&gt;도민 여러분의 의견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전북의 조달혁신은 도민의 관심과 참여에서 시작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항수 전북지방조달청장은&lt;/p&gt;
&lt;p&gt;1972년 김제에서 태어난 김항수 청장은 1996년 공직에 입문했다. 해양수산부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조달청으로 자리를 옮기며 품질점검·서비스계약·기획재정·혁신조달 등 조달행정 전반을 경험했다.&lt;/p&gt;
&lt;p&gt;국무조정실에서 조정·감찰 업무를 수행하며 정책 현장을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쌓았고, 조달청에서는 품질점검팀·서비스계약과·기획재정담당관실·혁신조달운영과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lt;/p&gt;
&lt;p&gt;최근까지는 차세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구축추진단에서 통합추진팀장을 맡아 차세대 전자조달 플랫폼 설계와 데이터 기반 행정 고도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올해 7월 제35대 전북지방조달청장으로 취임했다.&lt;/p&gt;
&lt;p&gt;“공직은 기술보다 마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는 그의 신념이 앞으로 전북 조달행정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종호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김제에서 나고 익산에서 성장한 김항수 전북지방조달청장은 ‘현장에서 답을 찾는 공직자’로 통한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 팀 근무, 조달청 핵심부서 경험 등 30년 가까운 공직 경력을 쌓았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친화력’ ‘소통 형 리더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전북청장으로 취임한 그는 “조달은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플랫폼”이라며 전북 기업의 성장… ]]></description>
			<pubDate>Sun, 23 Nov 2025 15:20:05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이종호</dc:creator>
		</item><item>
			<guid isPermaLink="false">20251120500266</guid>
			<title><![CDATA[ [사회복지공동모금회-전북일보 공동 기획] “작은 마음이 큰 변화를 만든다”…남매의 17년 기부와 아이들의 예술 나눔 ]]></title>
			<link>https://www.jjan.kr/article/2025112050026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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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lef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0/20251120500231.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6-9a97-1840-819a-9fa283a3063b&quot;&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gt;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전북일보와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역 곳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부와 선행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연말 기획을 준비했다.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지역사회를 밝히는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lt;/i&gt;&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lt;strong&gt;“17년째 이어진 남매의 기부… 성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lt;/strong&gt;&lt;/p&gt;
&lt;/div&gt;
&lt;p&gt;남매가 각각 9살, 6살이던 해였다. 당시 글쓰기·그림그리기 대회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류민준(26‧당시 9세) 씨는 “게임을 안 하기도 하고 쓸 데가 없으니까, 상품권을 기부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lt;/p&gt;
&lt;p&gt;그렇게 현물 기부를 받는 기관을 찾던 중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를 만나게 된 것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6살이던 류채영(23) 씨는 오빠를 따라 자연스레 기부에 동참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남매의 연말 기부 루틴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lt;/p&gt;
&lt;p&gt;이후 남매는 매년 학창 시절 동안 방학이 되면 전북 사랑의열매 사무실을 찾았다. 시작은 문화상품권 몇 장이었고, 중·고교생 시절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기부했다.&lt;/p&gt;
&lt;p&gt;민준 씨는 대학생이 되고도 아르바이트 수입 중 일정 금액을 모아서 연말에 사랑의열매 사무실에 전했고, 류채영 씨는 받은 성적장학금의 일부를 기부했다.&lt;/p&gt;
&lt;p&gt;그는 “매달 5만 원씩 조금씩 모으면 1년에 60만 원 정도 기부 금액이 모인다”며 “올해는 대학원 준비 때문에 일을 쉬었지만, 대신 투자 수익을 모아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lt;/p&gt;
&lt;p&gt;이렇듯 남매가 꾸준한 기부를 해온 것에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0/20251120500227.pn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6-9a97-1840-819a-9fa1c4ef063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류민준·류채영 남매/전북사랑의열매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남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아름다운가게 봉사활동‧바자회에 나가며 ‘누군가를 돕는 일’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명절엔 나눔 보따리 행사에 직접 참여해 보기도 했다.&lt;/p&gt;
&lt;p&gt;채영 씨는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며 “금액의 크기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어릴 때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말했다.&lt;/p&gt;
&lt;p&gt;이제 남매에게 연말 기부는 지난 1년의 결산 같은 의미가 됐다.&lt;/p&gt;
&lt;p&gt;민준 씨는 “사무실에서 기부금을 전달하고 객사 쪽으로 내려올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매년 오프라인으로 직접 방문해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lt;/p&gt;
&lt;p&gt;온라인 송금으로 끝나는 ‘기부’와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라는 것이다. 17년째 “올해도 왔구나”라는 말로 웃으며 맞아주는 담당 직원 역시 남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lt;/p&gt;
&lt;p&gt;남매는 앞으로도 기부와 봉사를 평생의 습관으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lt;/p&gt;
&lt;p&gt;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류민준 씨는 “어떤 직업을 갖든, 기부는 제 삶의 일부가 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lt;/p&gt;
&lt;p&gt;한의학과에 진학한 류채영 씨는 “앞으로 의료봉사 등 전문성을 살린 나눔도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lt;/p&gt;
&lt;p&gt;끝으로 경제적 여건 악화로 기부 문화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요즘, 남매는 작은 걸음부터 기부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lt;/p&gt;
&lt;p&gt;채영 씨는 “처음엔 문화상품권 몇 장으로 기부를 시작했다”며 “중요한 건 기부 금액이 아니라 마음과 꾸준함”이라고 웃었다.&lt;/p&gt;
&lt;div class=&quot;item type-1&quot;&gt;
 &lt;p&gt;&lt;strong&gt;전주 ‘오감로니’ 어린이 플리마켓, 기부 문화로 확산&lt;/strong&gt;&lt;/p&gt;
&lt;/div&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0/20251120500279.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6-9a97-1840-819a-9fb23d0e069b&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홍은경 오감로니 관장/ 조현욱 기자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 예술교육 공간 ‘오감로니’가 아이들 작품 판매 수익을 기부로 연결하며 새로운 지역 나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lt;/p&gt;
&lt;p&gt;단순한 플리마켓을 넘어, 아이들이 직접 기획·제작·판매 과정에 참여하고 그 수익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꿨다.&lt;/p&gt;
&lt;p&gt;행사를 기획한 홍은경 오감로니 관장은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이 플리마켓 운영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lt;/p&gt;
&lt;p&gt;그는 “외국처럼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그림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을 보면서 우리도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돈을 기부하는 개념보다, 아이가 만든 예술 작품으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lt;/p&gt;
&lt;p&gt;오감로니 어린이 플리마켓에는 회차마다 20~30여 명의 아이들이 참여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기획서를 작성하고, 가격도 스스로 책정한다.&lt;/p&gt;
&lt;p&gt;홍 관장은 “아이들이 유행하는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지 않도록, 각자만의 색을 살려보라고 조언한다”며 “그렇게 스스로 기획·준비한 물건이 누군가에게 팔리는 경험을 하면서 책임감과 성취감을 배운다”고 말했다.&lt;/p&gt;
&lt;p&gt;아이들이 만든 작품의 개성은 다양하다. 어떤 아이는 큰 상자에 뽑기 기계를 만들어 작은 예술품을 넣어 판매했고, 또 다른 아이는 직접 그린 그림을 액자 형태로 꾸며 선보였다. 방문객들은 천 원짜리 뽑기나 간단한 미술품을 구매하면서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라며 호응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20/20251120500244.jpg&quot; alt=&quot;Second alt text&quot; storyid=&quot;0a000b06-9a97-1840-819a-9fa82ca1065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오감로니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전북사랑의 열매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홍 관장은 “어디에 기부금이 쓰였는지 아이들에게 꼭 알려준다”며 “그러자 아이들이 다음 플리마켓은 언제 하냐며 스스로 찾아올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액이 많지 않아도 취지가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lt;/p&gt;
&lt;p&gt;이렇게 예술을 체험하는 동시에 기부에도 참여한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며, 플리마켓의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행사 뒤에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amp;nbsp;&lt;/p&gt;
&lt;p&gt;그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며 “만들었던 작품을 집에서도 이어 하고, 기부의 의미를 스스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 오래 이어가야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lt;/p&gt;
&lt;p&gt;홍 관장은 어린이·어르신이 함께 참여하는 컬러링북 제작, 전시 연계 기부 등 새로운 방식도 고민 중이다.&lt;/p&gt;
&lt;p&gt;그는 “예술은 사람을 웃게 하고 편안하게 만든다”며 “아이들이 예술로 세상과 따뜻하게 관계 맺는 경험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lt;/p&gt;
&lt;p&gt;김문경 기자&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전북일보와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역 곳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부와 선행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연말 기획을 준비했다.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지역사회를 밝히는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17년째 이어진 남매의 기부… 성인… ]]></description>
			<pubDate>Thu, 20 Nov 2025 14:11:02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category>기획</category>
			
			<dc:creator>김문경</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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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각전(各電)‧거전(去電)‧내전(來電)‧전신존근(電信存根)(1, 2)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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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 &lt;p&gt;&amp;lt;각전(各電)&amp;gt;‧&amp;lt;거전(去電)&amp;gt;‧&amp;lt;내전(來電)&amp;gt;‧&amp;lt;전신존근(電信存根)&amp;gt;(1, 2) 등 4건의 자료는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 전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나 그 후신인 외무아문과 각 지방 관아 및 재외공관이 서로 주고받은 전신을 모아둔 기록들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주로 외교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지만,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것들도 들어있다. 다른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자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기왕의 자료들을 좀 더 튼튼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44.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4392c1b65&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각전 1894년 5월 2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각전(各電)&lt;/p&gt;
&lt;p&gt;문서에는 양식지에는 &amp;lt;통서발전존근(統署發電存根)&amp;gt;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존근’은 부본(副本)이라는 의미이므로 이 문서는 통리교섭통사사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전신의 부분을 모아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료의 배치는 &amp;lt;통서&amp;gt;에서 전신을 보낸 기관별로, 기관 안에서는 날짜순으로 되어 있다. 대략적인 순서를 보면 먼저 경상감영에 보낸 1894년 3월 19일부터 7월18일까지의 전신, 다음에는 전라감영에 보낸 4월 22일부터 6월 20일까지의 전신, 이어서 충청감영에 보낸 1894년 2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의 전신, 그 다음에는 1894년 1월 9일부터 4월 22일까지 의주부윤에게 보낸 전신, 주일조선공사관으로 보내는 1월 8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전신이 35건 정도, 천진주재 조선공관에 보낸 5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의 전신 6건 정도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부산감리서에 보낸 전신 1건이 실려 있다.&lt;/p&gt;
&lt;p&gt;동학농민혁명 관련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4년 5월에 충청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아산 및 성환 일대 일본군의 남하나 청국군의 철군 여부 등과 관련된 동향이 들어있다. 1894년 5월 22일 전신에는 동학농민군의 ‘괴수’가 고부에 있다는 내용, 6월 15일과 16일, 6월 20일에는 쿠기키(釘木)와 요시쿠라(吉倉) 등 일본인 낭인(浪人) 집단 14명이 호조(護照)도 없이 순창으로 들어가 동학농민군‘수괴’와 만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lt;/p&gt;
&lt;p&gt;한편, 1894년 7월 9일, 7월 24일 전라감영으로 보낸 전신에는 익산 성당포구를 통해 프랑스 선교사를 서울로 안전 호송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만약 프랑스 선교사가 중도에 공격을 받아 상해를 입을 경우 양국 간의 友誼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45.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4f7571b67&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거전 1894년 8월 1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거전(去電)&lt;/p&gt;
&lt;p&gt;1894년 8월 7일부터 1895년 11월 15일 사이에 갑오개혁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후신으로 만들어진 외무아문에서에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해외 공관 등으로 보낸 전신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날짜순으로 기록하면서 발신일과 수신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신자를 상단에 붉은 글씨로 표시해두고 있다. 1894년의 기록은 모두 외무아문에서 보낸 전신이고, 1895년에 들어서는 외무아문뿐만 아니라 내무아문 등 각 부서에서 보낸 기록이 함께 들어있지만, 1895년 4월경부터는 대부분의 문서가 내용은 생략된 채 문서번호와 발신 및 수신처만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lt;/p&gt;
&lt;p&gt;1894년 8월 10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절단된 대구-전주 간 전선을 일본군으로부터 전선을 빌려서 빨라 수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7월 초순부터 전선파괴 등 조선인들의 반일투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그와 관련된 전신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다. 8월 18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총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상처를 입고 구타당한 일에 대해 이미 일본 영사와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이 들어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체로 8월 22일 혹은 24일 무렵부터 일본군과 농민군의 접전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8월 18일 이전부터 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외에도 평양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 노즈 미치츠라(野津道貫) 사단장에게 보낸 축하 전신, 8월 29과 29일에는 안동과 갈평, 적성, 용궁, 예천 등지의 농민군 동향을 전하고 있다. 9월 4일과 5일에는 동래부사가 농민군과 내통하였다는 내용, 9월 18일과 21일에는 하동과 성주농민군의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으며, 9월 27일 주인천 일본 영사에게 보낸 전보에는 청주 병영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워 농민군 17명을 참획(斬獲)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9월 29일에는 전교리 이용호가 안동 부근에서 밀지를 거론하며 민심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 10월 20일 충청감영에 보낸 전보에는 일본군이 농민군 초멸을 위해 내려가니, 이들이 지나는 각 읍에 일본군을 책응(策應)하는 방법을 별도로 지시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11월 4일 평양 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해주에서 농민군이 일어나 황해 감사가 봉욕을 당한 사실, 11월 7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간민(奸民)’들이 전선을 절단하는 일을 엄금할 것을 지시하는 것과 홍주목이 농민군에게 패배하여 점령된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12월 7일, 8일에는 김개남을 생포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서울로 압송하라는 내용과 김개남이 참수된 사유에 대해 보고하라는 내용, 그리고 체포된 전봉준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거(檻車)에 실어 서울로 압송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12월 17일 전라 감영에 보낸 전신에도 체포된 손화중을 반드시 살려서 압송하고 절대 죽이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50%;&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46.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55b7f1b69&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내전 1894년 9월 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내전(來電)&lt;/p&gt;
&lt;p&gt;&amp;lt;거전(去電)&amp;gt;과 반대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부(府), 해외 주재 공관 등으로부터 외무아문(外務衙門)으로 보낸 전신을 기록한 것이며, 1894년 9월 1일부터 1895년 11월 16일까지의 전신이 실려 있다. 날짜순으로 기록하였으며 상단에 각 내용마다 붉은 글씨로 관련된 기관 발신자를 따로 표시하여 식별하기 쉽게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특기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lt;/p&gt;
&lt;p&gt;9월 16일 경상 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amp;lt;충경포&amp;gt;의 명의로 통문을 돌리고 척일(斥日)을 위해 인근 고을의 농민군이 모이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호남의 농민군 수 만명의 서울을 향해 간다는 소문이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9월 17일부터 3일에 걸쳐서는 밀양민란, 성주 및 하동 농민군 동향, 호남 농민군 수만명이 진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 선산, 인동, 김산, 성주, 지례에서 농민군이 일어났다는 사실, 진주를 점령했던 농민군이 수백명씩 나뉘어 고성 사천 곤양 단성 남해 합천 등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선산, 인동, 김산 등지의 농민군이 선산 수령에게 사통(私通)을 보내 자신들은 북접이고, 남접인 전봉준과 서장옥은 사문난적(斯文亂賊)이라고 했으며, 8도의 북접 교도들이 각자 호신용 무기를 들고 일시에 모여 일본인을 토벌하려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11월 6일 경기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서산, 태안 농민군 지도자로 유상태(柳相台), 박덕삼(朴德三)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들이 예산 신례원과 홍주성 전투를 치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lt;/p&gt;
&lt;p&gt;이외에도 고나군에 의한 민간 약탈, 내포지역과 서천, 한산, 금산, 용담 등지의 농민군과 민보군의 활동, 전봉준이 11월 19일 논산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금구로 후퇴한 사실, 김개남이 청주에서 남원으로 패주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각기 순창, 태인, 고창에서 체포된 사실과 일본군이 12월 초순 광양 순천에 도착한 이후 포살한 비괴접주들이 229명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소개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57.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922f81b7f&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신존근 2 1894년 5월 8일. &amp;nbsp;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style-align-right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58.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923c51b81&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전신존근 1 1894년 10월 2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전신존근(電信存根)(1, 2)&lt;/p&gt;
&lt;p&gt;&amp;lt;전신존근(電信存根)&amp;gt;(1)에는 외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1894년 10월 18일부터 1895년 1월 18일까지의 전보,&amp;lt; 전신존근(電信存根)&amp;gt;(2)에는 외무아문에서 인천감리서로 보낸 1894년 1월 6일부터 6월 18일까지의 전신의 부본(副本)이 수록되어 있다. &amp;lt;전신존근(電信存根)&amp;gt;(1)의 내용 대부분은 거전과 겹치며, &amp;lt;전신존근(電信存根)&amp;gt;(2)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이 거의 없으며, 1894년 5월과 6월 당시 청일군의 조선 진출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기록되어 있다.&lt;/p&gt;
&lt;figure class=&quot;image image_resized&quot; style=&quot;width:25%;&quot;&gt;&lt;img src=&quot;/content/image/2025/11/17/20251117500559.jpg&quot; storyid=&quot;0a000b06-9a6b-1782-819a-9119decd1b83&quot;&gt;
 &lt;figcaption style=&quot;text-align:left;&quot;&gt;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encoded>
			<description><![CDATA[ &lt;각전(各電)&gt;‧&lt;거전(去電)&gt;‧&lt;내전(來電)&gt;‧&lt;전신존근(電信存根)&gt;(1, 2) 등 4건의 자료는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 전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나 그 후신인 외무아문과 각 지방 관아 및 재외공관이 서로 주고받은 전신을 모아둔 기록들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주로 외교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지만, 동학농민혁명과… ]]></description>
			<pubDate>Mon, 17 Nov 2025 18:17:46 +0900</pubDate>
			
				<category>기획</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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