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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원장 “혁신 사업 통해 기능 고도화할 것”

편집자 주 이은미(56)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원장은 지난달 18일 제9대 원장으로 취임해 기관 출범 이래로 역사상 ‘첫 내부 출신 원장, 첫 여성 출신 원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은 20년 넘게 지역 중추기관으로 어느덧 성년의 나이가 됐다. 그동안 전북도의 산하 기관으로서 기관 명칭이 두번이나 바뀌고 구성원과 조직은 10배 넘게 늘어났다. 한해가 가기 전 전북일보와 인터뷰 자리를 가진 이 원장에게 앞으로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세부적인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원장실에 들어서니 취임 축하 화분이 많습니다. 그만큼 주변에서도 축하 인사가 많았을 것 같은데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신임 원장으로 취임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요즘 전북도의회 등 다녀야 할 곳도 많고 대외 활동이 많아져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01년 입사 후 20여년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진흥원과 전라북도 농생명‧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위해 달려온 힘든 과정들을 보답받는 것 같아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영광과 더불어 타이틀이 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책임감도 큰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기관이 변화되고 혁신하도록 잘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전북 도민에게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을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은 전라북도의 농생명‧식품 및 바이오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2000년에 설립돼 전북생물벤처기업지원센터, 전북생물산업진흥원을 거쳐 현재의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으로 거듭났습니다. 다양한 인프라 자원과 지역 내 우수한 제품의 국내‧외 판로 개척 지원, 패키지 디자인, 현장 실무형 우수 인력 양성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지원하는 원스톱 벨류 체인(one-stop value chain)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지역 특화자원의 가치창출을 위한 연구개발 R&D센터 및 제품생산지원 GMP공장, 제품의 성분검사와 안전성을 평가하는 식품분석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 내부 출신 원장이자 여성 원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임기 동안 포부를 말씀해 주신다면. “전북 유일의 농생명‧바이오 전문기관으로서 내실있게 다져온 수행 성과들을 재조명하고 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더욱 고도화해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혁신적인 사업 발굴을 통해 농생명‧바이오분야 산업 생태계를 융복합 미래 신산업으로 확대‧발전시키고 그린바이오산업 기반 강화와 융합 신기술 발전을 통한 시장 확산 및 산업역량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전북 혁신도시로 이전한 국‧공립 연구기관 간 연계 강화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전라북도가 ‘농생명 산업 수도’로 도약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차별화, 연구 개발(R&D) 역량 확대, 기업혁신 생태계 조성, 일자리 생태계 구축, 재정자립도 제고, 내부 역량 향상 등 진흥원 6대 혁신전략을 확립하고 기관 경영방향에 대한 전 직원 공감대 형성을 통해 기관 경영환경 내실화를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전북은 예로부터 농도(農道)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역 발전을 위한 농식품산업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전북 14개 시‧군마다 각 지역에서 자라나는 특화작물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식품 기업 및 농촌과 연계된 기업들을 적극 육성하고 지역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현재 전라북도에는 전주 미나리, 군산 보리, 익산 마, 정읍 지황, 남원 추어, 김제 콩, 완주 생강, 진안 홍삼, 무주 천마, 장수 오미자, 임실 치즈, 순창 장류, 고창 복분자, 부안 오디 등 각 시‧군별 대표적인 작물들이 육성되고 있습니다. 그 중 남원, 임실 등 6개 시‧군이 포함된 동부권 클러스터의 경우 지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총 1587억원을 지원받아 육성 중에 있으며 특히 임실의 경우 치즈클러스터 지원을 통해 2021년 기준 매출액 44억원, 신규고용 17명, 체험관광객 141만명을 동원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최근 소비자 기호에 맞도록 포장디자인 등 패키징을 개선하고 기존 상품을 밀키트 제품화 하는 등 응용상품 개발을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도록 공동 연구 및 시장 개척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신임 원장으로서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에서 꼭 이루고 싶고 구상 중인 중점 사업이 있다면. “전북 농생명‧식품산업은 전북 제조업 중에서 사업체 수 22.7%, 종사자 수 23.2%, 출하액 24.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연 평균 5%를 상회하는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지역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출액 기준 10억원 미만, 고용 인원 10명 이하 영세기업의 비중이 70% 정도로 제일 크고 매출액이 커질수록 기업 수가 줄어드는 피라미드 산업구조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앞으로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은 ‘대표기업 육성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술기반 혁신형 유망기업을 선발해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전주기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전북을 대표하는 스타 기업 육성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매출액 10억원 미만부터 100억원까지 단계별 혁신기업 선정과 프로그램 차별화 집중 지원, 단계별 지원 기간 종료 후 상위 단계 재지정 심의 등을 차례로 추진해 나가고 전라북도 농생명 스타 유망기업을 육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전북 도민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민선 8기 도정 슬로건인 ‘함께 성공, 함께 혁신, 새로운 전북’을 만드는데 앞장서고자 전북 농생명혁신클러스터 구축, 스마트친환경 농업 허브, 활력 넘치는 농산어촌 조성, 농어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농도 전북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은 원천 기술개발부터 생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지원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라북도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농생명 산업 수도로 자리매김하고 아시아스마트농생명밸리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중심타자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할 것을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임직원들과 함께 약속드립니다” 이은미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원장은 전북대에서 화학공학‧생물공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역사상 첫 내부원장, 첫 여성원장이다. 지난 2001년 전북생물산업진흥원(현재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에 입사한 이은미 원장은 기획실 실장, 산업혁신 본부장직을 역임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또한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위원회 농산식품분과위원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비상임이사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농생명‧바이오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북명산,회문산의 속살

[전북 일가(一家), 이 사람] 손길환국악기연구소 손길환·손태백, 연구하며 몸으로 익힌 기술…40여년 외로운 길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전북에 태평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태평소라니, 낯익은 단어다. 초등학교에서 3년여 피리와 태평소를 배운 적이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듣게 된 그 '태평소'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게다가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서 태평소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태평소를 제작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그 수많은 '태평소'들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우선, 태평소(太平簫)는 전통 관악기이자 국악기다. 나무로 만든 관에 여덟 개의 구멍을 뚫어, 아래 끝에는 깔때기 모양의 놋쇠를 달고, 부리에는 갈대로 만든 서를 끼워 분다. 농악이나 불교음악, 군중음악, 군영음악 등에 사용하는 악기 중 유일하게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도 ‘태평소는 규격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음정과 음고가 일정하지 않다’고 적혀있다. 이 때문에 만드는 사람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표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6월 말 파란 여름 하늘에 해가 쨍쨍 내리쬐던 날. 전주에서 40여 분을 달려 정읍에 위치한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를 찾았다. 손길환 소장(64)과 그의 맏아들이자 제자 손태백 대표(33). 유쾌한 사람. 첫인상이 그랬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국내 유일 업(業)이 된 거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궁금했다. 손 소장은 처음엔 취미였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전라도에서 내로라하는 목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무 다루는 일은 눈에 익었다. 풍물패 활동을 하던 부친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태평소를 접했다. 나이가 들고 직장, 아파트, 동네까지 가는 곳마다 풍물패를 만들고 패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내 태평소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아들도 함께한다. 연구하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만 따져도 40년은 족히 넘는 세월이다. 손 소장은 태평소가 눈에 띄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태평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사람이 본인뿐이라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됐다. 지난 2018년 국립국악원이 '실내악용 태평소 특허기술'을 국악기 제작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면서다. 그곳이 손길환 국악기 연구소다. "우리보다 더 큰 곳들도 있을 텐데 왜 우리한테까지 왔을까 의문이었죠. 그런데 물어보니, 태평소 만드는 곳이 저희밖에 없대요." 국방부 군악대, 취타대나 국악원 등 태평소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손 씨의 태평소가 있다. 모양뿐 아니라 소리만 들어도 자신이 만든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태평소는 '비밀'이 많은 악기입니다 태평소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자꾸 중요한 것 한가지씩이 빠져있는 느낌이다. 어떤 나무로 만드는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거치는지. 손 소장도 대답은 하지만 모호하게 말한다. 손 소장은 "악기에는 비밀이 많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도 그동안 하지 않은 이유가 비밀이 많아서라는 이야기다. 태평소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공정은 셀 수가 없다. 아니, 셀 수 있다고 해도 기간이 짐작이 안된다. 우선 태평소를 떠올릴 때 기둥으로 볼 수 있는 '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나무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각진 나무 하나를 둥글게 깎아야 하고, 옻칠과 구멍을 뚫는 작업도 해야 한다. 이 과정들이 몇 번씩 반복되고, 나무 자체를 깎고 쪄서 말리는 과정도 1∼2년에 끝나지 않는다. 나무 하나가 태평소로 만들어지기까지 7∼8년은 족히 소요되는 셈이다. "누군가 태평소를 만드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물어봐도 없더라고요. 봉사 문고리 잡듯 힘들었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직접 부딪쳐가며 버텨왔다. 그래도 악기라는 게 나무는 특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을 단축하려면 문제가 생기는 것. "나무는 기다려야한다는 겁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중국산 제품들이 손 씨의 제품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다. 아버지와 아들 3대, 숱한 실패에도 애정 가득 손 소장은 "(태평소는) 아버님께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부친은 집 짓는 목수였지만, 손 소장이 열 살 무렵 군산으로 이사한 이후에는 장롱이나 찬장도 만들고, 탁자도 만들며 분야를 넓혀갔다. 아버지 옆에서 '가리'라고 하는 나무 깎는 기계를 구르며 눈에 익혔던 것이 지금의 자산이 됐다. 고등학교를 익산으로 진학하며 잠시 멀어졌지만, 군산 한국유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든 풍물패 덕분에 태평소와 다시 접점을 이을 수 있었다. 도립국악원 소속 박지중 선생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지금의 태평소 기틀을 다졌다. 배우고 만들고, 연구했지만, '돈'은 안되다 보니 직장 생활도 꼬박 25년을 채웠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는 않았어도 끈기 있고 성실한 시간이었다. "아들은 제가 꼬셨어요. 아깝잖아요. 인생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계속 꼬셨죠. 중학생 때부터" 맏아들이자 제자인 손태백 대표의 이야기를 할 때면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큰아들인 태백 씨의 재능은 악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주에서 빛이 났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금세 예술고 학생들을 따라잡았고, 대학도 피리로 진학했다. 아들에 대한 말을 꺼낼때면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지만, 하나하나 듣다 보면 어마어마한 칭찬들이다. "저한테는 없는걸 다 가지고 있어요. 음감도 있고, 욕심도 있고, 꼬라지도 있어서 대충하는 게 없어요. 검수할 때 마음에 안들면 하루 종일 붙들고 있습니다. 대충하는 법이 없거든요." 그래도 아들은 편할 거라 덧붙인다. 연구과정에서 얻은 숱한 실패들을 아버지인 본인이 했기 때문이다. 국악기는 참 외로운 분야입니다. 무척이나 아쉽죠. 아쉬운 것을 묻는 말에는 금방 답이 나온다. 연구소에서 만든 소책자에는 수상 경력도 쓰여 있는데, 가장 위에 있는 경력이 바로 '제1회 한국악기공모전 전통악기분야 차상(태평소)'이다. 그런데 공모전은 1회로 끝이었다고 한다. 국악기만 경쟁하는 곳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도 기타부문에서 동상과 장려상, 특성, 입선 등 수상을 하긴 했지만 국악기 부문이 아니라 기타 부문이다. 매듭, 인두화, 붓, 가죽, 유리, 캘리그래피 등이 함께 경쟁하는 부문이다. "전주라는 우리 지역에서 하는 전통공예전국대전이 그나마 전국에서 크죠. 2∼3년 간격으로라도 선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다만, 외롭죠. 기타 부문에서 악기를 두고 경쟁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같습니다." 인연과 운명, 그리고 가족.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입니다. "어릴 땐 아버지 옆에서 돕는 게 참 지겨웠는데, 그런데 제가 어느 날 그걸 만들고 있더라고요. 이게 인연인가 싶기도 하고요." 손 소장은 모든 것이 '인연' 같다고 말하기도, '팔자'라고도 하며 섞어 부른다. 종교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려고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목표와 같은, 상투적인 질문을 했더니, 금방 시큰둥한 말투로 바뀐다. "취미로 했고, 나이 들고도 돈이 되겠다고 해서 했지요. 악기 장인으로서 자부심 등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그런 건 아닙니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됐고요. 감사하게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고요. 앞으로도 쭉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대답이 겸연쩍었는지 말하고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 '가족' 이야기를 덧붙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악기는 만들었지만,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공연도 사라지고, 입문하려는 사람들도 줄었기 때문. 통상적으로 1년에 150개에서 200개가 팔리지만 지난 2년여 동안에는 뚝 끊겨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은 것은 가족과 악기. 이것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기를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크다. "내가 힘 있을 때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100년 뒤에도 내 악기를 사가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게을러질 수 없어요. 재미있어요. 100년 뒤 제 손주가 직업이 없더라도 제 악기를 팔 수는 있겠죠. 그때는 35만 원(지금은 30만 원 남짓이다)은 받지 않을까요." 끝으로 손 소장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뭐든지 30년 넘으면 좀 된다더라' 이거에요. 30년은 너무 기니까 눈 딱 감고 3년만 해보세요. 그러면 무엇이든 인생에 중요한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북일보SNU 팩트체크 제휴

[팩트체크] "광역도시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서 소외 지역낙후 가속화됐다”는 주장 ‘사실’

제4차 국가철도망 계획에서 전북관련 사업이 단 1개만 반영되자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덕(전주갑)의원이 지난 9일 열린김부겸 국무총리후보자 청문회에서 광역도시가 없는 지역은 실제수요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국가교통망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광역도시가 없는 전북, 충북, 강원 등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가 대도시권광역교통망 구축 사업으로 배정한 예산 127조 1192억 중 단 한 푼의 예산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역별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김윤덕 의원이 총리후보자와 국토교통부 장관후보자 청문회서 한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 1.국토교통부가 제공한 광역교통위원회 현황과 예산배정, 사업현황 분석 2.현행법 상 광역도시와 철도망계획 확인 대도시권광역교통망 대상 권역은 현행법과 광역교통 2030사업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김윤덕 의원의 주장처럼 현행법(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대도시권을 특별광역시 및 그 도시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으로 국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역시를 배출하지 없는 전북은 대도시권광역교통망에 제외돼 있다. 현행 법령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에서 대도시권광역교통망을 확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권역별로 수도권부산울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으로 분류했다.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이 아닌 것이다. 2021년 2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밝힌 대도시권 광역교통 위원회 주요업무 추진현황을 보면 대도시권광역교통기본계획은 해당 법 제3조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전북, 충북, 강원은 대상지역이 아니다. 광역교통2030 사업의 총사업비는 127조 1192억 으로 지방대도시는 부산울산, 대구, 광주, 대전으로 국한돼 있다. 이들 지역과 연관되는 경남, 전남, 충남은 대도시권역으로 인정받아 예산이 배정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철도 외에도 고속도로나 국가도로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이 주장한 전주 같은 도시는 대도시권 교통망에 포함된 나주 같은 지역보다도 수요가 많음에도 정책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 2019년 국가교통조사DB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전국 여객 O/D 보완갱신 데이터와 한국교통연구원이 같은 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주시와 인접 도시 간 평균 통행량(6만3781건)과 광주권역 평균 통행량(8만403건)은 1만6622건 차이지만, 대도시권 광역교통 정책으로 예산배정에 있어 실제 수요보다 불리한 점이 파악됐다. 또 전주와 나주를 예를 들 때 전주 인구 약 66만 명, 나주시 인구 약 12만 명으로 5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지만,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배차는 30편대로 거의 같았다. !function(e,i,n,s){var t="InfogramEmbeds",d=e.getElementsByTagName("script")[0];if(window[t]&&window[t].initialized)window[t].process&&window[t].process();else if(!e.getElementById(n)){var o=e.createElement("script");o.async=1,o.id=n,o.src="https://e.infogram.com/js/dist/embed-loader-min.js",d.parentNode.insertBefore(o,d)}}(document,0,"infogram-async"); 현행 제도와 교통정책을 검토해 본 결과 광역시가 없는 광역지자체는 수요와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정부의 교통망 계획서 소외되는 구조라는 발언은 사실이다. ※자세한 내용과 근거자료는 전북일보 인터넷 신문(jjan.kr)과 SNU팩트체크 홈페이지(factcheck.snu.ac.kr)에서 확인 가능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9)탑천과 만경강이 만나는 자리

“저문 날 물가에 앉아 추억을 찾아낸다. / 생각도 하나하나 낚아서 챙겨놓고 / 구름도 바람도 듬뿍 한 망태기에 담아야지. / 늦도록 잊고 산 사람 바람처럼 찾아오면 / 그 무슨 그리움 하나 등불처럼 걸어놓고 / 강물은 추억으로 넘치거라 바람으로 울거라." 만경강과 탑천이 만나는 곳에 새겨진 시구이다. 시심이 어우러진 쉼터 이름이 ‘옴서감서’이다. 옴서감서는 전라도 방언으로 ‘오며 가며 드나든다’란 것인데, 만경강 물길따라 오며 가며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만경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은, 물억새와 갈대가 아득하게 이어져 노전백리(蘆田百里)를 이룬다. 시구처럼 노을빛이 강물에 내릴 때 즈음 찾아가면, 은빛 물결 일렁이는 사이로 늦도록 잊고 산 사람이 불현듯 나타날까. 옴서감서 쉼터가 자리한 곳은 군산시 대야면이다. ‘대야(大野)’는 지명 그대로 평야 지대인 ‘넓은 들’에서 유래된 고장이다. 삼한시대 마한 땅으로, 백제시대에 마서량현, 조선시대에는 임피현이었다. 1914년 옥구군 대야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되면서 군산시 대야면이 되었다. 군산 개항 전 만경강에 둑을 쌓기 전까지는, 백마산까지 배가 닿아 ‘배 닿을 메(山)’라 하여 ‘배달메’라 불린 곳이다. 1921년 개교한 대야초등학교의 교가 1절 시작이 “백마산 푸른 줄기 노령의 기상”이고 2절이 “만경강 젖어가는 옥야천리에~ 사랑과 희망에 찬 대야의 낙원”이다. 100년이 훌쩍 넘는 학교의 교가에 대야의 산과 강 그리고 너른 옥토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대야에는 천년 세월을 품고 옛 절터에 홀로 담담하게 서 있는 석탑이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동 삼층석탑’이다. 백제 석탑 양식을 계승한 탑으로 고려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5.5m에 이르는 탑은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지녔다. 탑신부는 여러 돌이 짜임새 있게 잘 맞추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고 2층과 3층의 몸돌은 낮다. 기단 위에 3층의 몸돌, 지붕돌, 머리 장식이 올려진 상태로 얇은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지금은 탑골이라 불렸던 ‘탑동마을’ 이름도 석탑에서 유래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자랑이자 마음을 다독였을 탑이다. 잘생긴 탑을 마을에서는 토박이탑 ‘여장군탑’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탑에는 특별한 내기 전설들이 전해진다. 백제시대 서로 흠모하던 총각 장군과 처녀 장군이 장난삼아 탑 쌓기 내기를 하였다. 처녀 장군은 탑동에 삼층석탑을 쌓고, 총각 장군은 다른 고장에 오층탑을 쌓았는데 처녀 장군이 먼저 쌓았다고 한다. 총각 장군의 허술한 탑 쌓는 실력에 실망한 처녀 장군이 인연을 끊고, 혼인하지 않은 채 삼층탑의 수호신이 되어 여장군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탑을 무너뜨린 내기와 관련된 ‘골샘 약수’의 전설이다. 탑골에 탑을 쌓은 여자장수와 인근 장자골에 탑을 쌓은 남자장수가 상대가 세운 탑을 두 손가락으로 무너뜨리는 시합을 해서 여자장수가 이겼다는 것이다. 이때, 힘을 준 남자장수 손가락 자국이 탑골 삼층석탑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무너뜨린 탑의 저주를 받아서인지 여자장수의 어머니가 지독한 피부병에 걸린다. 병이 심해지자 여자장수가 석탑에서 지성을 다해 백일기도를 드렸더니, 백발노인이 나타나 “골샘 약수를 먹이라”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완치되었고, 골샘약수터는 피부병에 효험있는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골샘 약수’는, 탑동 삼층석탑 아래 안내판까지 설치된 마을 명물이 되었다. 이곳 마을을 지나는 하천도 ‘탑동 삼층석탑’에서 유래되어 ‘탑천’이라 불린다. 탑천은 익산 미륵산과 용화산 남쪽 비탈면에서부터 서남쪽으로 흘러와 대야를 적시고 만경강으로 합류하여 새만금에서 서해로 흘러간다. 대야 일대 만경강 유역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바닷물 유입을 막는 갑문을 만들어야 했다. 갑문 만들기에 적절한 만경강과 탑천 합류 지점에 ‘입석배수문’을 일제 강점기 1935년(소화 10년) 7월에 준공했다. 입석배수문이 노후되자 현대시설을 갖춘 배수갑문을 새로 설치했다. 오랜 풍파를 겪은 옛 입석배수문은 곳곳에 깨진 유리창과 콘크리트에 세월의 더께가 쌓인 채 만경강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수갑문과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배수갑문이 함께 있다 보니, 만경강 유역의 배수갑문 변천과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세월 그대로 강변 풍경이 된 지 오래지만, 한쪽에 방치된 채 있어 아쉽다. 그 모습까지도 모두 품은 옴서감서 쉼터 주변은 만경강 낚시명소로 강태공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낚시꾼들로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만경강은 노랑머리 저어새와 천연기념물 황새가 찾는 수많은 생명을 품은 강이다. 겨울바람이 흘러가는 만경강에 기댄 풍경들을 바라본다. 오며가며 쉬어가는 것은, 사람 뿐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모든 생물들이다. 이곳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품고 쉼을 내어주는 추억의 자리로 오랫동안 이어지길 소망한다.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전북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56)어휘와 어법에 천착, 비평의 새 길 연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는 1941년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에서 부 오해준과 모 선준량 사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제초등학교 졸업하였고, 김제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부안여자고등학교와 전주해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75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군산공업전문대학(현 호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재직하였다. 1989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소월 시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5년 뉴욕의 주립대학과 연변대학의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며, 중학교 다닐 때 『무정』, 『유정』, 『단종애사』와 『원효대사』 등 이광수 소설을 섭렵하였다.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인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이 소개되는 광경을 보면서 찬탄과 경이에 빠졌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전주고 1학년 때 서라벌예대에서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 현상문예에 시 「옛날」이 당선되었는데, 담임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신석정 선생이 이를 크게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운명과도 같은 신석정 시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석정 선생을 모시고 강인한, 오홍근, 강일부 등과 함께 맥랑시대라는 동인회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60년 전북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는 의외로 소설을 썼고, 3학년 때는 전북대학신문사 주최 현상문예에 소설 「신화」 가 당선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시에 당선된 장지홍, 수필에 당선된 김형진은 훗날 오하근이 주축이 된 『문예가족』의 멤버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학 시절 김교선, 이기우, 천이두 등의 지도로 문학평론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1981년 『현대문학』에 「불, 그 영원한 조합」이라는 평론이 추천 완료되었다. 그 후 그는 우리 문단의 깐깐한 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해석의 오류로 먹칠 된 작품들에 대한 바로 잡기에 앞장서면서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 『전북현대문학(상, 하)』 등의 역작을 저술하였다. 그는 1970년대 초 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시 부문에 등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 평론으로 등단하여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이상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부안여고에 재직하면서 「국정 중학 국어에 나타난 오류」(신동아)와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타난 오류」(전북일보)를 발표하여 당시 교과서의 문장, 문법, 표현법 등 수많은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게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에 집요하게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평론의 길을 열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김소월 시업법 연구』(1995)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에서 작품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어느 선각자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글에서는 현대문학사에서 외면당했던 많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여 우리 문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호병탁은 『문예연구』(2018년 96호)의 기획 추모특집 「오하근론」에서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밝힌 바 있다. 첫째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잡아주어 작품 해석의 물꼬를 제시하였다. 특히, 문학작품 중에서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작품, 해석에 논란이 있는 작품, 고착된 오류가 있는 작품들을 골라 오류를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석하는 물꼬를 열었다. 다음으로는 전 북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2010년 『전북현대문학』 상ㆍ하 권을 상재하여 전북지역 문인들의 작가론과 작품론을 개진하여 전북문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현대문학의 초창기 유엽(柳葉,1902-1975)으로부터 시작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전북문학사를 다듬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최명표는 「자세히 읽기와 지역에서 살기」라는 오하근 추모 기획특집에서 그의 공로를 김소월 시 정본화 작업으로 소월 시 연구의 활로를 모색하였으며, 전북문학을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문신은 오하근의 비평은 어김없이 진정성이라는 해석이 뿌리를 내렸다고 하면서 오하근은 해석의 힘을 사랑했고, 해석의 힘으로 비평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다라며 그의 비평적 진정성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오하근은 이렇듯 평론에 굵직한 획을 남겼으며 크게 영달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평생 고향에서 후학들 지도와 연구에 전념하다가 76세 되던 해인 2017년 11월 17일 밤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생전 고인과 함께했던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청운사 주지 도원스님을 비롯하여 동인회 문예가족, 전북대 국문과 제13회 동기생들, 금요회, 맥랑시대 가족들은 2019년 5월 3일 김제시 청운사 연지에 오하근 평론가 문학비를 세우고 그의 문학을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호병탁의 사회로 서재균 오하근문학비건립추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안평옥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그의 제자 오용기은 『문예연구』(2018)의 추모특집에서 늘 함께했던 스승과의 사별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승의 문학적 열정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선생님 웃음소리 기침소리 사이로 쟁쟁하게 되살아올 문학의 혼과 열정을 기다리렵니다. 평생을 두고 선생님께서 나누신 인정과 지성에 감동한 많은 분들이 살아 있는 백과사전을 무심코 찾다가 문득 빈자리 허전하게 더듬게 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봄 잎이 녹음 되고 단풍으로 천지를 채운 뒤 욱욱청청한 숲에 침잠함으로써 오히려 새 날 다시 뽀땃이 암냥하는 순리로 돌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문예연구 96호(2018 봄)

행복한 금토일

[新팔도명물] 인천 강화도 새우젓

인천 강화군 앞바다에서는 전국에 유통되는 젓새우의 70%가량이 잡힌다. 풍부한 영양염류 유입으로 새우의 살이 많고 껍질이 얇아 감칠맛과 영양이 풍부하다. 이 새우는 과거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매년 가을이 되면 강화도 포구는 새우잡이 배로 가득 차고, 김장철이 시작되는 11월 무렵부터는 강화 젓새우로 만든 새우젓을 사기 위해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린다. 강화도 새우젓은 이제 지자체로부터 수출 물류비와 포장비 등을 지원받으며 각종 국제식품 박람회에도 출품하는 명품 새우젓으로 거듭나고 있다. ■ '황금어장' 강화도 앞바다  강화도 앞바다는 매년 2천400t가량의 젓새우가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강화 연안의 새우잡이는 불음도, 주문도, 서도, 석모도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석모도에 염전이 있던 시절에는 품질 좋은 소금이 생산되면서 뛰어난 새우젓이 생산됐다.  한강과 임진강·예성강이 만나는 강화도 앞바다는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의 변동이 심해 갯벌도 발달해 있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합류 지역이라 어종도 풍부해 새우 어장이 크게 형성될 수 있었다.  현재 강화도 어민들은 새우잡이에 집중하고 있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기, 밴댕이, 민어, 병어 등 다른 어종도 많이 났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홍어, 까나리, 농어, 숭어 등이 대표적이다. 강화부지(1783년)에는 민어, 숭어, 석수어, 새우, 가리맛조개, 굴 등이 당시 강화의 수산물로 기록돼 있다. ■ 계절별로 다른 강화도 새우젓  새우젓을 담그는 젓새우는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또 비타민 B1 등의 영양소가 많고 칼슘을 비롯한 무기질도 들어 있어 식욕감퇴나 각기병, 신경증, 설염, 구내염, 피부염 등의 예방에도 좋다.  5월에 담근 새우젓을 오젓, 6월에는 육젓, 가을엔 추젓, 그리고 겨울에 담근 것을 동백하젓이라 부른다. 오젓과 추젓은 반찬용, 김치나 깍두기를 담글 때, 돼지고기 편육을 먹을 때 썼고, 강화도 새우젓 중 가장 유명한 육젓은 김장할 때 사용한다.  새우젓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삶은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것이다. 기름진 돼지고기에는 새우젓을 곁들이면 고기의 맛도 좋아질 뿐 아니라 소화도 잘된다. 돼지고기는 부위에 따라 성분이 다른데 보통 단백질 12~17%, 지방 22~44%를 함유하고 있다. 담백한 음식을 주로 먹는 사람이 기름진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가 필요하다. 새우젓은 발효되는 동안 많은 양의 프로테아제가 생성돼 기름진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는다.  새우젓을 고를 때는 새우의 형태가 바르고 붉은빛을 띠면서 단맛이 나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젓국물에 이물질이 없고 뽀얀 색을 띠면 최상품이다. 악취가 나거나 검은빛을 띠는 새우젓은 피해야 한다. ■ 최고의 품질, 비결은 정성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강화도 새우젓의 비결은 새우잡이부터 숙성까지 전 과정에 담긴 갖은 정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젓새우는 조업 방법은 연안자망 방식과 안강망 방식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연안자망 방식은 새우가 그물코에 꽂히게 해 잡는 방식이다. 안강망 방식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지점에 자루그물을 투하해 닻으로 고정한다. 그러면 새우가 조류에 의해서 자루그물 속으로 들어가 잡힌다.  이렇게 잡힌 새우는 염장 작업을 거쳐 우리가 아는 새우젓으로 탈바꿈한다.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새우의 신선도다. 새우젓의 원료는 살아있는 것을 사용하며, 기온이 높을 때는 어획 즉시 선상에서 소금을 첨가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소금은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30~40%가량 혼합한다. 염장한 새우는 15~16℃ 정도의 저장고에 2~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비로소 우리가 아는 새우젓이 탄생한다.  소비자들은 '수산물 산지거점 유통센터(FPC)'를 통해 싼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새우젓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산지에서 어업인들이 어획해온 수산물을 수집·가공·보관·냉동·판매하며 유통단계를 줄인 FPC는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에 지상 2층 규모로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 명품화 꾀하는 강화도 새우젓  강화도 새우젓은 FPC와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구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을 포함해 13개 항포구 140여 개 점포에서 판매되고 있다.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은 지난 2020년 3월 화재로 점포 18개 중 17개가 불에 타는 등 피해를 입어 7개월간의 재건축 공사 끝에 같은 해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직판장은 연면적 1천482㎡ 규모로, 18개 점포, 사무실, 화장실 등을 갖춘 현대식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강화군청은 수산물 직판장 개장을 계기로 오는 2025년까지 외포항을 생태, 레저, 관광명소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강화군청은 지역 대표 특산물인 새우젓 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명품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수산물 관광상품 개발지원 ▲수산물 품질인증 품목지원 ▲수산물 유통물류비 지원 ▲수산물 냉동·냉장시설 확충 등이 추진되고 있다. 강화군청은 위생적이고 고품질의 새우젓 생산과 유통을 위해 드럼용기, 포장용기, 포장재 등도 지원하고 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사진설명> #강화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 김장철을 맞아 인천 강화군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구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새우젓을 맛보고 있다. /경인일보DB. #강화 외포항 오젓= 인천 강화군 외포항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젓'. /강화군 제공 #숙성 중인 강화도 새우젓= 경인북부수협이 운영하는 수산물 처리 저장시설에서 숙성 중인 새우젓. /경인일보DB. #저장고 숙성 새우젓= 저장고에서 숙성 중인 강화도 새우젓. /강화군 제공 #김장철 강화 외포수산시장 새우젓=김장철을 맞아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구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새우젓을 둘러보고 있다. /경인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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