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내린 봄비에 텃밭 채소를 심기 위해 모처럼 만에 시장을 찾았다. 시장 구석 구석을 누비는 동안 평소에 보기 힘든 ‘4월의 훈풍’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예외 없이 찾아드는 꽃시샘의 찬바람과 더불어 내노라 하는 권자에서 틀을 잡고 있던 인사들을 비린내 나는 어물시장과 채소 전에서 만날 수 있는 영광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신의 세력을 과시나 하듯이 껀정한 몇몇 사람이 뒤를 에워싸고 큼직한 사진기와 함께 악수 경연 대회를 방불케 하였다. 상대편의 속사정이야 알 바 없이 반기며 인사하는 4월의 ‘정월 초하루’를 그 누구가 시비 하랴마는 생선 팔기에 정신이 없는 아주머니들은 내미는 손을 거절을 못하고 악수에 응하다 보니 모처럼의 고객을 놓이기 십상이었다.
“이제 제발 더 웃기지 말아다오” 언제부터 이렇게 찾아와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습성이 있었던가 하고 궁금해질 따름이다. ‘친절’에도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친절이 있고, 또 하나는 상대편을 조건 없이 존경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친절이 있다.
카멜레온 인간으로 변신하여 반대 급부적 조건을 목적으로 행하는 친절이라면 아부가 아니면 사기로 오해될 뿐 이는 분명히 존경하는 친절의 차원이 아니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만 옷을 갈아입고 손목을 잡으며 굽실거리어 당선되고 보면 4년간 그 누구도 무섭지 않게 어험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속칭 ‘서울 양반의 귀족’이 될 수 있으니 그 누구도 한 번쯤 해볼만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주민의 선량이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을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앞서 한 표의 붓깍지로 평가하여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억지의 눈웃음에 허리를 읊조리고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떠는 그 모습이 불쌍타 못해 가소롭게 느껴진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시장을 도는 동안 같은 팀과 세 번의 악수를 하게 되었으니 이들은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붓깍지를 잡을 손목만을 보고 악수를 하였음이 입증되는 진풍경이었다.
우리는 반세기동안에 80%의 문맹률에서 80%의 고등교육을 이수하게 된 수준 높은 민주시민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분명히 유권자들은 잔머리로 표수 계산에만 빠르거나 약장사처럼 자기자랑을 늘어 놓는 자들보다는 신의와 믿음으로 도덕성이 겸비된 성실한 일꾼을 찾고 있는 듯하다.
/박준하(향토 문화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