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한지 축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요’라는 속담은 무식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 종이의 본래 용도와 잘 어울리는 속담이다. 옛 선비나 양반들은 종이와 가깝게 지냈던 것이다. 한편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공동체나 협동적 삶을 강조하는 속담도 있다.

 

우리 종이인 한지는 중국의 당지 또는 선지 그리고 일본의 화지보다 질기고 질도 우수했다. 그러나 조선조 말 이후 국력의 쇠퇴와 함께 한지는 운명을 같이한 듯하다.

 

서양식 종이공장이 설립되면서 한지는 완전히 사양길에 들어선다. 한편 한지의 제조에 있어서도 각종 기계와 화공약품이 도입되게 되어 시간과 경비가 절약됐지만 한지 본래의 특성을 많이 잃게 되었다. 또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민들이 농한기 부업으로 생산되는 한지가 되었다.

 

게다가 일제의 우리 문화의 말살 정책으로 다양했던 한지는 창호지, 장판지, 장지, 태지등 몇 종류만 겨우 명맥을 유지되었다.

 

해방후 한지는 양지에 밀려 완전히 붕괴된다. 선공업 후농촌 정책으로 부업에서도 밀리게 되고 주택양식의 변화로 그나마 창호지와 장판지의 수요마저 격감시켜 버렸다. 게다가 한지 기능 보유자들은 제대로 된 후계자들을 양성하지 못한 채 거의 노쇠, 사별하여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전통공예나 축제 차원에서 한지의 멋을 노래할 정도가 됐다.

 

지금의 한지는 닥을 원료로 사용하지만 닥조차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생산이 안되고 있어서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만 한지이지 외국종이에 불과하다.

 

이제 3D업종, 가내수공업, 공해배출업으로 분류되는 한지 생산이다. 57년 자료에 의하면 전북에만도 3백15개 업체에 종사자가 4천9백78명이었으나 77년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한지업체나 농가를 모두 합해 약 1백60곳 정도로 줄더니 이제 남은 곳은 전국에 60여곳 정도란다. 지금 열리고 있는 전주한지축제를 바라보니 묘한 서글픔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