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파괴심리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기를 때려 부순다든지 은행의 현금인출기에 모래를 집어넣어 못쓰게 만드는 파괴적 행위들이 심심치 않게 저질러 지고 있다. 고급주택가의 방범등·감시카메라·순찰함등이 망가뜨려 지거나 힘있는 관공서의 현관에 방뇨를 해대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이뿐이 아니다. 인적이 드문 심야에 길거리나 아파트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을 모조리 펑크내거나 예리한 도구로 차체를 긁어 훼손하는 행위도 빈발한다. 모두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이런 방식으로 표출하는 ‘파괴망상증환자’들의 소행이라고 밖에 볼수 없는 현상들이다.

 

범죄용어에 반달리즘(Vandalism)이란게 있다. ‘이유없는 파괴행위’를 두고 쓰는 말이다. 원래 반달리즘은 5세기 중엽 로마를 침공한 게르만족의 한 종파인 반달(Vandal)족들이 로마문명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으로 로마거리를 닥치는대로 파괴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흔히 문화·예술의 파괴행위를 말하지만 오늘날에는 주의·주장이나 요구사항도 없이 맹목적인 파괴행위를 일삼는 범죄를 포괄적으로 반달리즘이라 부르는 것이다.

 

유럽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80년대부터라고 한다. 풍요와 복지가 넘쳐나다 보니 일종의 권태감, 또는 사회환경에 대한 염증같은 것이 파괴 심리로 이어져 히스테리 증세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사회에서의 반달리즘 현상은 IMF경제위기 이후 두드러졌다는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실업·실직의 고통, 빈부격차의 심화등으로 못 가진자의 불만이 쌓이고 사회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이런 파괴행위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충동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주말인 지난 3일밤 무주리조트를 찾은 관광객들의 차량 70대가 한꺼번에 훼손돼 2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냈다한다. 주로 고급승용차만 골라서 예리한 도구로 차량의 몸체를 흉칙하게 긁어 못쓰게 만들었다니 취객이나 불량배의 단순한 심술이라기 보다는 너무나 의도적인 파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이런 반달리즘이 횡행하는 세태를 보면서 우리사회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