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신문 1면에는 도지사가 ‘모내기 비상동원령’을 내리고 모내기를 독려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그때 기사는 “조기 모내기를 서둘러 온 전북도는 권농일을 기점으로 시군에 모내기 비상 총동원령을 내리고 20일 완료를 목표로 전도민이 총진군할 것을 지시했다”고 적고 있다.
총동원령, 총진군 등 마치 전시를 방불케 하는 용어들이다. 그만큼 당시 상황이 관(官) 위주였고 모내기 또한 중요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도 쉽게 알수 있다.
“국무총리와 내무부 장관 지시에 따라 학생을 비롯한 군인, 각종 사회단체는 1일 이상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의무적으로 봉사하도록 했으며 이 봉사는 파월장병과 군경유가족에 우선하기로 했다”
당시 시군 공무원들은 자연부락담당제라 하여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현지에 출퇴근, 농민들과 함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