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가지, 판도라가 서둘러서 상자를 닫자 맨밑바닥에서 꾸물대던 ‘희망’만은 나오지 못하고 상자속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어떤 가능성이나 좋은 일을 상정(想定)할 때 ‘판도라의 상자’를 응용하는 것은 바로 이 상자속에 갇혀있는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 실로 반세기만이다. 불과 한시간 남짓 비행끝에 김대통령이 순안(順安)공항에 도착하자 예상외로 김정일(金正日)북방위원장이 영접을 나와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는 이 역사적인 두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며 벅찬 감격을 억누르지 못해 눈시울을 적신 국민들이 많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오전 8시15분 청와대를 출발해서 불과 두시간만에 도착한 평양, 그 평양의 하늘도, 서울의 하늘도 똑같이 맑고 청명했다.
공항과 평양시내 거리를 가득 메운 환영인파는 또 무엇인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어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두 말할것도 없이 남북의 평화와 협력과 통일이라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정상회담은 겨우 그 첫걸음을 내디딘데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이번 만남으로 희망이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하나를 더 얻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