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구럭 매고 장에 가니까 자기도 덩달아 구럭 매고 장에 간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얼마나 뼈아픈 야유인가. 자기의 주견도 없이, 그리고 스스로 분수도 깨닫지 못하고 남의 흉내만 내거나, 남의 뒤를 따라다니며 날뛰는 자들을 일컬어 하는 말이리라.
사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행동으로 옮기기는 고사하고 대세에 휩쓸려 최소한의 체면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차라리 배우지 못한 무식장이라면 다소 이해라도 되겠는데 그렇지도 아니하니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간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그 일이 설사 실패로 돌아간다손 치더라도 별로 후회될 일도 없고 도리어 자랑스럽고 떳떳한 일이리라. 5·18 광주민주화 항쟁이 그러했고 마산의 김주열의 죽음이 그러했다. 오로지 신념에 의해서 행한 일이기에 비록 당시 결과는 참혹했다 치더라도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만은 너무도 값지고 아름다운 일이기에 천추에 길이 남아 역사를 빛내고 있지 않는가.
나는 요즘 텔레비전 앞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다. 지난번 의료대란 때에는 의사협회 간부가 담화발표를 통해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부가 백기를 들고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더니만 엊그제는 금융노조 간부가 “어떠한 투쟁을 해서라도 꼭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고 결의에 찬 말을 했다. 이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너나 나나 할 것이 없이 정부의 백기를 받아내려 한다거나, 어떠한 투쟁을 해서라도 승리를 쟁취했다고 했을 때 정부의 권위를 말하기에 앞서 무정부 상황을 방불케 하지 않겠는가. 나는 8·15 이후 우리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무정부 상태를 겪었다. 그때에 우리의 주권이 얼마나 헌신짝처럼 짓밟혀 혼란의 와중이요. 아픔의 연속이었던가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한낱 집단의 이익이 어찌 정부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정부로부터 백기를 받아낼 만큼, 그리고 어떠한 투쟁을 해서라도 승리를 쟁취할 만큼 한 집단의 이익이 전 국가, 전 국민의 안녕 질서보다 더 중대한 일이던가.
나는 그들의 절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오직 승리를 쟁취해야만 한다는 처칠의 의회연설과 너무도 흡사 하다고 느꼈다. 히틀러의 침략 앞에 영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당시 처칠은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급히 의회에 나아가 “오직 우리의 목표는 승리 뿐이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는 꼭 승리해야 하오. 아무리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승리를 쟁취하는 이 길만의 우리가 생존하는 길이오.”라고 힘주어 호소했다.
의사협회나 금융노조가 어떻게 정부와 적대관계에 서서 맞싸울수 있단 말인가.
말에는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어찌 그러한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집단 이익의 행동도 정부(나라)가 존재하고 있기에 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라가 백기를 들거나 패배를 했을 때라면 누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인가. 일제시대를 연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순간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이란 말이 떠오른다. 흐르는 물 속에서도 돌은 움직이지 않는다란 말로서, 곧 유행이나 어떤 대세에도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같이 시속(時俗)의 속도가 급변하고 극심한 시대일수록 재삼 음미해 볼만한 말이 아닌가. 신념에 의한 삶이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의 사회이기에 더욱 그러한 지도 모른다.
/수필가 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