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은 서울 일원에서 가장 인기있던 소주 상표였다. 백마, 백양, 청로, 청천, 새나라, 보배, 미성, 옥로, 제비원 등 60대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 세대들의 기억 저편에는 아직도 이런 상표들이 각인돼 있다. 이 소주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고달팠던 그때 그시절, 숱한 아버지들이 의지하던 낙이었다.
그중 서장, 명성, 삼학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유명상표였다. 알콜 도수 25%, 저렴한 가격, 인상을 찌푸리며 마셔야 하는 쓴맛 등 서민대중주를 표방하며 시장을 확고히 차지했던 소주의 일반적인 개념이다.
각축전 끝에 두꺼비 진로는 소주시장을 평정했고 지난 73년 이른바 1도 1사 원칙의 소주회사로 정리돼 10개 상표가 존재했지만 소주는 역시 진로판이었다. 지방 소주는 그저 이름 뿐이었다. 이게 요즘은 달라졌다. 지역마다 자도주를 내세우며 시장점유율이 8-90%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고장의 자도주는 익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보배의 혈통을 이은 하이트주조다. 지방소주사중 유일하게 50%이하의 가장 낮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전북의 상황이다. 왜 우리 도민들은 자도주를 선택하지 않고 처참하게 냉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대중주, 서민주 소주시장도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거의 변화의 무풍지대였던 소주시장에 건강바람이 불면서 알콜도수 변화가 있었으며 이것이 곧바로 소비자 반응과 직결돼 순한 소주가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외국의 통상압력에 밀려 주세율이 위스키수준으로 오르면서 필연적으로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고급소주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앞으로 국내소주시장의 궁극적 패자는 순한 소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순한 소주의 자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 향토 소주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