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퓨전 바람이 지금 우리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있다. 문화·예술분야는 물론 식생활에서 부터 패션, 마케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클래식과 팝뮤직이 함께 하고 음악과 미술이 어울린 자리에 연극적인 행위예술이 행해지기도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합친 ‘인터넷폰’이 등장하고 가전제품과 인터넷 정보기기의 결합을 의미하는 ‘인터넷 정보 가전(家電)’이란 새로운 산업도 꿈틀대고 있다.
패션이나 음식의 퓨전화도 눈부시다. 정장(正裝) 바지에 캐주얼 상의 차림의 퓨전룩, 햄버거 대신 치즈버거, 라이스버거가 나오고 녹차피자와 참기름장을 끼얹은 샐러드가 젊은이들의 입맛을 바꿔놓고 있다. 시트콤과 교양프로그램이 만나고 정보·교육과 오락이 혼합되는가 하면 컴퓨터나 인터넷 게임이 방송에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다. 증권과 부동산 금융이 결합된 재테크 상품도 저축의 수단으로 매력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하면서도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을 통해 ‘어울림과 창조’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퓨전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문화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컴퓨터나 인터넷을 모르고는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듯이 퓨전 바람에 동화하지 못하고는 변화하는 세태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겨우 개회식만 가진채 꼭꼭 닫혀 있는 우리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실상 우리 주위에서 ‘퓨전의 바람’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정치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