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용담댐 수몰지역민 마지막 추석

가을비에 젖은 동네 고샅을 돌아가자 지붕을 뒤덮은 무성한 등나무줄기가 잎을 흔든다.

 

안마당에 들어서자 예닐곱 고랑의 고추가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처마밑엔 시커멓게 그을린 전선줄이 집안의 속사정을 말해주듯 처연했다.

 

툇마루에 앉아 장봐온 추석음식을 추스리던 현경자여사(55)는 “명절이 오히려 심란스럽다”고 한숨부터 내쉰다.

 

천만평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용담댐 수몰지역 상류인 진안군 상전면 용평리 오리목마을에 현여사가 살림을 차린 것도 어언 34년이 흘렀다.

 

6.25때 북한군의 난동을 피해 시댁 친척들이 사는 오리목으로 이사온 이후 아들 둘과 딸 둘을 키우며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는 살림을 꾸려왔다.

 

“보상요? 듣기좋게 보상이지 우리처럼 내놓을 만한 땅뙈기가 없는 무지렁이들에겐 남의 잔치라우.” 현여사의 남편 최흥규씨(62)는 그나마 자식들 키우며 입에 풀칠하느라 별 전답을 마련치 못한 것.

 

하천고시가 발동되면서 마을앞 널따란 논배미들은 골재채취 현장으로 변해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버렸고 마을사람들의 인심도 변해 삭막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내일 네일을 가리지 않고 전부치는 냄새만 나도 서로 정겹게 나눠먹었지요. 그러나 3년전쯤부터는 안면몰수하고 살아요.”

 

현여사는 “지금 사는 모습은 지옥이다”고 말한다.

 

추석이 지나면 그나마 댐사업소에서 철거예고를 하고 있기 때문. 곡식을 거둘때까지만이라도 철거를 미뤄달라고 애원해보지만 당장 쫒겨날 처지이다.

 

용담댐 수몰지 이주는 총 2천8백64세대중 80%인 2천2백89세대가 이주를 끝냈고 5백75세대가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이주를 준비중이다.

 

미이주세대는 보상이 안됐거나 영농관계로, 주택이 준비중이어서, 영세가구로 막막해서등 딱한 처지가 많다.

 

현여사의 경우도 ‘앉으나 서나 절로 생기는 근심’을 막을길이 없다.

 

“임대아파트를 얻어놨지만 다달이 10만원도 넘는 관리비 해결책이 없어 내놨다”고 말하는 현여사는 철거가 시작되면 시골로 들어가 오두막이라도 얻고 남의 땅을 부쳐먹을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계산이다.

 

“그래도 애들의 텃밭이요, 한청춘 묻은 오리목인데, 마지막 추석에 따뜻한 밥이라도 나눠 먹어야지요”

 

고추밭을 일별한 현여사는 한 소쿠리도 안되는 추석음식 장만에 정성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