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면접 때 학생들에게 지원 동기를 물어보면 중고교 때 영향을 준 선생님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 짖궂은 교수의 경우 그 영향을 준 선생님이 어떤 과목 담당의 누구인지까지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웬지 매우 흐뭇한 마음이 들곤 한다. 아마도 같은 교육자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열심히 그 책무를 다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보람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의 과정 중 인간에게 끼치는 다각도의 인성교육에는 대학교육보다 고등학교가 고교보다는 중학교, 중학교보다는 초등학교가 그리고 이보다는 시초의 유아교육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요즈음 새로 지어진 초등학교는 그 외관부터가 새롭고 예전의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부시설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폐쇄적이고 우중충한 모습에서 개방적이고 칼라풀하게 변모한 건물의 모습은 어른들까지도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줄 정도로 화사하고 친밀감있는 환경으로 구성되고 있다.
대학 건물도 달라지고 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중앙식 냉난방 설비로 구성되어 한 여름과 한겨울, 기후 때문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불상사가 해결되어 좋고 문에는 카드키가 설비되어 야간 출입시 수위아저씨랑 실갱이 하거나 갇히는 일이 사라져서 좋다. 더욱이 서울의 모 대학은 신체장애 학생을 위한 경사로를 계단 옆에 전면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개보수에 착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간중심 교육환경의 바람직한 조성은 교육의 생산성 효과면에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측면이다.
그러나 가장 변함이 없는 곳이 중·고등학교로 보여진다. 오로지 입시위주에 매달리다 보니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의 하루를 다 보내는 청소년들의 교실 외 시설환경도 그렇거니와 특히 선생님들의 열악한 교무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개선의 조짐이 없어 보인다.
교육자는 창의적, 지적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육체적 분업의 노동이 아닌 개별적 정신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간적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프라이버시에는 시각적, 청각적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이 둘을 다 해결하기 어려울 때 우선적인 것은 시각적 프라이버시의 해결이다.
이미 앞서가는 기업체의 화이트 칼라 사무실은 대부분 이 점을 중시하여 사무공간의 유니트화가 이루어져 있다. 책상은 이제 과거의 낡은 고정적 형태가 아니라 사무와 수납, 그리고 오늘날의 필수품인 P.C 와 부대품들을 사용할 수 있는 멀티 디자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의자는 부드럽고 쿠션이 있으면서 등은 척추를 잘 지지해 주고 책상의 어느 측면으로도 유연성있게 다가가도록 바퀴가 달려있다.
시각적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중요한 설비는 바로 가리개이다. 책상을 가볍게 감싸주는 사무용 가리개는 가리개가 없을 때의 실내 모습에 비하여 답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일어서면 실내 전경이 보이고 또 개별 공간의 지저분한 모습이 가리워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돈된 느낌을 주게 된다. 또한 책상 면 쪽의 가리개는 온갖 메모나 홀더를 끼워 정보나 일상 스케줄의 메모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무공간의 유니트화는 가장 인간공학적인 효율성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주체는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다. 창의적 교육방법에 대한 촉구는 비창의적인 공간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대학교수가 하등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각각의 연구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나 참고서를 놓기도 부족한 구태의연한 낡은 책상의 빽빽한 배열, 삐그덕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그 많은 학생을 위한 애정 어린 발상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자율적인 서구의 시스템과 달리 우리나라는 하루종일 '능력'과 '인격'이라는 두가지 잣대에 항상 신경을 써야하는 교사들에게 한 교무실의 집단적 수용은 불가피하더라도 잠시동안 남의 눈치 안보고 눈이라도 붙일 수 있는 프라이버시의 해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간적 프라이버시 지원은 '공격'적 심리를 완화하고 교사들의 자존감 향상에 매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디자인환경의 기본적 관심이야말로 기관장의 소신과 안목에 좌우되는 일인 것이다.
/박선희(전북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