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일기 시작한 일련의 남·북 화해분위기 조성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행여 이일로 해서 마음이 들뜬 나머지 우리들의 평상심이 해이해질까 염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중의 하나가 교육문제다.
불현듯 ‘교육은 모든 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낮은 성취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교육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집단과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한 ‘토니블레어’영국총리의 말이 생각난다. 정말 부러울 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 그 누구에게서도 이와같은 소신을 가지고 교육살리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실이 붕괴되고 교육이 죽어가는 원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진실의 실종에 있다고 본다. 특히 IMF시대가 되면서부터 경제논리와 경제적 합리주의를 교육에까지 적용해서 중대 사안들을 경제논리로 촌탁(忖度)하고 그 기준에 맞춰 시비를 결정했다. 사실 시장경제 원리보다 합리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원로교원들의 조기퇴직에 따른 인건비 절감(원로교원 1인의 퇴직으로 2.6명의 신규교원을 채용할 수 있다는 논리)을 앞세워 단행된 교원 정년단축이 몰고 온 후유증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교원정년 단축은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진실로 교육을 염려했다면 과대학교, 과밀학급 해소를 위하여 오히려 교원 수를 대폭 늘리는 구조조정이었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교원 정년 단축은 교육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인물들의 단견(短見)에서 빚어진 웃음거리에 다름 아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열거하자면 한이 없으나 생략하고 오직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이와 같이해서 병이 된다면, 이와같이 하지 않으면 약이 될 것이다’라는 주자(朱子)말씀도 있잖은가.
그렇다고 체념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와서 누구를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이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진실되게 교육을 생각할 수 밖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다 놓고 ‘죽일것인가, 살릴것인가’를 묻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을 새삼 되새기면서 우리 교원들은 추락한 교권을 하루 빨리 되살리기 위해서도 ‘교사의 냉소주의, 부장의 기회주의, 교감의 적당주의, 교장의 안일주의’라는 세평(世評)의 늪에서 헤어나야겠고, 학부모들은 정말로 내자식을 사랑한다면 가족이기주의의 함정에 빠져 버릇없는 아이들을 양산시킨 붕괴된 가정교육을 복원해야할 것이며, 정부당국자들은 진실로 교육을 국가 백년지대계로 생각한다면 교원정년단축은 환원해야 하고, 학교운영위원회는 자문기구로 전환해야 하며, 수행평가, 열린교육, 능력반 편성등 교권을 침해하는 정책은 타율적 강요에서 학교와 교사의 자율적 선택사항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명실공히 교육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는 교육정책 개발과 합리적인 제도운영에 모범을 보여야할 것이다. 진실이 배제되고 형식만 존재하는 교육이 치유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대택(진안외궁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