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드골은 웅변가도, 정략가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특유의 정치술이 있었다.
바로 ‘정치를 하는 것 같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속담에 ‘여자는 뒤쫓아 가면 도망가지만 가만히 있으면 다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드골은 정치를 꼭 그런식으로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많았던 제4공화국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는척 딴전을 부리던 드골은 결국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는데 꼭 필요한 인물로 떠올랐고 마침내 그는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드골은 자신의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은 초연함에 덧붙여 신비스럽게 까지 보여야 한다. 그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 말과 제스처의 절약이 필요하다.
또한 심사숙고하는 자세와 예의도 갖춰야 하며 권위를 높이는데 침묵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그는 겜블러가 판돈을 올리려면 보통때보다 더 침착하고 냉정해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득시 정치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느닷없이 드골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심심치 않게 국민들에게 실소(失笑)를 선사하는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처신 때문이다.
엊그제 고려대에 특강을 갔다가 교문앞에서 학생들의 저지로 망신(?)을 당한 그는 ‘특강 무산은 DJ의 음모’라고 엉뚱한 방향으로 화풀이를 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는 ‘노벨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YS의 이런 진중치 못한 언행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취할바가 아니다. 싫다는 학생들에게 ‘2백만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무슨 소용이며 전국민이 반가워하는 노벨상 수상을 혼자만 깎아 내려 무슨 득을 얻을 것인가.
전직 대통령이 국사에 관심을 갖고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평생을 정치만 해온 그에게 ‘침묵은 금’이라고 입에 족쇄를 채우려 드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러나 드골의 말처럼 정치인은 말과 제스처를 절약할줄 알아야 한다. 예의도 지켜야 한다.
오직 DJ에 대한 험담일색의 공격만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받으려 한다면 소아병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우리 속담에는 ‘깨방정 떤다’는 속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