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영국의 한 지방 영주(領主)인 고다이바는 가렴주구를 일삼아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부인이 폭정을 거두지 않으면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돌겠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이 말을 듣지 않자 그녀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주민들은 부인의 결연한 의지에 감동하여 그녀가 거리를 돌 때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사람, 양복공인 톰이 숨어서 부인의 알몸을 훔쳐봤다.
‘비열한 톰’‘엿보는 톰’이란 말의 유래다.
남의 약점이나 잘못을 그럴듯이 포장해 중상 모략하거나 근거없이 투서나 진정을 일삼는 ‘비열한 톰’들이 요즘 우리 사회 주변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보도이다. (24일자 본보 19면) 더구나 최근에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전방위적으로 무차별하게 인신공격성 음해가 난무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의원에게 수감(受監)기관직원들로 보이는 네티즌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섞어가며 공격을 해댄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주로 공직자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음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지역사회의 발전과 단합을 저해함은 물론 사회 전반에 불신과 갈등의 골을 깊게 한다는 점에서 척결돼야 할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직자들이 이런 투서나 진정, 중상 모략의 덫에 걸려 희생돼 왔는가. 5공당시 선두그룹에 섰던 완주 출신의 건교부 고위간부가 바로 우리 지역에서 띄운 한 통의 투서때문에 참담하게 도중하차한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공직사회의 비리나 비정(秘政)을 감싸자는 얘기가 아니다.
건전한 고발정신은 민주사회의 도덕성과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권장할만한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투서망도(投書亡道)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뜻있는 이들의 아픈 지적이 되살아 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말이다.
매사를 엿보면서 비열한 짓을 일삼는 톰과 같은 호사가들의 마녀사냥식 재단이 횡행하는 사회가 어떻게 건강성을 유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