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위일체'의 교육 아쉽다

교육이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람노릇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사부군일체(師父君一體)라 하여 스승을 부모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는 학교교육이 교육의 장소만 바뀐 가정교육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교사와 학교의 막중한 임무와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국의 장자(莊子)는 자수현 불교불명(子雖賢 不敎不明:자식이 비록 총명할지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현명해지지 않는다)이라 하였으며, 한서(漢書)에는 사자천금 불여교자일예(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자식에게 한가지 재주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라 하여 흔히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하여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일제치하, 6·25전쟁 등을 겪은 후발 근대화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위 랭킹의 경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강한 열정이 큰 몫을 하였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요즘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윤리·도덕과 법질서가 무너지고 막가파식 말세현상이 즐비하여 인간의 근본은 물론 나라와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므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많은 원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육의 근본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얼마전에 주위에서 존경받아온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의 퇴임사를 지면을 통해 보면서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40여년간 후진양성에 남다른 정성을 쏟아왔기에 많은 보람이 쌓였건만 ‘나를 닮으라’는 말을 한번도 못했다는 회한을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진솔한 교육자의 단면을 담은 내용이었다.

‘나를 닮으라’고 말할 수 없다면 소위 역할모델(Role Model)이 없으니 학생들이 누구를 보고 배울 것인가에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깊은 의미처럼 내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심정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이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 몹시 안타까워 몇 가지 질문을 보내는 바이다.

교육의 3대 요소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위일체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네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현장은 아닌가?

철저한 학습준비로 교육효과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했으며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개인지도, 과외에 한 눈 팔지는 않았는가?

윤리·도덕적으로 떳떳하며, 촌지 등으로 학부형에게 부담을 주거나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의문점을 해결하려고 용기 내어 교무실을 찾아온 학생을 기특하게 생각하지 않고 귀찮아하지는 않았는가?

사립학교운영을 돈버는 개인사업으로 착각하여 교직원 채용이나 교내 시설공사 등을 돈과 연계시키지는 않았는가?

교육감, 교육위원과 의장등 교육계의 각종 선거가 혼탁하여 국민의 지탄을 받지는 않았는가?

학생들이 문제점이 많은 조기유학의 길을 택해야 하고 밤늦도록 과외, 학원에 가야 하는 큰 원인이 학교 교육의 부실에 있음을 인정하는가?

교육정책 특히 입시정책이 정권이나 교육담당장관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식으로 휘청거리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는가?

수업불성실, 불량학생을 감정의 매가 아닌 설득과 사랑의 매로써 선도하였는가?

이처럼 수많은 당면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면서 진일보하여 국내뿐 아니라 하나뿐인 지구촌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상생(相生)을 가르치는 교육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이건식(금만농어촌발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