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서정주 시인과 그의 문학

서정주 시인과 그의 문학에 대한 단상 우리 세대는 미당 서정주의 시와 더불어 감동을 그물질하며 젊음의 한때를 보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시인이 던져 주던 크고 작은 언어의 매력에 취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이끌려 감미로운 시어를 질겅질겅 씹으면 감동의 향기가 우리의 입안 가득히 번졌었다. 서정주는 그만큼 우리의 젊은 시절을 들뜨게 했던 시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미당 문학에 깊이 있게 다가서면 설수록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삶이 보여주었던 영광과 오욕으로 인해 우리는 그를 비난하기도 했고 사모하기도 했었다.

분명 그의 시는 우리 문학사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동시에 찬란한 빛이 되기도 했다.

식민지 말기에 쓰여진 몇 편의 친일시에 대한 것이라든지, 폭력이 난무하던 광란의 그 시절 독재자와 관련된 뜬소문이 우리를 실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빛나는 시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송시로 자리잡은 [菊花 옆에서]는 물론이고 수많은 그의 작품이 한국시문학사의 재보(財寶)에 속하는 것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원히 우리 곁에 있으면서 국화꽃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줄 것 같던 미당이 지금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병석에 누워 있다.

아내를 잃어버리고 극도의 탈진 상태에서 입원한 그가 곡기를 거부한다는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스무 살 젊음의 고개에서 방황하며 뜬구름 같은 보들레르병(病)을 앓았던 서정주라는 시인이 있었기에 근대시의 아버지 보들레르의 상징주의를 한국어로 영접(迎接)할 수 있었고, 불란서 문학과 우리 시의 감동적인 조우가 가능했다.

 "麝香薄荷의 뒤안 길이다./아름다운 배암....../을마나 크다란 슲음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중략)... 바늘에 꼬여 두를가보다--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크레오파투라의 피 먹은양 붉게 타오르는/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배암!//우리 順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배암!"([花蛇]).

'꽃다님' 보다도 아름다운 빛이 감도는 그의 언어는 아직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또 다른 그의 대표작 [自畵像]도 마찬가지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않는다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八割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어떤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어떤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이마우에 언친 詩의 이슬에는/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있어/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自畵像]).

근대 시인의 자화상을 그려낸 서정주가 한국시의 정부(政府)라는 극찬을 받은 것은 문학사에 남을 만한 수작을 썼던 것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백제인의 후예로서 거의 유일하게 신라정신을 탐구해 왔던 점도 빠뜨릴 수 없다. {新羅抄}(1961)와 {질마재 神話}(1975)에서 그는 지배층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민중의 생활세계에 자리잡은 설화를 오늘의 그것으로 되살려 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우리 언어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것의 부활과 약동을 노래해 왔다. 빛과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그의 삶이었지만, 그는 민족어의 사지(死地)였던 식민지 조선에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펼쳐냈던 시인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찾지 않고 아무도 목말라하지 않는 시예술를 붙잡고 평생을 매진해온 노시인 서정주가 상배(喪配)의 상실감으로 외부인과의 만남을 극력 꺼려하며 말년의 삶을 외로이 견뎌내고 있다. 우리는 그의 빛나는 예술을 배반해 왔던 그 모든 오욕의 것들을 질곡의 근대사가 강요했던 민족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어의 동산에 만개할 시혼(詩魂)을 꽃피우기 위해 세속의 영욕을 함께 해온 미당 서정주의 삶과 그의 문학을 애정 어린 눈길로 감싸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찬란히 티워오는 詩의 이슬'을 향해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살아왔던 그의 생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정구 (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