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 되려는 사람마다 신춘문예의 열병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겨울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 지고 기대감이 부풀면서 지난 세월의 습작품 모두를 갈기갈기 찢으며 온밤을 밝히는 퇴고의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의 결실이 바로 당선의 영광인데, 중요한 것은 문학적 글쓰기가 그의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지속시켜나갈 가치 있는 생의 절대적인 목표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인간과 예술 앞에 가로놓인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가능성으로서의 고통을 짊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점에서 등단의 영광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응모하는 예비문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의아스럽다.
당선을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는 통과제의의 절차 정도로 간주하는 태도가 팽배해 있는데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사르뜨르는 ‘구토’에서 예술가가 겪고 있는 고통과 갈등과 절망을 너무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바, 문학의 길은 고통스런 투쟁이며 그칠 줄 모르는 갈등이 연속되는 가시밭길에 비유될 수 있다. 그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의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문학예술 본연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외로운 구도자의 의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새로운 예술정신에 장애가 되는 기성문학의 사고를 거부하는 반항정신이나, 논리와 이성을 뛰어넘어 인간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추상적이고 신비스런 그 모든 현상들과 맞서서 대결하려는 고통스런 의지와 집념의 자세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모험과 혁신을 외면하는 상식적인 글쓰기가 팽배하면 진정한 예술의 빛이 꺼져버린다.
좋은 작품이란 시류의 거부로부터 탄생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황당하게 늘어놓아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만드는 난삽한 잡설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서 문학적 메시지의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현 문단의 유행병이 신인들의 작품에 그대로 추수되는 현상이 문제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성 문단에서 이해 받지 못하는 실험성과 통상적인 문학의 잣대로 잴 수 없는 참신성, 그리고 나아가 나태한 우리 문단을 쇄신할 수 있는 혁신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신인의 작품을 기대하는 것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헛된 소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매년 반복되는 상식적인 글쓰기의 범용성이 만들어 내는 문학의 소품화(小品化) 현상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춘문예 제도는 평균적 글쓰기의 능력을 선별하는 제도가 아니다. 기성 문단의 모든 관행에 굴복하고 작금의 문단 기류에 영합하는 문학적 글쓰기를 공인하는 제도로 전락한다면 그것의 존재가치나 의의는 반감되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 삶의 법칙에 매몰되는 기성 문단의 부정적 흐름을 과감히 떨쳐버리는 패기의 정신이 신인들에게 요구되는데, 그러한 정신은 평균적 글쓰기의 상식을 깨뜨리면서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정신과 상통한다. 위대한 예술에서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살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일상의 삶에 고귀한 예술정신을 주입하는 방법이나, 현대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해 영원히 살아있는 예술정신의 구현에 목적을 두지 않고 기교와 수사의 세련미만을 추구하는 신인들의 글쓰기는 그들의 작품에서 진한 감동을 스스로 추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깊이 있게 추구한 작품, 미래의 비전을 탐색하면서 민족정신을 형상화한 작품, 왜소화된 정신문명과 황폐한 현대적 삶의 고뇌를 천착한 작품을 찾기 어려운 것이 최근의 신춘문예 응모자들의 작품에 나타난 한계이다.
올해의 선별작업에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작품이 당선의 영예를 안기를 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심사에 참여하는 문인들과 제도 시행의 주체인 신문사 관련 당사자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심사료를 챙기는 연례행사의 일환으로 착각하여 온 생애를 문학에 바칠 각오로 젊음을 불태운 신인들의 원고뭉치를 가벼운 손짓으로 날려버림으로써, 진짜 당선작이 소외되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심사자들의 심사과정도 문제이지만, 특히 그들의 선정작업에 따른 부조리한 관행과 모순 때문에 신춘문예 등단의 영광을 안아야 할 예비문인들이 패배와 절망을 맛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외국문학 전공 교수가 동원되는 현실, 상아탑에 안주하며 기득권을 누리는 기성 문인들의 보수적 성향, 중앙문단의 이름 있는 작가들이 해갈이 하듯이 교대로 심사하는 모순, 지방문인들이 소외되고 지역문학의 특색이 무시되는 현상 등이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되어야 한다. 미래의 한국문학을 건설할 전사들을 선발하는 신춘문예 등단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이 모든 모순과 부조리한 관행들이 타파될 때 가능하다.
/전정구(전북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