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성탄절을 조금 앞둔 어느 날 영국의 오클랜드 부둣가에 한개의 큰 쇠솥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누군가가 이 솥을 놓았으며, 그 사람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놓아 거리에 내걸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다가오는 성탄절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했던 영국의 큰 쇠솥이 바로 먼 훗날 자선냄비의 효시가 된 것이다. 붉은 세 개의 다리가 달린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그리고 제복을 입은 구세군이 손으로 울리는 종소리는 성탄의 메시지를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8마리의 순록이 이끄는 눈썰매를 타고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함께 연말 도시 길거리 세모(歲暮)의 풍물(風物)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언제나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에 서게 되면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지난 일들을 반추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올 한해가 시작되고 하늘이 열리던 날, 사람들은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알리는 해돋이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담았었다.
그 많은 꿈과 희망을 담았던 뉴 밀레니엄의 해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세상사까지도 온통 껴안고 이제 막 해넘이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넉넉함보다는 부족함이, 미래의 희망보다는 현재의 좌절이 더 큰 것이었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언제나 지난날의 편린(片鱗)들은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넘이가 끝나고 새로운 해돋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며 이제 새롭게 우리 자신을 추스리고 주위를 살펴볼 여유를 가져야 할 때이다.
그 옛날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큰 쇠솥을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외쳐야 할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