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전라도 사람은 역시?



 

군사독재체제로 암울했던 80연대 중반 ‘부천서(富川暑) 성고문사건’피해자인 권인숙(勸仁淑)양의 봉욕(逢辱)은 시대의 아픔이었다.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던 한 여대생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던 이 사건은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정권의 치부와 부도덕성을 그대로 드러낸 폭거였다.

 

여성이, 더구나 앳된 여대생이 수치를 무릅쓰고 성고문 사실을 폭로했을때 당시 공안당국은 ‘성을 도구화한 반체제 학생운동’의 전형으로 매도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후 재정신청이 받아 들어져 재판과정에서 사실로 확인됐고 고문 당사자인 문모형사는 단죄됐다.

 

지금 40대를 바라볼 그녀는 그후 결혼하여 미국유학을 떠났고 현재 사우스 플로리다주립대 교슈로 변신해 있다. 그녀의 개인적 풍사은 여리서 생략한다. 다만 느닷없이 그녀 얘기를 꺼내것은 그녀가 쓴 ‘한국놈은 어쩔 수 없다(한국일보 3월 24일자 ‘삶과 생각’)’라는 칼럼때문이다.

 

그녀는 이 글에서 한국인과 미국인의 의식을 비교하면서 난데없이 전라도 사람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 마치 안좋은 일과 전라도 사람이라는 변수가 껍치는 순간 ‘역시 전라도였구나, 전라도 사람은 어쩔 수 없어’라고 단정지어 진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잘못된 이미지의 생성동기나 전개과정을 새삼 따질 필요는 없다. 왜곡의 역사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까지 빌릴것도 없이 그녀에게 한번 각인된 아픈 기억, 그를 성고문한 경찰관에 바로 전라도 사람이 었다는 악연이 그녀에게 이런 잠재의식을 고정화 시켰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이제는 지성을 대변하는 학자의 신분이다.

 

그런 그녀가 멀리 미국땅에서 불쑥 내던진 이 한마디의 화두(話頭)가 얼마나 많은 전라도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울화를 치밀게 했을까를 상상이나 했을까? 말이란 골라서 해야하고 더구나 지역감정까지 건드릴 민감한 문투(文套)는 삼가야 했다. 그래야 자칫 ‘그녀는 역시 그 정도였나?’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