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향기와 정취가 유형무형으로 많이 남아 있는 곳, 일반 가정집 뿐만 아니라 음식점이나 찻집에 조차 인쇄물이 아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한국화나 서예진품이 여지없이 걸려 있는 곳. 동네 노인분들의 소리가락이 창너머로 골목길에 넘쳐 흘러 나오는 곳, 이것이 전북의 모습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문화예술도시」전북의 도시들이 지향하는 미래상이다. 지역적 정체성을 찾기위한 방편으로서 전통성과 현대성의 논란이 문화계, 특히 건축분야에서 매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통은 흐르는 시간의 축선상에 통시적으로 나타나는 당시 삶의 물리적·정신적 현상이다. 즉, 주어진 물리적·정신적 환경에 영향받은 결과물이다. 따라서 전통은 과거의 것이 아니며 항상 당시의 것으로 나타난다. 전통은 오래된 과거의 시간상에서 계속 이어져 왔으며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진행형의 형상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건축의 전통성은 시간축 선상에 항상 그 당시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전통은 새롭게 하거나 다시 받아 들이거나 현대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건축의 형태와 기능들이 건축에 관련된 새로운 기술개발에 의하여 가능해짐에 따라 일반적으로 건축의 전통성에 대한 인식은 건축의 형태, 재료 등의 인용방법에 있어 직설적 표현에 국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다른 시·도에 비해 전주는 현대화의 건축적 과도기에 흔치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교동의 한옥군의 고집스러운 보존, 전주시청사, 국립 전주 박물관, 도립 국악원, 구 및 신 전주역사, 구·신 전주 관문(호남제일문), 강암서예관 등의 건물은 한옥 기와 지붕과 같은 소위 현대화된 전통양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는 일부의 건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주시의 풍남문, 객사, 경기전, 향교, 한벽루, 오목대, 이목대 등의 전통 건축물들의 전통양식에 대한 애착과 현대적 해석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모습은 전통성과 현대성에 대립된 개념에 의해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이란 태양과 기후 및 지형과 같은 풍토적 요소, 그리고 생활을 포함한 사람, 민족성과 같은 문화적 요소 등의 불변성 인자에 의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건축에 관련된 입지환경, 건축기술, 건축자재, 법규, 교통 등의 가변성 인자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전통성과 현대성의 개념은 크게 대별되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북지역의 지역적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도시적·건축적 지향 방법은 꺚凰諛?현대의 조화성꽵繭茶?보다는 이 시대 이 지역의 불변성 인자 들에 대한 건축의 명확한 개념정립과 그에 따른 해석과 대응에 맞는 가변성 인자의 표현의 수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동쪽의 산지와 서쪽의 평지 지형 등과 같은 지역의 지리적 자연적 풍토조건, 백제, 후백제, 고려, 이조 등의 장구한 2천 여년의 역사 속에 흐르는 전북의 문화적 속성, 이러한 구체적인 불변성 인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표현된 가변성 인자들은 과거의 전통건축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전통건축으로 자리잡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는 건축에 내재된 본질적인 요소들과 이들 요소들간의 관계를 해석하기 위하여, 건축에 내재된 문화계, 역사계, 인간계, 자연계, 더 나아가 신화계를 설정하여 각 계들의 요소들을 찾아 구현하는 것이다. 즉, 전북지역의 이러한 계들의 특성과 요소를 정리, 정의하는 일이다. 건축은 건축 자체만으로 결과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심연에 신화계로부터 자연계, 인간계, 역사계, 문화계로 이어지는 그 지역의 건축적 배경이 녹아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북지역은 유난히 전통의 애착과 자부심이 큰 곳이며 이러한 물리적·정신적 불변성의 인자들의 맥이 더욱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다시 공공, 산업, 주거용 건물 등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한옥이 지어질 것이다.
이제는 오늘날의 전통 한옥이 지어질 것이다. 전북지역에 맞는 이 시대의 한옥 말이다. 「과거의 전통에서 현대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문화 예술의 도시」를 기대해 본다.
/ 강대호 (전주대교수, 건축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