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 시내에서 약 70㎞ 떨어진 장고봉 밑, 두만강 최하류에는 방천(防川)이라는 조선족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동북아시아 ‘금삼각(金三角)’지대의 핵심지로서 중·러 동쪽 국경의 마지막 역이다. 이 마을에서 다시 5㎞쯤 내려가면 1886년 청나라 대신 오대징(吳大徵)과 러시아 대표 바라노브가 합의하고 세운 국경선의 푯말 토자패(土字牌)가 있다. 이 경계비믄 화강암으로 깍아세운 높이 1.44㎞, 넓이 0.5m, 두께 0.22m의 비석으로 오랜 역사가 깃든 유물이다.
이 ‘토자패’로부터 시작하여 북으로 올라가면서 중·러 국경에는 4개의 경계비와 16개의 푯말이 있다고 한다. 토자패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두만강입구까지는 15㎞밖에 안된다. 이러한 지리적 관계로 이미 중국 훈춘과 한국 속초사이에는 통상무역과 관광여행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방천에서 고지 망해루에 올라서면 멀리 동해가 보이며, 가까이는 중·조·러 삼국의 자연경개가 한 눈에 안겨와 감회를 깊게 한다. 망해루의 남쪽켠에는 두만강을 사이로 북조선의 두만강시(市)가 바라보이고, 동쪽켠에는 바로 눈앞에 러시아의 철도와 보드갈나야시(市)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역사적으로,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여러차례 강대국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다.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대 해양제국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북진정책을 시험해 보았다.
1938년 7월 30일부터 8월 11일까지 일본군대는 방천마을 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장고봉에서 러시아 군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러시아군의 반격에 참패를 당한적이 있다. 중·러 국경의 마지막 역이라고 불리우는 방천이 지금은 중·러·조 삼국의 우의의 교량이 되고 있다.
이곳의 한 동포시인이 방천을 두고 “닭우는 소리 세 나라에 들리고 개짓는 소리 삼강(三江)을 놀래우라고 노래했듯이 삼국이 지호지간인 이곳 방천의 망해루에 올라 지난날의 복잡다단했던 동북아의 역사를 한번쯤 되뇌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방천기행
강줄기 어디쯤 무릎아래 흐르고
건너마을 게양대엔
아이들의 웃음이 나부끼는데
반세기 굽이굽이 세월에 패여
더는 견딜 수가 없다
손내밀면 이내 잡힐 듯한 산하
남의 나라 땅 훈춘을 지나, 방천에 다달아
토자패나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이쪽은 러시아국경, 저쪽은 북녘땅 철교
더 멀리는 일본을 향한 동해가 누워있다
도시 무엇을 보고자 이곳에 서 있는가
지금도 두만강 물줄기 유유히 흐르건만
이 넓은 천지 갈 곳이 없어
오늘은 애써
발해땅에 서 있음을 자위하도다.
/ 허소라 (시인, 군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