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사과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사과가 툭 하고 떨어졌다. 깜짝 놀란 토끼는 순간적으로 "지구가 무너지는구나! "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무너지기 시작한 지구를 피해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토끼를 만난 다른 동물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화급한 상태로 "지구가 무너져!" 라고 대답하였고 그 애기를 들은 동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토끼 뒤를 쫒아 달리기 시작 했다. 마치 말 잇기를 하듯이 차분히 따져볼려고도 하지 않은 채 '지구가 무너진데 ! ' 이 한마디를 던지며 모두들 필사의 달음박질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11일 자본과 군사력의 최강국 미국이 숲 속의 사자처럼 풍요와 권력의 사과 나무아래서 잠들어 있을 때, 미국의 심장부 뉴욕의 맨하탄 거리의 눈동자와 같은 쌍둥이 건물이 테러 공격을 받았다. 이 끔찍한 사실은 전 세계를 망연자실하게 하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들 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간곳이 없고 위기일발에 위기를 모면하는 스릴후의 안도감도 없이 수 천명의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의 아침은 엄연한 현실이어서 그 안타까움은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테러사건을 수습하는 미국의 대응을 보면서 숲 속의 제왕보다는 겁쟁이 토끼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좀더 솔직히 말하면 한 술 더 떠서 늑대가 사과를 떨어뜨려서 지구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소리치며 분노하는 토끼와 동물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다.
지난 9월 14일 미국 의회는 테러를 응징하는데 필요한 무력 사용하는데 부시 대통령에게 무한한 권한을 위임하는 결의안을 채택 하였다. 거의 모든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부시 행정부는 CIA가 개입하는 더러운 전쟁, 지상전, 핵무기 사용 가능성, 암살작전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춈스키 교수는 이와같은 보복전쟁을 멍청한 짓이라고 말했지만 어쨌튼 전쟁은 바로 눈앞에 닦쳐 있다.
미 의회의 표결은 상원 98 : 0, 하원 420 :1의 찬성을 나타낸 것인데 이는 단 한사람의 반대자를 제외하면 만장일치가 된다. 그 한 사람 유일한 반대자, 바버라 리는 버클리의 지역구 재선의원이며 사회단체 출신의 여성 의원이다. 그는 의회 표결을 마친 후 "나 자신의 도덕, 그리고 양심, 신앙에 따라 표결하였다 "고 말하였다.
프로이드의 견해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이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극복는데 필요한 동일시의 대상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성의 발달에 결함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죤 로크나, 밀과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도 여성은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하여 감정의 지배를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성의 기능이 우수한 남성의 도움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들을 상기 할 때, 바버라 의원의 선택에 대해서도 흔히 여성 정치인에게 곧잘 쏟아지는 비난처럼 정치력이 부족하거나, 현실판단 능력이 우둔하여, 함께 일하기 힘든 정치인이라고 폄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힘있는 자만이 지배하고 생존 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거스르는 이성보다 더 빛나는 양심과 도덕이 어디 있겠는가? 세계의 성난 사자 미국이 숲 전체를 타 들아오는 불길에 갖혀 꼼짝도 못하는 새앙쥐같은 꼴의 아프간을 상대로 전쟁을 치를 것 같은 현 상황에서 사자도 새앙쥐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바 있다는 공존의 원리를 깨닫는 솔로몬의 지혜가 아쉽기만 한데, 그나마 전쟁을 찬성하는 518명의 의원과 한 줄에 서기를 거부한 바버라 리 때문에 만장일치라는 덫에 빠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긴다.
그 바바라 리의 홀로 서서 빛을 발한 찬란한 양심과 도덕을 그나마 미국이 간직한 겨자씨라고 믿고 싶다.
/ 이혜숙 (롯데어린이집 원장. 한일장신대 겸임교수)